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33
33화 중대 선언
***
1.
현재 작중에 등장하지 않은, 실제로 만난 적 없는 캐릭터의 능력도 흉내 낼 수 있을까?
이는 내가 처음 [흉내쟁이 곡예사]를 구입하려 할 때부터 가졌던 의문이었다.
언뜻 봐선 말이 되나 싶지만, 실제로 나는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챕터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존재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 여기 눈앞에, 버젓이 챕터 밖의 세계가 실존하지 않는가.
물론 배경설정만 존재하고 아직 캐릭터가 만들어지지 않은 경우에야 불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야 못할 것도 없었다.
다만, 문제가 되는 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흉내 조건.
1. 능력을 쓰는 이의 얼굴과 본명을 알고 있어야 한다.
2. 능력의 발현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3. 능력의 작동 메커니즘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4. 능력의 격에 맞는 신체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바로 두 번째 조항.
-능력의 발현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간단하다. 직접 그 대상과 능력을 봐야한다는 소리였다.
나의 은근한 바람을 간단히 깨부숴버리는 조항이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혹시나’ 했던 이유가 있다.
바로, 작중에서 이와 비슷한 유형의 조건을 ‘편법’을 활용하여 충족시킨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한 모험가가 잃어버린 문명을 탐사하던 도중, 봉인된 고대 아티팩트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티팩트의 겉면엔 낡은 봉인지(封印紙)가 붙어 있었는데, 여기엔 이 봉인을 해제하기 위한 조건들이 쭉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어느 특정 장소를 직접 탐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곳이 본인으로선 들어갈 길 없는 깊은 바다 속이라는 사실이었다.
모험가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하나의 방법을 찾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는 이 방법을 통해 실제로 그곳을 방문하지 않고도 아티팩트의 봉인을 해제하는데 성공한다.
이때 그가 쓴 방법이 바로, 실제 그곳을 탐방했던 이의 ‘기억을 이식’하는 것이었다.]
이 챕터의 내용이 퍼뜩 떠오른 이유야 명확했다.
어쩌면 이와 같은 구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짐작한 바는 다음과 같았다.
능력의 발현을 확인하라곤 했지만, 실제로 그 광경을 지켜보는 행위 자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능력을 ‘인식’하고, ‘인지’한 뒤, ‘기억’하는 것.
즉, 핵심은 머릿속에서 그 능력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냐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게 가능했다. 그것도 작중에 등장한 거의 모든 능력에 대하여.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 눈앞에서 본 적은 없지만, 만화의 형태로는 그 모든 능력의 발현 과정을 이미 수차례 접한 상태였으니까.
그리하여 시험해본 결과,
“······와우.”
놀랍게도 내 이론이 맞았다.
나는 내 신체가 따라주는 선에서, 또한 현재 생성되어 있는 캐릭터를 기준으로, 대부분의 고유능력을 흉내 낼 수 있었다.
2.
그럼 현존하는 캐릭터의 미래의 능력(진화된 능력)도 흉내 낼 수 있을까?
물론, 말이 되나 싶은 의문이긴 했다. 이는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능력의 원주인조차 쓰지 못하는 능력을 내가 먼저 흉내 내겠단 소리와 같았으니.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혹시나’ 했다.
왜냐?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와 상당히 유사한 사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채무불이행자 루덴코프.
아무렴 이 녀석의 이름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혼자의 힘으로도 세상을 멸할 수 있다는 그 ‘칠왕’ 중 하나의 이름이었으니.
녀석의 고유능력 [죽음으로 되갚는 자]는 여러 세부조건을 만족시킨다는 가정 하에, 이 세계에 ‘존재했고’, ‘존재하며’, ‘존재할’ 모든 이들에게서 본인의 수명을 담보로 힘을 빌려오는 것이다.
녀석이 힘을 빚질 수 있는 대상엔 제한이 없으며, ‘전대의 모험왕’을 비롯하여 미래의 본인에게까지도 힘을 빌려올 수 있다는 설정이다.
이 녀석의 능력이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잘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슬쩍 들었던 것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인물에게서 힘을 빌려올 수 있다?
만약 같은 구조라면, ‘미래의 능력 또한 흉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뭐, 나는 그 진화된 능력들 역시도 머릿속에서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으니까.
물론 여기엔 보이지 않는 뒷 설정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바로, 현 시점에서 능력의 진화가 이미 구체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캐릭터에 한한다는 것.
사실 이런 캐릭터들이야 몇 없다.
능력의 진화가 결정되어 있다는 건, 일단 ‘지속적인 성장이 보장된 캐릭터’들이라는 뜻이고, 현재 작중에서 그 같은 대우를 받는 이들이야 몇 되지 않았으니.
간단하다. 레오를 비롯한 주인공 일행.
하여, 혹시나 하고 한 번 시도해봤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돼, 됐다!”
된 거였다.
성공한 나로서도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정말로 될 줄은 몰랐으니까.
물론 주인공 일행 중 그것이 가능했던 건 얀뿐이었다. 그것도 고작해야 몇 챕터 뒤인, 모험가 자격시험에서 각성한 수준에 불과하긴 했지만.
*
어쨌거나 그와 같은 이유로,
“어, 어떻게······.”
나는 이렇게 녀석의 벙찐 얼굴을 씩 웃으며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조져버려.”
이후의 진행상황이야 별 게 없다.
나는 주걱턱 유령 둘로 얀의 유령 둘을 대충 묶어 둔 다음, 나머지 유령 셋과 합심하여 녀석을 공격했다.
얀은 용케 이리저리 잘 도망치는 듯 보였으나, 안타깝게도 좁은 사각의 링은 출구가 존재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렇게 쏟아지는 펀치의 홍수 속에서 힘이 빠진 얀은,
“아, 안 돼······.”
“돼.”
퍼엉-.
끝내 나의 굿바이 어퍼컷을 피하지 못했다.
그렇게 얀의 왜소한 체구가 링 밖으로 날아감과 동시에, 경기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댕댕댕-.
-네! 경기 끝났습니다! 역시나 시시한 경기였죠? 승자는 모두가 예상했던 바로 그 남자! 챔피언, 타이슨 주걱턱입니다! 통쾌한 KO승이에요! 어디서 덤비나요, 꼬맹이 주제에!
“와와와!”
“주걱턱! 주걱턱!”
“믿고 있었다고!”
끝났다.
마침내 작가가 내건 조건을 모두 완수했다.
나는 살아남았다.
“후······.”
나는 손을 들어 연신 환호하고 있던 구경꾼들에게 화답했다.
열광하는 그들 사이로, 쓰러진 얀을 부축하고 있는 레오 일행이 보였다.
녀석들은 다소 침울한 기색이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눈을 빛낸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 좋네.’
만약 녀석들이 모두가 다 끝난 것 마냥 한숨이나 푹푹 내쉬고 있었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것이다. 저렇게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라는, 내게서 뭔가를 요구하는 듯한 눈빛을 유지해주고 있어야 분위기가 산다.
모든 대결이 끝났으니 이대로 챕터가 종료되는 게 이상한 그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챕터를 종료시킬 마음이 없었다.
끝?
아니,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뭘 그렇게들 보고 있어. 분해?”
“너······ 이 자식······.”
“대체 뭐냐고 정체가!”
“그걸 알고 싶으면 이겼어야지. 져놓고 땡깡을 부리면······ 그건 좀 아니지 않나?”
내 말에 녀석들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면 눈들은 여전히 부릅뜬 채였다.
“그래도 나를 약간이나마 즐겁게는 해줬으니······ 아주 간단한 것만 좀 알려줘 볼까?”
그러자,
“뭐, 뭐?”
“그게 정말이야?”
레오와 키리코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그렇게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는 아마 독자들 또한 마찬가지겠지.
나는 잠시간 침묵한 채 녀석들을 바라봤다.
장내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어느새 조용해진 구경꾼들의 시선이 마치 작가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흐음.”
사실 처음 키리코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뒀을 때부터, 나는 줄곧 이와 같은 순간을 상상해 왔었다.
작가가 내걸은 조건을 완수하는 것?
마지막에 얀을 때려눕히며 모두에게 놀랄만한 모습을 선보이는 것?
별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한 번 작가가 나의 전략적 승리(?)를 눈감아준 이상, 그 이후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사실 어느 즈음부터는 이를 수행해내는 것 자체도 그리 중요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한 것에 불과할 뿐, 근원적인 위험을 제거한 게 아니었으니. 여기서 살아남는다한들, 언제고 비슷한 일이 반복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캐릭터를 만들고 없애는 건 작가의 역량이라지만, 그렇다고 작가가 모든 캐릭터를 자기 마음껏 삭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 삭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건, 내가 현재 나라는 캐릭터의 역할과 필요성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여,
“물론 별 건 아냐. 자격도 없는 녀석들에게 들려줄 게 그리 대단한 것일 리가 없잖아?”
나는 아직까지도 이 챕터의 마지막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건 간단했다.
나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 하나를 녀석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일러주는 것.
그리하여 나라는 캐릭터의 역할과 필요성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
하지만 물론, 이에 앞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긴 했다.
바로 의문들.
현재 내겐 첫 등장 때부터 쌓여온 무수한 의문들이 마치 짐처럼 걸쳐져 있다.
이니티알리스에서 처음 레오와 맞닥뜨리며 등장했던 것, 버진시티에서 챕터가 끝나갈 즈음 키리코가 내게 감사를 표했던 것, 골담시티에서 vip중 하나로 등장해 레오를 도왔던 것, 마피아의 흑막으로 등장했던 것······.
문제는 이 많은 의문들을 내가 풀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뭐, 설명이 가능한 영역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만화 속에 떨어진 현대인인데, 이렇게라도 주인공과 엮이지 않으면 나 자신이 삭제될 판이라 어쩔 수 없이 나댔다고는······ 말할 수 없었으니까.
하여, 대안을 구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현재의 나를 결코 이해되지 않는 의문투성이의 주걱턱으로만 남겨두지 말자. 나라는 캐릭터를 조금이라도 저들이 이해 가능한 영역으로 던져주자.
나에 대한 의문을 따라가는 게 독자들로서도 그리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있는, 그런 캐릭터가 되자.
말하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지금만큼 내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때도 없을 테니.
“코코아, 마이크.”
-오, 챔피언이 무언가 한 마딜 하려나 본데요? 두근두근하네요!
“얼른. 시간 없어.”
나는 코코아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은 뒤, 다시금 레오 일행을 응시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나는 이제까지의 모든 과정을 기획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내뱉을 이 한 마디가 나의 앞날을 결정지을 것이라 생각했다.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혹은 얼마 가지 못하고 결국 스러지고 말 것인지.
“······잘 들으라고.”
*
완결까지 살아남기 위해 나는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할까.
어떤 방향,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나는 이 모험왕 이야기 속에 들어온 이후로, 한시도 이에 대한 생각을 멈춰본 적이 없었다.
만약 레오의 동료가 된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선행플롯의 제지를 겪은 이후, 나는 이것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레오의 동료란 건 말 그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 캐릭터 중 하나라는 소리다. 당연지사 작가가 일찍부터 구상해둔 멤버 포맷이 있을 텐데, 거기에 갑작스레 내가 끼어든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웠다.
물론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녀석들의 자리를 노릴 순 있겠지만, 그걸 목표로 하기엔 남은 날들이 너무나도 길었다. 또 설사 그 자리에 들어간다 한들, 초반부터 등장한 녀석들에 비해 그리 대단한 비중을 기대하기도 어려웠고.
나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동료로 들어가는 건 어렵다.
그렇다면 빌런은?
이 또한 깜깜하긴 마찬가지였다.
일단 강하고, 매력적이며, 오래 보고 싶은 빌런이 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그 같은 캐릭터가 되기 위해서 갖춰야할 최소한의 요건이 바로 ‘칠왕’쯤 되는 무력이니.
또 내가 마지막 권을 읽지 않아 확신할 순 없지만, 설사 그만한 빌런이 되었다한들 생존이 가능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애당초 빌런이란 게 결국 주인공에게 퇴치당해 사라질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잘하게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는 어설픈 사이가 되는 것?
이 또한 마땅치는 않았다. 이 같은 역할이야말로 언제 작가로부터 내쳐져도 이상하지 않은 포지션이었으니.
그렇다면 남은 게 뭐가 있을까.
첫 시작부터 주인공과 함께 등장하는 게 어색하지 않을 수 있는 역할.
주인공은 아니나, 그에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할 수 있는 역할.
동료도, 적도 아니지만 주인공과 함께 매번 중요한 챕터를 함께할 수 있는 역할.
설사 작가의 미움을 사더라도, 결코 쉽게 삭제당하지 않을 수 있는 역할.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주인공과 함께 있는 게 어색하지 않을 수 있는 역할.
딱 하나 있었다.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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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하나 둘.
나는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본 후, 레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물론, 지금 할 말이 녀석 하나만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었다.
-언제까지 날 주걱턱으로 부를 셈이야 이 자식들아.
나는 그러곤 곧장 배경 [마녀의 저주를 받은 소년]에 걸려 있던 효과를 적용시켰다.
※보름에 한 번, 한 시간 동안 미소년의 외형으로 변할 수 있다.
순간,
뾰로롱-.
몸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턱이 먼저 줄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순식간이었다. 어느새 길어진 칠흑의 앞머리가 눈을 콕콕 찔러댈 무렵, 변신은 끝나 있었다.
‘됐나?’
변신한 이유?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뭐, 약간의 연출을 가미한 것뿐이었다. 좀 더 있어 보일까 하고. 내 현재의 외형은 누가 봐도 엑스트라였으니.
그리고 이 모습이 딱 레오와 나이도 엇비슷해 보이는 게, 확실히 더 라이벌처럼 보일 것 같잖아?
이어,
레오에게.
독자들에게.
그리고 작가에게.
나는 선언하듯 말했다.
-내 이름은 히로. 너를 제치고 이 시대의 모험왕이 될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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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이야기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 될 사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