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25
25화 얀
***
사실 지금 내가 하려는 짓은 만화 자체만 놓고 봤을 때, 그리 긍정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외려 깽판에 가까운 것이지.
이제까지 나는 몇 차례나 작가가 짜둔 플롯을 변형시켜왔지만, 그것들은 모두 일종의 ‘보완’에 가까웠다. 단순히 내 존재감을 떨쳐야 한다는 목적만을 위해 행동한 게 아니라, 전개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수정하겠다는 당위성이 곁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에 대한 근거 또한 명확했다. 나는 원작의 전개에 대한 독자들의 부정적 반응을 이미 다 알고 있었고, 또 실제로 피드백을 하기도 했던 사람이니까.
즉, 작품 자체의 질적 상승을 항시 염두에 둔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와 성격이 조금 달랐다.
왜냐?
현재 진행 중인 전개에 딱히 문제가 없기 때문에.
마피아 쪽 챕터들은 지지부진 시간을 끈 게 맞다. 어차피 비슷비슷하게 별 거 아닌 놈들이 계속해서 분량을 잡아먹으며 등장하는 것이었으니.
하지만 검은 그림자 쪽은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적의 난이도가 확실히 구분되어 있고, 단계마다 공격루트와 공격방식이 각각 다르기에, 꽤나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제법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 그와 동시에 레오 일행의 위기감이 점차 고조되면서, 극의 긴장감도 함께 올라가는 효과가 있었고.
실제로도 마피아 파트와는 달리, 검은 그림자 쪽 파트는 딱히 독자들에게 욕을 먹진 않았다. 오히려 정신 차렸다는 소릴 들었지.
즉,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딱히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잘 진행되고 있으니까.
하지만.
“응, 몰라.”
내가 더 급했다.
현재 내 보유 포인트는 24,273p
인지도 상승으로 많은 포인트를 얻긴 했지만, 하필 또 작가 호감도가 깎이면서 2,000p가 줄어든 상태였다.
[흉내쟁이 곡예사]를 구매하기 위해선 앞으로 6,000p가량이 더 필요한 상황.
현재 내 캐릭터의 비중이 그리 낮지 않은 상태이기에, 아주 벌기 힘든 포인트라 보긴 힘들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이번 검은 그림자 챕터가 모두 마무리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흉내쟁이 곡예사] 챕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한두 챕터들은 그야말로 쉬어가는 화라 포인트를 벌만한 구석이 없었다.
즉, 이번 챕터에서 벌만큼 벌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최소 만 포인트는 획득해야 돼.’
추가적으로 필요한 게 육천 포인트이긴 하나, 그보다 더 있어야 했다. 이번 작업으로 작가 호감도가 또 한 번 줄어들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그것까지 고려한다면 최소 만에서, 여유 있게 만 오천 정돈 벌어둬야 했다.
하여, 나 또한 뒤가 없다는 심정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케이, 가보자.”
한 번 결심했으면 망설여선 안 된다.
나는 곧장 아이스크림 가게 앞을 서성거리고 있던 소년에게 다가갔다.
“안녕.”
“······?”
“안 들어가고 뭐해.”
소년의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나는 그런 녀석을 위해 굳이 한 마디를 덧붙여줬다.
“얀.”
그러자,
“어······ 검은 그림자······ 단원?”
접착제라도 바른 듯 붙어있던 소년의 입술이 슬쩍 움직였다.
“맞아, 먹으면서 얘기하자. 들어와.”
그러고 아이스크림 가게 안으로 먼저 들어가니, 곧이어 녀석이 쭈뼛쭈뼛 따라 들어왔다.
“맛은?”
“그······ 저······.”
“뭐야, 못 정했어? 내가 정해준 걸로 먹을래?”
“아, 아니······ 그럼 그냥······ 아빠는 딸바봉으로······.”
주문을 마친 후 자리로 가 앉자, 얀이 다시금 쭈뼛쭈뼛 입을 열었다.
“정말 맞아······ 요? 못······ 보던 얼굴인데······.”
“그럼 내가 네 이름을 어떻게 알겠어? 네 아버지에겐 네가 모르는 수하들이 제법 있어. 네가 단주의 자리에 오르면 뭐, 다 알게 되겠지만.”
“······그런가.”
이어 나는 말없이 가만 소년을 쳐다봤다.
얀.
이제까지 단 두 차례의 야행(夜行)을 제외하곤, 암살단 내부를 벗어난 적 없는 사회성 제로의 소년. 지독히도 내성적인 성격에다 심지어 폭풍 사춘기까지 겹친, 마음만은 질풍노도의 열다섯.
독자들이 붙인 이 녀석의 별명은 다름 아닌, ‘암 유발자’였다.
나름 귀염귀염하게 생긴 외모에, 실제 전투에 들어선 180도 달라지는 모습, 그리고 사기적인 고유능력까지. 입덕할 면이 없잖아 있는 캐릭터였으나, 이 녀석을 향한 독자들의 반응은 늘 냉담했다.
이유야 간단하다. 캐릭터 자체가 너무나도 답답하기 때문에.
일단 이 녀석은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하지 못한다. 현재 이 녀석이 대화 가능한 인원이라야 검은 그림자 단원들이 전부이고, 그나마도 편하지 않다는 설정이다. 심지어 레오 일행에 들어간 뒤에도 한참동안이나 레오 외엔 말을 잘 나누지 못할 정도이니.
뿐만 아니라 심각한 수준의 결정 장애에, 우유부단함, 자신감 결여 등등······.
오죽하면 혼자 아이스크림 가게조차 들어가지 못하겠는가. 지난 번 야행 때 처음 먹어보곤,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 몇 날 며칠을 끙끙 앓았던 바로 그 아이스크림이 눈앞에 있는데도.
내가 방금 말을 걸지 않았다면, 아마 결국 포기하고 돌아섰을 것이다. 이 녀석에겐 그게 더 익숙하니까.
물론 얀의 이런 소심한 성격은 소년만화의 필수 클리셰 중 하나이긴 했다. 후에 동료들을 위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성장 플래그랄까.
작가는 얀의 그 같은 변화를 그리며 독자들이 열광하길 기대한 듯했는데, 이는 오산이었다. 독자들은 얀의 변화를 환영해주지 않았다. 이미 그제까지 쌓이고 쌓인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만큼 함께 뭘 하기가 힘든 캐릭터라는 것.
다만, 그럼에도 내가 자신만만하게 이 녀석에게 접근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레오 일행이 차후 무척이나 힘겨운 과정을 거쳐 간신히 알아내게 될, 이 녀석의 ‘사용법’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첫 번째 단계. 긁기.
“맛있냐?”
“응······ 근데 아버지가 보내서 온 건가요?”
“그렇지.”
“······안 그러셔도 됐을 텐데.”
“안 그래도 되긴. 혼자선 아이스크림 하나도 못 사먹으면서.”
“사려고 했었는데······ 아직 맛을 못 정해서······.”
“그래서 그걸 한 시간 동안이나 고민한다고?”
“한 시간까진······ 아닌데······.”
“아이스크림 고르는데 한 시간이면, 모험일정 짜는 덴 1년 걸리겠네? 후계자 수업 제때 끝내려면 모험과제는 빼달라고 말해야 하는 거 아냐?”
“그, 그건······.”
현재 이 녀석은 한창 후계자 수업을 받는 중이라는 설정이었다. 그리고 그 수업 내용 중에 ‘모험’이 들어가 있었고.
암살단을 맡기 위해 어째서 그 같은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그랬다. 이 녀석을 레오의 일행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작가의 편의주의적 설정이라고나 할까.
이어 두 번째 단계, 부추기기.
중요한 단계였다. 이 녀석은 약간의 부추김에도 몹시 팔랑거리는, 극도로 얇은 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부분의 성패가 갈렸다.
“그나저나 현재 상황은 알고 있냐?”
“상황이요?”
“너 여기 왜 왔는지 잊었니?”
“······아.”
“잊지 말라고. 너 지원명령 받고 온 거니까.”
“하지만 딱히······ 위급신호는 없었는데······.”
“그렇다고 그게 임무조차 잊은 채 여기서 혼자 놀고 있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
“직접 찾아가 보는 게 어때?”
“제가 먼저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었나? 지난 후계자 계승식 때?”
“하지만······ 아직 요청도 없었는데 먼저 움직인다는 게······.”
“쯧, 이러니 뭐가 될 턱이 있나. 단주님이 이곳까지 너만 따로 보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주변 말 듣지 말고 알아서 잘 처리해 보라는 거 아냐.”
“아······.”
느껴졌다.
방금 녀석의 귀가 팔랑거렸다.
“게다가 여기까지 왔으면서 신호가 없다는 이유로 적을 확인도 않는다고? 그러다 간부들이 몽땅 털리기라도 하면?”
“가, 간부들이······ 설마 그런······.”
“설사 그런 일이 없다 하더라도, 네가 오면 당연히 더 힘을 내지 않을까? 후계자가 격려차 지원까지 온 건데?”
“그, 그런가요······?”
다음으로 세 번째 단계, 호기심 한 스푼.
“게다가 그 녀석들, 모험가인 거 같던데.”
“······모험가요?”
“심지어 네 또래가 리더기도 하고.”
“······.”
“궁금하지 않아? 어떤 녀석들인지? 너는 네 또래에서 네가 최강이라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세상은 넓다고.”
“아, 아뇨. 그런 생각은 전혀······.”
“그리고 혹시 또 모르잖아? 현재는 적이지만, 차후엔 또 어떤 식으로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거든. 오늘의 적이 내일 함께 모험을 떠날 동지가 될지도?”
“서, 설마 그럴 일은······.”
이제 마지막 네 번째, 그냥 시키기.
“됐고, 빨리 움직이라고. 더 늦기 전에.”
“하지만 아이스크림이 아직······.”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녀석의 두 눈이 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됐다!’
그냥 시켜도 들을 것 같이 보이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렇듯 단계를 철저히 지켜 살살 긁어주지 않으면, 이 녀석은 희한하게도 ‘아,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요’라든가 ‘그, 그래도 신호는 받아야······’ 하는 식으로 거부하고 만다. 그리고 한 번 거부한 이상엔, 결코 번복하지 않는다. 그러니 독자들이 모두 답답해 죽으려고들 했지.
오로지 이 네 단계가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만이,
“그럼······ 혹시 그 녀석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신가요?”
비로소 이 녀석은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
전황은 치열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중급 암살자들은 죄다 드러누운 상태였고, 간부들 또한 한둘이 부상을 입고 가장자리로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남은 간부는 대여섯 정도.
키리코와 레오의 몸 또한 성해 보이지는 않았다. 둘 모두 몸 이곳저곳에서 뚝뚝 피를 흘리고 있었고, 꽤나 지친 듯 숨을 몰아쉬었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지금이 바로 적기였다.
나는 아직 아무도 우릴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그때, 전방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다.
“다들 멈춰! 지금부터는 여기 후계자께서······.”
바로 그때였다.
[경고!]
[개연성을 위반하려는 의도가 포착되었습니다]
[선행 플롯에 의해 행위가 금지됩니다]
[누적 페널티로 2분간 침묵이 강제됩니다]
[작가호감도가 20하락했습니다]
[캐릭터의 격이 소폭 하락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무형의 압력에 의해 몸이 짓눌리기 시작했다.
‘끙······ 화가 좀 나셨나본데.’
하지만 각오했던 바였다. 외려 더욱 심한 페널티까지 예상했었으니까.
그나마도 이 정도에 그친 건, 내가 간신히 ‘선’을 지켰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 작전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지점이 바로 이 선행플롯의 제지였다. 이건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피할 수가 없는 것이었으니.
하여 최대한 페널티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모색했고, 그 결과가 바로 ‘선을 넘지는 말자’였다.
선이라 함은 다름이 아니다. 결말의 보존.
쉽게 말해, 전개과정이 바뀌더라도 결말이 달라지지 않는 것.
본래 전개는 간부들과의 싸움이 종료된 뒤, 며칠 후 부상이 모두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레오와 얀이 격돌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의도한 전개는 간부들이 정리되는 씬을 싹 빼버리고, 대신 얀을 곧바로 그 자리에 채워 넣는 것이었다.
이 같은 전개로 원작과 같은 결말을 내려면, 얀을 집어넣는 타이밍을 잘 재야했다. 레오가 어느 정도 힘이 빠지지 않은 상태라면, 혹은 완전히 빠진 상태라면,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테니까.
어쨌거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침묵한 채, 전장을 돌아봤다.
모두가 내 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레오 일행도, 또 간부들도.
‘이제 이러면 막을 수가 없지.’
게다가 옆에 있던 얀 또한 천천히 그 발을 앞으로 내딛고 있었다.
“야, 얀님!”
“후계자께서 어찌 이곳을!”
“이제부터는 제가 맡을게요.”
얀은 더듬지 않았다. 전투를 굳게 마음먹었다는 소리였다.
그나마 이 얀이란 캐릭터가 호평을 받는 유일한 때가 바로 전투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마치 스위치가 켜지듯, 유약한 성정 대신 냉철한 이성이 자리 잡았으니.
그즈음,
“너······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봐.”
스켈레톤 하우스에서 헤어졌던 예의 그 간부 녀석이 내게로 다가왔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게, 몹시도 화가 난 듯한 인상이었다.
그를 보자 자연스레 긴장이 되었다. 혹시라도 저 녀석이 다짜고짜 나를 공격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2분 참 기네······.’
침묵.
처음엔 별 거 아닌 페널티라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이는 그 무엇보다 내 목숨을 위태로이 만드는 제약이었다.
다행히 녀석은 나를 공격할 생각까진 없는 듯했다.
“이봐, 말해보라고! 얀 님은 대체 어디서 데려온 거지?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최대한 표정으로 말을 해보려 했으나 쉽진 않았다.
하여, 대신 초를 셌다.
30, 29, 28······.
“이봐, 계속 그러고 입을 다물 생각이라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18, 17, 16······.
녀석이 허리춤에 있던 칼을 빼들었다.
스릉-.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네 주걱턱을 조금 깎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 너무 각이 졌더라고.”
10, 9, 8······.
“마지막이다, 대답해. 안 그러면 네 그 우람한 턱이 두 쪽이 날 테니까.”
4, 3, 2······.
“시간 초과다.”
그러고 막 녀석의 칼이 내게로 날아들 무렵,
탁-.
“워워, 대화로 하자고.”
가까스로 칼을 막아낼 수 있었다.
“벙어리가 된 건 아니었나 보군.”
“잠시 딴 생각 좀 하느라고.”
“됐고, 어서 설명해 보시지.”
“설명이라······ 그래, 그러자고. 그럼 어디 조용한 데 가서 둘이 얘기나 할까?”
“둘이서 조용한 곳?”
나는 그와 동시에 하나의 힘을 발동시켰다.
‘발동. 마피아의 밀실.’
이어,
“지금······ 뭐지? 방금 뭔가가······.”
녀석과 나만의 오붓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녀석을 보며 나는 씩 웃었다.
굳이 먼저 다가와준 덕에 찾아갈 수고를 덜었다. 처음부터 내 목적은 바로 싸움에서 제외된 이 간부 녀석들이었으니까.
당연하게도, 얀을 데려와 갑작스레 싸움을 붙이는 것만으로 나의 존재감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잠깐의 궁금증만 자극할 수 있을 뿐, 딱히 독자들의 호감은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것.
눈에 띄려면 그에 걸맞은 뭔가를 해야만 했다.
“혹시 이거 뭔지 알아?”
곧이어, 나는 ‘세븐 링’에게서 빼앗듯 받아온 일곱 반지 중 하나를 꺼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