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36
36화 모험가에게 필요한 인성이란?
***
뛰던 가슴이 차츰 진정되기 시작한 건, 메시지를 확인하고도 약간의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흐음.”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다. 이는 분명 아무 캐릭터나 취할 수 있는 혜택이 아니었으니. 특히나 나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 그리 좋다고 생각하지 않던 즈음인데.
물론 이런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내가 만약 내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계획들을 모두 성공시키고, 독자들에게 충분히 어필이 될 만큼의 활약을 수도 없이 펼친다면, 혹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당연하게도, 지금 이 타이밍은 아니었다. 너무 일렀다. 너무 이르다? 사실 이 표현조차 적합하다 생각되지 않았다.
말이 안 됐다.
“······.”
좋은 기회다. 굉장한 혜택도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수락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작가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으니.
‘······대체 무슨 꿍꿍이지.’
나는 신중하게 고민했다.
물론 괜한 의심일 순 있었다. 작가가 나를 꼴 보기 싫어한다는 건, 일단은 그저 내 느낌일 뿐이니까. 상점 가격 올린 것도 뭐······ 캐릭터 간 밸런스를 위해 잠시 조정에 들어갔던 것일지도 모르고.
하여, 행복회로를 돌릴 순 있었다.
설마 이때까지가 다 내 오해였나?
나를 좋게 보고 기회를 준 건가?
독자들이 나를 궁금해 했나?
혹, 내 캐릭터를 적절히 활용할 구상이 떠오른 건가?
그래서 정말 주연 급으로 나를 올리려 시동을 거는 건가?
하지만,
‘아냐, 그럴 리가.’
찜찜했다. 목구멍에 뭔가가 걸려 넘어가지 않는 느낌이랄까.
나는 내 감을 믿기로 했다. 그런 게 아니다. 이건 다른 속셈이 있는 거다.
마침 딱 하나 짐작되는 이유가 있긴 했다.
나를 경계하기 위해.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챕터가 진행 중이라 하더라도 레오의 시점 밖에 있을 땐 딱히 행동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전에 버진시티에서 건물로의 출입을 통제받았던 적이 있긴 하나, 그곳 또한 얼마 뒤 레오가 들이닥쳐 메인시점 내에 들어가게 될 장소였다.
이는 곧, 메인시점의 밖에서라면 ‘선행플롯’의 제재로부터 꽤나 자유롭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게 확실하다 단정 지을 순 없다. 하지만 경험적으로는 사실에 가까웠다.
고로, 현재 작가로선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쉬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특히나 지금 내가 하고 다니는 행동이 그리 얌전하진 않았으니, 작가로선 더욱 경계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에 그냥 시점을 넘겨버리자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씁······ 머리 아프네.”
독자들이 보고 있으면 작가도 섣불리 나를 건드리지 못하겠지만, 나 또한 막나가는 짓을 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소년만화에서 주인공의 라이벌은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정의로운 인물이다. 성격적으로 까칠한 면이 있을 순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착한 녀석이어야 한다. 그게 기본 법칙이다.
이는 현재 내가 어떠한 컨셉으로 포장되어 있다하더라도, 라이벌이란 지위를 구축하려면 결국엔 그 같은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거기서 벗어나는 순간, 라이벌과는 영영 멀어지게 될 테니.
어떡한다.
솔직히 고민이 됐다.
‘그냥 한 번 튕겨봐?’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엔 기회가 너무 아까웠다. 언제 다시 올 줄 알고.
어차피 뭘 하든 간에, 결국 중요한 건 독자다. 독자들이 좋아하면 캐릭터는 산다. 독자들이 찾으면 캐릭터는 등장하기 마련이다.
즉, 백날 뭔 수를 꾸미고 주인공이 이를 의식하게 만들고 하는 것보다, 그냥 독자들에게 다이렉트로 멋진 모습을 한 번 보여주는 게, 라이벌의 지위를 획득하는 데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 그냥 하자.’
작가에게 뭔 꿍꿍이가 있다 한들, 독자들이 보는 앞에서 개연성 없는 악의적 제재 따윌 하진 못할 것이다.
나는 곧바로 홀로그램 메시지를 터치했다.
‘이제 어떻게 되려나······ 혹시 새로운 챕터로 변경되는 건가?’
이어,
[작가의 제안을 수락하셨습니다]
[메인 시점이 ‘레오’에서 ‘히로’로 변동됩니다]
홀로그램의 메시지가 바뀌었다.
그러곤,
“음······.”
아무 일도 없었다.
“음?”
그게 다였다.
잠깐 기다려봤지만,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홀로그램도, 주변 환경도 그대로였다.
‘뭐야, 적용된 건가?’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약간의 설명이나 안내 정돈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아니면 뭐, 홀로그램 상에 무슨 변화라도 있던가.
그즈음,
“어르신?”
“주걱턱?”
“엉?”
“출발 안 하시는지요? 갑자기 왜 멍하니 서서······.”
“그새 걷는 법을 까먹어 버린 거야?”
치누아비와 코코아가 슬쩍 다가와 나를 살폈다.
하긴. 출발하자고 말하자마자 대뜸 멈춰선 채 멍을 때리고 있었으니.
“어······ 아냐. 가자고.”
그러곤 재차 출발하려는데, 독자들이 보고 있단 생각 때문인지 이상하게 막 걸음에 힘이 들어갔다. 마치 목각인형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랄까.
‘하, 이거 신경 쓰이네······ 아니, 잠깐만.’
가만 생각해보니, 지금 이 상황 자체가 그냥 마이너스였다.
이미 전투도 다 끝난 상태고, 할 일이라곤 걷는 것밖에 없는데, 이걸 보는 게 과연 재미가 있을까?
“······이건 좀 아닌데.”
큰일이었다. 독자들의 하품소리가 벌써부터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첫 단계는 넘어간 다음에 수락할 걸······.’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늦은 뒤였다.
방법. 방법을 찾아야 했다.
뭐가 있을까. 어떻게 해야 좀 더 박진감 넘치게 갈 수 있을까.
“······어르신?”
“거봐. 걷는 법 까먹은 게 맞다니까?”
“어디 문제라도?”
나는 내게 다가온 녀석들을 향해 가만 고개를 돌렸다.
치누아비, 코코아, 하카.
‘뭐 없나?’
다시 한 번 찬찬히 훑었다.
치누아비, 코코아, 하카.
그때였다.
“아!”
문득, ‘어떤 것’ 하나가 벼락처럼 머리를 스쳤다.
“치누아비.”
“예, 어르신.”
“너 혹시 토룡(土龍) 만들 수 있냐?”
이에,
“어, 어찌 그것까지······?”
치누아비가 간만에 무척이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뭘 또 새삼스럽게 놀라고 그래. 가능하지?”
“어······ 예, 어르신. 그리 예쁜 녀석은 아니더라도 만드는 것 정도라면······.”
“대충 하나 빚어 봐. 그것 좀 타고 가자.”
“어······ 지금 말씀이신지요? 근데 굳이? 걸어도 충분할 것 같은······.”
“어허. 빨리. 시간 없어.”
자연물을 생명체인 양 빚어 보는 이들을 속이는 건 도깨비들의 특기 중 하나였다. 특히나 토룡(土龍), 수룡(水龍), 화룡(火龍)과 같은 것들은 이야기 후반부에 들어선 거의 뭐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다니는 것들이었다.
물론 대뜸 도깨비의 기술을 선보인다는 게 약간 걸리긴 했지만······ 뭐, 괜찮겠지 싶었다. 시아나와의 포커대결 때와 마찬가지로, 일단은 그냥 알 수 없는 능력을 가진 나의 동료 정도로 이해되지 않을까.
어쨌거나 일단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 같은 기회가 또 언제 올지 모르는데, 1분 1초가 아까웠다. 신기하다 싶은 건 뭐든 보여줘야지.
이윽고,
“휘유,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오랜만이라. 잠시 물러나 계시지요.”
땅 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토룡(土龍). 흙으로 빚어진 용.
실상은 거대 지렁이에 가깝긴 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쿠르르-.
땅이 울린다 싶더니 잠시 후, 바닥을 뚫고 나온 거대한 지렁이가 한 마리가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자, 그럼 올라타시지요.”
“와! 지렁이! 커!”
“역시 치누아비님······ 가히 스승님과 비견될 정도의 실력이십니다.”
“과찬의 말씀을.”
“됐고, 다 탔으면 얼른 출발하자. 얼마 안 남았어.”
이어,
쿠르르-.
토룡이 굉음을 내며 수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
20분 뒤, 지하수로 중심부.
“와! 사람! 물!”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코코아가 탄성을 내질렀다.
뭐, 충분히 소리를 내지를 만한 광경이었다.
수십 개의 거대한 수로가 한데 모이는 곳.
그 어마어마한 수량(水量)을 감당하기 위해 축조된 댐.
가히 ‘바다를 담는 그릇’이라 불리었다는 옛 어드벤티움의 찬란한 증거.
저 놀라우리만치 거대한 ‘수조’에 물이 가득 담겨 있는 광경은 정말이지 여기가 지하인지, 바닷가인지를 헷갈리게 만들 정도였으니.
다만, 이때 내 입에서 나온 것은 코코아의 탄성과는 사뭇 그 종류가 다른 것이었다.
“······뭐지.”
당혹스러웠다. 이는 내가 알던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일단 수조. 저기 물이 차 있으면 안 됐다.
수조에 물이 차는 것은 기초자질 테스트 중 두 번째인 ‘지식’ 시험이 끝난 다음이어야 했다. 또 저렇게 많은 양도 아니고.
다음으로, 수조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저 수많은 응시자들의 존재.
저들은 지금 여기서 보이면 안 됐다. 일부야 보일 수 있다하더라도, 저렇게 모두가 수조를 구경하고 있으면 안 됐다. 본래라면, 응시자들은 지금 따로 마련된 시험장에 들어가 ‘지식’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야 했으니까.
“······.”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했다.
전개가 바뀌었다.
이를 의식하자마자, 갑작스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긴장이 된 이유는 단순했다. 처음이었으니까. 작가가 직접 선행플롯을 비틀어버린 것이.
그간 나에 의해 전개가 바뀐 적은 많지만, 작가가 직접 바꾼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뭔가 작심한 게 있으시다?’
현재 보이는 바로, 그 내용을 짐작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시험 순서의 변화. 작가는 ‘지식’보다 ‘인성’을 먼저 테스트 하기로 했다.
역시나 꿍꿍이가 있었던 것이다.
‘지식’은 모험가 기초자질 테스트 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떨어지는 과목이다. 이유는 아주 단순한데, 이 만화에선 인물의 지능이 캐릭터 평가요인에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레오는 그 스스로도 딱히 똑똑하다 생각하지 않으며, 바보와 같은 행동을 보일 때도 무척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이지 않은가. 이 자체가 소년만화 특유의 캐릭터성이라 생각될 여지가 충분하기에, ‘지식’의 부재가 캐릭터에게 큰 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성’의 경우, 그와는 조금 얘기가 달랐다.
일단, 정답이 없다.
여기선 근본적인 도덕률만 따르는 것도 문제가 된다. 소년만화에다 모험가가 소재다 보니, 유물 도굴과 사유지 침범, 문화재 훼손을 심심찮게 행하고, 심지어 사람을 날려버리는 짓 또한 서슴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 설사 그 대상이 공인된 나쁜 놈이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즉, 그 당시 상황에 맞는 ‘알맞은 모험가의 행동’을 보이는 게 바로 이곳에서의 참된 인성이라는 것.
이곳에서의 테스트 또한 이와 같다.
간단하게, 정답은 따로 없지만 어쨌거나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하지 않는 선에서 재미있는 답’을 내야한다.
당연지사 실수할 가능성도 높고, 그에 대한 파급효과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슬슬 작가의 의도가 눈에 비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그는 굳이 나를 통제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대신 내게 어려운 선택을 강요한 뒤, 알아서 점수를 깎아먹게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쯧, 하여간에 하는 짓 하고는······.’
바로 그때였다.
-네, 슬슬 응시생들이 다 모이신 것 같군요. 그럼 곧바로 두 번째 단계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몇 번 시험을 쳤던 분들은 약간 당황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이번에 순서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기초 자질 테스트 두 번째 단계는 바로 인성 테스트가 되겠습니다.
과연 스피커 속 목소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변의 이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자, 그럼 인성테스트는 어떻게 치러지느냐? 간단합니다. 지금부터 문제를 낼 테니 답을 해주시면 됩니다. 물론 모험가를 지망하시는 분들이니,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셔야겠죠?
곧이어,
“어엇!”
“저, 저기!”
“사람이야!”
웬 투명하고도 둥근 구체 두 개가 허공 한복판에 갑작스레 생겨났다.
구체들 안에는 각각 두 명의 사람이 들어 있었는데, 한 쪽 구체엔 젊은 여자와 어린 아이가, 또 다른 구체엔 중년의 남자와 할머니가 들어 있었다.
-구체 떨어뜨려주세요.
스피커의 말과 동시에, 구체가 천천히 수조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 위기에 빠진 두 가족이 있네요. 누구를 구하실 거죠? 어디부터 구하시겠습니까?
구체와 구체사이의 거리는 멀었다.
하지만 수조와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그보다도 몇 배는 더 멀었다.
저들을 구하려면, 저 바다와도 같은 수조 속에 뛰어들어 죽어라 구체를 향해 헤엄쳐야 한다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주저하는 사이, 구체는 점점 더 수조와 가까워졌다.
-누굴 구하실 거죠? 예? 대답해 보시겠습니까? 거기 파란머리 남성분? 거기 빨간 장발의 여성분. 본인의 가족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누구를 구해야 하죠? 자, 시간이 없어요.
이즈음 나는 무척이나 놀란 상태였다.
하지만 물론, 이는 눈앞의 문제가 황당해서는 아니었다.
‘뭐야······ 그대로라고?’
전개가 바뀌었는데, 문제는 작중에 제시되었던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 곤란을 주려는 게 아니었나? 근데 이렇게나 쉽다고?
그때였다.
-물론! 고작 이 정도쯤은 우리 모험가를 꿈꾸는 응시생 여러분께 별 힘든 일도 아닐 겁니다. 기껏해야 네 명뿐인데요. 다들 진짜 문제가 있을 걸 알고 그렇게 지켜보고만 있으셨던 거죠? 그렇죠?
때마침 물과 맞닿은 구체가 폭 하고 터졌다.
놀랍게도, 그 안에 들어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사라져버린 뒤였다. 잔상이었던 모양이다.
-자, 그럼 진짜 문제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어······ 어······.”
“저, 저게 뭐야······.”
“혹시 저것들도 잔상이 아닐까?”
허공에 아주 커다란 구체 네 개가 생겨났다.
각각의 구체 속엔 언뜻 봐도 수십 명이 넘는 어린아이들과, 노인들, 중년남성들, 그리고 젊은 여인들 집단이 각각 들어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죠? 앙? 모험가 지망생 나으리들?
이어 네 개의 커다란 구체들이 일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변의 웅성거림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다 같이 입수하자는 둥, 팀을 나눠 각 구체들을 맡자는 둥······.
치누아비와 하카 또한 그 분위기에 휩쓸려선 내게 다가와 물었다.
“어르신, 어쩌지요?”
“움직일 건가요?”
나는 두 녀석을 황당한 눈으로 쳐다봤다.
“당연한 거 아냐?”
“음, 그럼 제가 일단 수룡(水龍)을 만들어······.”
“기다려.”
그즈음,
-아니,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거냔 말이야. 엉?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저건 잔상 따위가 아니야! 뭐해 거기 빨강머리! 엉? 보고만 있을 거냐고, 거기 금발! 엉? 이제 어떡할 거지? 거기······ 주걱턱?
왔다.
물론 이 ‘답을 제시하는 것’에 정해진 순서는 없다. 누구든 먼저 선뜻 나서면 된다.
하지만 이는 명목상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는 이렇듯 마지막에 지목당한 사람이 제일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다. 작중 연출상,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바로 나.
이게 작가가 노린 바였던 모양이다.
“어렵지 않지 뭐.”
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는 내겐 더없이 행운이었다.
알아서 판을 깔아주겠는데 뭐, 받아먹어야지.
“어르신, 어떻게 할까요? 어디를 선택해야······.”
“시간이 조금······ 촉박한 것 같긴 합니다만. 일단은 아이들부터?”
나는 그러고 조급해 하는 둘을 빤히 쳐다봤다.
“바보 같은 소리들 하고 있네.”
이 세계의 모험가란 도덕률이나 어떠한 규율, 정해진 ‘인성론’ 따위에 얽매이는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그저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녀석들이다. 가진 그 ‘놀라운 힘’을 바탕으로.
“모험가 협회가 시험코자 하는 건, 이런 선택지 놀이 따위가 아냐.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느냐지. 모르겠어? 지금 누구를 구할지를 묻고 있는 게 아니라고. 중요한 건, 당장 여기서 누가 가장 빨리 저들을 몽땅 구해내느냐는 것이지.”
나는 이어 코코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뭐 꺼내야 하는지 알고 있지?”
“······설마 이거 때문에 챙기라고 한 거야?”
“딱히 이 타이밍을 계산한 건 아니었지만······ 쓸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했었지. 암만 그래도 자이로드롭을 챙기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웅······ 알았어. 잠깐만 나와 봐. 꺼내게.”
이어, 코코아가 가죽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냈다.
쿵-.
휑한 놀이공원 한 곳에 묶인 채, 시퍼런 바닷물 대신 푸르른 하늘을 누비고 다니던 녀석.
놀이기구 ‘바이킹’이 옛 고대 도시의 지하수로 한복판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구조대 출동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