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숙원을 손에 넣은 자
***
칠왕의 ‘파워랭킹’은 커뮤니티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은 주제이자, 또 그만큼 갑론을박이 많이 일어나는 화젯거리 중 하나였다.
-누가 가장 강한가.
이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인 물음에 빠져들지 않을 소년만화 애독자들이 과연 존재할까.
소년만화에선 캐릭터의 무력만큼 비중과 분량, 그리고 인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도 없다. 자연스레 강자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고로, 말들이 많은 게 당연했다. 가장 관심이 가는 이야기일 테니.
가끔 보면 수많은 캐릭터들의 서열을 하나하나 나누고 있다거나, 심지어 다른 만화의 주인공들까지 끌고 와 순위를 매기는 이들까지 있었다.
딱히 누가 궁금해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만큼 관심도와 집중도가 높은 주제라는 것.
헌데 그 와중에 ‘칠왕들의 무력서열’이 커뮤니티라는 공론장에서 하나의 화두로 던져졌다?
또 그 토론 참여자들이 틈만 나면 갖가지 설정과 떡밥들을 늘어놓고선, 온종일 씹고 뜯고 맛보길 즐기는 커뮤니티 지박령들이다?
그때부터 커뮤니티는 마치 그러자고 약속이라도 한 듯, 불타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칠왕들의 무력순위에 사람들의 관심이 보다 집중되었던 건, 그들이 단순히 세계관 최강자들이라서가 아니었다.
간단하다. 답이 갈리기 때문에.
칠왕들은 모험의 탑 내에서 가장 강한 7인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전력을 온전히 드러내는 캐릭터들은 몇 되지 않는다.
이는 각자가 맡은 역할이 제각각 다 다르기 때문인데, 레오의 대적자로 등장하는 게 아닌 이상에야 전력을 드러낼 일이 없다. 애당초 싸울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잇신이나 옛 용과 같은 조력자 포지션의 칠왕들은 원작 내에서 단 한 번의 전투도 치르지 않으며, 심지어 브리다의 경우 무력은커녕 지성의 유무조차 확인되지 않을 정도다.
하여, 이들의 무력을 비교하는 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선 대상이 가진 고유능력의 기본 설정부터 시작하여, 그 위력과 제한조건, 상성, 해당 존재의 업적, 세간의 평가까지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했으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칠왕 중 가장 강한 이로 꼽히는 건 기본적으로 다음의 셋이었다.
-채무불이행자 루덴코프
-검은 용의 수호자 잇신
-균형을 맞추는 자
물론 이 또한 말이 많은 리스트긴 했다.
수많은 조건들을 배제한 채, 그저 출력값이 높은 순으로만 선정된 것이었으니.
일단 잇신은 고유능력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캐릭터다.
키리코의 수행을 돕는 게 녀석이 맡은 역할의 전부였으니.
그럼에도 이 녀석이 리스트에 오른 건, 순전히 저 강대한 검은 용들을 홀로 통제하고 있다는 설정 때문이었다.
-수호자는 검은 용 전체와도 대적할 수 있다.
바로 이 하나의 문구 때문에.
검은 용 세 마리면 칠왕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솔직히 그 힘을 무시하긴 힘들었다. 실제로 힘이 드러난 장면이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다만 문제는, 녀석의 수호자로서의 힘이 검은 용을 상대하는 데만 유효하다는 것이었다. 수호자의 힘을 검은 용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사용했다간 소멸의 위험에 처한다는 설정이 존재했으니.
이에, 솔직히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에겐 그 만한 힘을 쓰지 못하는데, 과연 이 리스트에 합당한 캐릭터일까 하고.
다음으로, 균형을 맞추는 자 역시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였다.
이 녀석은 누구에게도 지지는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로 뽑히긴 했지만, 누구도 먼저 공격하지 않는 대단히 수동적인 캐릭터인데다, 실제로 다른 이를 압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누구든, 몇 명이든 늘 반반을 갈 뿐이지.
그러나 단 한 명, 루덴코프만은 어느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녀석은 누구와 비교하더라도 꿀리지 않으며,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 압도하는 경향까지 있었으니까.
물론 루덴코프 또한 충돌을 꺼리는 칠왕들이 몇 있긴 했다.
대표적으로 ‘옛 용’과 ‘균형을 맞추는 자’,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브리다’ 정도.
다만, 그 이유가 무력에 있어서의 부족함은 아니었다.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존재들 앞에서 다소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것 뿐이지.
하여, 루덴코프만은 모두가 인정했던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강자로서.
이뿐만이 아니었다.
루덴코프는 비단 칠왕 내에서가 아니라, 모험왕의 설정 내 존재하는 모든 캐릭터들을 통틀어 비교한 순위에서도 상위권이었다.
즉, 전대의 모든 모험왕들과 최종각성을 끝마친 레오가 포함된 리스트에서조차 말이다.
녀석이 이토록 고평가 되는 이유야 간단했다.
홀로 그 리스트에 있는 전원의 힘을 쓸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저 루덴코프였으니.
고로,
“크하하핫! 마중이라도 나온 것이냐, 주걱턱?”
눈앞이 깜깜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장 돌아가는 분위기로 보건대, 저 괴물이 바야흐로 최종빌런으로 등장한 듯했으니까.
챕터의 제목이 언급하고 있는 ‘숙원을 손에 넣은 자’는 루덴코프를 의미하는 게 분명했다. 여기서 ‘숙원’이라는 건 바로 ‘죽음’을 뜻하는 것이고.
‘균형을 맞추는 자’를 처치한 나비효과가 이런 식으로 나타날 줄이야.
“······.”
원작에서 녀석은 빌런 역할을 수행하긴 하지만, 레오 모험단의 길을 끝까지 막아서지는 않는다.
그저 잠깐 잠깐 등장하는 장애물 정도의 느낌이랄까.
이는 작가가 녀석을 레오의 주요 대적자로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 이유야 별 거 아니었다. 어차피 루덴코프는 모험왕이 되지 못한다는 설정이니, 굳이 레오 쪽에서 나서서 맞설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풀었던 것.
실제로 이와 같이 말하며, 레오 일행이 루덴코프를 피해 다른 칠왕을 상대하러 가는 장면도 나왔었다.
하지만 당시 이에 대한 커뮤니티의 공통된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루덴코프가 대적자가 되지 못한 까닭은 너무 강해서다.
도저히 이기지 못할 것 같으니까, 일부러 상대하지 않는 쪽으로 작가가 방향을 튼 거라고.
그즈음,
‘지금은 그럼 대책이 있다는 건가? 저걸······ 이겨낼 수 있다고?’
나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루덴코프를 가만 노려봤다.
녀석은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끊임없이 킥킥거리고 있었다.
“크흐흐흐, 다 네 덕분이다. 주걱턱, 덕분에 죽음을 얻었어.”
“······잘됐네.”
“그럼 보답을 해야겠지?”
“보답이라······.”
그러곤,
나는 슬쩍 내 뒤쪽을 확인했다.
거기엔 충격에 휩싸인 레오가 여전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실은 루덴코프의 보답이란 표현이 약간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혹시나 레오가 오해하지는 않을까 하고.
“글쎄, 굳이 보답까지야······.”
그러나 다행히도,
“크흐흐, 사양 말라고. 네게만은 꼭 최대한의 고통을 선사해 줄 테니까.”
금세 그에 대한 염려는 사그라졌다.
대신 다른 쪽 걱정이 늘었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보답의 의미가 달라졌었나?”
그렇게 말하며, 나는 녀석을 유심히 살폈다.
루덴코프는 고통을 주겠다는 말과는 달리, 딱히 공격태세를 갖추고 있진 않았다.
외려,
‘······경계하는 건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주변을 살피고만 있을 뿐이었다.
흡사 갑작스런 기습을 경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는 약간 의외의 모습이었다. 여태 저 녀석만큼 경계라는 행위와 거리가 먼 녀석도 없었던 것이다.
혹시 옛 용과의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이라도 입은 걸까?
그때였다.
“근데 지금 당장은 아냐.”
루덴코프가 씩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째서지?”
“바보 아니냐? 엉? 이젠 나도 세력이라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냐, 나를 보호하려면. 지금 네 놈 정리하려다 다른 녀석들이 덤벼들면 어떡하라고? 물론 파리새끼들이 몇몇 윙윙대는 것에 불과하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세균이라도 감염될지?”
“······뭐?”
의아한 소리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루덴코프가 저런 말을 한다고?
세력? 보호?
“크하하하, 이런 느낌은 굉장히 오랜만이야. 아니, 나도 놀랐다니까? 마치 겁이라도 집어먹은 것 마냥 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고. 쫄려 뒈지겠다고! 크흐흐, 이게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거겠지?”
“······.”
그렇군.
그저 말뿐이 아니었다. 녀석은 확실히 변해 있었다.
정말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루덴코프는 약해졌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가만 생각에 잠겼다.
하긴. 설사 옛 용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지 않았다 하더라도, 애당초 녀석은 완벽한 상태일 수가 없다.
죽음을 획득했다는 건, 다시 말해 죽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녀석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건, 나나 다른 칠왕들이 아니다.
이제까지 행해온 채무불이행에 대한 대가, 바로 ‘수명’이다.
이미 지나치게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녀석의 입장에서 이는 두려운 것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어쩌면 녀석은 이미 몇몇 핵심적인 힘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채무를 청산했을지도 모른다.
‘혹시 지금이 기회인가?’
문득, 루덴코프를 한 번 노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 굳이 나의 처리를 뒤로 미루겠다고 한 까닭이 있지 않겠는가.
혹, 전에 없이 약해져 있는 상태일지도?
“······.”
그러나,
‘아냐. 그렇다한들 위험부담이 너무 커.’
나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암만 약해졌다한들, 루덴코프는 루덴코프다.
또 다른 칠왕 중 하나인 옛 용의 머리를 장난삼아 잘라버릴 정도의 강자.
시험 삼아 덤벼들기엔,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너무나도 컸다.
일단 녀석의 상태를 면밀히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하여, 다시금 녀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난데없이,
“크흠, 아아! 나 채무불이행자 루덴코프다! 지금 검은 산맥에 있는 개미 새끼들! 주제도 모르고 날아든 파리 같은 놈들! 지금부터 내가 한 마디 할 테니 귓구멍 파고 잘 들으라고!”
루덴코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이틀의 시간을 주겠다! 그 안에 내 밑으로 들어오는 놈들은 살려줄 것이다! 차기 모험왕의 부하로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그때까지 내게 합류하지 않는 녀석들은······ 죄다 이렇게 만들어 주마!”
그러곤,
휙-.
녀석이 대뜸 손에 들고 있던 옛 용의 머리를 하늘 높이 던졌다.
이에 나는 놀라 소리쳤다.
“무슨 짓이야!”
저 미친 녀석이 대체 뭘 하려고······.
그러나 녀석은 내 외침엔 아랑곳없이, 허공에 뜬 옛 용의 머리를 보며 씩 웃을 따름이었다.
그러곤,
퍼억-.
공중에서 그대로 터뜨려버렸다.
······.
그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내 눈에 띈 모든 것들이 슬로우비디오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이게······ 말이 돼?’
실로 잔혹한 광경이었다.
하늘에서 피분수가 내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이게 지금 소년만화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건가?
그러고 내가 충격에 빠져 있을 때였다.
“네, 네 놈······ 죽여 버리겠어!”
뒤쪽에서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나는 황급히 정신을 추스르곤, 뒤를 돌아봤다.
거기,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의 레오가 있었다.
녀석의 움켜쥔 주먹에서 핏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레오에게 있어 옛 용은 스승과도 같다. 참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다만,
‘하······ 이런 거였어?’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이 상황에서 그냥 내버려 둔다면 레오는 죽거나, 각성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하게 될 테니까.
그즈음 나는 작가의 의도와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깨달았다.
“후······.”
물론 이는 내게는 그리 좋지 않은, 작가의 의도를 마냥 따르는 행동일 뿐이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이 클리셰라는 거니까. 그야말로······ 저항할 수 없는 이야기의 흐름과도 같은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곤,
“그만 둬, 레오. 너도 죽고 싶은 거냐?”
나는 곧장 레오를 막아섰다.
“비켜!”
“분노할수록 시야는 흐려지는 법이지. 녀석이 누구인지를 기억해. 칠왕들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강자다. 너 혼자선 그에게 대적할 수 없어.”
“비키라고! 비키지 않으면 너부터 없애버리겠어!”
레오가 흥분하여 나를 위협했지만, 나는 무시했다.
대신,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갔다.
“진정해. 흥분을 가라앉혀. 루덴코프는 도망간다 말하지 않았어. 대신 자신의 적이 누구인지를 골라내려 했을 뿐이지. 이건 기회다. 녀석에게 반하는 세력들을 끌어 모아, 처리해버릴 수 있는 기회. 이틀 뿐이야,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
“하, 하지만······.”
“정말로 복수를 하고 싶다면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어. 분노와 복수심은 심장에 새기고, 머리는 차갑게 식혀라. 그래야 저 악마를 이길 수 있을 테니까.”
“······.”
이어, 나는 레오의 어깨를 잡고 천천히 뒤로 돌렸다.
“일단 물러나자고.”
그렇게 한 발작 물러날 즈음, 등 뒤로 루덴코프의 분노한 듯 설렌 외침이 메아리 마냥 들려왔다.
“기억해라! 이틀이다! 그 안에 고개를 숙이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다!”
*
다음 날.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가장 주목할 만한 일 두 가지가 오늘 아침, 동시에 발생했다.
첫 번째는,
“듣지 못하였느냐? 합류하겠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그래, 나를 포함한 모든 마녀들은 저 루덴코프에게 맞설 생각이란다.”
대마녀가 우리 쪽에 붙은 것이었다.
나는 옆에 서 있던 도로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자,
“나, 나도 몰라. 그냥 싸우던 도중에 갑작스레 그만하자고 하더니······.”
도로시 또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나는 다시금 대마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지?”
“그때 다 말하지 않았느냐.”
“말? 어떤?”
“내가 주목했던 건 너희 두 명이라고. 더벅머리 소년과 네 놈 주걱턱.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그때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지. 그것뿐이란다.”
“······.”
물론 믿을 수는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파악할 수 없었고.
다만,
“······좋아, 받아들이지.”
딱히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어,
“키리코 쪽은?”
나는 다시금 도로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직은 몰라. 하지만······.”
“똑같을 거라고?”
“······아마도.”
“야단났네.”
주목해야 할 일 두 번째.
도로시가 부리던 검은 용들이 죄다 루덴코프 쪽으로 붙어버렸다.
본래도 녀석들은 도로시의 지휘 하에 있는 걸 불만스러워 했다는데, 아니나 다를까 루덴코프의 외침이 들려오자마자 돌아서버렸다는 것이다.
“그 녀석들은 처음부터 수호자 일족 밑에 들어간다는 걸 탐탁찮아 했었어. 심지어 무리가 둘로 나뉘기도 했으니.”
“수호자 일족?”
“아, 저 녀석들은 나와 키리코를 수호자 일족이라고 생각해.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나와 키리코는 잇신 스승님의 제자니까.”
“반쯤은 맞다? 그럼 녀석들을 제어할 수도 있다는 거 아냐?”
“그런 건 아냐. 내가 진짜 수호자는 아니니까.”
“······그렇군.”
대마녀가 붙은 건, 그녀의 의도가 순수하다고 가정했을 때, 고무적인 일이었으나 검은 용들이 돌아선 건 뼈아픈 일이었다.
세 마리면 칠왕도 상대할 수 있다는 검은 용이다.
이번에 튀어 나온 건 총 사십여 마리. 원작의 여덟 배였다.
그것들이 죄다 적으로 돌아서게 된다면······.
“큰일인데. 균형이 안 맞아. 밀린다.”
더는 루덴코프만이 문제가 아니게 된다.
그때였다.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네.”
가만 듣고 있던 대마녀가 은근한 투로 입을 열었다.
“방법?”
“용들의 천적은 장난스런 도깨비라고 알려져 있지만, 검은 용의 경우는 그와 다르지. 예의와 존중을 모르는 그들은 도깨비들을 불태우는 걸 주저하지 않으니까.”
“······그럼?”
“진짜 천적을 데려오는 수밖에. 마력을 무시하는, 거대하고 단단한 육체를 가진 이들을.”
“······.”
거인.
그들의 특징은 주로 ‘덩치’와 ‘힘’ 두 가지로 대변되나, 사실 녀석들에겐 대단히 중요한 특징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저항력.
그들의 피부엔 칼도, 마법도 듣지 않는다.
그 어떤 합금보다도 단단한 천연의 갑옷을 두르고 있는 게 바로 거인들이다.
마녀들이 늘 거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게 바로 이 때문이었다.
먹힐까봐.
“······서둘러야겠군.”
나는 그 즉시 걸음을 뗐다.
*
거인들의 반응은 기대와는 달랐다.
녀석들은 더없이 폐쇄적으로 반응했고, 어떠한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물론 이게 본래 녀석들의 스타일이었겠지만······ 어쨌거나 여태 나를 따라 다녔던 지난날과는 퍽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이 녀석, 바하롬.
“거인은! 상관하지! 않아! 그 무엇에도!”
틀렸다. 당최 알아먹질 않았다.
이 멍청한 녀석은 줄곧 똑같은 말만 외칠 뿐이었다.
상관하지 않겠다고.
문제는,
거인은 상관하지 않는다!
거인은 상관하지 않는다!
거인은 상관하지 않는다!
이 녀석의 위치가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녀석이 한 마디 하면, 다른 거인들이 곧장 이를 따라할 정도였으니.
“웃기는 녀석들이군. 그런 녀석들이 전엔 왜 내 뒤를 졸래졸래 쫓아왔냐?”
“힘! 겨루기! 하려고!”
“그래, 그거 해준다니까?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부탁?”
“별 거 아냐. 일단 나랑 같이 가면······.”
그러자,
“거인은! 상관하지! 않아! 무엇에도!”
또 똑같은 말이 나왔다.
거인은 상관하지 않는다!
거인은 상관하지 않는다!
거인은 상관하지 않는다!
“······도돌이표네.”
나는 한숨을 푹 내쉰 뒤,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녀석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아니, 그나저나 언제 온다는 거야? 니들 대장.”
당연한 말이지만, 나 또한 이 멍청한 녀석과 뭔가 얘기를 나눌 생각은 없었다. 본래 대화를 나누고자 했던 녀석이 없다고 하니, 별 수 없이 대안으로 찾은 것이었지.
“온다! 곧!”
“진짜야? 언제?”
“곧! 곧!”
“참나, 그 녀석 기다리는 것보다 저기 증명의 기둥을 들어 올리고 오는 게 더 빠르겠어. 그럼 니들도 그냥 내 말 들을 거 아냐.”
그러자,
“엇! 들 수! 있는 건가!?”
바하롬이 놀라 반응했다.
“······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시간 있을 때 장난식으로라도 자움달과 힘겨루기를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이 녀석도 조금쯤은 내 말을 들어줬을 텐데.
괜히 표적이 될 걸 경계하느라, 미룬 감이 없잖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무조건 이긴다는 보장이 없긴 했지만.
“아니, 근데 대체 어딜 간 건데?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곧이라며?”
“근처! 곧! 온다!”
“아니, 벌써 한 시간째잖아! 누군 시간이 남아 돌아서 여기 이렇게······.”
그때였다.
“······아니, 잠깐.”
갑작스레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왜······ 왜 의심을 하지 않고 있었지?
어째서 내가 빠르다고만 생각했던 걸까.
그 순간,
“설마······ 그 녀석이 간 곳이······.”
나는 바하롬을 노려봤다.
저 멍청한 녀석이 설마······ 나를 속이고 있었다고?
“루덴코프 쪽이냐?”
이윽고, 바하롬이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