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타락기사 루카스(1)
***
어스름이 깔리고, 어느새 다가온 어둠이 고요히 지상으로 내려설 무렵.
마침내,
쿵-.
저 멀리 산등성이 너머에서 들려오던 굉음이 멎었다.
또한 피부를 찌르듯 진동하던 기파도, 하늘을 수놓던 번쩍거리던 불빛들도 모두 사라졌다.
이 모든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검은 산맥 전체를 뒤흔들었던 경천동지할 전투가 비로소 끝이 났다는 것.
즉, 또 한 명의 칠왕이 죽었다는 것이다.
······.
자움달이 루덴코프와 일전을 치르러 갔다는 건, 사실 정오 무렵부터 알고 있었다.
이를 내게 알려준 건 그즈음 느닷없이 들려온 엄청난 굉음도, 솜털마저 쭈뼛 서게 만든 짙은 살기도 아니었다.
바로,
띠링-.
[모험왕 연재가 재개되었습니다] [챕터76 – 거인왕의 결의] [진행 중인 챕터의 권역에 속해 있습니다] [히로는 이번 챕터의 캐릭터 평가 대상입니다]난데없이 울린 챕터 알림이었다.
‘······거인왕의 결의?’
보자마자 여러 의문을 갖게 만드는 제목이었다.
의아한 마음에, 나는 곧장 챕터의 메인시점을 검색했다.
-현재 챕터의 메인캐릭터는 ‘자움달’입니다.
이것도 거인왕.
제목과 메인시점은 이번 챕터의 주인공이 거인왕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루덴코프를 만나러 간 자움달이 결의를 가지고 행할 일이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제목을 미루어 어느 정도 짐작은 가능했다.
바로 거인왕이 루덴코프를 향해 칼을 겨누었다는 것.
물론 나 역시도 이에 관한 전후사정을 알진 못했다. 원작 어디서에도 둘의 관계에 관한 내용은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애당초 엮이는 부분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나 할까.
하여, 처음 얼마간은 그저 멍하니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당장의 상황파악도 힘든데다, 이게 호재인지 악재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으니.
그러나 정신을 차린 이후에도, 움직이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다.
과연 둘의 전투에 간섭하는 게 맞는 건지, 그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 루덴코프를 적대한다고 해서 거인왕을 같은 편으로 생각해도 되는 건지 등등······ 의문만 늘어갈 뿐, 무엇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이렇게 끝이 나버렸던 것이고.
어쨌거나,
“오래······ 버텼네.”
장장 반나절에 걸친 혈투였다.
한낮이 되기 전 시작됐던 대결이 밤이 찾아온 뒤에야 멈췄으니.
사실 이건 커뮤니티 내 방구석 전투력측정기들의 논평에 따르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같은 칠왕이긴 하나, 거인왕은 옛 용과 함께 최약체로 평가되는 존재였다.
그나마 마녀나 용과 같은 마법계열의 대적자들이나, 거대괴수와 같이 크기와 물리력으로 밀어붙이는 녀석들을 상대로는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다른 칠왕들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인다는 게 정설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루덴코프는 그런 칠왕들 중에서도 수위권이고.
헌데 거인왕과 채무불이행자의 매치업이 반나절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이는 아마도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거인왕이 설정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거나, 혹은 루덴코프가 죽음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많이 약화되었다거나.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승패가 뒤집히진 않았을 것이다.
캐릭터의 설정도 설정이지만, 기본적으로 맡은 역할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루덴코프가 최종빌런이라면, 거인왕은 그를 막아선 뜻밖의 조력자 정도에 불과했다.
선전을 기대할 순 있으나,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산맥 전체를 진동시키던 거인의 발자국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그 무렵,
“흐음······.”
나는 한 가지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제 남은 거인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그들은 왕을 잃은 상태다.
바하롬이라는 2인자가 있긴 하지만, 녀석에겐 무리를 이끌 자격이 없다. 아홉 번째 기둥을 들어 올리지 못했으니까.
반면, 내겐 자격이 있다.
지금이라면 그들을 거둘 수도 있지 않을까?
거인을 내 편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매우 중차대한 일이었다. 그들만 있다면, 저 사십여 마리나 되는 검은 용들에 대한 염려를 한층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쉽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기둥을 들었다고는 하나, 나는 어디까지나 인간이었으니까. 괜히 슬픔에 잠긴 그들을 자극하는 꼴만 될지도 모른다.
‘가는 게 맞긴 한 것 같은데······ 시간을 좀 더 들여야 하나?’
그러고 가만 골몰해 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쿵-.
땅을 울리는 거인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응? 거인?’
헌데,
쿵-.
쿵-.
쿵쿵-.
소리의 크기와 들려오는 빈도가 이상했다.
하나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더욱이,
‘이거······ 설마?’
소리는 저 먼 산등성이 너머가 아니라, 코앞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어,
“허······.”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놀랍게도, 무척이나 거대한 산 하나가 어둠을 등진 채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주걱턱!”
그것은 산이 아니었다.
바하롬을 필두로 한, 수많은 거인들 무리였다.
마치 산 하나가 통째로 이동해 오는 듯한 느낌이라니.
“주걱턱!”
흥분하지 말자.
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채, 내게 소리치는 녀석에게 인사했다.
“그래······ 웬일이지?”
“자움달! 명령! 주걱턱! 함께!”
“나와 함께? 그게 자움달의 명령이야?”
“맞아!”
“······그래? 근데 왜 아까 말 안하고······.”
“비밀! 자움달! 명령!”
“비밀이라······ 이야, 너 연기 좀 하네.”
“바하롬! 거짓말! 잘함!”
“······.”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었다.
거인들이 처음부터 내게 합류할 생각이었다니. 그것도 거인왕의 명령으로.
아마 본인이 지거나 하면 내게 붙으라고 했던 게 아닐까.
다만,
‘······의도치 않은 행운이라.’
그즈음 내 머릿속엔 적잖은 의구심을 생겨난 상태였다.
단순한 이유였다. 일이 이토록 잘 풀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인의 합류는 지금 내가 가장 바라는 일이었다. 헌데 그게 이토록 순순히 이뤄진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왜 거인왕이 그런 명령을 내렸을까······.
나는 바하롬에게 기다리라 말하곤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
이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는 루덴코프를 모험왕으로 만들려는 게 아니다. 녀석의 강함 역시도 해결 가능한 범위 내여야만 한다.
즉, 루덴코프에게 레오가 감당키 어려울 정도의 힘이 넘어가는 건, 작가로서도 경계해야 될 사안이었다는 것이다.
‘······바보같이.’
작가가 나를 적대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이런 간단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니.
처음부터 세력구도는 반반으로 잡혀 있었을 것이다.
검은 용 vs 마녀와 거인 조합
“뻘짓 할 뻔했네.”
괜히 쓸데없는 고민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 자체만 놓고 보면 훨씬 나아진 것이었지만, 어째 허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애써 감정을 추스른 채, 바하롬에게 말했다.
“좋아, 함께하자고.”
“좋다! 복수! 함께!”
이어 거인들에게 뒤편에서 대기하라 지시하려 할 즈음이었다.
머리가 차가워진 까닭일까, 문득 궁금증이 올라왔다.
나는 저만치 걸어가는 바하롬을 불러 물었다.
“그나저나······ 자움달은 어째서 루덴코프와 싸운 거지?”
전개야 어떻든, 그에 맞는 배경이란 게 있을 것 아닌가.
이에 대한 바하롬의 대답은 심플했다.
“몰라!”
“······그러냐.”
이어 바하롬은 다시금 돌아섰고, 나 또한 생각하기를 멈췄다.
어쨌거나 구도는 이제 단순해졌다.
반반.
“이제 루덴코프만 처리하면 되겠네······.”
나는 약간은 차분해진 마음으로, 앞으로의 방안에 대해 강구하기 시작했다.
*
간만에 편안한 밤이었다.
중간에 깨지 않고 일어난 적은 근래 처음이었다.
심지어 악몽 한 번 꾸지 않았으니.
단잠에서 깨어난 루카스는 그러나 곧장 인상을 구겼다.
불안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 대가 없는 안락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니까.
“······코코아?”
자리에서 일어난 루카스는 습관처럼 코코아부터 찾았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갔나?’
이어, 코코아를 찾아 천막 밖으로 나간 루카스는 그만 당황하고야 말았다. 바깥은 굉장히 어수선했다.
온 사방이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험가들에, 마녀들에, 심지어는······.
“거인?”
웬 못 보던 거인무리까지.
이게 어찌된 일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
이내 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그날이었다.
채무불이행자가 선포한 기한이 끝난 날.
전쟁을 준비하라 일렀던 바로 그 날.
“······귀찮은 일은 없으면 좋겠는데.”
물론, 최상층이니 모험왕이니 하는 것과 자신은 하등 상관이 없다.
문제는 코코아가 이 주걱턱 모험단의 일원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생각이 미친 루카스는 쉬지도 않고 코코아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체 어딜 간 거야.”
어디에도 코코아는 보이지 않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평소의 코코아는 웬만해선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았는데.
설마 길잡이랍시고, 먼저 앞장서 출전한 건?
순간 또다시 불안감이 엄습했다.
“안 돼, 안 돼······.”
암만 둘러봐도 찾을 수 없자, 다음으로 루카스가 한 일은 하카에게 가는 것이었다.
다행히 하카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커다란 조개를 닮은 요상한 마차 옆에서 뭔가를 나르는 중이었다.
“응? 루카스 씨?”
“저기 코코아가······ 코코아가 보이지 않아서······.”
“코코아요? 같이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눈을 떴는데 없어서······ 혹시 보지 못한······.”
“글쎄요, 보지 못했는데.”
그때였다.
“하카, 뭐해! 얼른 부품 가져와!”
뒤쪽에서 웬 음성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코미어가 그 요상한 마차에다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코코아가 없어졌는데도, 그는 여전히 천하태평인 모습이었다.
그때,
“죄송합니다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코미어 씨와 함께 얼른 마무리해야 하는 작업이 있어서······.”
하카가 씩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 그렇지만······.”
“아마 주위에 있을 겁니다. 이번엔 따로 주걱턱 씨가 저희에게 전투임무를 내리진 않았거든요.”
“그, 그런가요?”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을 거라니.
하지만 불안감은 잦아들지 않았다.
얼굴을 봐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어, 다시금 코코아를 찾아 나서려 할 때였다.
갑작스레,
-킬킬킬, 또다시 잃어버린 거야?
-보호할 대상을 놓친 기사는 존재가치가 없다.
-너는 죽어 마땅해.
-악마 같으니라고.
머릿속이 울렸다.
그 놈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그만······ 아냐. 그런 게 아냐.’
루카스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녀석들이 더 떠들기 전에, 얼른 코코아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대체 어딜······ 어디를 간 거야!”
아무리 찾아봐도 코코아는 보이지 않았다.
벌써 얼마나 지났을까. 20분? 30분?
어쩌면 이미 한 시간이 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아직 보이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고, 갈증이 났다.
불안감은 점점 더 증폭되어갔다.
어디지? 어디에 있지? 어디로 간 거지?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건 아닐까?
혹시나 다친 거면?
애타게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아냐!”
루카스는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말괄량이라면 몰래 전투에 참여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만약······.
‘······나를 버린 거라면?’
이어 루카스의 두 눈에 절망의 빛이 감돌기 시작할 즈음,
-킥킥, 바보 아냐?
-코코아가 갈 곳이야 뻔하지.
-그놈 곁이겠지 뭐.
-주걱턱.
또 한 번 머릿속이 울렸다.
‘······주걱턱.’
그래, 주걱턱······ 그 자에게 간 게 틀림없다.
코코아는 늘 그 녀석의 얘기만 했으니까.
루카스는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다행히 주걱턱은 오래 지나지 않아 찾을 수 있었다.
저 멀리,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녀석의 거대한 덩치가 눈에 들어왔다.
루카스는 곧장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코코아!”
주걱턱은 자신의 외침에 깜짝 놀란 듯한 기색이었다.
“뭐야?”
“코코아! 코코아는 어디에 있습니까!”
“······뭐?”
“코코아가 사라졌습니다! 코코아는 어디로 간 거죠?”
“뭔 소리야 갑자기······ 어딘가 있겠지.”
“아니! 어찌 그리 대수롭지 않게······.”
“무슨 엄마 잃어버린 애기 같네. 지금 상황이 눈에 안 들어오는 건 알겠지만······ 안 보이냐? 지금 우리 전쟁 직전이라고.”
이에 돌아보니,
“이, 이런······.”
대마녀와 그의 직속인 네 마녀들, 그리고 레오 모험단이라는 녀석들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또한,
“붉은! 눈! 기사!”
웬 거대한 거인 하나까지.
이런 곳은 위험하다. 코코아가 있을 곳이 못 된다.
“이봐, 저 멍청한 바하롬까지 네가 이상하다고 말하잖아. 눈이 붉다고. 일단 가서 안정을 취하는 게······.”
“코코아는······ 어디······ 있습니까?”
“아니, 참나. 말이 안 통하네. 어딘가에 잘 있을 거라니까? 화장실은 가봤어?”
그때,
-킥킥.
-이것 봐! 또라고, 또.
-너는 이번에도 죽이고 말 거야.
-또 한 번 성녀를.
또 다시 목소리들이 날뛰었다.
“아, 안 돼······ 찾아야······ 얼른 찾아야.”
그때였다.
“혀, 형님!”
갑작스레 웬 소년 하나가 주걱턱을 향해 달려왔다.
‘치누아비?’
그를 본 루카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저 도깨비라면 코코아의 위치를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서로 친했으니까.
때마침,
“코, 코코아가······.”
기다렸다는 듯 그의 입에서 코코아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엉? 너도 코코아야? 왜?”
“저, 적진에 혼자······.”
“뭐?”
그러곤 치누아비가 저 멀리 떨어진 한 봉우리를 가리켰다.
“뭐야, 그 녀석이 왜?”
“그, 그건 저도 잘······ 심지어는 코코아톰을 가져가지도 않았어요!”
순간,
팟-.
루카스는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그곳을 향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
“후······.”
“된 건가요?”
나는 치누아비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마도?”
물론 자신할 순 없었다.
내가 녀석의 내면상태를 꿰뚫어볼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
다만, 임박한 건 확실해 보였다.
남은 건······ 방아쇠를 당길 결정적 계기 뿐.
“잘 되겠지요?”
“그러길 바라야지.”
내가 코코아에게 주문한 건 딱히 별 게 아니었다.
루카스에게 말없이 자리를 비울 것.
그러곤 홀로 루덴코프의 진영 쪽으로 향할 것.
그리고 그쪽의 아무나에게 공격을 받을 것.
루카스가 막 그곳에 당도할 즈음에.
그게 다였다. 그렇게만 되면······ 그가 알아서 반응할 테니.
“그나저나 너 연기 잘하더라. 누가 보면 거짓말쟁이 신이라도 받은 줄 알겠어.”
“후훗, 이 정도야 뭐.”
“특히 코코아톰 얘기 꺼낸 게 좋았어. 그때 루카스 녀석 완전히 눈이 돌아갔다니까? 아, 이미 맛이 간 상태였나?”
“아, 그거 말입니까? 그거야 뭐. 근데 그거 거짓말 아닙니다만?”
“······엉?”
“진짜 그냥 갔습니다. 지금 코코아톰은 코미어 씨가 수리중이라.”
“······.”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건 정말로······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
다만,
“뭐······ 괜찮겠지. 됐고, 자! 그럼 다들 다시 주목해 봐.”
지금은 그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코코아와 루카스 쪽과는 별개로, 당장 눈앞의 일부터 끝내야 했다.
곧 시작될 것 같으니까.
때마침,
“크하하핫! 좋은 아침이다! 몰살당하기 딱 좋은 날이지! 안 그러냐, 멍청이들!”
저 멀리서 루데코프의 고함이 들려왔다.
‘타이밍 하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의 전쟁개시 신호가 떨어질 것이다. 그전에 대충이라도 임무와 역할분담을 실시해야 했다.
괜히 또 순서와 상대가 엉키기라도 하면 곤란해질 테니.
나는 먼저 레오에게 말했다.
“너희는 거인들이랑 움직여. 최우선 상대는 검은 용이야. 아참, 키리코의 위치는?”
“몰라. 타냐가 그러는데, 검은 용들 주위에 있는 것 같다고 했어.”
“좋아, 녀석은 알아서 통제해. 그리고 너.”
“응?”
“루덴코프 보자마자 달려들지 마. 기다리면 네 차례가 올 거니까.”
“······알았어.”
나는 이어 도로시에게 고개를 돌렸다.
“도로시, 네가 맡아야 하는 상대도 검은 용이야. 혼자서 움직이되, 키리코를 만나게 되면 함께 합을 맞춰.”
“굳이? 근데 나······ 그 빡빡이랑 다시 만날 땐 적이라고 했는데······ 어색하면 어떡해?”
“됐고, 이번만큼만 다시 편먹어. 그 다음에 다시 적으로 붙으면 되지.”
“······알았어.”
다음으로 나는 대마녀 쪽을 돌아봤다.
“그쪽은 루덴코프 모험단을 비롯한 그 외 어중이떠중이들 정리해주면 돼.”
그러자,
“네 녀석······ 꽤 뛰어난 인물인 줄 알았더니, 용병술은 형편없구나.”
그녀가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웃었다.
“우리 마녀들은 최상위 전투종족이다. 고작해야 그런 식으로 쓸 거면······.”
“그러면 검은 용 상대하든가. 가능해?”
“······.”
“아니면 마녀들은 그냥 알아서 움직여줘. 일반 모험가들을 처리하든, 검은 용을 상대하든, 아니면 다른 이들을 서포트 하든······ 대신, 괜히 이상한 짓 벌일 생각은 말고.”
“······그러도록 하마.”
대마녀를 믿지 못해 이렇게 말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어디다 써야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녀들은 본디 레오 모험단의 대적자로 출현하는 쪽이지, 아군이 아니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나는 소수의 모험가 본부 측 인원들에게도 대충 임무를 지정해줬다.
별 건 아니었다. 대충 죽지 말고, 살아남으라는 것.
“그럼 이제······ 슬슬 준비하자고. 곧 시작될 것 같으니까.”
그리고 때마침,
“크하하핫! 그럼 살아남아 봐라, 어리석은 녀석들아!”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루덴코프의 선전포고가 들려왔다.
이에 질세라,
“저 돼지에게 지지 말자고! 가자!”
나 또한 고성을 내질렀다.
쿠오!
나가자!
죽여 버려!
없애버리자고!
레오 모험단을 필두로, 거인에 마녀, 그리고 다른 모험단들까지.
전 병력이 이동하는 걸 보며, 나 역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만 대다수의 이들과 같은 방향은 아니었다.
나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조금 전, 루카스가 사라진 방향이었다.
‘······잘 되려나.’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여러 변수로 그득한 계획이었으니.
코코아야 미끼 역할을 잘 해내겠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루카스가 원작에서와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정작 위험해지는 건 나일지도.
더군다나 코코아의 안위까지 챙겨야 했으니.
“후······.”
하지만 한편으론 두근두근하기도 했다.
마침내 내 ‘최애’를 영접할 시간이었으니.
“바야흐로······ 마왕이 현신할 시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