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대혼란(4)
***
2개월 전.
모험의 탑, 지하 1층.
[코코로코 타임스페이스]
“호오, 저를 찾고자 해서 찾아온 이들은 참으로 오랜만이네요. 그것도 참······ 기똥찬 방법으로.”
“그런가. 나름 정공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와 관련된 정보를 쥔 자들을 모조리 두들겨 패는 것이요?”
“입들이 무겁길래.”
“뭐, 그것이 효과적이었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는데, 이곳 심해 아래까지 방문한 경우는 처음이거든요. 어쨌거나 정보의 취사선택이 훌륭하시군요.”
“거짓말 하는 녀석들은 티가 나거든.”
그즈음 코코로코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다만 한 가지 조언을 해드리자면······ 모험의 탑에서 그와 같은 방법은 좋지 않습니다. 이곳은 전적으로 관계에 의해 돌아가는 세상이거든요. 두루두루 사이좋게 지내지 않는다면, 언제 누가 적으로 나타날지 모릅니다. 미들랜드로 넘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걸로 보이는데······ 몸을 좀 사리시는 게?”
“거기까지. 듣기 싫은 건 듣지 않는 주의라.”
“······확실히 성격이 있으신 분들이군요. 뭐,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좀 전부터 우리를 아는 것처럼 말하는군. 마치 옆에서 본 것 마냥.”
“봤습니다. 나름 마녀들의 수정구를 설계하기도 한 몸인지라.”
“······그렇군.”
그때,
“계속 떠들 셈인가?”
뒤쪽에 있던 그로니얀이 불쑥 입을 열었다.
이에 칼 자이드는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곤, 코코로코에게 본 목적에 대해 말했다.
“그래서 문제 있나? 네 공간을 이용하는데?”
“흐음.”
녀석은 잠시간 침묵하더니,
“전혀요. 손님을 가려 받지는 않으니까요. 이용대금만 제대로 지불할 수 있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이내 씩 웃으며 대답했다.
“현재 이용 가능한 공간은 다음의 세 곳이 있습니다. 물론, 제각각 가격은 다릅니다.”
1. 10일 방
2. 100일 방
3. 365일 방
“현실에서의 하루가 제 공간에선 저만큼 뻥튀기 되는 것이죠. 물론 신체의 노화에 대해선 책임지지 않습니다만.”
“365일로.”
“호오, 가격에 대해선 묻지 않으십니까?”
“어떤 값이든 치르도록 하지.”
“꽤나 급하신 모양이군요.”
“이곳을 찾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거든. 남과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들 대부분을 어기고 말았지. 이제 내가 지킬 수 있는 건 하나뿐이야.”
“그게 뭐죠?”
“강해지는 것.”
“······흐음.”
그러나 이내 코코로코는 별 감흥 없다는 듯, 확답 없이 화제를 돌렸다.
“의지는 높이 사지만, 그것이 지불능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죠. 또 매번 상황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게 사람이라는 동물이기도 하고. 일단 이용대금과 지불방법을 확인하시죠. 동의하시면 진행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공간에서 획득한 힘의 70% 상환 – 일시불
2. 공간에서 획득한 힘의 80% 상환 – 할부(1년)
3. 공간에서 보낸 시일만큼 현실 세계에서 절대복종
“비싸군.”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이 정도를 받지 않으면 공간을 유지할 동력이 부족해지거든요. 게다가 저도 부담하는 바가 있습니다. 본디 세계의 법칙에 의해, 시간축이 비틀어진 공간을 빠져나온 이들은 일정 부분 힘의 부하를 받게 됩니다. 이게 꽤 골치가 아픈 건데, 저는 그걸 대신 가져가 드리거든요. 그러니 그 값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3번에서 다른 것으로 중도에 변경이 가능하나?”
“음······ 가능합니다. 다만 일시불로만요. 물론, 얼마간 복종했다고 해서 따로 감해지는 건 없습니다. 전액 상환하셔야 합니다.”
칼 자이드는 알겠다고 말하곤, 뒤의 그로니얀을 쳐다봤다.
그 또한 가만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공간마다 상환해야 하는 힘의 최소수치가 존재합니다. 공간이용이 끝나고 상환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시, 목숨을 몰수할 수도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이에 대해선 이미 전해들은 바였다.
코코로코의 집행은 가차 없으니, 되도록 365일 방은 피하라고.
다만,
“물론.”
“상관없다.”
선택을 달리하진 않았다. 최소수치가 어떻든 간에 채울 자신이 있었고, 또한 애당초 그리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좋습니다. 방은 내어드리죠. 두 분 다 같은 선택이십니까? 물론, 공간 자체는 1인용이긴 합니다만.”
“맞아.”
“그래.”
“그럼,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지요.”
이어, 눈앞의 허공이 갈라지면서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여기가?”
“네, 들어가시면 됩니다.”
칼 자이드는 이를 말없이 쳐다보다,
“아참, 혹시 능력이 된다면······ 공간 이용기한을 연장시킬 수도 있나?”
줄곧 궁금해 하던 질문을 던졌다.
“······가능은 합니다만, 추천 드리지는 않습니다. 제가 만든 곳이긴 하나 굉장히 지루한 곳이거든요. 할 게 없어요. 더군다나 365일 방이라면······ 후훗, 미쳐버릴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된다는 거군.”
“그럼요, 지불능력만 되신다면 충분히.”
“좋아, 그럼 들어가 보자고.”
그러곤 칼 자이드가 코코로코의 공간으로 막 머리를 밀어 넣으려 할 때였다.
문득 궁금한 게 하나 떠올랐다.
“그나저나 이런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이유가 뭐지? 보아하니, 지불 받은 힘을 직접 사용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맞습니다. 받는다한들 사용할 줄도 모르죠. 저는 무력과는 거리가 먼 설계자일 뿐이니까요.”
“그런데 왜?”
“하핫, 그야 간단합니다.”
코코로코는 씩 웃으며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다가올 혼란을 위해서.”
*
다시 현재.
-뭐하는 짓이더냐.
“······.”
-네 상대는 주걱턱이 아니다. 이리로 와 저 검은 도마뱀들을 상대하거라.
“······끄러.”
-뭐하는 짓이더냐! 어서 오지 않고!
“시끄럽다고.”
칼 자이드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머리가 띵- 하고 울리는 듯했다.
저 떽떽거리는 목소리는 당최 익숙해지질 않으니 원.
이어,
저벅-.
한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대마녀의 명령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어, 어떻게······.
칼 자이드는 줄곧 머릿속을 울려대는 대마녀의 신호엔 아랑곳없이, 눈앞의 사내를 응시했다.
주걱턱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혹시 너······ 저기 가봐야 되냐? 용 잡으러?”
“아니.”
“그렇지? 맞지? 나랑 붙는 거 맞지?”
“걱정 마라.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
처음부터 끌려 다닐 생각은 없었다. 코코로코의 인도에 따라 대마녀에게로 온 건, 그저 칠왕이 주도하는 탑의 흐름에 몸을 맡기기 위함이었으니.
더욱이 대마녀의 곁이야말로 탑 내의 모든 정보가 모여드는 곳이 아닌가. 급변하는 탑의 정세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주걱턱 녀석이 이렇듯 본격적으로 나설 줄 알았다면······ 그냥 곧장 찾아가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겠지만.
지불대금을 마련하는 일이야 간단했다.
성장담보대출.
미래의 성장을 저당잡곤, 힘을 당겨오는 것.
코코로코의 공간에서 나오자마자 한 일이 바로 이걸 최대로 늘리는 것이었다. 더는 남은 힘이 없을 정도로.
만약 공간 내부에서 행했다면 이 또한 이용료를 잡아먹는 원흉이 되었겠으나, 어차피 나온 다음이라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둔 대출금을 몽땅 터니, 딱 이용료 만큼이었다.
물론 이제 더는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미래를 죄다 헌납한 셈이었으니.
하지만 칼 자이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이미 어느 정도 한계에 직면해 있던 상황이었다. 현 상태라면 최강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는 됐다.
“후······.”
칼 자이드는 천천히 심호흡했다.
어차피 지금 넘지 못한다면, 영영 닿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젠,
“대금지불은 모두 끝났다. 방해받진 않을 거야.”
결전을 치러야 할 순간이었다.
“능력을 발동시켜라, 주걱턱. 이번엔 확실히 끝을 내보자고.”
이어 칼 자이드는 전신의 힘을 개방했다.
저 밑 깊숙한 곳에서부터 지난 3년간 켜켜이 쌓아둔 ‘성장’이 일거에 방출되었다.
팟-.
그야말로 거력.
막대한 힘이 용솟음 쳤다.
칼 자이드는 설사 거인왕이 상대라 할지라도, 감히 힘에서 밀리지 않을 거라 자신했다.
헌데,
“······뭐지?”
눈앞의 녀석에게선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주걱턱은 그저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어째서 가만히 있는 거지? 전에 분명히 확인하지 않았나? 현재의 네 상태로는 나를 결코 당해낼 수 없다는 걸? 어서 능력을 쓰지 않으면······.”
그 순간,
“아직도 모르겠어?”
주걱턱이 씩 웃으며 말을 끊었다.
“······.”
칼 자이드는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고 보니······.
“둘 뿐이군. 뭐지?”
어느새 주변이 지워져 있었다.
공간의 분화, 혹은 전이.
주걱턱은 이미 뭔가를 한 상태였다.
“확률요정의 능력이야. 너와 나와의 일대일 링을 만든 거지. 저기 바깥에 있는 녀석에게 우리 싸움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거든. 몰라? 이거 시아나 능력인데. 혹시 본 적 없나?”
“······.”
본 적 없었다.
다만, 본래 그 여자의 능력이 어떠한 것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건방지군.”
“응? 왜? 능력 썼잖아.”
“그 여자는 대적자가 아니다. 해독가의 능력을 가져와서 뭘 하겠단 거지?”
“어쭈, 무시하냐? 물론 시아나가 해독가인 건 맞지만, 이건 그래도 그녀가 대적을 위해 개발해낸 운용법이라고. 잘 보라고, 지금 이 공간은 내 승리확률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 요런 게 가능하다니까?”
순간,
스스슷-.
공간이 일그러지며, ‘무언가’가 접근해왔다.
허연 안개와도 같은 그것은 자신에게 접촉해선 이내,
“······호오.”
자신의 힘의 일부를 덜어갔다.
아주 소량의, 보고 있지 않았으면 눈치 채지도 못했을 만큼 미미한 정도로.
뭐랄까, 실망스러웠다.
“끝이냐?”
“음······.”
이어, 주걱턱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희한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이 정도로는······ 승리확률이 안 오르는데. 음, 이게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가? 역시 우리 약간 또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렸던 걸까······.”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해보도록. 설마 이게 다는 아니겠지? 끝장을 봐야 할 순간에, 이 따위 시시한 장난질을 보고 싶진 않은데.”
“······.”
주걱턱은 그러고 가만 입을 다무는가 싶더니,
“건방진 소린 됐고, 일단 먼저 한 판 붙어보자고.”
냅다 기습해왔다.
피융-.
‘······정면.’
빠르긴 하나, 보인 순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칼 자이드는 여유롭게 주걱턱의 주먹을 피했다. 혹시나 숨겨진 한 수가 있나 기다렸으나, 별다른 건 없었다.
이어,
탁-.
타닥-.
탁-.
순식간에 몇 차례의 공방이 지나갔으나 마찬가지였다.
녀석의 공격은 물론 강력하긴 했으나 예상 가능한 것이었고, 그리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유효타 자체가 없었다.
하여 칼 자이드는 주걱턱의 공격을 피하는 와중에도, 녀석의 저의를 살피려 눈을 부릅떴다.
고작해야 이게 다가 아닐 테니까. 절대로.
잠시 후,
“······허, 쉽지 않네.”
역시나 주걱턱이 안 되겠다는 듯 먼저 공격을 멈췄다.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슬슬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면 하는데. 더 시간 끌고 싶지는 않아서.”
“근데 그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뭐지?”
“너 어떻게 그렇게 강해진 거냐? 보아하니, 따로 진화를 한 것 같진 않은데 말이야. 분명 힘의 한계가 왔을 텐데······.”
그러고 주걱턱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두 눈을 빛냈다.
“······.”
그 모습에 칼 자이드 또한 약간이지만 놀랐다. 주걱턱이 뭔가를 궁금해 하는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저 녀석도 모르는 게 있다니.
“정확하다. 현재 나는 힘의 한계에 부딪혀 있는 상태다.”
“아니, 내 말은······ 원래 나는 그 정도까지도 가지 못했거든? 근데 어떻게······.”
“간단한 걸 묻는군. 진짜와 가짜의 차이겠지.”
그러자,
“······하.”
녀석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그런 매커니즘이 아니야, 내 능력은.”
“나야말로 황당하군. 지금의 너도 흉내만 내는 녀석이 도달할 수 있는 힘치곤 과한 편 아닌가? 그 정도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니, 그러니까······ 내가 지금 아쉬워서 묻는 게 아니라고. 물론 그런 것도 약간 있긴 한데, 어쨌거나 그냥 궁금한 것뿐이야. 본래의 너는 절대 그 정도가 될 수 없는······ 아, 어쨌거나!”
칼 자이드는 그런 주걱턱을 가만 쳐다보다, 무심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렇다면 하나뿐이겠지. 각오다.”
“······뭐? 각오?”
“그래. 네 말마따나 네가 내 능력을 온전히 흉내 낼 수 있다고 쳤을 때, 개인의 잠재력에 차이가 없다면······ 남은 건 결국 각오뿐일 테니. 더욱 성장하겠단 각오.”
“······참나, 말이 되냐? 이게 무슨 만화도 아니······ 어쨌든!”
“쯧.”
칼 자이드는 혀를 찼다.
“너는 미들랜드에 오기 전부터 나의 힘을 흉내 내 그만한 힘을 쌓았지. 그때 네 주위에 너를 긴장케 만드는 존재가 있었나?”
“응?”
“너는 자연스레 풀어졌을 수밖에 없겠지. 이만하면 됐다 하고.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겐 늘 벽이 있었거든. 고백하자면······ 그래, 너라는 벽이.”
“······.”
“당연지사 스스로를 더 다지고, 또 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곳에서 차이가 난 것이겠지. 고유능력은 시전자의 의지를 따르는 법. 이런 간단한 것도 모를 줄은······.”
그때였다.
“아하!”
주걱턱의 눈이 갑작스레 동그래졌다.
그러곤,
“그렇구나, 간단한 거였네. 그러고 보니 네가 바뀌었었지. 나를 라이벌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흉내 낸 것은 본래의 너였던 거야, 그러니까······ 원작의 너. 그러니 이 정도가 끝이었던 거지. 오케이, 풀렸다.”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늘어놓았다.
“······라이벌? 원작? 캐릭터?”
“어? 아냐, 아냐. 혼잣말, 혼잣말. 넘어가.”
“······.”
“그럼, 이제 슬슬 끝내볼까.”
“······.”
순간 칼 자이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또 다시 저토록 광오한 말이라니.
“건방진······ 그래, 이제 그런 말도 더는 나불거리지 못할 거다.”
하지만 동시에 긴장도 되었다. 녀석이 빈말을 할 리가 없으니.
그즈음,
“지금부터 비밀병기를 꺼낼 거거든. 사실 일대일 링을 만든 것도 밖에 있는 녀석에게 이걸 보여주기 싫어서라고. 치사하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어, 미안.”
녀석이 품속에서 웬 종이 쪼가리 하나를 꺼냈다.
거기엔 단 하나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내 친구를 불러줘.
이어 허공에 떠오른 종이가 서서히 빛 무리를 뿜어내더니,
“이 녀석, 본 적 있지?”
펑!
갑작스레 검고 붉은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은, 그제까지도 칼 자이드의 머릿속에 선명히 새겨져 있던 ‘어떤 괴물’의 형상과 매우 흡사한 것이었다.
“그건······.”
“아니다, 오래 돼서 기억하지 못하려나? 모습이 약간 변하기도 했고.”
물론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저 것이 등장했던 날, 처음으로 주걱턱 녀석에게 겁을 집어먹고 말았으니.
“그래, 그걸 꺼내길 기다렸다.”
칼 자이드는 진정 그렇게 생각했다.
주걱턱에게 가지고 있던 열등감의 시작이 바로 저 탑승형 로봇이었다. 그로니얀을 단숨에 쪼개버렸던 괴물······ 저걸 깨부숴야만 진정 녀석을 넘어설 수 있을 테니.
“코미어 알지? 나름 모험단을 지키기 위해 애써줬던 모양이야. 이것저것 많이 업그레이드 되었더라고. 견고에, 증폭에······ 긴장하지 않으면 너, 한 순간에 소멸해 버릴지도 몰라.”
곧이어, 주걱턱이 탄 검고 붉은 로봇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실로 어마어마한 위압감이었다.
그 무렵, 칼 자이드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넘어서면 된다.
부수면 그만이다.
뭉개버리면 끝이다.
“그깟 고철에나 의존하다니.”
“그깟 고철이라니. 코코아톰ver.2에게 사과해. 줄여서 코버투.”
“······없애주마.”
이어, 칼 자이드는 전력을 다한 공격을 시작했다.
마침내 맞이하게 된 최강의 적을 향해서.
“······간다!”
⁝
그리고 10여분 뒤.
“······한 끗 차이였어.”
“쉽지 않군. 거의 잡았다 생각했는데.”
“꿈도 크지.”
“졌다. 인정하지.”
“괜찮아. 넌 그래봐야 딱 한 사람에게만 진 거야. 다음대 모험왕에게 말이지.”
“모험왕 한 사람이라······.”
그즈음 입가로 흘러들어온 피 한 방울이 혀 끝을 적셨다.
달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럭저럭 나쁘지 않군.”
그렇게 칼 자이드의 전투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