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30
30화 수수께끼 주걱턱의 놀이공원(3)
***
도깨비 은막.
이는 도깨비 누에에게서 뽑아낸 명주실을 가닥가닥 엮어 만든 천을 이르는 것으로, 도깨비들이 늘 가지고 다니는 물품 중 하나였다.
이 천은 놀랍게도 그 아래 덮인 모든 것들을 투명화 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심지어 단순히 모습을 가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안의 소음까지 새어나가지 않게 할 정도였다.
말하자면, [마피아의 밀실]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나 할까.
게다가 크기도 어마어마해서, 우두머리 도깨비가 들고 다니는 거대한 실타래는 하나의 섬을 덮고도 남는다는 설정이 있을 정도였다.
‘저거 씌우느라 죽는 줄 알았는데······.’
은막이 걷히며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두 번째 놀이공원을 보자, 슬쩍 뿌듯함이 일었다. 독자들이 이 광경을 보며 놀랄 모습이 자연스레 상상이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놀이공원을 숨겨 놓는 것.
이 생각의 발로 자체는 무척이나 단순했다.
같은 길을 달렸을 때, 속력 자체만으론 레오를 이길 수 없다. 그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이다. 당장은 번개를 흉내 내는 것만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었으니.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럼 같은 길을 달리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다른 길 하나를 더 만들어 두고, 녀석이 착각하여 그리로 들어서게 만들면?
물론,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길을 만드는 대신 장애물을 추가한다거나, 아니면 그냥 미로 식으로 길을 구성한다거나 뭐······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
또 단순히 녀석을 속이기 위해 놀이공원 하나를 통째로 숨겨놓는다는 발상 자체도 약간 과한 느낌이 없잖아 있다곤 생각했다.
다만 그럼에도 굳이 이 같은 방식을 취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독자들로부터 놀라움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물론 현재 가장 중요한 건 당면한 작가의 조건을 완수하는 것이다. 레오 일행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내가 ‘등장인물’이라는 점 또한 한시도 잊지 않았다. 나를 보는 독자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눈을 사로잡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설사 맡은 역할이 주조연이라 할지라도, 존재감을 뿜어내지 못하는 캐릭터는 순식간에 잊히고 만다. 반대로 엑스트라라 할지라도,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면 비상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보이느냐지.
하여, 이에 대한 끝없는 고려 끝에 ‘가장 시각적으로 놀라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던 것이다. 효율만 따져선 감동을 이끌어낼 수 없는 법이니까.
‘슬슬 가 볼까나.’
나는 잠시간의 감상을 끝낸 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이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깨닫고, 돌아오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치누아비는 내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 고작일 뿐 고유능력을 활용하진 못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리기를 이기는 것 자체에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 또한 번개니까. 먼저 들어가려면 언제든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건, 앞서 세웠던 전제조건들이다.
1. 내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게임을 시작하고.
2. 약까지 올리다가,
3. 분노한 상대에게 역전 당하기 직전까지 몰리는 것.
4. 그러나 마지막 순간, 또 한 번의 얍삽한 짓으로 간신히 승리를 쟁취하고,
5. 마지막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위험했다는 식의 연기를 덧붙이는 것.
즉, 당장 결승점을 통과할 수 있다고 해서 통과하는 게 아니라, 그 전에 먼저 레오에게 추월당하는 장면을 연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치누아비가 죽어라 약을 올리고 있을 것이다. 먼저 가보라는 둥, 제대로 아는 길이 맞냐는 둥. 그리고 독자들은 레오가 이 속임수를 언제 알아챌까를 흥미진진한 눈으로 살피고 있을 것이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미리 지정해둔 추월지점으로 이동해 녀석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레오가 막 보일락 말락 할 즈음부터 당황한 연기에 들어가는 것.
‘연기라······.’
문득 웃음이 나왔다.
내가 획득한 고유능력의 이름대로, 왠지 정말로 광대가 된 듯한 느낌이 들어서.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엑스트라로 태어난 녀석이 분량을 확보하고 비중을 늘리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까. 살아남으려면 뭐든 하는 수밖에.
나는 굳은 다짐과 함께 걸음을 재촉했다.
*
“제기랄! 이러다 늦겠어!”
레오는 부단히 발을 놀렸다.
이미 힘은 극성으로 끌어올린 뒤였다.
번개의 힘이 실린 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스파크가 강렬히 튀어 올랐다.
파지직-.
“이 자식······ 속임수를 쓰다니!”
처음부터 약간의 위화감은 있었다.
죽어라 달려도 모자랄 판에, 난데없이 여유를 부리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먼저 가라는 둥, 허튼 수작을 부리기까지.
괜스레 신경전만 벌이지 않았더라도 금방 자리를 뜰 수 있었을 것이다. 하필 녀석의 도발에 넘어가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다.
‘그나저나 그 녀석은 대체 뭐였을까.’
그 가짜 주걱턱이 번개를 쓰지 못한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일단 녀석의 몸 어디에서도 잔류가 흐르지 않았고, 혹시나 하고 물은 번개의 작동원리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으니.
헌데 신기하게도, 녀석은 대신 다른 걸 썼다.
땅과 불, 그리고 나무와 물.
녀석이 만든 장애물 앞에서 멈칫 거렸던 건, 그것들이 넘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냥 자체가 신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들었던 의문 하나.
‘혹시······ 그때 내 주먹을 막았던 것도 이 녀석인가?’
불현듯 지난 마피아들의 두목으로 주걱턱이 나섰을 때가 떠올랐다. 분명 그때 녀석에게서 받았던 느낌과 이 가짜 주걱턱이 풍기는 느낌이 꽤 흡사했던 것이다.
잠깐, 그럼 이 녀석이 진짜?
“······.”
뭐가 됐든, 대결에서 승리하기만 한다면 이 녀석들(?)의 정체를 파헤칠 수 있을 것이다.
레오는 다시 한 번 힘을 발산했다.
앞서의 주걱턱이 잠시나마 번개를 흉내 낸 듯 보이긴 했지만, 분명 제대로 된 건 아니었다. 출력도 약했고, 시간도 길지 않았으니까. 전력을 다한다면 분명 잡을 수 있다.
그러고 전력으로 얼마간을 달린 끝에,
“찾았다, 이 자식!”
저 앞에서 허둥지둥 달려가는 또 하나의 주걱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으힉! 벌써?”
“이 자식! 죽어라 달렸다고!”
하지만 녀석을 거의 다 따라잡은 즈음에도 레오는 방심하지 않았다. 아까의 주걱턱과는 달리, 어쨌거나 이 녀석은 번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나,
“하지만 힘은 좀 빠졌겠지?”
녀석이 씩 웃으며 번개를 일으켰다.
순간,
“······헛!”
알고 있었음에도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주걱턱이 내뿜은 건, 분명 자신의 것과 완전히 똑같은 번개였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알고 싶으면······ 나를 이겨보라고!”
그러곤 주걱턱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놀랍도록 빠른 속도였다.
레오 또한 이에 질세라 녀석을 따라 달렸다.
‘저 녀석······ 빨라. 하지만······.’
자신이 조금 더 빨랐다.
레오는 아낌없이 온 힘을 방출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이익!”
“잡았다!”
레오는 녀석의 옆을 지나칠 수 있었다.
“먼저 간다, 주걱턱!”
“이 자식이!”
“자기소개나 준비하라고! 이 굼벵이 녀석아!”
때마침 저 멀리 결승점이 보였다.
레오는 그 순간 밀려드는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이제 몇 발만 더 가면 된다. 조금만 더 가면 이제 끝이······.
바로 그때였다.
“······어?”
골인 지점을 눈앞에 두고, 갑작스레 발이 멈췄다.
분명 힘은 주고 있는데 어째선지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마치 땅바닥에 있는 무언가가 뒤꿈치를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순간 레오의 눈이 놀라 동그래졌다.
‘······그, 그림자?’
웬 땅에서 솟아나온 그림자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시커먼 두 손으로.
“뭐, 뭐야!? 뭔 짓을 한 거야!”
곧이어,
“헥헥······ 왜, 지쳤어? 헥헥······ 아쉽겠네. 승리가······헥, 코앞이었는데.”
마치 기어오듯 다가온 주걱턱이 슬그머니 자신의 옆을 지나쳐갔다.
녀석은 심지어 뛰지도 않았다. 뛸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우두커니 선 레오 앞에서, 주걱턱이 천천히 골인지점을 통과했다.
-네! 경기 끝났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네요! 승자는 람보르기니 주걱턱!
이어 주걱턱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녀석의 입가엔 비웃음이 한가득 걸려 있었다.
“후, 위험했네. 하지만 내 승리다 이 더벅머리 애송아. 이제 2대 0이지?”
“이이······.”
화가 났지만 별 수 없었다.
레오는 주먹을 꽉 쥔 채 소리쳤다.
“빌어먹을! 또 졌어!”
*
“비, 비겁한 경기였어요! 마, 말이라도 꺼내 보는 게······.”
얀의 말에 키리코가 무심히도 답했다.
“뭐, 그 녀석이 무슨 짓을 할 거란 건 예상했었잖아.”
“맞아, 방심한 건 내 탓이야. 사실 거의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레오 또한 키리코의 말에 동의했다.
방심만 하지 않았더라면 땅바닥에 있던 그 ‘그림자’에게 발목을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은 누구야?”
“그, 글쎄요······ 경기 내용을 듣기는 했는데······ 사, 사실 저는 그다지 자신이······.”
“제 차례예요. 얀 군은 걱정할 것 없어요.”
시아나가 자신 있게 나섰다.
“도박이야?”
“뭐, 비슷해요. 포커를 하자더군요. 그대가 나한테 졌던 거.”
“치잇······ 뭐, 인정해. 그때 확실히 느꼈는데, 시아나는 아무리 해도 못 이기겠더라고.”
“분해할 거 없어요. 모두가 다 마찬가지니까. 물론, 저 주걱턱 씨도.”
“자, 잠깐······.”
얀은 어째서 시아나가 이토록 자신감 있게 나설 수 있는지가 의아했다. 그 같은 얼토당토 않는 규칙을 듣고서도 말이다.
“저, 저들은 무려 다섯이서 나온다구요!”
“응?”
“다섯?”
“카드게임을 하는데 1대1은 재미가 없다면서······ 머릿수만 채우겠다고 말했지만 모, 모두가 한통속일 게 분명하다구요! 우리는 한 명인데 저들은 다섯······.”
그러나,
“상관없어요. 어차피 이기는 건 나일 테니까. 설사 저들이 들고 온 게 1vs5포커라 할지라도 말이에요.”
얀의 걱정 어린 말에도 시아나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놀라운 건, 키리코나 레오의 표정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 하지만······.”
얀은 주춤거리며 재차 말을 꺼냈다.
“초, 총질에 자신 있던 키리코 씨도 총싸움에서 졌고······ 누, 누구보다 빠르다고 자신하던 레오도 달리기 경주에서 졌는데······ 겨, 경계는 해야······.”
“어허, 괜찮다니까! 얀, 나 못 믿어요? 나 골담 카지노 나온 여자예요, 것도 여왕 출신.”
“괜찮을 거야. 시아나는 강하니까. 아, 그래도 조심하긴 해야 돼. 전에 주걱턱이 나를 돕기 위해 속임수를 쓴 적이 있거든. 그래서 겨우 이길 수 있었지.”
“기억나요. 1vs5 포커였죠? 그땐 나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문제없어요. 그 따위 허접한 속임수는 멍텅구리 키리코 씨 같은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거지, 내겐 해당사항이 없으니까.”
“하, 이 여자가······ 나랑 먼저 붙어 볼래!?”
“원한다면요. 상대가 될진 모르겠지만. 아니면 키리코 씨랑 레오 씨 둘이서 함께 덤벼보는 건 어때요? 그럼 나름 몸 풀기 상대 정돈 될 것 같은데.”
일행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도 얀은 희한하게도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걸 길을 본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째 점점 수렁과도 같은 늪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좋지 않은데······’
*
“도전하겠어요.”
자신감 있게 나선 시아나의 모습을 보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실 다섯은 페이크였다.
시아나를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머릿수가 아니다. 능력이지.
1vs5포커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와 같은 게임을 했다간 이긴다한들 결과가 좋을 수가 없다. 비등비등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힘들뿐더러, 완전한 악역이 되는 셈이니.
다섯은 그저 중요한 걸 가리기 위한 위장이었을 뿐이다.
“히힛, 기대가 되네요. 단 한 번도 패배한 적 없는 갬블러라니. 우물 안 개구리들은 그곳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거든요.”
“잘 할 수 있겠어?”
“어르신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본디 도깨비들은 어떠한 승부에서도 최고의 승률을 자랑하는 종족이지요. 저는 그 중에서도 최상위의 승부사고요.”
“네가 나를 부르는 호칭부터가 패배의 전적을 의미하는 것이긴 하다만······ 그래, 뭐. 기대해 볼게.”
처음부터 내가 의도했던 것. 이는 단 한 명을 내 곁에 앉히는 것이었다, 이 녀석의 중요성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넷을 더 추가했던 것이다.
그즈음 나는 시아나의 눈을 응시했다.
좋은 눈이었다. 패배를 모르는 눈.
하지만 곧 꺾이게 될 것이다. 저 두 눈에 깃든 필승의 의지도.
이제 저 우물 안 개구리에게 패배의 쓴 맛을 알려줄 시간이었다.
······
흠흠.
2대 1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