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수수께끼 주걱턱의 놀이공원(5)
***
놀이공원 내 마련된 특설 복싱 경기장.
“후······.”
결전의 무대를 눈앞에 두니, 괜스레 심장이 널뛰는 느낌이었다.
나는 몸이나 좀 데울 겸, 제자리에서 쉐도우 복싱을 했다.
원, 투. 원, 투.
그때였다.
“어이, 챔피언. 설마 긴장했어?”
언제 다가왔는지, 코코아가 씩 웃으며 손바닥으로 내 등을 탁 쳤다.
“긴장은 무슨······.”
“이번 상대는 이름도 없는 애송이라고. 1라운드 만에 눕혀버려. 오케이?”
“음······.”
나는 그러고 링으로 다가가는 코코아를 말없이 쳐다봤다.
저 녀석······ 그간 사회자 놀이가 무척이나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이젠 뭐 완전히 컨셉에 잡아먹힌 듯 보일 정도였으니.
이어 코코아가 링 위로 올라가자마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와아!”
“기다렸다고!”
“얼른 시작하라고!”
-네!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마침내 저희 놀이공원의 하이라이트! 복싱 무제한급 챔피언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래는 도전자부터 소개해야 하나, 겁쟁이 꼬맹이가 오줌을 지린 바람에 늦는다고 하네요! 자, 그럼 불러볼까요!? 홍 코너! 유일무이한 챔피언! 누구도 이 사나이의 주먹을 맞고 버틴 이가 없었죠! 소개합니다, 타이슨 주걱턱!
나는 쏟아지는 함성에 손을 들어 화답하며 링 위로 올라섰다.
“후······.”
이 같은 장소에 선 적은 처음이었다. 복싱이라곤 TV에서 본 게 전부인데다, 그조차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니. 솔직히 이렇게까지 감흥이 일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막상 코너 한 곳에 기댄 채 가만 서 있으니, 이상하게 흥분이 됐다.
보고만 있어도 나를 옥죄어 오는 듯한 사각의 링과 그 아래에서 흥분한 채 소리치는 관객들, 눈이 부시도록 내리쬐는 천장의 조명까지. 뭐랄까, 이 모든 환경들이 손에 낀 글러브마냥 나를 단단히 쪼여오는 느낌이랄까?
팡팡-.
나는 글러브를 낀 양 손을 팡팡 부딪쳤다.
어쩌면 코코아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로 긴장했는지도.
바야흐로 최종전, 대결 상대는 얀.
사실상 가장 위험한 승부라 봐도 무방했다. 내게 남은 마지막 관문이라는 소리는, 작가의 입장에서도 나를 뒤탈 없이 없애버릴 마지막 기회라는 뜻이기도 했으니. 혹시 또 모를 일이었다. 작가가 얀에게 ‘주인공 버프’와 같은 예상치 못한 힘을 불어넣을지도.
게다가 위험한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이 링 위엔 아무런 장치도 되어 있지 않았다. 얀을 구속하거나 압박할 기구도 없고, 무기나 약을 숨겨두지도 않았으며, 태그할 팀원을 대기시켜 두지도 않았다(실제로 치누아비가 나로 둔갑한 채 링 아래 숨어 있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즉, 어떠한 비겁한 술수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만큼은 순수 실력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었으니까.
-네! 때마침 저기 겁쟁이 오줌싸개가 들어오네요! 그냥 그대로 도망이나 칠 것이지 어째서 제 발로 사자우리에 걸어들어 온 걸까요!?
얀의 얼굴은 코코아의 설명과는 정반대였다.
녀석의 눈은 깊이 침잠되어 있었다. 얼굴이 약간 붉어져 있긴 했으나, 그리 긴장을 했다거나 흥분을 했다곤 보기 힘들었다.
고요한 분위기. 말아 쥔 글러브에서 느껴지는 전의(戰意).
얀은 이미 전투태세에 들어간 듯 보였다.
-소개합니다! 청 코너! 저 건방진 애송이 패거리 중에서도 최약체! 이름부터 비리비리한 얀!
“우우!”
“꺼져라!”
“묵사발이 될 거다 애송아!”
나는 링 위로 올라온 얀을 천천히 노려봤다.
“이여, 겁쟁이. 오줌은 말리고 온 거야?”
“당신, 검은 그림자 단원을 사칭했었죠. 물론 그로 인해 모험을 떠날 수 있게 된 건 사실이지만······ 어째서 그랬는지에 대한 이유는 들어야겠어요. 당신의 정체와 함께.”
도발은 먹히지 않은 듯했다.
역시나 전투를 앞둔 이 녀석은 차분한 괴물이다.
“후······.”
뭐, 예상했던 바이니.
나는 간단히 두 주먹을 털어준 뒤, 천천히 자세를 갖췄다.
곧이어,
띵-.
시합개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
내가 굳이 마지막 얀과의 대결을 실력으로 승부하려 한 데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실력으로 승부해 이기는 것. 그것이 내겐 꼭 필요한 ‘결말’이기 때문에.
물론 꼼수를 써서 제압하는 게 훨씬 더 쉬운 방향이긴 했다. 이제까지의 진행과정으로 볼 때, 작가가 딱히 이를 제지할 것 같진 않았으니. 또 독자들 역시 익숙하게 받아들일 만한 전개였고.
다만, 그 ‘익숙함’이 문제였다.
그냥 이대로 끝난다면, 나의 임팩트는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독자들은 슬슬 내가 ‘어떻게 얀을 제압할지’보다도, ‘과연 승부가 끝난 뒤에 뭘 할까’를 더 궁금해 하고 있을 것이다. 경기야 뭐 대충 꼼수로 이기겠지 하면서.
그런데 막상 경기가 다 끝난 뒤에도 딱히 밝혀지는 게 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냥 의문만 남기고 사라진다?
별 이유도 없이 괜히 일행의 앞길을 막아선 희한한 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여태 쌓아둔 이미지를 죄 깎아먹으면서.
물론 내가 이 녀석들과 대결을 벌인 건 작가가 내걸은 조건 때문이지만, 독자들이야 그걸 알 도리가 없으니.
즉, 뭐가 됐든 반전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익숙한 흐름을 깨버리고, 새로운 뭔가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 나의 ‘동기’보다 나라는 ‘캐릭터 자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
바로 실력행사.
대결 종목으로 실제 격투 경기를 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소년만화에서 정통으로 실력을 겨룬다 함은 뭐니뭐니해도 ‘배틀’이니까.
그리고 두 번째 이유. 애당초 배틀을 할 만한 대상이라야 이 녀석이 유일했기에.
아직 전투능력이 없는 시아나는 애초에 제외대상이고, 키리코와 레오는 지금 감히 강함을 겨룰 수 있을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대적자 포지션인 둘은, 아직 작중에 공개되지 않은 또 다른 힘을 감추고 있기까지 했다.
물론, 이 만화에서 캐릭터들의 무력이 명확한 수치로 딱딱 나눠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의 편의에 맞춰 파워밸런스가 심각하게 변동될 때가 많지.
하지만 그래서 더욱 저들과의 승부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작가의 편의라는 것이 대개, 주인공의 승리를 향해 작동하곤 했기 때문이다.
키리코와 레오의 경기를 앞쪽에 배치시킨 것도 일부러 이를 고려한 것이었다.
어떤 경우에서건, 마지막 순서로 나선 주인공을 이길 수 있는 적은 없다. 어느 독자도 그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헌데 만약 레오와 마지막 차례에서 서로 강함을 겨루게 되었다? 심지어 3대 0으로 주인공 쪽이 핀치에 몰린 상황이고?
기껏 여기까지 끌고 왔는데, 레오의 주먹 한 방에 몽땅 정리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반면, 얀은 그와 경우가 꽤 달랐다.
일단 이 녀석은 독자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기엔 일행에 합류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비중도 낮고, 주인공을 제치고 활약하는 그림이 아직은 그리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라는 것. 당연지사, 작가로서도 이 녀석에게 ‘주인공 버프’를 걸어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 녀석은 이전 챕터에서 레오와 엇비슷한 실력을 보여주긴 했으나, 실제론 길잡이 포지션이다. 달리 말해, 그나마 ‘결투’에서의 패배가 용인될 수 있는 캐릭터라는 것.
고로, 이 녀석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상대로 세울 수 있었던 게.
시합이 시작되었음에도, 얀은 그저 눈만 빛낸 채 서 있을 뿐이었다.
차분한 눈길이 왠지 나의 실력을 살피고 있는 듯했다.
‘보면 뭐, 아냐?’
나는 얀을 보며 씩 웃었다. 녀석이 차분함을 보인다면 나는 적어도 여유로움 정도는 드러내야 할 것 같았으니.
“그러고 노려보기만 하면 내 정체가 밝혀지기라도 해?”
“······딱히 수련의 흔적은 없으나 신체가 비상식적일 정도로 강하고 단단하시군요.”
“눈이 좋은 건 알겠는데, 부끄러우니까 이제 보는 건 좀 그만두라고. 그냥 나를 이기기만 하면 돼. 그럼 뭐든 말해줄 테니까. 하지만 너 정도로 그게 가능할까?”
“······글쎄요.”
그 순간,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쉭-.
갑작스레 녀석의 신형이 사라졌다.
‘응······?’
이어,
퍽-.
“아는 것 아닐까요?”
“······아오.”
어디선가 날아든 발에 엉덩이를 얻어맞고 말았다.
아프기보다는 얼얼했고, 화가 나기보다는 당혹스러웠다.
이 녀석,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빨랐다. 그것도 몹시.
“······어이, 이거 복싱이거든? 주먹만 쓰는 경기라고.”
“아차, 실수.”
뻔뻔하게도, 녀석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인사만 드린 거예요. 타격위치를 바꾸고 힘을 실었다면 무사하지 못했을 겁니다.”
“······.”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케이, 얕봤다. 제대로 간다.”
실제로 이건 빈말이 아니었다.
나는 곧장 녀석의 고유능력을 흉내 냈다.
[유령살수와 함께 춤을]
곧이어 나와 똑같이 생긴 투명한 유령 하나가 허공에 불쑥 튀어나왔다.
“오우, 여긴?”
“안녕. 내가 너 주인. 공격대상은 저 앞에 음침한 꼬맹이다. 알았지?”
“에이, 애를 패라고?”
“싫어?”
“좋지!”
그러곤 녀석이 얀을 향해 돌진했다.
얀은 유령의 위협적인 어퍼가 턱을 스쳐 지나갈 때까지도, 녀석을 관찰하기만 했다.
“······정말 궁금해지네요. 어느새 제 능력까지.”
“뭐, 짐작하고 있었을 것 아냐?”
얀의 얼굴에 약간 그늘이 졌다.
“그래도 제가 이길 겁니다.”
이어 얀 또한 고유능력을 발휘했다.
초장부터 두 마리였다.
“전력으로 가겠습니다. 혹시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이윽고, 얀과 똑같이 생긴 두 유령이 나의 유령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실제 사람은 ‘특수한 방법’이 아니라면 이 유령살수들을 건드리지 못하지만, 유령끼린 서로 치고 박고가 가능한 모양이었다.
“야, 뭐해! 반격해!”
“이, 이 꼬맹이들······ 강하다고! 나도 한 녀석 더 붙여줘!”
참나,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보아하니······ 역시나 한 마리가 한계이셨던 모양이죠? 다른 이들의 능력도 100% 끌어내진 못하는 듯싶더니.”
“누가 그래?”
나는 곧바로 유령 한 마리를 더 소환했다.
“저기 가서 네 친구 도와줘.”
“뭐야, 저 멍청하게 생긴 주걱턱과 한 팀이란 말이야?”
“그래, 너랑 똑같이 생긴 그 녀석 맞아. 얼른!”
이 광경을 본 얀이 낮게 침음을 흘렸다.
“······이 정도는 가능하셨나보군요.”
“놀랬어?”
“조금은요······ 하지만 이들을 다루는 숙련도는 아직 제게 미치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만?”
그건 사실이었다.
2대 2이긴 했지만, 딱 봐도 주걱턱 녀석들이 다소 밀리는 추세였던 것이다.
물론 유령의 강력함을 결정짓는 것은 기본적으로 주인의 능력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서로의 합이었다. 이 녀석들은 ‘자아’가 있을 뿐 아니라, ‘기억’ 또한 유지된다는 설정이라, 거듭된 실전을 통해 ‘성장’이 가능한 개체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제는 유령들뿐만이 아니었다.
“유령들 쪽에만 한 눈 팔 시간은 없으실 텐데요.”
얀은 와중에도 끊임없이 나를 노리고 공격해 들어왔다.
쉭-.
이크.
나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 턱을 노리고 들어온 얀의 스트레이트를 피했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이어지는 잽, 잽 잽, 훅.
퍼-억.
“······끙.”
“슬슬 타격이 쌓여가는 모양이네요. 발도 느려지신 것 같고.”
이번 건 좀 컸다. 머리가 완전히 뒤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났으니.
‘아, 이거 괜히 복싱으로 했나?’
턱이 다른 사람의 세 배만 했기에 피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스치듯 맞아도 골이 울릴 만한 타격에, 심지어 저 녀석의 발은 눈으로 따라가기조차 벅찰 정도로 빨랐으니.
그러나 이내,
‘아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글러브와 복싱화, 그리고 복싱이라는 룰 자체로 녀석의 공격루트를 제한해 뒀으니 이 정도에 그친 것이다.
얀에겐 암살단에서 익혔다는 설정의 몇 가지 히든 특성들이 존재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귀신걸음’이라는 것이다. 이는 무협지에서나 볼 법한 경신법의 일종으로, 소음하나 없이 은밀하고도 쾌속한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작중에서 얀이 그 능력을 쓸 땐 항시 신발을 벗었음으로, 현재는 이를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럼에도 이 정도라는 거지?’
강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주인공의 동료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그나마 상대가 가능하다 생각했던 녀석 또한 강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여,
“안 되겠다.”
“······포기하시는 건가요?”
“어, 맞아.”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순간 얀의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아마 이는 독자들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작가도.
주의가 좀 끌렸으려나?
“놀라긴. 놀아주는 거 포기하겠다고. 이제 끝내버려야지.”
“······?”
내가 굳이 얀과의 대결을 실력으로 승부하려 한 마지막 세 번째 이유.
“나와라 유령들아.”
“······응?”
곧이어,
“음, 여긴?”
“뭐야, 내가 네 번째야?”
“너 주인! 나 유령!”
내 곁으로 유령 세 마리가 차례로 생성되었다.
나는 얀을 천천히 돌아보며, 녀석들에게 지시했다.
“저기 꼬맹이랑 꼬맹이 유령 두 마리 다 뭉개버려. 다섯이면 충분하지?”
그즈음,
“······뭐, 뭐?”
경악한 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붙은 이유?
간단하다. 실제로 내가 승리할 것이라 완벽히 자신했기 때문에.
나는 ‘현재의 얀’을 흉내 낸 것이 아니었다.
내가 흉내 낸 것은 지금으로부터 몇 챕터 뒤의 얀.
지금보다 한 단계 성장한, ‘미래의 얀’이었다.
나는 얀을 향해 씩 웃어주었다.
“나도 긴가민가했는데······ 이게 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