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24
24화 후퇴해 살아남은 중간보스는 무엇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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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해 살아남은 중간보스는 무엇을 하는가.
소년만화의 특성상, 제아무리 악당이라 하더라도 작중에서 죽어 사라지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차라리 주인공에게 맞고 날아가거나, 어디 머나먼 곳으로 떠내려가면 떠내려갔지.
그래서 늘 궁금해 했던 기억이 있다. 전투가 종결된 후, 이들의 처분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물론 현재 내가 그와 완전히 같은 경우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얼추 비슷한 상황은 겪을 수 있었다.
1. 일단 본진으로 돌아와 잘잘못을 가린다.
“마피아야 그렇다 치더라도, 희생된 암살자들이 몇인지는 알고 있나 모르겠군. 결국 얻은 성과라곤 꼬맹이 뺨에 줄 하나 그은 것 말곤 없지 않나?”
“분명히 말했을 텐데. 놈들은 강하다고. 애당초 급수가 떨어지는 녀석들만 붙여준 건 너희 쪽이야.”
“어쨌거나 당장은 해보겠다며 자신감을 보인 건 네놈 아닌가? 이제 와서 그 따위 소리라니.”
“그럼 죽으러 가겠다고 말했어야 했나? 퍽도 좋아했겠군. 그리고 내게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이미 하카를 보내 충원을 요청한 것 같던데. 딱 보니 이대론 좀 힘들겠다 싶었지?”
“그건······.”
2. 대충 말이 오고갔다 싶으면, 다음으로 상대에 대한 분석을 내놓는다.
“어쨌거나 놀랍도록 강한 녀석들이야. 나도 거의 죽을 뻔했다고.”
“그런 것 치고는 맞상대했을 때 꽤나 여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척 한 거야. 뒤쫓아 올까봐.”
“흐음······.”
“직접 손을 부닥치면서 알아낸 게 몇 가지 있지.”
“호오, 그게 뭐지?”
“일단 여자는 전투능력이 없는 듯 보이니 넘어가기로 하고, 그 더벅머리 소년과 빨강머리에 관한 거야.”
나는 레오와 키리코의 능력에 대해 아주 간단한 것만 일러주었다.
가령 키리코의 리볼버에선 마력탄이 나오며 그 종류가 여럿 있다는 것과, 레오의 번개는 절연체 따위를 몸에 두르지 않으면 곧장 기절에 이를 정도의 전력이라는 것 정도.
“참고해야 할 거야.”
“음······.”
사실 굳이 말로 꺼낸다는 게 웃길 정도로 별 거 아니었지만, 간부 녀석은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그리고 되도록이면 둘을 떼놓고 처리하는 게 좋을 거야. 두 녀석의 궁합이 제법 잘 맞더라고.”
“그건 나 또한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녀석들을 상대할 방법에 대해선 네가 신경 쓸 것 없다. 이제 우리 쪽에서 완전히 맡아 처리하기로 결정했으니. 본래는 마피아들에게 맡겨 놓을 생각이었지만······ 그래, 네 놈 말마따나 그건 무리일 듯싶더군.”
“빨리도 인정하네.”
“이제 네놈은 어쩔 생각이지? 행여나 네놈 조직을 끌고 올 생각이라면······ 당장 그 생각을 버리는 게 좋을 거다. 녀석들보다 네 놈들을 먼저 처리할 수도 있어.”
녀석이 경계하듯 나를 노려봤다.
“그럴 생각은 없어. 이미 내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소기의 목적?”
이미 어그로란 어그로는 다 끌어 챕터보상을 획득했거든.
물론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마피아들을 지켜냈잖아? 어느 정도는.”
실제로 마피아들의 피해는 원작과 비교하면 거의 반으로 줄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레오와 키리코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고유능력을 꺼내드는 바람에 2차, 3차로 준비해둔 마피아들은 아예 써먹지도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 간부들은 극소수를 제외하면 피해를 입은 이가 전무한 정도였고.
하지만 물론, 이 기나긴 에피소드가 끝난 후 녀석들이 캐릭터 정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훗, 네놈 조직에게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군. 저 애송이들을 처리하고 나면 다음 상대가 너희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렇다면 부디 최선을 다하라고. 그 애송이들에게 혹여나 전력이 손실되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아주 쉽게 우리의 장난감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거기까지 말하곤 나는 등을 돌렸다.
이제 여기서의 볼 일은 모두 끝이 났다.
“그럼 힘 내보라고 검은 그림자. 또 도움 될 만한 정보가 생기면 말해주러 오도록 하지.”
“필요 없다. 과연 앞으로 얼굴 볼 일이 있을까 모르겠군. 적으로서가 아니라면 말이야.”
“됐고, 하카가 돌아오면 안부나 전해달라고.”
“멀리 나가지 않겠다.”
3. 본진을 떠난다.
나는 스켈레톤 하우스를 뒤로한 채 천천히 정문으로 향했다.
그래, 아마 이것까지가 대부분의 ‘후퇴해 살아남은 중간보스’들이 겪는 과정의 전부일 것이다. 이 이후야 뭐······ 존재의 이유가 없어졌으니,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는 이야기의 뒤편으로 알아서들 사라지는 거겠지.
하지만,
“······슬슬 움직여 볼까.”
나는 일반적인 녀석들과는 그 경우가 다르다.
성적표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나의 활약과 등장을 기대하는 독자들이 무척이나 많아졌다는 걸.
나의 다음 행선지는 이야기의 뒤편이 아니라, 오히려 전개의 가장 앞부분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나의 넥스트 스텝은 바로,
4. 이중 스파이 활동을 시작한다.
“아참, 선물 챙겨가야지.”
나는 정문을 나가려다 말고 급히 돌아 본관 옆쪽에 있던 창고로 향했다.
혹시나 누가 발견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 자리 그대로 놓여 있었다.
“오케이.”
나는 한쪽 구석에 몰래 숨겨뒀던 커다란 자루를 짊어진 채, 서둘러 스켈레톤 하우스를 빠져나갔다.
*
새로운 챕터가 열린 건, 무려 이틀이란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모험왕 연재가 재개되었습니다]
[챕터10 – 검은 그림자 암살단(1)]
[진행 중인 챕터의 권역에 속해 있습니다]
[수수께끼 주걱턱은 이번 챕터의 캐릭터 평가 대상입니다]
‘생각보다 늦어졌네.’
기존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었다. 원작에선 레오가 ‘세븐 링’을 제압하자마자, 검은 그림자의 단원들이 출현했었으니까.
이는 아마 작가가 전개를 수정하는데 애를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갑작스레 출현시기가 변경된 ‘새로운 등장인물’이 이곳까지 오는데 시간이 소요된 까닭도 있을 것이고.
챕터의 이름도 변경되었다. 원래라면 [데스톰브의 마피아들(2)]이 진행됐어야 하나, 곧바로 [검은 그림자 암살단(1)]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나는 이때 약간의 가책을 느꼈는데, 이는 단순히 데스톰브의 마피아들 뒤에 붙은 ‘(1)’을 무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혹, 검은 그림자 암살단 뒤에 붙은 ‘(1)’마저 비슷하게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뭐, 알아서 잘 조정하겠지.’
이윽고, 나는 스켈레톤 하우스에서부터 챙겨온 자루를 짊어진 채 한 허름한 건물 앞에 섰다.
[죽음과 같이 편안한 잠을]
내가 이 인상 깊은 이름의 여관 앞에 멈춰선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이 바로 현재 레오 일행이 묵고 있는 숙소였기 때문에.
분명 저들에게 돈이 없진 않을 것이다. 무려 골담시티의 여왕이 함께 있지 않은가. 하지만 레오 일행은 희한하게도 항상 이러한 곳에만 머물렀다. 허름하고, 왠지 밤중에 뭔가가 출현할 것만 같은.
사건에 엮이기 좋은 환경으로 일부러 더 캐릭터들을 밀어 넣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 같이 몰래 온 손님의 입장에서야 나쁠 게 없었다.
‘슬슬 들어가면 되려나?’
나는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본 후, 슬쩍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만나려면 진즉부터 만날 수 있었다. 챕터가 끝나기 무섭게, 코코아에게 부탁해 이들의 거처부터 찾아놓은 상태였으니.
일부러 챕터가 시작되길 기다린 건, 그래야만 내 등장씬을 확보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상컨대, 독자들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으리라. 꽤나 많은 의혹을 남긴 채 챕터를 마무리 지었던 당사자가 곧바로 다음 챕터에서 떡하니 등장하는 것이었으니.
그래 마치,
“너, 너!?”
“주걱턱!”
“······뭐죠?”
이 녀석들처럼 말이다.
“여, 오랜만이야.”
나는 씩 미소 지은 채 손을 흔들어주었다.
사실 이는 이 녀석들보다도 독자들을 겨냥한 인사였다. 일종의 하이개그라고나 할까. 작가가 감이 있다면 이 장면을 쓰겠지.
“당신······ 여긴 어떻게 알고?”
“너 정체가 뭐야?”
“물러서!”
흐음.
나는 순순히 저들의 말을 따라주었다. 치누아비도 없는 마당에, 혹 싸움이라도 일어나면 큰일이었으니까. 얻어터지기 싫으면 말 들어야지.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잠깐, 너 마피아인가? 아니면 그때 말했던 그······ 비밀요원?”
“자루 안에 든 건 뭐죠? 먼저 그것부터 내려놓으세요.”
“미안한데 한 사람씩 말해주면 안 될까?”
곧이어,
“너 여긴 어떻게 온 거야?”
레오가 먼저 나섰다.
“사람들한테 물어서 찾아왔지. 너희 인상착의를 설명하니까 금방 알고 가르쳐 주던데?”
나는 대강 대답했다. 별로 중요한 질문이 아니었으니.
그러자,
“흐음, 그래?”
레오가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과연 소년만화 주인공다운 반응이었다. 아무 생각 없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다음으로 키리코가 나섰다.
“너 진짜 정체가 뭐야? 무슨 속셈이지?”
“일전엔 마피아였어. 그리고 지금은 너희의 조력자지. 상세 내용에 대해선 비밀.”
“마피아가 어째서 우릴 돕는 거지?”
“마피아가 아니라니까. 그건 내 위장신분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럼 역시 그게 맞나? 비밀요원?”
그엔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알아서 생각하도록 두는 게 더욱 비밀스러움을 증폭시키는 길이니까.
“그런데 어째서 우릴 돕는 거지?”
“너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 그의 정체에 대해선 비밀이야. 알아내려고 하지 마. 나도 잘 모르고, 의뢰를 받아 진행하는 것뿐이니까.”
물론, 이는 그냥 아무 말이나 지껄인 것에 불과했다. 그래도 대충 넘어가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역시나,
“그럼······ 우릴 어떻게 돕겠다는 거지?”
예상대로였다. 의심하지도 않고, 딱히 불안해하지도 않고.
사실 이들만큼 무신경한 녀석들은 만화 전체를 돌아봐도 찾기 힘들 정도다. 사실 뭐, 주인공이라는 게 다 그런 거니까. 이렇게나 대충, 대충 해도 끝내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축복받은 역할이라고나 할까?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다.
“너희를 공격하려고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공격할 계획을 짜고 있는지에 대해 말해주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알아낸 게 있거든.”
“우리를 공격하는 이들? 그야······ 마피아잖아.”
“뿐만이 아니야. 더 위험한 녀석들이 너흴 노리고 있어.”
그때였다.
“잠깐만요. 그전에 들고 있는 자루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주시죠.”
마침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인물이 물어봐줬다. 안 그래도 들고 있기 귀찮았는데.
“아, 이거? 선물이야. 우리 여왕님께 드리는.”
나는 곧바로 자루를 풀어, 그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곧이어,
“헉!”
“뭐, 뭐야? 사람이잖아!”
딱 좋은 반응들이 튀어나왔다.
또한,
“엘 비에고!”
시아나의 마무리까지.
“이 녀석 맞지? 만나려 했던 게.”
“어떻게 그걸······.”
“골담 카지노에 있을 때부터 당신과 이 녀석과의 관계는 알고 있었어. 어떻게 알게 된 건지는 묻지 마. 비밀이니까. 어쨌거나 마피아 간부 잡아온 거 보면 알겠지? 나는 그 녀석들과 한패가 아냐. 오히려 너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지. 의문이 들겠지만, 일단은 믿어 보라고. 손해 볼 건 없을 걸?”
이어, 나는 검은 그림자의 존재와 그 구성원들에 대해 말해줬다.
암살자들의 등급은 하급, 중급, 상급으로 나뉘며, 상급부터가 조직의 간부이자 핵심이라고.
“마피아들 사이에 섞여 있던 게 바로 하급 암살자들이야. 애 좀 먹었었지?”
“그것들이 고작 하급이었다고?”
“그래, 긴장하라고. 중급부터는 더욱 무서워 질 테니까.”
나는 검은 그림자의 공격 방법에 대해서도 일러줬다.
일반인인 척 다가와 기습한다거나, 독을 쓰기도 하고, 심지어는 땅 밑에 숨어 있다 불쑥 공격해 오는 경우도 있다고.
“긴 싸움이 될지도 몰라. 대비 잘하라고.”
“흥, 그까짓 녀석들.”
“오기만 해봐. 가만 안둘 거야.”
역시나 주인공들답게 겁먹은 기색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씩씩하고 좋네.
“아, 그리고 하나 더.”
“또 있다고?”
“제일 중요한 거야, 잘 들어. 거기에 괴물이 하나 있어. 레오, 너와 비슷한 나이인데 아주 무시무시한 녀석이지. 그 녀석을 조심해야 돼.”
“······괴물?”
“그게 누구죠?”
“그 이상은 묻지 마. 나도 잘 모르니까.”
나는 일단 거기까지만 말했다. 이 이상 스포를 했다간 작가로부터 무슨 페널티를 받을지 모르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내가 말해준 것들 까먹지 말라고.”
이어 나는 시아나가 엘 비에고의 머리를 발로 까는 모습을 잠시간 관람한 뒤, 그곳에서 서둘러 나왔다.
아직 내겐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
이틀 후.
[둘이 먹다 하나가 죽은 아이스크림 가게]
나는 정면에 있는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30분전부터 그 앞을 서성거리고 있는 한 왜소한 체구의 소년을.
얀.
검은 그림자의 정식 후계자이자, 암살단 무력 서열 1위.
그리고 레오의 네 번째 동료가 될 소년.
물론 당장 저 녀석이 레오와 결투를 벌이는 것은 아니다.
얀은 검은 그림자의 모든 간부들이 레오와 키리코에게 쓰러진 이후에야 등장하는, 그야말로 이 기나긴 에피소드의 최종보스였으니.
새로이 챕터가 시작된 지 이제 고작 이틀.
이제 막 중급 암살자들과 전투가 시작되었다고 본다면, 저 녀석이 등장하기까진 아직 꽤 멀었다는 얘기였다.
그래, 기존의 원작대로라면.
하지만 나는 그걸 곧이곧대로 놔둘 생각이 없었다.
이유야 간단하다. 그렇게 되면 내가 끼어들 만한 상황이 전혀 생기지 않으니까.
검은 그림자와의 싸움은 단계적으로 무척이나 잘 구분되어 있다.
하급, 중급, 상급 암살자에 이어 마지막으로 저 최종보스까지. 독자나 작가 모두에게 편하고 익숙한, 그야말로 몹시도 정돈된 전개다.
다만, 이렇게나 딱딱 구분되어 있으면 나 같은 3자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이는 어떻게든 막아야할 구조였다. 나는 이 챕터에서 어떻게 해서든 포인트를 따내야 하니까.
하여, 구상한 내 계획은 간단했다.
지금 당장 저 녀석을 데리고 싸움에 난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