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대혼란의 시작
***
“대, 대체······ 무슨?”
‘균형을 맞추는 자’는 마치 넋이라도 나간 듯,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녀석은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뭐 그도 그럴게, 본인이 누군가에게 맞을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을 테니.
아니, 어쩌면 타격을 입은 것 자체가 처음일지도 모른다.
짐작건대, 뇌의 신경이 한 다발 끊겨나간 느낌이 아닐까.
“······.”
만약 그런 게 아니라면, 내게 멱살이 잡힌 상황임에도 이렇듯 아무런 저항이 없을 수가 없을 테니.
나는 입을 떡 벌린 녀석을 잠시간 응시한 뒤,
“구구, 내려가자.”
녀석의 멱살을 틀어쥔 채 지상으로 향했다.
그러곤 슬쩍 고개를 돌려, 그제까지도 브리다 위에서 놀란 눈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녀석들을 한 차례 쏘아보았다.
곧 내려오게 될 거다.
거긴 지금 너희가 올라가 있을 자리가 아니니까.
이어, 상으로 내려온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균형을 맞추는 자’를 바닥 한 편에다 내던졌다.
쿠당탕-.
녀석은 바닥에 나뒹구는 동안에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는데, 이는 수치스럽다거나 창피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의식조차 하지 못한 게 아닐까. 본인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를 머릿속에서 따져보느라, 극도로 집중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그러고 미동도 않은 채, 바닥에 고이 엎드려 있는 녀석을 가만 바라봤다.
아마 한동안은 저러고 가만 있을 것 같았다.
평범한 얼굴, 평범한 덩치, 평범한 헤어스타일, 평범한 복장.
모험의 탑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엑스트라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외관의 소유자.
아무런 외모적 개성도, 임팩트도, 심지어는 분량조차 얼마 없는 이 칠왕을 ‘두들겨 패겠단 계획’을 세운 건, 사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1년도 넘는 과거의 어느 때··· 그러니까, 내가 이 모험왕의 세계로 끌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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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에 나는 칠왕에 대한 염려는커녕, 당장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조차 힘든 시기이긴 했다.
어떻게 해야 챕터에 얼굴 한 번 비출 수가 있을지 기를 쓰고 고민할 정도였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 가져야할 장기적인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미리미리 설계를 해두지 않는다면, 언제고 갑작스런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내가 머릿속에 품고 다녔던 물음들은 다음과 같았다.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지속적으로 분량을 확보할 수 있을까.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취득해야 할 능력은 무엇일까.
내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에피소드는 무엇일까.
어떤 방향으로 전개를 끌어가야 독자들의 선호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식의 결말이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킹스로드를 건너기 이전까지의 진행은 그럭저럭 자신이 있었다.
어려움이야 있겠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을 순 있을 것이라고. 아니, 원하는 대로 전개를 이끌 수도 있을 거라고.
문제가 되는 건 그 다음이었다.
미들랜드, 모험의 탑. 그리고······ 칠왕.
언제나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던 가장 큰 위험요소는 역시나 그들, 칠왕이었다.
그들의 강함은 내 머릿속에 들은 지식이 많다고 해서, 내가 목표로 하는 능력을 얻는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유형의 것이 아니다.
특히나 몇몇 칠왕들, 이를테면 ‘채무불이행자’나 ‘검은 용의 수호자’, ‘종잡을 수 없는 브리다’ 같은 녀석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론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강자들이다. 애당초 힘의 규격 자체가 다르니.
그러나 문제는, 그런 그들을 나는 어떻게든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그들이 가하는 위협을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을 무찌르거나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유야 간단하다. 내가 레오보다 못해선 안 되니까.
레오는 극후반부에 들어 칠왕 중 몇을 압도한다.
대적이 가능한 칠왕들은 모두 잡아먹어 버린다. 힘으로도, 또한 무게감으로도.
이는 곧, 나 역시 그 정도를 보여줘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래야만 주인공의 라이벌로서 끝까지 생존할 수 있을 테니.
하여, 나는 그때부터 줄곧 ‘어떻게 하면 그만한 무력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떤 녀석을 상대해야 이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머릿속 한 편에 쟁여두고 있었던 것이다.
대적할 칠왕의 리스트를 짜는 건 사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단 레오의 조력자로서 등장하는 녀석들은 처음부터 제외했다.
드라카와 잇신.
이들은 그 무력을 따라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대결 구도로 가기 위한 개연성을 만들어낼 자신이 없었다. 그들의 캐릭터 설정 자체가 애당초 대적에 부적합한 캐릭터들이었기 때문이다.
브리다도 제외했다.
그건 뭐, 아예 방법 자체가 없으니.
그럼 이제 남은 녀석들 중에서 골라야 하는데, 내겐 그에 앞서 따로 고려해야할 두 개의 조건이 별도로 존재했다.
첫째,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둘째, 원작에서 레오 일행에게 제압당하는 녀석이 아니어야 한다.
첫 번째 조건이야 당연한 것이고, 두 번째 조건은 고심 끝에 선정한 것이었다.
제아무리 상대 가능한 칠왕이 몇 안 된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레오 일행의 상대를 빼앗는 건 내게도 문제의 소지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강함을 증명할 대상을 잃어버린 그들이, 분량을 잃어버린 주인공이, 그 이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또 하나.
레오 일행에게 제압당하지 않는 녀석이라는 건, 달리 말해 ‘대적이 가능하도록 설정된 칠왕’이 아니라는 걸 뜻했다.
특수한 방법을 거치지 않고선 감히 맞상대할 수 없는 절대적 힘, 혹은 규칙을 지닌 존재.
그런 녀석일수록, 처리했을 때의 임팩트가 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리스트는 계속해서 수정이 되었지만, 와중에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그게 바로 ‘균형을 맞추는 자’였다.
사실 처음부터 눈길이 가던 녀석이었다.
이 녀석은 아주 독특하게도, 칠왕인 주제에 ‘전혀 비중이 없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칠왕들 중 유일하게 본명이 나오지 않는 게 바로 이 녀석이다.
또 가장 평범한 외모를 지니기도 했고.
이유야 간단하다. 분량이 가장 적으니까. 비중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한 마디로, 독자들에게 기억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녀석이니까.
사실 이 녀석은 상황의 ‘개연성’을 담보하려 작가가 만들어낸, 일종의 작가 편의적 캐릭터다. 마치 원하는 전개를 펼치기 위해, 미리 깔아둔 배경과도 같은 느낌이랄까.
당시에 나는 녀석을 쓰러뜨릴 마땅한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 상태였음에도, 왠지 이 녀석을 대적 대상으로 삼아야겠단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위의 두 조건도 조건이지만, 무엇보다 이 녀석은 능력이 발전할 염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배경처럼 만들어두곤, 더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존재였으니까.
고로, 상대할 방법만 찾아낼 수 있다면 이보다 적합한 상대가 없다는 것.
이후 수많은 에피소드를 진행해 오면서, 나는 녀석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확실히 찾아낼 수 있었다.
갖춰야 할 조건은 세 가지였다.
-녀석의 ‘균형’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할 것.
-능력을 배제한 상태에서 무력으로 압도할 수 있어야 할 것.
-실제로 녀석을 눈앞에다 데려다 놓을 수 있어야 할 것.
힘들 거라 생각했던 앞의 두 가지는 이미 옛적에 충족시킨 다음이었다.
헌데 웬걸, 막상 때가 되니 별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세 번째가 발목을 잡았다.
‘균형을 맞추는 자’를 소환시키려 칠왕들을 한가득 모아놨더니, 막상 녀석들이 내 말을 따르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소란을 일으켜 달라고? 황당하군, 그래서 자격에서 제한당하면 어쩌라는 거지?”
“균형을 맞추는 자를 부르겠다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다. 전대 모험왕의 딸이 녀석의 출현을 피할 수 있는 관문을 애써 가져와 제시를 해줬건만, 그걸 되레 망치려 들다니. 어이가 없는 발언이군.”
헌데 놀랍게도,
“······설명해 봐.”
다름 아닌 루덴코프만은 방어적이나마 귀를 열어주었다.
“본래도 여기까지 예측했던 놈이야. 내게 저 모험왕의 딸의 존재를 언급했었으니. 그리고 이 녀석은 전에도 내게 그 녀석을 상대할 방법이 있다고 했었어. 물론 믿진 않았지만.”
나는 이에,
“······고맙군.”
녀석에게 고개를 까닥하며 목례했다.
살다 살다 루덴코프에게 도움을 다 받다니.
“뭐, 설명하고 말 것도 없어. 녀석이 등장하기만 하면 바로 행동으로 보여줄 테니까. 어차피 내가 잘못되면 너희들은 몸을 빼면 그만이야. 그땐 저들의 말을 따르라고.”
거기까지 말하곤, 나는 대마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격을 제한당할까 두렵다라······ 그런 헛소리는 이제 그만 좀 하지? 모험왕이란 건 누군가에게 선택되어지는 게 아냐.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왕위를 쟁탈하는 것이지. 설사 브리다가 탑승을 거부한다하더라도, 방법은 존재해. 그리고 설사 없다하더라도 새로 뚫고 만들면 그만 아닌가? 두들겨 패서라도 타면 될 일이지. 칠왕 정도나 됐으면 그 정도는 알아야 되는 거 아닌가?”
······.
다행히,
“······좋아, 한 번뿐이다.”
“소란만 일으키면 된다는 거지?”
설득이 먹혔다.
“네 말을 들어주긴 하겠지만, 이걸로 뭐가 달라진다고 생각하지는 말라고. 엉? 여기서 뭔가 보여주지 못하면······ 가뜩이나 얼마 남지 않은 목숨, 곧바로 끝장을 내줄 테니까.”
“마음대로.”
그 이후론 일사천리였다.
칠왕들은 힘을 발휘할 것도 없었다.
마침 레오 쪽 녀석들이 ‘균형을 맞추는 자’를 대기시켜놨던 까닭에, 칠왕들이 나섬과 동시에 곧장 녀석을 맞닥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말도 안 돼.”
나는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균형을 맞추는 자’의 표정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
한참 만에 녀석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말은,
“어떻게······ 균형의 힘에서 벗어난 거지?”
지극히 일반적인 물음이었다.
녀석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듯 보이긴 했으나, 여전히 조금 몽롱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뭐야, 네 힘에서 벗어난 걸 보는 게 처음이야?”
“······처음이다. 어떻게 규칙에서 배제될 수 있었지?”
솔직히 나는 이 말엔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사실 이처럼 규칙에서 벗어나는 능력이 그리 희귀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종족의 경우, 이와 같은 능력을 가진 이들이 무려 전체의 1/10이 넘었다.
또한,
“희한하네. 전전대 모험왕의 능력도 이와 비슷했던 거 아닌가?”
이 같은 능력을 가진 강자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고. 저 녀석 또한 아주 오랫동안 이 세계에 존재해왔다는 설정이라, 이를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심해에서 피어낸 능력, 암화를 말하는 건가? 그 능력엔 물론 잠깐 동안 모든 법칙을 무효화 시키는 힘이 들어 있긴 하지. 다만, 그걸 본인에게 걸진 않으니.”
“아,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그럴 법했다. 저 녀석이 저토록 당황하는 게.
사실 ‘균형’의 힘을 배제하는 건 내게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훼방꾼 도깨비라면 흔히들 가지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능력을 썼던 것일 뿐이니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 녀석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규칙을 해제하는 능력은 ‘암화’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 약자의 것이다.
본디 자유와 해방이 필요한 건, 힘이 없어 사육당하는 먹잇감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니.
예컨대 대다수 훼방꾼 도깨비들이 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곤 하나, 녀석들은 애당초 ‘균형’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만한 힘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이 녀석과 겹치는 구간이 없었다는 것.
도깨비들 중에 칠왕을 위협할 만한 무력을 가진 녀석이 없었다는 게, 이 녀석에겐 불행이었다.
이어,
“그럼 계속 해볼까?”
“······뭐?”
퍽-.
나는 녀석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이 자식이!”
물론, 그즈음엔 녀석 또한 가만 맞고 있지는 않았다.
명색이 칠왕이지 않는가. 일신상의 무력이 결코 떨어지는 녀석이 아니었다.
다만,
“순순히 당할 것 같으냐? 건방진 녀석이······ 내가 누군지 알고!”
“너? 곧 나한테 맞고 질질 짜게 될 녀석. 이거 주먹이 너무 느린 걸?”
내겐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나는 녀석이 날린 주먹을 피한 뒤,
퍽-.
녀석의 복부에다 한 방을 먹여주었다.
“크, 크으윽. 대, 대체 이게 무슨······.”
“아직도 모르겠어?”
현재의 내가 보통의 훼방꾼 도깨비와 가장 다른 점이라면, 당연지사 무력이다.
나는 루덴코프와 자움달, 브리다를 제외한 모든 칠왕을 능가할 정도의 신체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이 녀석은 지금 ‘균형’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에 멘탈이 붕괴되어 있지만, 실제로 내가 가장 까다롭게 생각했던 건 두 번째 조건이었다.
-능력을 배제한 상태에서 무력으로 녀석을 압도하는 것.
루덴코프에게 힘을 빼앗기지 않았었더라면, 그래서 녀석에게서 ‘시간의 부하’가 제거된 힘을 되돌려 받지 못했더라면, 섣불리 이와 같은 계획은 추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녀석과의 일이 전화위복이 되었다고나 할까.
나는 그즈음 루덴코프 쪽을 돌아보며 한 차례 씩 미소 지었다.
“······엥?”
사실 이 세계에 나 이외에 ‘균형을 맞추는 자’를 두들겨 팰 수 있는 존재가 딱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저 녀석, 루덴코프.
녀석의 능력은 내 [흉내쟁이 곡예사]의 상위호환 격이라 봐도 무방한지라, 사실 도깨비들의 능력을 가져오는 것 정도야 녀석에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녀석은 이를 행하지 못했다.
이유야 별 게 없다. 훼방꾼 도깨비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와 같은 강자에게 한낱 도깨비의, 그것도 ‘가장 별 것 아닌 능력’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지 않는가.
이어 나는 아주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그려왔던, 그리고 오직 나만이 행할 수 있는, 이 ‘균형을 맞추는 자 두들겨 패기’를 아주 열심히 수행하기 시작했다.
퍽-!
“크, 크윽······.”
“아프지? 어때, 눈물 나올 것 같아?”
퍼억-!
퍽-!
“그, 그만······.”
“어딜.”
퍽퍽퍽-!
“제, 제발······ 제발 그만······.”
“아직 멀었어.”
물론 이 녀석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굳이 이런 구타행위까지 필요한 건 아니었다.
다만, 내가 굳이 이를 강행한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먼저 무려 칠왕을 후드려 패는 모습을 독자들과 저기 저 브리다 위에서 폼 잡고 있는 녀석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까불지 말라고! 엉!? 네가 누군지 아냐고? 알게 뭐야! 너는 내가 누군지 알아!? 엉?”
“크, 크윽······ 미, 미안······ 미안해, 내가 잘못······.”
외형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녀석은 사실 별다른 캐릭터 조형이 이뤄지지 않은 녀석이다.
즉, 캐릭터 설정 자체가 보통의 엑스트라와 다르지 않다는 것.
이는 맞았을 때의 반응이 그들과 전혀 다를 게 없다는 뜻이었다.
고로,
“크, 크아악! 그만! 제발 그만해!”
이렇듯, 내게 무릎을 꿇는 모습까지도 이끌어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무려 칠왕 중 하나, ‘균형’이 내게 무릎을 꿇었다.
이 세계를 통제하던 가장 강력한 질서가 지금, 내 앞에 무너진 것이다.
이건 하나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후우······.”
그즈음 나는 잠시간 숨을 돌렸다.
이어,
‘보고 계시죠? 이 정도면 됐습니까?’
이를 지켜보고 있을 ‘누군가’에게 물었다.
곧이어 기다렸다는 듯,
-아주, 좋구나.
그에게서 만족스런 대답이 흘러나왔다.
녀석을 패버린 또 한 가지 이유.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내게 힘을 빌려줬던 이에게.
이 녀석을 흠씬 두들겨 주겠다고.
-처음으로 네 놈이 진짜 마음에 들었다.
‘······보람 차네요.’
나는 씩 웃었다.
훼방꾼 신에게 이 정도의 칭찬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진심이었다. 나름 보람찼다.
어쩌면 나······ 훼방꾼이 천직일지도?
바로 그때였다.
“멈춰요!”
갑작스레 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성의 진원지는 하늘 위 허공이었다.
올려다보니, 누군가가 얀의 유령을 타고 천천히 허공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였다. 전대 모험왕의 딸, 아리엔.
1차 자격시험이 끝나기 전까진 나타나지 않을 거라더니······ 칠왕 중 하나가 터져 나가자, 무언가 조짐을 느꼈던 모양이다.
사태가 아주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지, 지금······ 당신 지금 대체 무슨 짓을······.”
“안녕? 반가워. 아리엔이지?”
“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이미 수백 번은 들었던 질문이지만, 나는 이번에도 성심성의껏 대답해줬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예우는 갖춰야하지 않겠는가.
“나는 주걱턱 모험단의 단장 히로다. 그리고 당신의 딸 에스트리아를 에스코트한 채 , 지금껏 당신을 찾아다녔던 사람이지.”
그러자,
“······에스트리아? 지금 무슨 소리를?”
아리엔의 얼굴이 묘하게 구겨졌다.
불신과 황당함이 섞인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아직도 모른단 말이야? 지금 네 옆에 붙어 있는 건 원숭이야. 에스트리아로 둔갑한 원숭이. 반말을 찍찍하는 데다가. 우끼니, 끼끼니 거리고 있지 않아? 용들 사이에서 자란 아이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그즈음 나는 어째선지 통쾌함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거짓말을 바로 잡는 것. 이게 바로 정의구현 아니겠는가.
“그, 그건······ 설마 그럴 리가······.”
“진짜 에스트리아는 나와 함께 있어. 지금도 엄마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지.”
물론 이건 뻥이었다.
“그게······ 사실인가요?”
“내가 거짓말을 왜 하겠어.”
바로 그때,
“그 말······ 책임질 수 있나요?”
마침내 기다리던 말이 나왔다.
아리엔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은 채, 슬쩍 얀의 유령을 쳐다봤다.
니들 이제 큰일 났다.
“물론이지. 내 말이 거짓이면 나는 모험왕에 도전하지 않겠어. 그 즉시 주걱턱 모험단을 해산하고 저기 심해바닥으로 내려가 흑어들과 물장구나 치며 놀도록 하지. 하지만 내 말이 사실일 경우······ 당신은 내 말을 따라줘야 돼.”
“······요구가 뭐죠?”
“일단 저 괘씸한 거짓말쟁이들부터 브리다에서 끌어내려.”
나는 브리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자격시험의 규칙도 바꿀 거야.”
“······규칙을요? 어떻게?”
“간단해.”
그러곤 나는 목청을 틔우곤, 목소리의 볼륨을 키웠다.
“크흠, 흠!”
이 중요한 선포를 속삭이듯 할 순 없으니.
“일주일이란 기간은 동일하다! 하지만 열 개의 봉우리로 나누는 짓 따윈 하지 않을 거야! 모든 모험단에게 있어 목표는 단 하나. 크노크 산 정상 봉우리를 차지하는 것!”
그러자 아리엔이 곤란하다는 듯 얼굴을 굳혔다.
“그, 그건 너무 혼란스러운······.”
그러나 나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최상층에 올라갈 수 있는 모험단의 수가 너무 많아. 셋? 아니. 이번 결전이 끝나고 최상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모험단은······ 단 하나 뿐이다. 이상!”
나는 최상층에 의미도 없는 녀석들을 함께 데리고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 계획은 간단했다.
결전은 이곳 검은 산맥에서 짧고, 굵게 끝낸다.
그리고 곧바로 결말을 향해 직진한다.
정돈된 구도를 뒤엎었다.
바야흐로, 대혼란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