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42
42화 작가 이 미친놈이
***
“16위, 요셉 모험단의 단장 요셉! 지금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부름에 웬 작달만한 사내가 후다닥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귀하를 비롯한 요셉 모험단 일동은 본 모험가 협회가 숨겨 놓은 보물, ‘옷가게 주인 짐의 찢어진 청바지’를 획득하여, 16위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모험가 자격시험에 합격하였음으로 본 증서를 수여합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짝짝짝.
“부상으로 모험가 자격증과 직접 회수해 오신 청바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남자는 그것이 못내 즐겁다는 듯, 단상 위에서 환호성을 내질렀다.
흐음.
솔직히 조금 의문이 드는 광경이었다.
사실 저 남자의 입장에서 이 순위는 썩 공정한 것이라 보기 어려웠다. 이유는 간단한데, 이것이 ‘대적’의 비중이 지극히 낮게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16위를 한 저 요셉 모험단은 무려 다른 네 개의 모험단(17~20위)과의 각축전에서 최종 승리한 이들이다. 내부에서 싸움구도가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두 개의 단 정도는 처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곧, 저 요셉 모험단의 대적자가 길잡이에 비해 수준이 높다는 뜻이었다.
반면 15위에 랭크된 모험단은 보물을 획득하기는커녕, 그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쨌거나 보물 쟁탈전에 함께 들어선 모험단(10~15위)들 중에선 최약체였으니.
그들이 요셉 모험단 보다 순위가 높을 수 있었던 건, 길을 잘 찾았다는 이유 하나뿐이었다.
한 마디로, 이 모험가 자격시험에서 순위를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길잡이’라는 뜻이었다. 다음으로는 ‘해독가’일 것이고.
물론, 이 같은 채점방식도 협회의 입장에서 보면 일견 타당한 면도 있다.
길잡이의 능력과 해독가의 능력은 협회가 준비한 방식으로 능력의 우열을 확실히 가릴 수 있으나, 대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응시자들 자체적으로 겨루는 것이기에, 제대로 된 실력 검증이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사실 대적자야말로, 모험가의 세 포지션 중 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렴, 이 모험왕이란 만화 자체가 기본적으로 배틀물인데.
그즈음,
“어서 와!”
“이야! 청바지까지!”
“잘됐다!”
뒤쪽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요셉 모험단의 인원들인 듯했는데, 꽤나 활력들이 넘처보였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이걸 우리 모험단의 상징으로 삼는 게 어때? 깃발처럼 만들어 걸고 다니는 거지.”
“오, 괜찮은 걸?”
“문구도 새길까?”
허······.
실로 황당한 소리들이었다.
저 걸레로 뭘 한다고? 모험단의 상징?
웃기는 일이었다. 바로 저것 때문에 본인들이 고작해야 16위밖에 되지 못한 것인데.
간단하다. 보물이랍시고 저 따위 쓰레기들을 대충 갖다놓은 것 또한, 대적의 비중을 한층 떨어뜨리는 짓이었기 때문이다.
보물을 보고 탐이 나야 쟁취할 생각도 들 텐데, 저런 걸레짝을 보고 무슨 힘이 나겠냐고.
물론 이에 대한 뒷배경이 존재하긴 했다. 과거에는 실제 보물을 찾아오는 것이었으나, 어느 한 사건을 계기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으로.
[모험가 자격시험장 보물 도난 사건]
자격시험에 응시한 어느 한 모험단이 과제로 나온 모든 보물을 챙겨 도망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굉장히 유명하다는 설정이었는데, 그도 그럴 게 그 모험단인 척 했던 도적단이 현재도 굉장한 악명을 떨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헌팅턴 도적단.
‘그러고 보니, 조만간 부딪힐 수도 있겠네.’
도적단의 경우, 모험가들과 자주 충돌하는 존재들이다. 모험가에게 오는 의뢰 중 5~10% 가량이 도적단 퇴치였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몇 챕터 내에 레오 일행과 이 헌팅턴 도적단이 마찰이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슬슬 이 도적단을 이용해 챕터에 잠입해 들어갈 방안도 강구해둬야 할 듯했다.
그 무렵, 시상은 어느새 한 자리 등수까지 내려와 있었다.
마침 7위에 랭크된 이가 호명되는 순간,
띠링-.
[모험왕 연재가 재개되었습니다]
[챕터17 – 시상식 중 등장하다]
[진행 중인 챕터의 권역에 속해 있습니다]
[히로는 이번 챕터의 캐릭터 평가 대상입니다]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었다.
역시나 독자들에 대한 배려는 꽤나 괜찮은 작가였다. 지루한 장면은 다 넘겨주고 그나마 볼만한 녀석들이 나올 때부터 챕터를 열어주니.
이어 챕터 내용을 훑은 뒤, 창을 종료하려던 때였다.
“······잠깐.”
뭔가가 이상했다.
“시상식 중 등장하다?”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왠지 어색함이 드는 제목이었다.
‘이상한데?’
물론 내가 챕터의 제목들까지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제목의 기묘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제목은 시상식 중 누군가가 새로이 등장할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 챕터의 주인공이라는 것까지도.
하지만 이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번 챕터의 주인공은 나였으니까. 내가 1위니까.
뿐만 아니라, 원작에서도 시상식 중 웬 녀석이 난입해 들어오는 장면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체 또 뭔 꿍꿍이야.’
어떻게든 내게 스포트라이트를 주지 않으려는 속셈인 듯했는데, 유치함을 넘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지금 하려는 전개가 감당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그 무렵,
“6위, 도지 모험단의 단장 도지! 지금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단상 위에선 6위 모험단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그러자,
“응?”
“뭐야······ 6위?”
레오 일행의 반응이 급격히 달라졌다. 이제야 본인들의 순위를 알게 된 모양이었다.
본인들과 대적했던 모험단이 6위라는 건, 본인들의 순위가 3위라는 뜻이었으니.
순간 레오의 고개가 나를 향해 홱 돌았다.
“주걱턱! 설마······?”
오케이, 반응 좋고.
나는 그저 말없이 씩 웃어줬을 뿐이다.
잠시 후,
“그럼 이어서 3위입니다. 레오 모험단의 단장 레오!”
레오가 단상 위로 올라갔다.
녀석은 그 와중에도 내내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눈에선 마치 불길이 나올 정도였다.
‘그래, 시선 좋아. 더 봐, 옳지.’
다만, 나는 모른 척 무심하게 이를 무시했다. 마치 너 따위는 내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듯 시크하게.
뭐, 사실 이 외모로 하기에 썩 어울리는 행위는 아니었지만.
이어 증서 수여가 다 끝난 뒤, 사회자가 레오를 아래로 내려 보내려 할 때였다.
레오가 대뜸 나를 가리키더니,
“주걱턱! 다음엔······ 다음엔 절대 지지 않아!”
환상적인 멘트를 날려주었다.
‘오우······.’
순간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를 뻔 했다.
아니, 이런 서비스까지 해준다고?
이건 거의 뭐, 라이벌 지위를 땅땅땅 확정짓는 발언에 가깝지 않는가.
헤벌쭉 벌어지는 입을 자제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이제,
“자, 조금은 요란했던 3위 단장님이었네요. 그럼 이제 다음으로······.”
내 차례였다.
나는 사회자의 부름을 조용히 기다렸다.
본래라면 칼 자이드가 호명되어야 했겠지만, 녀석은 이곳에 없었다. 2위 모험단은 부상을 이유로 시상식에 불참. 딱 녀석이 원작에서 행했던 그대로를 당하게 된 것이다.
그때였다.
“2위! 회색사자 모험단! 단장 칼 자이드!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엥?”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지금 그 녀석을 부른다고? 하지만 나오지도 못할······.
순간,
끼이익-.
나는 놀라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여기······ 왔다.”
당황스러웠다. 칼 자이드였다.
녀석은 회장 출입문을 탁 열어젖히더니, 주인공 마냥 터벅터벅 걸어 들어왔다.
심지어 절뚝거리기는 해도, 걷기까지 했다.
어느새 모두의 이목이 녀석을 향해 있었다.
‘이게 무슨 경우야.’
실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등장에, 연출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아니, 어떻게 서 있을 수가 있지?’
녀석은 분명 치명타를 입고 쓰러졌었다. 발이 잘렸다거나 터진 걸 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량의 피가 흐른 건 똑똑히 확인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여기가 만화 속 세계가 아니었다면 이해를 했을지도 모른다. 현실에선 아킬레스건 하나 끊어졌다고 해서 생명이 위태롭진 않으니까.
하지만 녀석은 아킬레스건이 유일한 약점인 만화 속 캐릭터다. 그곳을 공격당했다? 그럼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상태가 되어야 했다. 그게 개연성에 맞으니까.
아킬레스가 괜히 그곳에 화살을 맞고 죽은 게 아니다. 상처가 아니라, 설정 때문에 죽은 것이다.
헌데, 칼 자이드는 이곳에 나타났다.
마치 이 챕터의 주인공 자리를 빼앗으러 온 것 마냥.
내가 녀석을 보며 떠올릴 수 있는 건 한 가지였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작가가 직접 내용에 개입했다.
그가 칼을 빼들었다.
“예, 2위를 차지한 회색사자 모험단은 이번 응시자들 중 유일한 1인 모험단입니다. 부상의 여파가 아직 조금 남아 있지만, 이렇게 함께 자리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작가가 맛이 가버렸구나.
공들여 만든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전에 박살이 나고, 녀석을 위해 짜둔 전개가 한순간에 사라질 위험에 처한 데다, 인기투표의 결과까지 똥망이니, 결국 완전히 맛이 가버린 게 아닐까.
그러나 이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으로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그즈음 나는 현재 벌어진 상황에 심각한 수준의 의문, 그리고 위협을 느꼈다.
작가는 지금 ‘나’라는 존재를, 약간이긴 하나, 완전히 ‘배제’한 채 스토리를 진행시키려 하고 있었다. 어차피 독자들은 보지 못했다고 내게 침묵을 강요하면서. 이 세계의 ‘개연성’을 자신이 직접 비튼 것이다.
때마침 내 머릿속에 캐릭터 상점 내에 있는 상품 하나가 떠올랐다.
상점의 ‘기타’ 카테고리에 들어 있는 것.
[삭제 유예권 – 5,000p]
※주의) 작가의 ‘절대삭제’ 명령엔 거역할 수 없습니다.
이 상품이 함의하고 있는 바는 간단하다.
이 세계는 작가의 ‘절대 삭제’ 권한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것.
안일했다.
나는 줄곧, 이러니저러니 해도 작가와 내가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 행동이 본인이 생각해둔 전개를 해치는 측면이 다소 있긴 하나, 작가의 대목적이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려가는 것이라면, 결국엔 내 행동을 다 이해해줄 수 있으리라고.
나로 인해 만화에 대한 반응이 좋아진다면, 작가도 결국엔 나를 인정하고 활용할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여, 내심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독자들의 반응이 좋다는 것 자체가 내 행동의 당위성을 증명해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인기. 그 인기가 나의 커다란 방패막이가 되어 줄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헌데 놓치고 있던 게 있었던 모양이다.
바로 작가의 감정.
‘······까다롭네.’
변수였다. 아무렴 이렇게까지 감정적으로 나올 줄이야.
물론 알고는 있었다. 타락기사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직접 봤으니까.
알고는 있었는데, 체감하지 못했다. 이미 한참 전에 선을 넘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자만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고 있다며 우쭐거리고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 작가가 나를 완전히 배척하려 마음먹은 것이라 보긴 어려웠다.
그랬다면 ‘개입’의 수준이, 단순히 저 녀석의 부상을 완화시키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내게 보다 직접적인 위해를 가했겠지. 순위를 조작한다거나.
다만,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다는 것.
이는 암만 화가 난다 하더라도, 작가 또한 나라는 캐릭터의 활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뜻이리라. 현재 나의 인기는 그에게도 부담일 수밖에 없을 테니.
그러니 일단, ‘미리 짜둔 전개는 어떻게든 진행하고 싶다’는 마음만 실어 저 칼 자이드를 모른 척 등장시킨 게 아닐까.
힘겨루기.
내가 느끼기엔 현재 딱 이 상태였다. 작가가 이번에 세게 한 번 당겼다고나 할까.
‘······확실히 그전까진 내가 너무 당기긴 했어.’
이번엔 살짝 끌려가 줄 필요는 있을 듯했다.
나는 그즈음 나를 스쳐 지나가는 칼 자이드를 말없이 쳐다봤다.
녀석 또한 스쳐가듯 내게 눈길을 던졌을 뿐, 별 말은 없었다.
잠시 후, 칼 자이드의 증서수여가 끝이 났다.
이어 사회자가 나를 호명했다.
“자, 그럼 대망의 1위! 주걱턱 모험단! 단장 히로는 단상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뜸 들이지 않고 바로 걸어 나갔다.
본래는 준비한 걸음걸이도 있었고, 미소년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등의 생각해둔 여러 연출이 있었지만 죄다 생략했다. 당장은 그냥 수그리고 있는 게 맞을 듯했으니.
단상 위에서도 나는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사회자가 뭐라 뭐라 계속 말을 했으나 잘 들리지 않았다. 레오의 타오르는 눈길도 그다지 의식되지 않았다.
“자, 그럼 소개를 다 마쳤으니 2위와 3위 단장님들은 다시금 단상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합격생들을 대표로 모험가 등급 발표와 임무 하달식이 있겠습니다.”
모험가 등급.
D에서 SS급까지 있으며, 급에 따라 각종 대우와 권한이 달라진다.
이는 세계 전역, 어느 정부와 단체 아래에서도 통용된다.
레오 모험단은 B+등급, 우리 모험단과 칼 자이드는 A등급을 받았다.
원작에서는 1위만 A등급이었으나 작가는 이 또한 양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기사 녀석이 A등급이어야만 진행할 수 있는 전개들이 있었을 테니.
“다음으로 협회가 지정한 임무를 하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3위 레오 모험단에게 부여된 임무는······.”
레오가 받은 임무는 원작에서 받은 것 그대로였다.
헤트로 사원의 잃어버린 보물찾기. 이를 찾는 과정에서 헌팅턴 도적단과 처음으로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임무 등급은 B+.
칼 자이드가 받은 임무는 그냥 하나의 범죄단체를 소탕하는 것이었다. 딱히 들어본 적 없는 단체였다. 임무 등급은 A-.
그리고 이제 내 차례였다.
“자, 대망의 1위 주걱턱 모험단에게 부여될 임무는······ 고대 문명, 앙쿨제국의 유적탐사입니다. 웨스트랜드 남부 쪽에서 얼마 전에 그 흔적이 발견 되었었죠. 임무 등급은 A입니다.”
음?
약간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무가 정상적인 데다,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일단 듣기로는 그냥······ 좋은 임무였다. 무난무난하고, 딱히 특이할 것 없고.
‘혹시 안에다 무시무시한 걸 숨겨뒀나?’
물론 가보긴 해야 알 것이다.
그렇게 막 임무 하달식이 끝나갈 즈음이었다.
“자, 잠깐만요!”
회장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바뀌었답니다!”
“에?”
“임무요! 그······ 주걱턱 모험단 임무.”
······뭐?
기분이 싸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곧이어 귓속말로 새로운 소식을 전달받은 사회자가 두어 차례 헛기침을 한 후, 우리의 바뀐 임무에 대해 말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급히 실력 있는 모험단이 필요하다는 지원요청이 들어와서요. 주걱턱 모험단의 새로운 임무는······ 이스트 랜드 내 두골 제국과 마이닌 왕국의 휴전을······.”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스트 랜드?”
말문이 막혔다.
이건 정말이지 황당함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작가 이 미친놈이 나를 저 바다 너머 반대편 대륙으로 쫓아 보내려 하고 있었다.
*
시상식이 끝난 후 연회 시간.
아직 챕터가 진행 중에 있었으나, 나는 개의치 않고 홀로 회장을 벗어난 상태였다.
레오 앞에서 얼쩡거리며 무심히 툭툭 긁어주는 게, 분명 독자들도 좋아할 것이고 보상측면에서 더 좋을 순 있겠으나, 그럴 기분도 상황도 아니었다.
당장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1. 간다.
2. 안 간다.
첫 번째, 이스트 랜드로 간다.
이럴 경우, 얼마간······ 아니, 꽤 오랜 기간 동안 챕터에서 제외될 것이다. 캐릭터가 수없이 많이 등장하는 초반부이니 만큼 그만큼 잊힐 가능성도 클 것이고. 시간이 오래될수록 생존자체가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이상 작가와의 대립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관건은 얼마나 빨리 복귀할 수 있느냐.
두 번째, 안 간다.
생각만 해도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
일단 모험가 협회가 적으로 돌아선다. 물론 척살대상이니 뭐니 할 정도는 아니지만, ‘모험가’ 자격을 영구히 잃게 되고 여러 좋지 못한 소문이 따라다닌다는 설정이 붙을 것이다. 행동에 상당한 제약이 생긴다는 것. 이를 복구하기까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 작가는 내가 충분히 이 선택을 할 수도 있으리라고 예상한 듯했다. 이 같은 전개는 작가 역시도 엄청난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엔 진행할 수가 없다. 내용도 새로 다 짜야하는데다, 욕을 뭉텅이로 먹게 될 테니까. 나를 이스트 랜드로 던지려 한 것도 지금 엄청난 욕을 들어먹고 있을 텐데.
그러니 막판에 막판까지 미루다, 마지막 즈음에 이 악 물고 펼쳤던 게 아닐까?
나를 제어한다거나, 혹은 없애버릴 자신이 있어서.
“······가야 할 것 같긴 한데.”
머리론 이미 알고 있었다. 가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이는 작가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한참을 고민한 뒤,
“후······.”
결국 나는 결정을 내렸다.
일단은 따라준다. 근데, 그거 후회하게 해줄게.
이어, 나는 다짐하듯 되뇌었다.
가자. 가서, 내가 아니고선 결코 ‘개연성’ 내에서 수습할 수 없는 폭탄을 들고 오자. 그래서 전개의 핵심부에 냅다 집어던져 버리자.
저 도깨비라는 이름의 핵폭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