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수수께끼 주걱턱의 놀이공원(2)
***
나는 더없이 긴장한 채, 사격장을 나서는 레오 일행을 먼발치서 지켜봤다.
여기까진 계획대로였다. 작전은 성공이었다.
녀석들에게선 별다른 이의제기가 나오지 않았다. 아마 승패에 대한 것보다도, 내가 키리코의 고유능력을 썼다는 사실에 주의가 끌렸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관통’과 ‘폭발’을 섞는 식의 쇼맨쉽을 부린 것도 이를 위함이었다. 일부러 능력을 흉내 내는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대결 결과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려고. 실제로 과녁을 맞히는 것 자체는 어떤 마력탄을 쓰던 관계가 없었다.
아주 정확히는, 맞히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고.
이제 남은 건 작가의 반응뿐이었다.
과연 그가 어떻게 나올까.
일단 분명하게 전제해야 할 건, 어쨌거나 그는 현재 내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고, 또한 이번 챕터에서 나를 삭제시켜버릴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원작의 전개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
이런 그의 마음을 돌리려면 ‘주요 변수’ 두 가지를 내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야 했다.
주요 변수라 함은 다름이 아니다.
1. 등장인물인 레오 일행
2. 독자
일단 주인공 일행이 나에 대해 궁금해 하면 궁금해 할수록, ‘개연성’상 나의 존재는 더욱 긴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좋든 싫든 작가로 하여금, 나라는 캐릭터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게 할 것이다.
다행히 작전이 먹혀들어간 것인지, 나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는 데엔 성공한 듯했다. 여태 키리코의 눈길이 내가 있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걸 보면.
다음으로 독자.
이는 보다 간단하다. 나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좋으면, 작가로서도 생각을 고쳐먹게 되지 않을까. 나를 좀 더 활용해 봐야겠다는 쪽으로.
짐작컨대, 이번 대결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적당한 개그에, 파격적인 장면을 교차로 선보였으니.
실제로 내가 이 같은 판을 짜고 연출하기까지 들인 공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코코아의 능력을 흉내 내 놀이공원의 반을 직접 옮기는 것에서부터, 자잘한 내부 세팅에, 일행들을 하나하나 다 교육시키기까지.
심지어 레오 일행의 경계심과 위화감을 낮추기 위해, 캐릭터 상점에서 ‘병대’까지 고용해 구경꾼으로 동원시킬 정도였다.
물론 ‘병대’의 고용은 약간 오버한 측면이 없잖아 있긴 했다.
고작해야 하루 빌리는데 무려 2000포인트나 지불했으니까. 대단한 명령수행 능력도 없는, 기본 능력치의 캐릭터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뭐, 100명에 달하긴 했지만.’
문제는 이렇게나 노력을 했고, 또 독자들의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을 거라 예상이 되었음에도, 결코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야기 전개의 최종결정권자가 작가인 이상, 개연성이 어떻고 독자들의 인기가 어떻든 간에 캐릭터 삭제의 위험은 떨쳐버릴 수가 없으니.
하여, 사격장을 떠난 뒤에도 이렇듯 쥐 죽은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키리코와의 대결이 끝난 지 10분여.
작가에게서 아무런 메시지도 오지 않는다면 성공이다. 최소 ‘일단 지켜는 보겠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만에 하나 조금의 제제라도 들어온다면, 당장이라도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앞으로 진행될 대결들 또한 총싸움과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얍삽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휴······.”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큰 짐을 덜었다.
실제로 이런 식의 조작과 속임수를 가벼이 섞어 쓰는 방식이 아니라면, 이 녀석들을 이기고 살아남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녀석들의 능력이 대단하고 특출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이와 같은 전략을 기획할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 그건 바로, 순수하게 능력으로만 겨루는 방식 자체가 승패와 상관없이 내게 손해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애당초 나는 주인공 일행을 실력만으로 눌러선 안됐다. 독자들은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편에 선 채 이야기를 지켜보기에, 그들이 실력적으로 깨지는 모습을 결코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웃고 넘길 수 있는 장난 식의 대결이 아니라면 어차피 이겨봤자 의미가 없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될 경우, 독자들의 원성을 근거 삼아 끝끝내 작가의 칼이 나의 목을 내려치고 말 테니.
‘악랄하기는.’
암만 생각해도 악의가 느껴지는 조건이었다. 도통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힘들 정도였으니.
하지만 위기가 클수록 기회 또한 큰 법이다.
현재의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만 있다면,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반전의 계기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아니, 꼭 그렇게 만들어야지.’
일단 내가 앞으로 꾸며내야 할 대결 양상은 다음과 같았다.
1. 내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게임을 시작한다.
2. 약을 올린다.
3. 분노한 상대에게 역전 직전까지 몰린다.
4. 마지막 순간, 또 한 번의 얍삽한 짓으로 간신히 승리를 쟁취한다.
5. 식은땀을 흘리며 위험했다는 식의 연기를 덧붙인다.
역전 찬스를 내어주는 건 굉장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지만, 이 또한 어쩔 수가 없었다. 주인공 일행이 내게 맥없이 당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간단하다. 녀석들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독자들은 기대감을 충족 받지 못할 것이고, 그로 인해 쌓인 원성이 고스란히 내게 다시 위협이 되어 돌아올 테니까.
어쨌거나 핵심은 ‘유쾌함’과 ‘놀라움’을 동시에 일으켜, 저들에게 ‘기분 나쁘지 않은 패배’를 선사해야 한다는 것.
“후······.”
물론 준비는 된 상태였다.
남은 건 이를 문제없이 이행하는 것뿐.
그즈음,
“주걱턱! 말은 해줘야 하지 않습니까!”
“응?”
본인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하카가 슬쩍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 따위 걸 말도 없이 날리면 어떡합니까?”
“그 따위 거?”
“당신이 마지막에 쏘아낸 거 말입니다.”
“쏘아낸······ 아아. 탄환?”
“폭죽인 줄 알고 우두커니 보다 죽을 뻔 했다고요!”
하긴, 단순히 ‘모양’만 흉내 낸 것은 아니었으니.
‘폭발’과 ‘관통’을 융합시킨 그 탄은 현재 키리코가 쓸 수 있는 탄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수풀에 숨은 채로 그림자를 움직이고 있던 이 녀석으로선 갑작스레 날아든 그것에 식겁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래도 네가 그 정도에 죽을 건 아니잖아?”
“어쨌거나 위험했다는 소리입니다.”
나는 그러고 투덜거리는 하카의 눈을 조용히 바라봤다.
이 녀석은 벌써부터 캐릭터성에 변화가 일고 있었다. 기묘함과 비밀스러움이 줄어든 대신, 말수가 늘고 호들갑이 커졌다고나 할까.
저 실눈이 미묘하게 커졌다는 것부터가 그 증거였다. 실눈이야말로 저 녀석의 ‘비밀스러움’과 ‘음흉함’을 상징하는 소재였으니. 현재는 딱히 눈이 작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였다.
본래 저와 같은 변화는 레오 일행과 몇 차례 더 만난 이후에나 나오는 것이었다. 캐릭터를 유지할 동력이 ‘비밀’보다는 ‘개그’쪽으로 옮겨가면서 나오는 변화.
짐작컨대, 예정되어 있지 않던 도깨비와의 만남이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듯싶었다.
이 하카란 캐릭터의 초기 목표 자체가 도깨비의 존재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고 가정한다면, 사실상 이 녀석의 존재이유는 이제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이 같은 사실이 앞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불명확했다.
처음 내가 이 녀석을 거두려고 했던 건, ‘회수되지 못한 떡밥’을 내가 대신 스토리에다 엮어주는 게 작가로부터 사랑받는 길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었지만, 문제는 이 녀석이 그 ‘떡밥’조차 되지 못한 채 사라질 위기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녀석은 이제껏 단 한 번 레오 일행에게 얼굴을 들이민 게 출연의 전부인데다, 당시에도 딱히 대단한 존재감을 풍긴 게 아니었으니까.
‘외려······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으려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 녀석이 캐릭터 정산을 거친 후에도 별 탈 없이 존재하는 건 나와 엮여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의 ‘격’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는 것.
현재와 같은 상황이 얼마나 갈지는 의문이었다.
작가의 말마따나, 캐릭터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못할 경우 결국 빛을 보지 못하고 스러지고 말테니.
물론 이 녀석에게 부여된 초기 설정이 어디 간 것은 아니기에, 여전히 활용의 소지는 충분했다. 아직 강하기도 하고, 또 포텐이 잠재된 캐릭터이긴 하니까.
하여, 나는 이 녀석을 그저 두고만 볼 생각은 없었다. 스스로 두 발 딛고 설 수 있도록, 적어도 버팀목이 될 단단한 지반 정돈 깔아줄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선 이 녀석에게 적용된 가장 ‘유의미한 설정’이 힘을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하는데, 그 방법이라야 한 가지 뿐이었다.
바로 도깨비들의 출연을 대거 앞당기는 것.
‘음······ 아찔하긴 하네.’
순간 그로 인해 분노할 작가의 모습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는 대략 20권 분량의 내용을 앞당기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솔직히 삭제당해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
“흐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냈다.
뭐, 아직은 그저 구상일 뿐이니까.
그건 그거고, 당장은 현 상황에 집중해야 했다.
“그나저나 다른 녀석들은?”
“치누아비는 마지막 점검 중에 있고, 꼬맹이 여자애는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은?”
“40분 정도······ 일까요?”
슬슬 나 또한 다음 대결을 준비하러 갈 시간이었다.
“다음 대결에서의 역할 또한 숙지하고 있겠지?”
“그럼요.”
“좋아. 절대 들키면 안 돼. 어찌 보면 이번에도 네 역할이 가장 중요할 수 있으니까. 그 더벅머리 꼬맹이······ 절대 놓치지 마.”
“훗, 걱정 마시죠.”
이어 하카의 대답을 뒤로한 채, 나는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
40분 뒤.
-자, 조금 전에 치러졌던 총싸움은 시시하셨죠? 그래서 여러분을 위해 새로 준비한 빅 이벤트가 있답니다! 모두가 기다리던 바로 그 경기! 이름하야 ‘달려라, 놀이공원 한 바퀴!’
“와아!
“와아아!
“기다렸다고!”
사실 별 거 아닌 대결이었다.
말 그대로 정문에서부터 출발하여, 정해진 구간을 달려 들어오는 것에 불과했으니까.
룰 또한 이보다 간단할 수가 없었다.
상대보다 먼저 들어오기.
-이번 도전자는 이전 경기에 출전했던 저 건방진 빨강머리 애송이보다도 더욱 건방진 녀석입니다! 소개합니다, 말썽쟁이 레오!
달리기 경주를 기획한 이유는 오직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레오를 상대할 방식이 이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능력 대 능력으로 맞붙어야 하는 상황, 그나마도 승부를 걸어보려면 능력 전체가 아닌 그 일부의 속성만을 겨루는 방식으로 가야 했다. 전력(電力)으로는 맞붙을 가닥이 서지 않으니, 속력으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코코아의 소개에 이어, 구경꾼들의 야유가 재개되었다.
“우우!”
“꺼져라!”
“넌 뭐냐, 애송아!”
물론 레오는 이에 아랑곳없이, 그저 재미있다는 듯 천진난만한 웃음을 만면에 띠고 있을 뿐이었다.
“어서 시작하자고!”
-그리고 저 더벅머리 애송이를 상대할 우리의 달리기 챔피언! 모두가 기다리던 그 이름! 소개합니다, 람보르기니 주걱턱!
나는 출발선상에 대기하고 있던 레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나를 본 레오가 씩 미소 지었다.
“너, 내가 이기면 네 정체에 대해 말해준다고 했다며?”
“그래, 맞아.”
“괜찮겠어? 나는 장난 아니게 빠른데.”
“알아.”
“아냐, 겪어보기 전엔 안다고 말 할 수 없지. 내가 얼마나 빠르냐면······.”
“안대도? 번개만큼 빠르겠지 뭐.”
“······그게 모른다는 뜻이라고!”
나는 당혹스러워 하는 레오의 표정을 보면서도 선뜻 웃지 못했다. 그만큼 긴장이 됐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게임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 내가 갈아 넣은 시간만 일주일이었다. 상대가 바로 저 ‘주인공’이었으니.
사실상, 이번 달리기야말로 나의 존속여부의 기점이 될 대결이었다.
“근데 나도 빠르다. 긴장하라고.”
“흥, 그래봤자지.”
“글쎄, 길고 짧은 건 대봐야겠지. 왜냐하면 나도······.”
순간, 내 전신에서 파란 스파크가 튀었다.
파지직-.
“번개만큼 빠르거든.”
“······뭐?”
그러고 멍해진 표정의 레오를 확인한 즉시, 나는 얼른 코코아에게 시작하란 신호를 보냈다.
이 녀석이 어벙해진 틈이 적기였다.
-그럼 준비하시고! 출발!
나는 재빨리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러곤 좌측으로 꺾어 전방의 시야에서 벗어난 후, 얼른 품속에서 투명화 물약을 꺼내 삼켰다.
“크윽. 맛대가리······”
투명화 물약이 내 [흉내쟁이 곡예사]와 충돌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확인한 뒤였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투명화에 들어갔다.
이윽고,
“어디 갔지?”
마치 부스터를 쓰듯, 번개를 뿜어내며 달려온 레오가 나를 스쳐지나갔다.
일단 여기까진 성공이었다.
나는 제자리에 멈춘 채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달리기 룰만 따지면, 굳이 상대에 신경을 쓸 건 없다. 그냥 자기 페이스대로 달리면 된다.
하지만 레오는 그러지 않았다. 당장에 녀석은 레이스보다도 내게 더 관심이 많은 듯 보였다
물론 이는 의도했던 바였다. 어차피 번개를 쓰는 저 녀석은 자신이 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을 테고, 나만 시야에 있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길 테니. 내 곁에서 달리며 궁금한 걸 물으려 들겠지.
곧이어,
“찾았다, 요 녀석! 대체 내 번개를 어떻게 쓰는 거야? 당장 말해!”
녀석이 다시금 앞으로 달려 나갔다.
물론 저 녀석이 발견한 것은 내가 아니다.
바로,
“어엇! 벌써 따라왔다고?”
그즈음 은근슬쩍 모습을 드러낸, 나로 둔갑한 치누아비였다.
두 사람이 달려간 곳은 기존에 명시해둔 달리기 루트와는 전혀 상관없는 길이었다.
레오가 아무런 의심 없이 치누아비를 따라 달린 까닭은 단순했다.
일단 나라고 생각되는 존재가 바로 앞에 있으니까.
또한,
“······장관이긴 하네.”
그 길이 잘못되었을 거라 상상할 수 없었을 테니까.
두 사람이 달려간 길 뒤쪽으로, 몹시도 거대한 성 하나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가 이 단순한 게임 하나를 위해, 그리고 저 주인공 녀석을 이겨 먹기 위해 준비한 것은 그리 단순한 게 아니었다.
바로 도깨비 천으로 숨겨둔, 또 하나의 놀이공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