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40
40화 칼 자이드
***
모험가 자격시험 여섯째 단계, 대적(對敵).
기본적으로 대적자 포지션의 모험가에게 요구되는 주된 임무는 보물을 지키는 수호자를 물리치는 것이지만, 그 외에도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모험단과 싸우는 것 또한 포함된다.
이번 자격시험에서 요구하는 대적 능력이 바로 그것이었다.
같은 보물을 노리는 모험단끼리 한판 승부를 벌이는 것.
원작에서 레오 일행은 하나의 보물을 두고 세 개의 다른 모험단과 겨룬다. 말하자면, 네 개의 모험단이서 3위 결정전을 벌인다고나 할까.
아마 지금쯤 한창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도 저 냉장고 속에 있는 민트초코인지 녹차인지 모를 뭔가를 두고, 우리와 같은 수준의 ‘길잡이 능력’과 ‘해독 능력’을 보유한 모험단과 싸워야 할 차례였다.
바로 저 녀석.
칼 자이드.
이 캐릭터를 처음 본 건, 모험가 자격시험의 합격자 발표 및 시상식 때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레오 모험단이 1위인 줄 알고 있었다. 어렵사리 길을 찾아, 어렵사리 봉인을 해독한 뒤, 거기서 만난 세 개의 모험단과 싸워 어렵사리 승리를 쟁취해냈으니까.
헌데 웬걸, 막상 까보니 한 단계 위의 모험단이 있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저 회색머리였다.
자연히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일단 갑작스레 등장한 1위인데다, 무엇보다 혼자였으니까.
레오 모험단을 제외한 모든 순위권의 모험단이 7인을 꽉꽉 채운 것에 비해, 녀석은 아예 혼자였다.
유일한 1인 모험단,
그런데도 최종 순위는 1위.
심지어 저 녀석과 대적한 2위 모험단은 시상식 불참이었다. 상처를 회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당시에도 이슈가 일수밖에 없었다.
이게 말이 되냐고.
캐릭터가 강할 순 있다. 새로이 등장한 캐릭터들이야 웬만해선 다 강력한 힘을 탑재한 경우가 대부분이니. 밸런스 문제야 어떻든, 작가의 마음에 따라 말도 안 되는 괴물들이 가끔씩은 등장할 수 있다. 이상한 일도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이 캐릭터에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졌던 이유는 녀석이 홀로 길을 찾고, 봉인을 푼 뒤, 대적하여 승리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무려 세 포지션의 능력을 극강으로 가지고 있는 캐릭터라는 것.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녀석의 고유능력이었다.
[멈추지 않는 성장]
-가진 모든 능력이 쉬지 않고 강화된다.
기본적인 힘에서부터 각종 신체능력, 히든 특성, 그리고 고유능력 그 자체까지.
그야말로 황당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더군다나 이 녀석은 태생부터 길잡이 쪽 특성인 ‘길눈’과 해독가 쪽 특성인 ‘이해력’을 비롯하여, 온갖 대적자 쪽 특성들을 한가득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였다.
즉, 그냥 말도 안 되는 먼치킨이라는 것.
실제로 나는 이 녀석의 고유능력은 감히 흉내를 내겠단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녀석이 보유한 고유능력의 ‘격’이라는 게, 현재 그 신체능력과 정비례하여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흉내를 위한 조건 그 네 번째.
능력의 격에 맞는 신체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즉, 이를 흉내 내려면 내 몸 또한 최소 현재 이 녀석 수준의 신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껏 쉼 없이 강화되어 왔다는 설정의 저 신체만큼이.
무리였다. 완전 무리.
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이를 완전히 단념 했다는 건 아니다. 이만한 능력은 포기할래야 포기할 수가 없다. 아무렴, 숨만 쉬어도 강해질 수 있는 능력인데.
당장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게 맞지만, 아주 길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에 대한 힌트를 몽중계(夢中界)에서 얻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느낌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 말도 안 되는 먼치킨의 등장에 독자들로선 뿔이 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작가가 모험단의 포지션을 세 가지로 나눈 것에 대하여 호평일색이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캐릭터들의 비중이 밸런스 있게 조절될 수 있었다고.
헌데 대뜸 이 녀석이 등장한 것이었으니.
이 녀석에게 ‘드높은 에고로 절대적으로 1인 모험단을 유지하려 한다’는 설정이 존재하긴 하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밸런스가 조절되지도 않을뿐더러, 이러한 만능형 캐릭터는 그 존재만으로 다른 캐릭터들의 가치를 하락시킬 수밖에 없으니.
하여, 처음에 나는 이 녀석을 이기려고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이런 규격 외의 괴물은 애당초 다른 이가 이길 수 있도록 설계된 캐릭터가 아니었으니까.
무려 레오와 키리코가 합심하여 달려들었음에도 이기지 못한 괴물이 아닌가. 심지어 둘이 이 녀석에게 덤빈 건 현재의 시기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에 일어날 일이다.
즉, 지금보다 강해진 둘의 합공으로도 녀석을 쓰러뜨리지 못했다는 것.
그런 녀석을 내가 어떻게 이기냐고.
게다가 이 녀석에게 패배하는 게, 사실 현재 내 역할에도 부합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1위가 아닌 2위.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먼치킨 캐릭터에게 아깝게 패배하긴 했지만, 주인공보다는 한 단계 위의 실력. 딱 맞지 않는가.
라이벌 또한 주인공과 어느 정도 성장속도를 맞춰야 한다. 혼자 너무 치고 나가는 것도 위화감을 줄 수 있는데다, 또 수준이 비슷해야만 함께 활동할 여지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너무 날뛰듯 올라가면 언제 작가의 칼이 내게로 날아올지 알 수 없었다.
지금처럼 악의적 제한 수준 정도라면 어떻게든 넘기고 극복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조금 위험할 수도 있었다. 아직 라이벌이란 지위를 확고히 굳히지 못한 상태이고, 이럴 때 작가가 나를 없애고자 모종의 수작을 부린다면, 나라고 타락기사의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었으니.
그러나,
“기다리느라 지쳤다. 화는 풀어야겠어. 죽여주지.”
“······죽였다간 실격일 텐데?”
“흐음, 그럼 살짝 숨 정돈 붙여놓도록 하지.”
내가 깜빡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바로 저 녀석의 잔혹성.
칼 자이드는 적의 항복을 받아주는 성격이 아니다. 손속에 자비를 베풀지도 않으며, 매번 최선을 다해 상대를 전투불능으로 만드는 녀석이었다.
실제 원작에서도 2위 모험단이 시상식에 참여하지도 못했지 않는가.
만약 그와 똑같은 일을 겪게 된다? 그 즉시, 이 자격시험 에피소드는 완전히 망하게 되는 것이었다.
부상을 당해 발표식에 나오지도 못하는데, 2위를 한 게 무슨 소용일까.
거대 지렁이를 소환해 터널 속을 달리고, 배를 이용해 사람들을 구출하고 했던 활약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새로 등장한 저 녀석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틀 뺏긴 채, 그대로 잊히고 말 텐데.
그 상황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그나저나 희한하군. 다른 녀석들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원작에서 2위를 했던 녀석들을 말하는 듯했다. 아마 우리가 이곳으로의 길을 찾는 바람에 도태된 게 아닐까. 어쩌면 레오 녀석들과 붙고 있을지도 모르고.
사실 뭐, 중요한 캐릭터들은 아니었다. 어차피 실제 원작에서도 이름이나 얼굴 한 번 등장한 적 없는 엑스트라에 불과했으니.
“어느 쪽이 됐든 상관은 없겠지. 너희는 고작 네 명이 다인가?”
“상관있을 걸. 우리보다 뛰어난 모험단은 없거든. 네 명이긴 해도.”
내 말에 녀석은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눈앞에 있지 않나. 한 명뿐이긴 하지만.”
“그래 인정해주지. 그래서 말인데······ 혹시 우리 모험단에 들어올 생각 없냐? 같이 1등으로 끝날 수 있을 텐데.”
이건 혹시나 하고 염두에 뒀던 꼼수였다. 실제로 가능은 했기 때문이다. 혹 새로운 얘깃거리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사양하지. 나는 내걸 나눠주는 성격이 아니라서.”
역시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저 녀석에게 적용되어 있는, ‘곧 죽어도 1인 모험단’이라는 중2병스러운 설정이 이를 막은 까닭이리라.
결국, 정면으로 이 난관을 뚫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죽기 살기로.
“하카, 치누아비. 앞으로.”
이미 녀석에 대해선 어느 정도 주지시켜준 다음이었다.
“사실 어르신에게 들었음에도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진 믿지 못했지요. 도깨비의 문제를 해독할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한다니······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가 몹시도 궁금하네요.”
“물어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제법 과묵하게 생기긴 했지만, 제가 입을 열게 하는 방법에 대해선 또 빠삭하거든요. 수학하던 도깨비 터를 떠나 방랑하던 중, 우연찮게 기회가 되어 배운 기술이죠. 후후······.”
다행히 하카는 어느새 특유의 비밀스럽고 살기 어린 미소를 되찾은 상태였다. 저 상태의 하카는 꽤나 위험하면서도 믿음직스러운 녀석이었다.
저 회색 괴물을 상대하는 건 역부족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버텨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둘에게 부탁한 건 간단했다.
시간을 끌어라. 단 5분만이라도.
물론 쉽지 않은 요구였다.
일단 치누아비는 전투에 능숙한 도깨비가 아니었다. 애당초 고유능력도 그쪽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고, 전투 도깨비 시험에선 이미 몇 차례나 낙방한 둔재에 가까웠으니.
하여, 일단 하카 혼자서 녀석의 시선을 끌되, 위급 시 치누아비가 토(土)의 술을 활용해 하카가 은신할 수 있는 지형과 그림자를 즉흥적으로 만들어 내자는 게 내 계획이었다.
내가 당장 함께 나서지 않는 이유는, 녀석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꼭 확인해야 할 게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을 상대할 하나의 능력을 고르려면, 이를 꼭 알아야 했다.
곧이어,
팟-.
하카의 선공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하카는 곧바로 고유능력을 쓰진 않았다. 대신 익히고 있던 암살자의 기술로 접근을 시도했는데, 일단 간을 좀 보려는 요량인 듯했다.
‘쯧,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라니까······ 위험할 것 같은데.’
그리고 나의 우려는 곧 현실로 드러났다.
퍽.
“······.”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실로 눈 깜짝할 새였다.
한 방이었다.
“커, 커······ 헉.”
하카의 신음이 들려온 다음에야, 나는 녀석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카는 땅바닥 아주 깊숙이 처박혀 있었다.
만약 치누아비가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땅을 물렁하게 만들지 않았더라면, 이 만화의 장르가 삽시간에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고어물로.
‘······이러면 완전히 나가린데.’
녀석의 움직임을 확인? 택도 없는 소리였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솔직히 수십 배는 더 강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 순간 확실히 깨달았다.
이 녀석은 건드려선 안 됐다.
실수였다. 높은 순위를 취득하고자 감히 이 녀석과의 만남을 각오했던 것.
그냥 레오 일행과 같은 보물을 택했어야 했다. 그냥 거기서 3위 결정전을 벌이고, 그 녀석들을 이겼어야 했다.
챕터에도 출연하고, 상대하기도 훨씬 쉽고, 설사 패배한다하더라도 어떻게든 그럴싸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미쳤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나는 고민하고 있던 두 가지 능력 중 하나를 과감히 머릿속에서 삭제했다.
몇 번 써보지도 않은 [굳건한 거암]으로 감히 저 녀석을 상대하려고 하다니. 것도 치누아비의 흙으로 가두고, 하카의 그림자로 묶은 뒤, 내가 마무리한다는, 실로 단순한 방식으로.
오산이었다. 만용이었고.
이어, 나는 망설임 없이 생각해뒀던 다른 하나를 흉내 냈다. 그나마 가장 오래, 그리고 열심히 연습했던 능력이었다.
순간 두 개의 리볼버가 허리춤에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본 칼 자이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 네 차례인가, 주걱턱?”
“그렇긴 한데, 잠깐만 기다려줄래?”
“뭐?”
“저기 처박힌 내 동료한테 잠시 일러둘 게 있어서.”
“······유언이라도 듣겠다는 건가?”
“비슷해. 잠시 시간 좀 낼 수 있을까?”
나는 이 녀석이 거절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잔혹하고 자비 하나 없는 냉혈한이지만, 프라이드는 있는 녀석이니까.
“······1분 주지.”
나는 재빨리 하카가 처박힌 흙무더기 쪽으로 다가갔다. 이미 거기엔 어느새 심각해진 표정의 치누아비가 대기하고 있었다.
“저, 어르신······ 지금 상황이 많이······.”
“치누아비, 코코아 곁에 가 있어.”
“예?”
“얼른. 혹시 돌무더기 같은 게 튈 수도 있으니 흙으로 벽이라도 세워두고. 다치지 말고 보호 잘해.”
잠시 침묵하던 치누아비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 후, 코코아의 곁으로 갔다.
이어, 나는 흙무더기를 보며 말했다.
“하카.”
“······.”
“미안한데, 한 번만 더 시선 끌어줄 수 있냐?”
“······.”
“듣고 있잖아. 진짜 미안한데, 해줘라.”
곧이어,
“······쿨럭. 저 죽을지도 모릅니다만.”
흙무더기 속에서 힘없는 음성이 들려왔다.
“힘든 거 아는데······ 그림자에 숨든, 은신기를 쓰든······ 뭐 어떻게든 한 번만 끌어줘.”
그러곤 나는 흙무더기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치유 탄이야. 그나마 좀 나아질 거야.”
탕-.
곧이어,
“오······ 욕한 건 취소하도록 하죠.”
한결 밝아진 음성이 흙무더기에서 튀어나왔다.
“못 들었었는데······ 어쨌거나 플랜B로 갈 거야. 뭐 해야 되는지 기억하고 있지? 꼭 해내야 돼.”
“알긴 알지만······ 못할 것 같습니다만.”
“그럼 다 죽어. 아, 이거 협박하는 거 아니야.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
하카는 그럼에도 썩 내켜하지 않는 듯했다. 하기사 그런 걸 맞고 나가 떨어졌으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칠 수밖에.
별 수 없을 듯했다.
“나 도깨비 신들 봤다.”
“······예?”
“것도 다섯 명 다. 그때 얘기 해줄게. 죽지 말고 해낸다면.”
“허······.”
잠시 후,
“후······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살아서 이야기를 들려주시길.”
어느새 흙무더기 밖으로 고개를 쏙 배낸 하카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사람 좋은 미소였다.
하······ 이 녀석은 미소에서 살의와 의미심장함이 사라지면 안 되는데.
‘에이, 몰라.’
나 또한 녀석을 보며 씩 웃었다.
“한 번 해보자고.”
*
칼 자이드는 칠왕에 가장 근접한 녀석으로 불렸지만, 끝끝내 칠왕의 자리에 오르진 못했다.
가진 바 무력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실제로 후반부의 녀석은 혼자서도 능히 칠왕들의 병대에 대적하곤 했으니.
오르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녀석에게 약점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몹시 취약한.
커뮤니티에선 이 약점을 두고 우스갯소리로 ‘시어머니의 맴매’라고 불렀다.
독자들이 시어머니 짓을 해서 만들어낸 약점이라는 뜻이었다.
이 일의 경위는 단순하다.
칼 자이드의 등장 이후, 독자들은 끊임없이 캐릭터의 너프를 주장했다. 파워 밸런스가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였다.
작가 측에선 처음엔 별반 대응을 하지 않았으나, 독자들의 항의 메시지가 자꾸만 쌓여가자 결국 하나의 공지를 띄우게 되었다. 바로, 이 캐릭터에겐 별도의 약점이 있으니 밸런스엔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작가는 곧바로 이어지는 챕터에서 그것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아킬레스 건.
그것이 바로 녀석의 약점이었다.
신체를 비롯한 모든 능력이 끊임없이 강화되는 녀석이지만, 거기만은 예외라고.
작가는 녀석이 아킬레스를 컨셉으로 만든 캐릭터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솔직히 황당한 해명이었다. 저 사자 갈기 같은 회색 머리가 어딜 봐서 아킬레스냐고.
작가는 그것이 캐릭터 생성 때부터 넣어둔 설정이라고 변명하듯 밝혔지만, 나를 포함한 다수의 독자들은 믿지 않았다. 누가 봐도 급히 추가된 설정이 분명했는데 뭘.
당시 그 논쟁은 뭐 하나 속 시원히 풀린 것 없이 끝났지만, 나는 여기서 다시금 새로이 그 논쟁에 불을 지펴야 했다.
이번엔 그 시절 작가의 편에 서서.
플랜B는 실로 간단한 전략이었다.
칼 자이드의 아킬레스건을 공격한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녀석이 반응하지 못하게.
[작열하는 여섯 탄환] 중 ‘관통’만을 이용한 ‘속사’스킬이 그것이었다.
문제는 내가 원거리 공격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녀석이 피할 가능성도 있지만, 애당초 내가 맞힐 가능성이 낮았다.
나는 고유능력은 흉내 낼 수 있지만, 캐릭터의 특성까지 흉내 내진 못하니까.
빠르게 쏠 순 있어도, 키리코처럼 다 명중시키진 못한다는 것이었다.
‘명중률’이 담긴 배경을 구매한 것도 아니고. ‘유도’를 속사로 날릴 수 있을 정도로 수련이 된 것도 아니었으니.
‘첫 번째 자질 테스트 때 좀 더 연습했어야 했는데······.’
하여, 근거리로 붙어야 했다. 가까이만 붙으면 그래도 쏴 맞힐 수 있으니까.
플랜B의 요체는 한 마디로 그냥 ‘운’이었다.
될지 안 될지 모른다.
접근이 가능할지도, 내가 쏴 맞힐 수 있을지도, 그래서 녀석이 쓰러질지도.
작가가 말한 대로 처음부터 약점이 설정되어 있던 거라면 쓰러지겠지만, 아니면 그냥 뻘짓이 되고 마는 것이다. 기껏 죽을 각오로 접근해선 최후의 일격을 발에다 날리는 꼴이었으니.
사실 처음 녀석의 움직임을 보려 했던 것도 이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혹시나 발뒤꿈치를 보호하려는 기색이 있는지.
‘뭐, 이미 늦었지만.’
쓴웃음이 났다. 최후의 보루로 두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이 ‘운’에 모든 걸 걸게 될 줄이야.
“후······ 몰라. 가자.”
나는 각오를 다진 뒤, 하카에게 신호를 보냈다.
곧이어,
“뭐야, 주걱턱이 오는 게 아니라······ 이번에도 너?”
하카가 재차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하카의 움직임엔 일체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금 전 그만한 일격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감동했다.
퍼-억.
또 다시 한방.
하카는 다시금 땅바닥에 처박혔다. 좀 전에 비해 보다 깊숙한 듯했다.
하지만 그래도,
“잘했어 하카.”
할 건 다했다.
“······응?”
내가 쾌속하게 뒤로 접근할 때까지도 칼 자이드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녀석 또한 당황했을 것이다.
한순간이지만, 움직여지지 않았을 테니.
하카는 최후의 힘을 칼 자이드의 주먹을 피하는 데 쓴 게 아니라, 녀석의 그림자를 묶는데 썼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으니까. 지금쯤 얼굴이 묵사발이 났을지도 모른다.
‘미안.’
이게 그 보답이 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어,
타타타타타타타타- 탕!
타타타타타타타타- 탕!
나는 녀석의 아킬레스건에다 수십 개의 마탄을 박아 넣었다.
“엇!?”
그 순간, 놀란 녀석이 반사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퍼-억.
“커허······ 끄헉.”
비껴 맞았음에도 수십 미터를 날아 돌무더기에 파묻혔다.
호흡이 불가했다. 가슴뼈가 모조리 함몰된 듯한 느낌이었다.
하카의 기분이 어땠는지 그제야 좀 알 것 같았다.
저 녀석, 이만한 공격을 맞았으면서 겁도 없이 달려들었네.
“······끙.”
나는 흔들리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애써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했으니까.
솔직히 명중했는지 어땠는지 조금도 감이 오지 않았다.
전방엔 흙먼지가 자욱했다. 빗나간 총탄들이 만들어낸 흔적인 듯했다.
‘······망했나?’
이윽고, 피어올랐던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
“······작가 이 자식.”
나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 몸의 힘이 쫙 풀렸다.
거짓말한 거 아니었네.
쓰러진 칼 자이드의 주위로, 붉디붉은 피가 땅바닥을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