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거인의 왕
***
아직 동이 트기 전 새벽.
자움달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했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대답하지 마.”
“대답! 안! 한다!”
“하지 말라고, 이 멍청한 녀석아!”
“알······ 다!”
······.
자움달은 관자놀이 부근을 한참을 매만진 후, 재차 입을 열었다.
“한 번만 더 뻥긋하면 가르쳐 주지 않을 거다. 알겠냐?”
“······.”
잠시 후,
“좋아.”
자움달은 고개를 끄덕인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도 알다시피, 아홉 번째 기둥을 들지 못하면 무리를 이끌 수 없다. 왕이 될 수 없다는 말이야, 그게 자격요건 이니까. 만약 내가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경우······ 기필코 네가 그걸 들어야 돼. 그렇지 않으면 웬 듣도 보도 못한 인간이 거인들을 통치하게 될 거니까.”
“나도! 안! 다!”
“조용.”
“······.”
“그 기둥은 힘만 세다고 들 수 있는 게 아냐. 그걸 들려면 그전에 갖춰야할 필수조건이 존재한다.”
“필수조건!”
“······.”
입을 닥치게 하는 건 포기해야 할 듯했다.
자움달은 슬쩍 주변을 훑어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조건은 이거다. 아홉 번째 기둥을 들기 위해선, 그전에 먼저 하나의 세계를 들어야 돼.”
“······.”
바하롬은 대답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물론, 자움달은 녀석이 자신의 경고를 유념하여 뒤늦게나마 입을 닫은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마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 것이다. 그래서 그냥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뿐이고.
그리고 역시나,
“어······ 하나! 세계! 든다!”
잠시간의 침묵 후, 녀석이 황급히 단어를 따라 말했다.
뭔가 알아들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됐다. 어차피 알아듣지 못할 걸 알았으니까.”
그러자,
“세계! 든다! 안다!”
녀석이 콧김을 세차게 내뿜었다.
“······.”
자움달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한 녀석이 자존심만 세가지곤.
“진정하라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증명의 기둥에 대체 왜 이따위 조건이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이건 힘이 세고 말고의 문제가 아냐. 힘보다는 외려, 머리를 시험하는 쪽에 가깝지. 도깨비들이 환장하는 문제풀이와 흡사하거든. 무리를 이끄는 자에겐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문제······ 풀이!”
“어쨌거나 이 문제를 해독하기 위해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하는 건, 들 수 있는 세계의 존재다. 무게가 있고, 만질 수 있는 유형(有形)의 것이어야 하지.”
자움달은 말을 하면서도, 사실 바하롬이 이 모든 걸 이해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니, 아마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녀석이야말로 모든 거인을 통틀어, 문제풀이라는 것과 가장 거리가 먼 녀석이었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멍청이에게 굳이 세세한 설명을 곁들인 이유가 있었다.
만약 이 녀석이 정말로 왕의 자리에 오른다면······ 언젠가 제 손으로 후대를 준비할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설명은 그 후대를 위한 것이었다. 그땐 이와 관련해서 아는 단어 몇 개라도 들려주는 게, 이 녀석에 이어 왕의 자리를 물려받을 거인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무게! 만진다! 유형!”
“그래, 대충 그 정도만 기억해 두라고.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그러곤 자움달은 하늘 위를 가리켰다.
“네가 들어야 하는 건 바로 저거야.”
구름너머로 그 거대한 형체를 드리운 그것.
바로 브리다였다.
이에,
“든다! 저······ 것······?”
바하롬이 고개를 갸우뚱 하며 말끝을 흐렸다.
이 녀석이 보기에도 황당했던 모양이다.
브리다는 모험의 탑 전체를 휘감고 있는 뱀이다. 저런 걸 든다는 건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건 하나의 세계가 아닌 수천의 세계를 드는 것과 같으며, 그 무게는 우주적 단위를 아득히 초과하는 것일 테니까.
자신 또한 처음엔 그랬다. 믿을 만한 이의 귀띔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저걸 들어봐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즈음,
‘그러고 보니······ 물어볼 걸 그랬나.’
갑작스레 주걱턱 녀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녀석은 어떻게 자격요건을 갖췄던 걸까.
녀석 또한 브리다를 들었던 걸까?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
문득,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녀석과 좀 더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 봐도 괜찮았을 텐데.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왜 궁금하지 않겠는가, 대체 뭐하는 녀석인지, 힘은 대체 얼마나 되는지, 그 거대한 유령은 또 뭔지······.
또 직접 힘을 한 번 맞대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러니까 그렇게······ 경계하지 않았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내,
‘쓸데없는 생각.’
자움달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물론 이해하기 힘들 거다. 실은 나도 이 해독법의 원리를 제대로 아는 건 아니거든. 하지만 괜찮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격요건을 달성하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네가 기억해야 할 건 단 하나. 저게 답이라는 것뿐이다.”
“브리다! 답!”
“그래, 브리다가 답이라는 것만 알면 이미 구 할은 해결된 거다. 애초에 ‘든다’는 표현이 가능할 만큼 접촉이 가능한 부위야 단 한 군데뿐이니까.”
자움달은 이어 재차 손가락으로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주걱턱 녀석이 ‘균형을 맞추는 자’를 쓰러뜨렸던, 바로 그 크누크 산이 위치한 곳이었다.
“머리다. 머리 쪽을 들어 올리면 돼. 지금은 하늘 위에 떠올라 보이지 않지만, 아마 최상층부에 오를 모험단이 결정될 즈음······ 머리가 내려올 거다. 그때 그걸 아래에서 받치기만 하면 돼. 꽤 무겁긴 해도 네가 온 힘을 다한다면 드는 데 문제는 없을 거다.”
“최상층! 머리! 든다!”
바하롬이 알겠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이만하면 대충 다 알아들었을 것이다.
이젠 떠날 시간이었다.
“아마 하루 안에 결판이 날 거다. 기다리다 어느 쪽으로든 결과가 나오면······ 그땐 내가 일러준 대로 움직이면 돼. 어려울 건 없을 테니.”
“하루! 기다린다! 문제없다!”
“그래, 그럼······.”
당부하고 싶은 말이야 많았지만, 자움달은 그즈음 단호히 등을 돌렸다.
이후는 ‘후대’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지금부터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게 거인이니까.
이윽고, 자움달은 새벽의 어둠을 고요히 헤치며 검은 산맥을 횡단하기 시작했다.
*
“엉? 뭐라고? 이거 내가 잘못 들었나? 엉?”
루덴코프는 진정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다시 말해줘야 하나?”
“누굴 귀머거리로 아냐!”
“······.”
“그러니까 지금 나와 한 판 붙어보겠다는······ 뭐 그딴 소릴 지껄인 거냐? 엉? 엉!?”
“틀렸다.”
“뭐?”
“붙는 게 아니다. 네놈을 없애버리겠다는 거지.”
“뭐? 뭐!? 크, 크하하핫!”
루덴코프는 그러고 한참을 웃은 후,
“자움달 네 놈······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스산한 눈빛을 보내왔다.
“네가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길고 짧은 건 대봐야겠지.”
“대보긴 뭘 대봐! 제깟 놈이 분수도 모르고······.”
그러다 문득,
“헌데······ 이유가 뭐지?”
녀석이 궁금하다는 듯 눈을 빛냈다.
“나를 적대하는 이유.”
“별 게 있을까. 나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네 녀석을 마음에 들어 했던 적이 없다.”
“뭐라는 거야, 그런 당연한 얘기를. 그 따위 것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 뭣 때문에 나와 대적하려는 거지? 그렇게나 살기가 싫은가?”
“······.”
정말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굉장히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본인의 존재자체가 이유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 걸까.
그러나 물론, 자움달에겐 별도의 이유가 있긴 했다.
“옛 용.”
“멍청이! 그건 나도 안다고! 옛 용이랑 너랑 뭐!? 무슨 관계인데? 엉?”
따로 엮인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과거, 아홉 번째 기둥을 돌파할 해결책을 귀띔해 준 게 다름 아닌 그였으니.
하지만 비단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옛 용은 건드려선 안됐다.”
“뭐래는 거야.”
“그는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온 탑의 핵심중추 중 하나다. 이 모든 세계가 알게 모르게 그와 엮여 있지. 네가 그를 살해함으로써······ 얼마 지나지 않아 파국을 맞는 세계들이 등장할 거다. 새로운 모험왕의 등장과는 관계없는, 애꿎은 파괴가 곳곳에서 행해지겠지.”
“뭐야 너······ 지금 뭔 소리야? 거인 맞아?”
“무리를 이끄는 자는 때론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죽인 채 행동해야할 때가 오는 법이지. 나는 이 자리에 거인의 왕으로서, 한 종족의 대표로 왔다. 그리고 그들을 대신 말하는데······ 너는 이 세상에 해악과도 같은 놈이다. 존재할 가치가 없지. 그래서 널 처치하러 온 거다.”
“······.”
희한한 일이었다.
자신의 말에 금방이라도 버럭 화를 냈어야 할 루덴코프가 기이할 정도로 반응이 없었다.
이윽고,
“흐음······ 이상한 걸?”
잠시간 침묵하던 녀석이 갑작스레 눈을 번뜩였다.
“여긴 왜 왔지?”
“뭐?”
“여기 왜 왔냐고.”
“말하지 않았나, 네놈을 손봐주겠······.”
“말이 안 되잖아. 내게 적대한다고 해도 그냥 저쪽 편에 붙으면 될 걸, 굳이 이곳에 혼자 왔다? 괜한 위험까지 무릅쓰면서?”
“······.”
그 순간,
“하······.”
루덴코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네 놈, 거인들을 움직이려 하는구나?”
“······.”
자움달은 부인하지 않았다.
저래 봬도 루덴코프는 굉장히 오랜 기간을 살아온 녀석이다. 이 정도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어리숙하진 않겠지.
거인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건 종족 자체에 뿌리 깊게 박힌 내성과도 같은 것. 결코 변하지 않는 습성이다.
거인은 웬만한 일엔 관심조차 갖지 않으며, 다른 종족은커녕 거인들 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편의를 위해 종족 내의 서열과 규율을 억지로 따르는 정도에 불과하다.
심지어 왕의 명령 또한 우습게 여길 때가 많을 정도이니.
다만, 예외의 경우가 존재한다.
거인들이 개인이 가진 모든 생각과 판단을 보류한 채, 종족 전체가 하나 되어 행동하는 때가.
바로, 자신들의 왕이 죽임을 당했을 때.
“그나저나······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말하지 않았나. 거인의 왕의 입장에서 너를 해악이라 판단했다고.”
“아니, 아니. 괜히 인간 흉내 좀 내지 말라고. 네 놈도 거인 아닌가? 왕의 입장이니 뭐니, 세계에 해악을 끼치니 뭐니. 그 따위 걸 왜 네가 신경 쓰는 거지?”
“······.”
때마침 자움달의 머릿속에 지난 날 옛 용과의 일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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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이 나를 찾아오는 날이 오다니······ 놀라운 일이네요. 그래요, 무슨 일이시죠?
“오래 살았으니 아는 것도 많겠지. 물어볼 게 있어. 대가는 뭐든 주지. 맹약을 맺어도 좋아.”
-대가에 맹약이라······ 풀지 못할 물음에 직면해 있나 보군요.
“맞아. 못 풀겠어.”
-근데 어째서 도깨비를 찾지 않고?
“도깨비들이 너를 답이라 내놓았으니까.”
-아하, 그렇군요.
“묻고 싶은 건 간단해. 아홉 번째 증명의 기둥을 드는 법. 혹시 답을 아나?”
옛 용은 그에 대답하지 않고 가만 미소를 짓더니,
-그걸 제가 어찌 알까요. 왕이 되려는 거인이 풀어야 할 문제를.
이내 살포시 고개를 저었다.
“뭐야, 그럼 그 빌어먹을 도깨비들에게 속은 건가?”
그러나 바로 그때,
-짐작 가는 부분이라면 있지만.
옛 용이 그러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뭐? 정말이야? 말해줘!”
-흐음, 그전에 하나 물어볼 게 있습니다.
“뭐? 어떤 거지?”
-만약 당신이 왕이 된다면······ 당신 개인이나 종족이 아닌, 탑 전체를 위해 행동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혹시 그러실 수 있나요?
“뭐?”
그야말로 뜬금없는 말이었다.
“당신이 거인을 초월해 생각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겁니다. 거인의 왕으로서가 아니라······ 한 종족의 대표로서 탑 전체를 위해 움직일 수 있냐는 말이죠.”
“그게 필요한 일인가? 뭐······ 할 순 있겠지? 그게 맹약의 내용이라면?”
-아뇨. 맹약과는 무관합니다. 감히 제가 그걸 당신에게 강요할 순 없죠. 그럴 자격은 없으니까요. 그냥 물어보는 것뿐입니다. 당신은 과연 어떠한가 하고.
“글쎄? 그럼 잘 모르겠는데?”
-왕이란 건 개인과 다릅니다. 책임져야할 게 많아지죠. 개인의 가치, 종족의 번영, 세계 내의 관계 등등. 당연지사 시야도 넓어야 하고요. 물론 제게 물음을 요청하러 왔다는 점에서······ 이미 당신은 어느 정도 자질이 있음을 입증한 셈이지만요. 뭐, 언젠가 아시게 될 겁니다. 당신이 정말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자움달은 옛 용의 말을 모두 알아듣지도, 또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하나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옛 용의 눈이 한없이 진지하다는 것.
“그때가 되면 오늘의 제 말을 한번쯤 되새겨주시길. 좋습니다, 그럼 잠깐 귀를 기울여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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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지. 나는 옛 용을 존경했다.”
“허, 말이 돼? 거인이?”
“그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고.”
“아하, 그럼 그렇지. 맹약을 이행 중이라는 거구나.”
“전혀. 하지만 나 스스로 다짐한 바가 있다. 오래 전 그의 부탁을 따르겠다고.”
그러자,
“······뭐?”
루덴코프가 황당해 하며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이상하다니까? 너 거인 맞아? 엉? 누가 죽든 말든, 어? 상관하지 않는 게 니들 특성 아니냐고. 엉? 엉!?”
“거인이 웬만한 일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는 진짜 이유를 말해줄까?”
“뭐? 진짜 이유?”
“간단해. 혹여나 무언가에 관심이 생겼을 때, 그것에 너무 깊이 집착하기 때문이야. 그래, 목숨을 걸 정도로.”
그러곤 자움달은 씩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네 놈은 지금 속 좁고 집착 심한 덩치들한테 잘못 걸린 거라고.”
이에,
“크하하핫, 재밌겠네. 어디 한 번 해보라고.”
루덴코프가 힘을 끌어올리며 조소했다.
스스슷-.
그즈음 주위를 압박해오는 기운에 자움달은 곧장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은 결코 루덴코프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걸.
마치 브리다를 볼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부조리한 존재.
역시나 이 녀석은 괴물이었다.
“칠왕에도 격이 있는 법이야. 어디서 건방지게. 엉!? 물론 네놈은 다른 것들보다 약간 더 두껍고 질긴 편이니, 써는데 시간이야 좀 걸리긴 하겠지만······ 그래봤자 엉!? 가소롭다고!”
다만,
“두껍고 질긴 건······ 네 비대한 살덩어리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고 쉽게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그리 쉬운 존재였다면, 애당초 왕이라 불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움달은 심호흡을 한 뒤,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어,
“······으스러뜨려주마.”
거인의 왕이 채무불이행자를 향해 돌진했다.
*
“야단났네.”
거인들과의 만남에서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나는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자움달의 저의를 알 수가 없었으니.
루덴코프 하나도 어찌할 바를 차지 못한 상황이 아니던가.
만약 검은 용에 이어, 거인들에 대한 대비까지 해야 된다?
‘······진짜 큰일인데.’
그즈음 나는 가동할 수 있는 병력들을 떠올려보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족했다. 턱없이.
모험가 협회를 비롯한 몇몇 모험단들이 힘을 보태겠다며 찾아오긴 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루덴코프의 손짓 하나에 쓸려갈 게 뻔했으니.
“······이대론 안 돼.”
즉,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먼저 캐릭터 상점에 들어가 [병대] 상품부터 살폈다.
그나마 전력이 될 만한 상품들은 가장 아래 세 개가 전부였다.
상점 카테고리 / [캐릭터 설정] – [병대] ※ 터치 시 상세내용 확인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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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거인 추모르 – 1,000,000p
44. 신수 도리아치 – 1,800,000p
45. 검은 용 그라샤 – 2,500,000p
무려 백만 포인트가 넘어가는 값비싼 녀석들.
상품의 질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문제는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마침 짧은 시간 내 여러 챕터가 지나간 까닭에 포인트가 어느 정도 있긴 했으나, 그래봐야 검은 용 두 마리를 고용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뭐,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하지만 과연 큰 도움이 될까.
심지어 고용시간도 하루에 불과하고.
변수창출 정도야 가능할지 몰라도, 형세를 바꾸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즈음엔 희한한 의심까지 들었다.
‘설마 이거······ 여태 계속해서 에피소드를 단축시키고, 죄다 어물쩍 넘어갔던 게 나 포인트 못 모으게 하려고?’
분명 상품의 질 자체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계속해서 업데이트가 되어왔으니.
문제는 상품의 가격과 내 포인트였다.
루덴코프에게 맞서려면 적어도 검은 용 열 마리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느 정도 전력으로서 기능할 테니.
헌데 그것들의 고용에 필요한 포인트가 2500만 포인트다.
이제껏 진행된 챕터가 고작 74개에 불과한데, 그만한 포인트를 모을 수가 있겠는가.
매번 인기도 최상에, 팬아트를 듬뿍듬뿍 받는다 쳐도 최소 100챕터는 넘어야 할 것 같구먼.
그러다 보니,
‘쯧······ 말이 되나.’
어째 작가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 같은 꺼림칙함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노릇이었다.
가만 있다간, 정말로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테니.
“후······.”
사실 한 가지 대책이 있긴 했다.
꽤나 효율적이며, 성공했을 시 기댓값도 큰 대책이.
다만 문제는, 내가 이 방법을 쓰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일단 위험부담이 큰데다, 무엇보다도 다른 이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떡한다.
그러고 잠시간 고뇌하던 나는,
“······움직이자.”
결국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별 수 없었다.
시간은 부족하고, 당장에 생각나는 대응책이 이것 하나뿐이었으니.
이어 막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나 찾았어?”
갑작스레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라 돌아보니, 막 찾으러 가려 했던 인물이 거기 서 있었다.
“······귀신이네.”
“뭐야, 익숙해질 때도 안 됐어?”
코코아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미소였다.
“······.”
저 녀석에게 위안을 다 받다니.
나도 모르게 피식 따라 웃고 말았다.
“혹시 뭘 해야 되는지는 알아?”
“그야 모르지. 그것까지 알면 진짜 귀신이게? 그냥 나를 필요해할 것 같아서 온 것뿐이야.”
“······그러냐. 일단 사과부터 할게.”
“응?”
“이것 말곤 도저히 방법이 생각이 안 나서.”
“뭐야, 뭔데?”
나는 코코아에게 방법을 설명했다.
잠시 후,
“별로야.”
내 설명을 들은 코코아가 얼굴을 굳혔다.
“알아. 미안.”
“나 하나만 놓고 보면 상관없어. 근데······ 싫어. 싫다 너무.”
“그렇지······ 그렇게 말하는 게 당연해. 하지만······.”
“하지만 길이 틀리진 않았어.”
“······.”
“해볼게.”
나는 고개를 들어 녀석을 쳐다봤다.
코코아의 두 눈은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
그래, 이 녀석은 본래부터 알고 있던 거였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이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걸.
일행을 모험의 탑1층으로 가라고 했던 그때 그 순간부터.
“그는 두 번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그야 이미 본인도 각오한 일인 걸.”
“너는 괜찮은 거야? 누구보다 친하게 지냈잖아..”
“······나야 뭐.”
그러곤 코코아는 말없이 돌아선 뒤,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사실······ 이미 갈 때까지 간 상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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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왕의 설정 내 존재하는 모든 캐릭터들을 대상으로 하는 ‘파워랭킹’은 설정만으로 비교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기에, 가장 의견이 많이 걸리는 순위 중 하나였다.
다만 그 중에서도 그나마 자주 상위권에 오르는 이름들이 몇 있긴 했는데, 바로 다음의 것들이었다.
-단지 최초라는 이유로 자주 상위권에 랭크되는 초대 모험왕.
-주인공 버프가 잔뜩 들어간, 모험왕이 된 레오.
-이제껏 빌렸던 모든 힘을 개방한 상태의 루덴코프.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잠들어 있는 또 하나의 인격을 개방한 타락기사 루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