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타락기사 루카스(2)
***
코코아와 루카스를 뒤따라 움직인 지, 장장 세 시간 째.
삐빅-.
삐빅-.
수신기가 연달아 두 번 울렸다.
두 차례의 신호음.
이는 마침내 레이더가 코코아의 위치를 잡았다는 뜻이었다.
“휴······.”
나는 나직이 한숨을 내뱉었다.
창고에서 대충 아무거나 집어온 게, 이토록 후회가 될 줄이야.
심지어 위치신호를 보내는 것 외엔 따로 통신조차 되지 않는 고물이었다.
코미어는 이 따위건 왜 버리지도 않고 거기 둬선······.
그러나 이내,
‘아냐, 위치라도 잡은 게 어디냐.’
나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찾았으면 됐다.
그나저나,
“······어쩌자고 여기까지 와.”
오매불망 기다리던 신호가 잡혔지만 딱히 안도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이미 너무 멀리까지 왔으니까.
루덴코프가 본인의 진영이라고 선포한 산으로 진입한 게 벌써 한 시간 전쯤이었다.
이미 못 본 척 지나친 검은 용만 여섯 마리였다. 당장 코앞에도 낄낄거리며 노가리를 까고 있는 루덴코프 모험단 녀석들이 몇 있을 정도였고.
즉, 완전히 적진 한복판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코코아가 이곳까지 들어온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녀석은 길을 잃은 것도, 또 미끼 역할을 수행할 만한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길눈이 뛰어난 녀석이기에 이곳까지 들어온 것이다.
코코아는 내가 노리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해야 그것의 성공확률이 가장 높을 지를 명확히 알고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루카스가 스스로의 부족함에 절망할 수 있게끔, 누구보다 강력한 적의 공격대상이 되는 것.
다시 말해, 코코아는 지금 ‘루덴코프에게 곧장 노려지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이다.
‘위험해 이 자식아······ 위험하다고.’
코코아톰이 있었어도 뜯어 말렸을 텐데, 심지어 그조차 수리에 맡겨놓은 상황이지 않은가.
목적지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정작 길의 위험성에 대해선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대비는 하고 있는 건지, 어떤지 참······.
게다가 지금 걱정이 되는 건, 비단 코코아뿐만이 아니었다.
녀석이야 어쨌든 위험한 길을 볼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지 않은가.
진짜 문제는 바로 루카스였다.
온전한 상태도 아닌 그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인 채 코코아를 찾고 있다고 보긴 어려웠다.
녀석이 만약 위기에 처한 코코아를 보기도 전에, 먼저 루덴코프나 검은 용에게 붙들린다면?
가뜩이나 쉽지 않은 계획이 초장부터 어그러질 염려가 있었다.
최악의 경우, 내면의 또 다른 인격을 개화시키지 못할지도.
‘그래도 아직 잠잠한 걸 보면 별 일은 생기지 않은 것 같은데······.’
어쨌거나 늦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나는 레이더를 확인해가며 조심스레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코코아의 위치로 추정되는 장소를 대충 찍어둔 다음, 주변을 수색하듯 훑어보고 있을 때였다.
마침 어디선가,
“꺄아- 살려줘요!”
기묘한 느낌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두려움 따윈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음성.
마치 위협하는 이를 약 올리기라도 하듯, 장난기마저 느껴지는 목소리.
비명의 주인이 누군지는 첫음절을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시작인가?’
나는 그 즉시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달려갔다.
코코아가 비명을 질렀다는 건, 이제 계획에 필요한 이들이 모두 모였다는 뜻과 같았으니.
곧이어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어디 보자······.”
나는 서둘러 ‘기척 지우기’ 작업에 들어갔다.
최상의 신체를 갖추게 되면서 얻게 된 부수적인 능력 중 하나는, 바로 내 몸을 극한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호흡을 완전히 멈추곤, 내 몸에서 나는 모든 종류의 소음을 없앴다.
“후······.”
다음으로, 챙겨온 도깨비 은막을 둘렀다.
스르륵-.
이쯤 되면 설사 루덴코프라 하더라도 쉬이 나의 은신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녀석의 기감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녀석이 섬세히 주위를 살피는 타입도 아니니까.
물론, 녀석이 대뜸 대마녀의 힘으로 탐지마법을 돌린다면······ 무슨 짓을 한들 들키겠지만.
‘······안하겠지 뭐.’
이어,
“오케이, 가자.”
만반의 준비를 갖춘 나는 소음에 유의한 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뭐냐, 대체.’
도착한 숲속의 어느 한 작은 공터엔, 두 명의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하나는 비대한 체구의 대머리였고, 또 하나는 그에 반의반도 되지 않는 작달만한 체구의 소녀였다.
또한 대단히 기묘하게도, 두 사람은 설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살려줘요, 살려줘! 여기 이상한 대머리 돼지가 저를 공격하려 해요!”
“······.”
“이것 봐, 노려본다! 돼지가 사람 노려본다!”
“······.”
하나가 대놓고 다른 하나를 놀리고 있었다.
작은 쪽이 큰 쪽을.
“······.”
솔직히 당혹스러움을 넘어, 황당할 지경이었다.
대체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저 루덴코프를 약 올리고 있다니.
황당함이 잦아들자, 곧바로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너무······ 너무 위험한 거 아냐?’
물론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 저리 행동하는 것일 것이다.
위험을 피할 길을 봤으니까.
하지만 암만 그래도 상대는 저 루덴코프가 아닌가.
이 만화에서 가장 과격하고, 가장 잔혹하며, 가장 성질이 더러운 녀석.
어린 소녀의 장난을 ‘허허’ 거리며 봐줄 녀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루카스는 아직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고.
그때부터,
‘이거······ 이거 어떡해야 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저 상황을 그대로 두고보고 있어야 할지, 어떨지 알 수가 없어서.
내가 당장 나서야 하나?
아니면 코코아를 믿고 일단 지켜봐야 하나?
근데 그러다 만약 잘못되기라도 하면?
내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다만 그러는 와중에도,
“살려줘요!”
“뭐하냐 너?”
“살려줘! 여기 돼지가 사람을 먹으려고 해요!”
“꼬맹아, 지금 그거 나한테 하는 말이냐? 너 나 몰라? 엉? 엉!?”
“협박한다! 협박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었다.
“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군. 근데 너······ 혹시 내가 아는 녀석이냐? 왠지 낯이 익은데.”
“네가 나를 어떻게 알아? 바보, 메롱.”
“그럼 넌 뭐하는 녀석이지? 나는 어떻게 찾았고.”
“흥, 안 말해주지.”
“······너 이제 그만하고 죽을래?”
“뭐래. 여기 돼지가 사람 협박한다!”
“······.”
일촉즉발.
이를 지켜보는 내내, 1초가 1분처럼, 마치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루덴코프가 입을 열지 않고 침묵하는 모습을, 그리고 가만 코코아를 노려보는 모습을······ 가만 지켜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조마조마해서.
‘빌어먹을, 빌어먹을······.’
다만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았던 건,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코코아를 믿으니까.
분명 생각이 있어서 하는 행동일 것이다.
다만,
“꼬맹아, 지금 너 내가 무슨 생각하는 지 아냐?”
“그야 간단하지. 점심메뉴?”
“틀렸다. 네 몸에 새길 글씨로 뭐가 좋을지를 떠올리고 있는 중이야.”
“돼지가 글도 쓸 줄 알아?”
“내게 힘을 빌려준 녀석 중에 피노키오란 녀석이 있는데, 그놈 능력이 꽤나 쓸 만하거든. 괜히 입 아프게 뭘 묻거나 할 필요가 없어. 그 녀석의 붓으로 글씨만 남겨주면, 알아서 술술 불게 되니까.”
“······.”
“정했다. 버르장머리. 네게 새겨질 글자다.”
그것도 한계에 봉착했다.
때마침 하나의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갔기 때문이다.
만약 코코아가 지금 죽음을 각오하고 행동하는 것이라면?
그것만큼 루카스를 분노케 하는 게 없을 것이다. 아마도 확실하게, 녀석을 각성시킬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겐 안 돼.’
그건 내가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루덴코프가 붓을 꺼내듦과 동시에, 결심을 굳혔다.
일단은 철수하자. 계획이야 어떻든 간에······ 코코아를 이 이상 위험에 노출시킬 순 없으니까.
그러고 내가 막 나서려 할 때였다.
바로 그 순간,
“안 돼!”
거짓말처럼 기다리던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부웅-.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들더니, 루덴코프와 코코아 사이의 땅바닥에 정확히 ‘꽂혔다.’
쾅!
······.
루카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일어났으나, 그의 몰골은 그야말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온몸이 피와 진흙 범벅에, 드문드문 난 작지 않은 상처까지.
고귀함마저 느껴지던 단정한 외모는 어디가고, 웬 거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꼴이었다.
이는 단순히 땅에 처박혔다고 해서 만들어질 외관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까지 오는데 꽤나 고생고생을 했던 모양이다.
그즈음,
“루카스, 저 돼지가 나를 죽이려고 했어.”
“······.”
“나 무서웠어. 혼내줘.”
코코아가 황당하리만치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루카스에게 말했다. 지극히도 덤덤한 표정은 덤이었다.
“······성녀님.”
당혹스러웠다.
잊고 있던 황당함이 다시금 쭉 밀려드는 느낌이었다.
‘연기가 왜 저래?’
저건 내가 인정한 유일무이한 컨셉귀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저토록······ 대충이라니.
그나마 맛이 갈 데로 간 루카스가 이제 완전히 코코아를 성녀로 혼동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연기였다.
그때,
“아하, 너 그놈이로군. 타락기사.”
이를 지켜보던 루덴코프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물러나라.”
“근데 너는 탑 1층에 콕 박혀 지내던 거 아니었나? 설마 네놈도 모험왕 자리가 탐이 났던 거냐?”
“······성녀님에게서 물러나라.”
그러자,
“······뭐? 성녀? 크하하, 크하하핫!”
황당함을 표할 줄 알았던 루덴코프가 느닷없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그렇군, 어쩐지 어디서 본 느낌이 나더라니. 꼬맹이 너, 성녀 흉내를 내고 있었구나? 이미 묻힌 지 천년도 넘은 그 여자를. 근데 어떻게 알고?”
그 말엔 나조차 당황했을 정도였다.
‘응?’
전혀 몰랐다. 저 황당한 연기가 실은 성녀를 흉내 낸 것이었다니. 심지어 비슷했다니.
성녀는 원작에서도 언급만 되었지 실제로 등장한 적이 없었기에, 전혀 그녀의 캐릭터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잠깐이긴 하나, 감히 저 코코아를 의심했다니.
코코아는 허튼 짓을 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외려, ‘성녀를 흉내 낸다’는 가장 생존률이 높은 방식을 취하고 있었던 거지.
루덴코프 또한 코코아의 모습에서 기이한 기시감을 느꼈기에, 대화를 나누며 코코아의 저의를 알아내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당장 없애버리려 한 게 아니라.
코코아가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무렵,
“그나저나 성녀라니······ 크흐흐,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저 멍청한 기사 놈을 1층에서 끌어낼 생각을 다하다니. 하지만······ 그게 그리 좋은 생각일까?”
루덴코프가 기묘한 말을 꺼냈다.
“저 녀석, 보이는 것과는 완전히 딴판인 놈이거든. 성녀, 성녀 거리지만 실제론 자기밖에 모르는 놈이지. 살인의 쾌락을 좇다 끝내 성녀마저 내버려둔 녀석이니까. 꼬맹아, 너도 곧 알게 될 거다. 저 녀석만큼 사람을 베는 데 혈안이 된 인간이 없거든. 피가 부족하면 네게로 칼을 돌릴지도 모를 걸? 뭐, 이미 반쯤 미친 듯 보이긴 하지만.”
“······.”
과거인 듯했다.
원작에서도 밝혀지지 않은 타락기사의 과거.
“피를 보는 데만 혈안이 된 가짜 기사 녀석 같으니라고.”
바로 그때였다.
“······닥쳐.”
루카스의 주위로 검게 물든 수증기가 뭉게뭉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죽인다······ 죽여 버릴 테다······.”
그즈음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루덴코프를 바라봤다.
이렇게까지 도와주다니.
곧이어,
우우웅-.
과거 만화를 보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던 장면이 눈앞에서 그대로 재현되기 시작했다.
시작은 루카스의 피부였다.
체내에서 분출된 웬 정체 모를 새까만 물질이 그의 피부를 까맣게 물들이기 시작했는데, 흡사 살아 움직이는 수만의 거머리 떼를 보는 듯했다.
이어 곧바로 녀석의 등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빠드드득-.
등뼈가 쪼개지며, 검정의 날개 한 쌍이 그 틈에서 돋아나기 시작했다.
실로 괴이한 광경이었다. 생살이 찢기고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오는 자리에서, 피를 머금은 검정깃털이 자라나다니.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날개가 최대로 자라났을 즈음, 루카스의 이마에서 두 개의 뿔이 생겨났다.
하늘을 향해 뻗은 적색의 뿔.
녀석의 핏빛 눈동자와 완전히 동일한 색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녀석의 주위로 피어나던 검은 증기가 그 확장을 멈췄을 무렵, 루카스는 어느새 완연한 악마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에피소드를 생략해 버렸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원작에선 타락기사의 이 같은 변화에 대해 별다른 부가설명이 붙지 않았었다.
어째서 저와 같은 악마의 모습을 띄게 된 건지, 혹시 모험의 탑에 ‘마계’와 같은 세계가 숨겨져 있는지······ 혹은 저것이 성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발화된 변화인지조차도.
다만 이를 본 독자들은 달랐다.
작가는 루카스에게 어떠한 설명도, 또 명칭도 부여하지 않았지만, 커뮤니티에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녀석을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타락기사의 또 하나의 인격, ‘마왕 루카스’가 나타났다고.
*
루카스는 여러 다양한 매력을 가진 캐릭터로, 등장과 동시에 시선을 사로잡은 몇 안 되는 캐릭터 중 하나였다.
일단 찬란하다고까지 표현된 외모에, 점잖고 교양 넘치는 말투,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의 다짐을 깨지 않고 묵묵히 신념을 지켜온 저 멋들어진 태도까지.
더군다나 독자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낼 사연마저 가지고 있지 않은가.
자연스레 눈길이 갈 수밖에.
하지만 고작해야 이뿐이었다면, 그 인기는 그리 고점을 찍지 못했을 것이다.
루카스를 향한 환호가 기세를 잃지 않고 점점 더 커져갔던 이유.
이는 녀석의 불안정한 정신상태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캐릭터의 입체감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점잖고 신념을 지킬 줄 아는 기사가 때론 독선에 빠져 아집을 부리고, 보호라는 명목 하에 시아나에게 집착하며, 염세주의적이고 분노가 들끓는 내면을 비추기까지.
그것은 흡사, 악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물론 단순히 그와 같은 면을 드러낸 것에 그쳤다면, 인기가 더해지기는커녕 금방 식어 없어졌을 것이다. 그와 같은 캐릭터성은 독자들의 흥미를 잠시간 이끌어낼 순 있지만, 그대로 환호와 지지로 이어지진 않으니까.
하지만 녀석에겐 있었다.
차츰차츰 들기 시작한 독자들의 실망감을 단번에 뒤집어엎을, 거센 반전이 말이다.
녀석의 은밀한 내면의 끝.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또 하나의 인격.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마왕’을 개화하면서, 루카스의 인기는 그야말로 수직상승 했던 것이다.
무려 캐릭터 인기투표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까지 했으니.
하지만 당시 내가 이 캐릭터를 그렇게나 마음에 들어한 이유는 사실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니었다.
녀석의 캐릭터가 멋져서도, 사연에 공감해서도 아니다.
두 가지의 상반된 모습이 공존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성을 보여서도 아니다.
아주,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그냥 저 녀석이 강했기 때문에.
그즈음 이야기에 등장한 그 어떤 캐릭터보다도 녀석이 강했기 때문에.
마왕이 보인 무력이, 보는 나로 하여금 심장을 떨리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나야 늘, ‘먼치킨’에 환장하는 취향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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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일이었다.
루덴코프는 어안이 벙벙해진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게,
“너······ 그게 네 본 힘이냐? 어떻게 그런······.”
본인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아니, 통하지 않고 말고 할 수준이 아니었다.
루덴코프의 모든 공격들은 마왕이 내젓는 손짓 한 번에 사라졌다.
물론, 녀석 또한 전력을 쏟은 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황당할 수밖에 없으리라.
심지어 마왕은,
“여긴 대체······ 너는 뭐지?”
자아조차 제대로 깨치지 못한 상태였으니.
“허, 이건······ 이런 힘이 존재한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는데······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이건······.”
“너, 나를 아느냐? 나에 대해 말한다면 소멸시키진 않으마.”
마왕의 힘은 그야말로 논리와 이해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커뮤니티 내에서도 저 힘에 대해선 ‘설정오류’란 의견이 대다수였을 정도이니.
혹시나 작가가 캐릭터 설정을 건드리진 않았을까 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곤 녀석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퍼뜩,
‘아참, 지금 내가 구경할 때냐.’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나는 얼른 코코아에게 접근했다.
“쉿.”
이어, 놀라 벌어지는 녀석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곤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저 두 존재가 붙을 경우, 안전지대 따윈 없다. 휩쓸리면 끝장이다.
일단 물러난 뒤, 상황의 추이를 지켜봐야 했다.
그러고 저 먼 산등성이까지 물러난 나는 기감을 최대로 키웠다.
위험하긴 해도, 저만한 구경거리를 놓칠 순 없으니까.
그로부터 한참동안이나 루덴코프와 마왕의 대결은 계속되었다.
루덴코프는 뭔가를 시험해 보려는 듯 지속적으로 유형을 바꿔가며 공격했으나,
“이, 이게 안 돼?”
“이것도 안 먹힌다고!?”
“능력 무효화가 통하지 않아!?”
마법, 물리공격, 정신계, 능력 무효화······ 어느 것 하나 루카스에게 통하는 게 없었다.
루카스는 그저 손을 휘적거리는 것만으로 루덴코프의 공격을 튕겨내 버렸으며, 그조차도 다른 곳을 응시한다거나, 기억을 떠올리려 머리를 매만진 채 행한 것이었다.
즉, 제대로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이에,
“크, 크하핫, 크하하핫! 이게 말이 돼? 엉? 이게 말이 되냐고! 이게 무슨······ 이 따위 힘이 어떻게 존재할 수가 있어! 엉! 엉!?”
루덴코프는 심히도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로선 여태 본인이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존재라고 생각해왔을 테니.
저 또한 목숨을 걸고 상대해야 하는 대상이 있다는 사실······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겠지. 가뜩이나 ‘죽음’에 민감한 녀석인데.
하지만,
‘이제 어떻게 나오려나······.’
나는 이대로 힘의 우열이 유지된 채, 상황이 이어지리라 보지는 않았다.
일단 루덴코프가 그리 만만한 녀석이 아닌데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루카스가 굉장히 불안전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일단 자아가 부실하고, 목적이 불분명하며, 어디로 튈지 모른다.
또한 오래도록 저 상태를 유지하지도 못한다. 정확한 시간까지는 모르나, 탈진해 풀썩 쓰러지는 컷이 있었던 게 기억이 나니까.
무엇보다도, 루카스는 성녀의 애탄 부름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 한다.
즉, 코코아가 부르면 웬만하면 정신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외려 원작에서 그토록 허무한 최후를 맞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런 루카스에게 루덴코프가 쉽사리 무너질 리는 없었다.
나 또한 그 정도의 역할까지 기대하고 있었던 건 아니고.
당장은 당황하여 움츠러든 듯 보이지만······ 아마 전력을 재정비 하고, 루카스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뒤, 재차 덤벼들려고 하지 않을까.
사실 루카스는 루덴코프를 정신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언제든 너를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공포를 심어주기 위하여.
그 정도면 됐다.
마무리는 나와 레오가 하면 되니까.
나는 기다렸다가 루덴코프가 물러날 기미를 보일 즈음, 코코아와 함께 나가 루카스를 데려올 생각이었다.
때마침,
“······빌어먹을, 안되겠다. 너 정말 강하구나?”
루덴코프가 공격을 중단하곤 입을 열었다.
‘벌써? 포기가 꽤 빠르긴 한데······.’
나는 최대한 청력을 키운 채, 그에 집중했다.
여차하면 튀어나가야 되니까.
그때였다.
“그거 변신······ 어떻게 하는 거냐?”
녀석이 뜬금없는 걸 물어왔다.
“날개 돋고, 검게 칠하고······ 나도 해보고 싶은데.”
그 순간,
······헙.
나는 당황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뭐, 뭐하는 거야······.’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건 아니다.
원작에선 저러지 않았다.
루덴코프는 ‘마왕’을 보고서도 그냥, 그냥 물러났었다.
“그건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그······ 힘은?”
물론, 이 상황을 생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줄 알았다.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원작에선 없었으니까.
작가가 미리 막아뒀을 줄 알았으니까.
작가도 생각이 있을 줄 알았으니까.
설사 독자들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하더라도, 전개를 위한 ‘내적허용’으로 어떻게든 모른 척 넘어가게 할 줄 알았으니까.
그즈음, 갑작스레 든 깊은 허무함이 내 내면 깊숙한 곳으로 잠식해 들어왔다.
저게 가능하다면······ 저건 정말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거잖아.
“너······ 내가 힘 좀 빌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