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44
44화 네오 아카이브
***
“그럼······ 이제 작별이군요.”
하카는 여느 때처럼 웃었다.
비밀스럽고, 또 의미심장하게
반달 마냥 접힌 실눈엔 어떠한 감정도 들어있지 않았다.
“몸은? 진짜 괜찮은 거야?”
“협회에서 신경을 좀 써준 듯합니다. 회복약 수준이 일품이긴 하더군요. 조금 욱신거리는 것만 제외하면 괜찮습니다.”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 그런 척 하는 것.
하지만 그래서인지 나는 더 마음이 쓰였다. 저 녀석이 일부러 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체’ 하는 것만 같아서.
이스트랜드로 간다. 간 김에 도깨비 소굴을 방문할 계획이다.
하카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함께하고 싶을 수 없는 여정이리라.
더욱이 작가에 의해 쓸데없는 전개에 묶여 있을 때와는 달리, 나와 함께하며 운신의 폭이 상당히 넓어진 요즘이지 않나. 알게 모르게 본인을 옥죄어 오던 여러 설정들에서 벗어나 있었으니, 근래 충분히 만족스럽고 즐거운 나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제의 내 말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을 것이고.
“하카, 부탁할 게 있어.”
“······어떤?”
“따로 좀 움직여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굳이 이 녀석을 따로 떼놓으려 한 이유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뻐꾸기 역할.
간단하다. 내가 쉬이 잊히지 않도록, 웨스트랜드에 남아 레오 일행에게 끊임없이 나의 존재를 일깨워줄 녀석이 필요했기 때문에.
요란한 거짓과 의미심장한 진실을 적절히 섞어가며, 나에 대한 기대감을 꾸준히 유지시켜 줄 수 있는 인물. 역시나 이 녀석 만한 적임자가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나의 동료로 레오 일행과 독자들에게 얼굴을 알린 상태이니, 그러한 행동의 의중을 의심받지도 않을 것이고.
물론, 하카에게 대놓고 그것만을 부탁한 것은 아니다.
명목상으로는 현재 이 녀석이 살짝 살짝 발을 담그고 있는 조직들, 예컨대 ‘바람 마적단’을 비롯한 여러 도적단들의 힘을 결집시켜 놓으라고 한 상태였다. 딱히 이 조직들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별도의 구실은 필요했으니까.
뻐꾸기 용도로 쓰겠다고만 하면 솔직히 기분이 나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도깨비 떡밥 던지기.
사실 이 녀석은 나와 만난 이후로, 단 한 번도 ‘본래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적이 없었다.
바로, 도깨비의 존재를 전파하는 것.
원작대로라면 이 녀석은 이미 몇 차례나 레오 일행 앞에 나타나선, 수수께끼를 하자니, 내기를 하자니 하며 그들을 귀찮게 굴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도깨비들과 그들의 다섯 신에 대해서도 꾸준히 언급해야 했고.
하지만 하지 않았다는 것.
즉, 현재는 레오 일행도 독자들도 도깨비란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 치누아비를 이미 몇 차례나 봤음에도 말이다.
내겐 녀석이 다시금 이 활동을 시작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차후 내가 도깨비들을 데려오는 것에 성공했을 때, 그것이 보다 의미 있는 파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 테니.
또 초반부의 ‘비밀’과 ‘강함’을 담당하던 이 녀석이 점차 힘을 잃고 사라지게 된 것은 도깨비라는 대형 떡밥을 초장부터 꺼내놓고선, 결국 묵히기만 하다 회수하지 못한 까닭이다. 만약 그것이 적당한 때 회수가 된다면?
그제까지 떠들어댄 것만큼, 이 녀석의 비중 또한 올라가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전개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충분히 제 가치를 다할 수 있을 정도로.
“3개월. 최대 3개월이야. 그 안에 돌아올 거야.”
“글쎄요······ 그렇게 말하셔도······.”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잠시 떨어져있다 한들 너는 주걱턱 모험단이야. 알지?”
내 말에 하카가 한순간 코웃음을 쳤다.
“저를 어떻게 믿으시고······ 물론 제가 치누아비 님을 공경하는 건 사실입니다만······ 당신들과 함께 했던 시간 또한 제게는 그저 스쳐가는······.”
“됐고, 너 뭐 없는 거 아니까 괜한 뻘소리 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내 부탁 까먹지 말고. 나중에 와서 잘했나 못했나 일일이 다 확인할 테니까.”
“······.”
이 녀석에겐 이런 제대로 된 소속감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배경을 구축해두지 않으니,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밖에.
그리고 그냥······ 나는 이미 이 녀석을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갔다 와서 도깨비 소굴 애기 많이 해줄게. 어쩌면 더한 걸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도깨비들을 데려오겠다는 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그래도 좀 서프라이즈는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아직 도깨비 신들에 대해서도 듣지 못했는데 말이죠. 이렇게 또 공수표만 날리는 겁니까?”
“아아, 맞다. 지금 좀 빠르게 해줄까? 별 거 없긴 하거든?”
그러자 하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그냥 다음에 만날 때 직접 도깨비의 신들을 보여주시죠. 그 정도는 되어야겠는데요?”
“허······.”
이 놈 이거 서프라이즈보다 더한 걸 바라네.
물론 농담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나는 약간 뜨끔했다.
실제로 그 또한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알지? 나중에 레오 일행이 떠나기 전에 나에 대해 알려주는 거 잊지 마.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이스트랜드로 출발했다고. 임무 해결에 늦는 놈이 지는 거라는 말도 꼭 덧붙여주고.”
“훗, 바라는 것도 많지.”
“믿는다. 잘하고 있으라고. 그리고 우리에 대한 소문은 크게 뻥튀기해도 괜찮아. S급 모험단을 격파했다더라, 무슨 뭐 왕국을 세웠다더라······ 이런 식으로.”
“참나, 그걸 누가 믿습니까? 알아서 할 테니, 그쪽도 알아서 잘 하고 돌아오시죠. 뭐, 안 돌아와도 상관은 없지만. 그럼 이만.”
나는 그러고 홱 몸을 돌리는 하카를 보며 씩 웃었다.
저저 새침데기 같으니라고.
“아! 코코아랑 치누아비한테는 인사 안 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내가 소리쳐 물었음에도, 하카는 뒤돌아서지 않았다.
다만, 녀석의 중얼거림만이 잠시 후 바람을 타고 속삭이듯 들려왔을 뿐이다.
“······어차피 곧 보게 될 텐데요.”
*
사흘 후.
웨스트랜드 남서부의 어느 도시, 네오 아카이브.
뭔가 세련되어 보이는 도시명과는 달리, 무척이나 을씨년스러운 도시였다. 거리는 텅 비었고, 낙엽과 쓰레기, 쉴 새 없이 불어대는 바람만이 한적한 도시를 배회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코코아를 돌아보며 물었다.
“여기 맞지?”
“응.”
얼굴에 긴장감이 뚝뚝 묻어나오는 걸 보니 맞는 것 같았다.
“진짜 도시는 이곳 지하에 건설되어 있어. 생활시설도 그렇고, 가게들도 다. 사람들도 모두 밑에서 생활하고.”
한 마디로, 지하에다 자신만의 노예 왕국을 건설해놨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속이 시꺼먼 놈이 아닐 수 없었다.
“하여간에 지하 좋아하는 조직이네. 그때 너 데려온 카페도 그런 식으로 꾸며놨더니만.”
“근데 세세한 내부 지리는 잘 몰라. 나는 목에 글씨가 새겨지자마자 곧바로 대머리를 따라 나섰으니까. 물론 직접 간다면 길을 찾을 순 있겠지만······.”
“됐어, 네가 뭘 직접 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충분해. 지금도 그 녀석이 네 존재를 느낄 수 있을 거 아냐.”
“그렇긴 하겠지만······ 딱히 신경 쓸 것 같지는 않은데? 어차피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자기 부하들이니까. 그리고 대장은 글씨를 새길 때 말고는 본 적이 없어. 아마 날 기억하지도 못할 걸?”
하기사 코코아가 피르미노의 주시를 받는 대상이었다면, 이곳까지 이렇듯 쉽게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녀석이 당장이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코코아로 하여금 나를 찌르게 만들 수도 있을 테니.
그나저나 대장이라니.
‘······거슬리네.’
한시바삐 코코아를 녀석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야 할 듯했다.
나는 잠시 코코아에게 양해를 구한 뒤, 인근의 한 공터로 향했다.
그러곤 얼른 홀로그램에서 상점 창을 열었다.
[현재 보유 포인트 : 501,773p]
“크······.”
다시 봐도 놀라운 숫자였다.
어제 낮, 챕터17이 종료되면서 들어온 게 무려 30만 포인트가 넘었다.
별다른 부가 포인트가 없었음에도, 인지도만으로 그만큼을 벌었다.
‘수많은 독자들의 열렬한 성원이 잇따랐다’면서 오른 인지도의 수가 자그마치 105,000.
처음엔 보고도 멍해 눈을 비볐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인지도가 아닌 인기도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어째서 이만큼이나 올랐는지도 짐작이 가능했다.
단순히 자격시험 1위에 올랐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독자들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 그 자리를 차지했는지조차 보지 못했으니까.
간단하다. 독자들은 뿔이 난 것이다.
인기투표 1위에 달하는 나의 본선 과정을, 심지어 1위란 성적을 거두기까지 했음에도, 단 한 순간도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더욱이 그런 나를 대뜸 이스트랜드로 보내버리려 하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반응이 궁금해 독자 코멘트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챕터17 시상식 중 등장하다 – 독자 코멘트]
소만살화이팅 – 주걱턱을 돌려내라!!
마티즈 – 작가가 너무 막나가는듯 ㅋ
adfd – 지금 주인공 비중 잡아먹혀서 저러는 거 아님?
아리아리 – 제일 인기 캐릭터 뒷방으로 보내는 작가 수준 잘 봤습니다.
장문충나가 – 작가쉑ㅋㅋㅋ
LWJ – 작가야 사과해라 개연성이 이게 뭐냐!ㅋㅋㅋ
절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코멘트들이었다.
뭐랄까, 대리만족이 되는 느낌이랄까.
‘아아, 시원하다! 더, 더!’
다만,
jh7free – 아예 투톱으로 가려는 거 아님? 시점 나눠서 레오 한 번, 히로 한 번 보여주고.
답이없긴해 – 인정. 라이벌 느낌 찐하게 날듯.
akdtm1 – 하나는 동쪽 먹고, 하나는 서쪽 먹고 하면 볼만하긴 할듯ㅋ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착각하고 있는 독자들도 있었다.
메인시점을 나눠준다? 그럴 리가.
한 번 선을 넘었다고 가차 없이 끊어내려는 작자인데, 퍽이나 그럴까.
하지만 물론, 이러한 여론이 계속해서 형성된다면 혹시 또 모를 일이긴 했다. 쉬어가는 챕터들 사이에 한 번쯤은 기회가 올지도.
‘······에이, 아냐. 망상이다.’
나는 고개를 저어 쓸데없는 희망을 털어냈다.
그런 생각에 빠지기보다는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시간이었다.
나는 상점에서 ‘병대’ 페이지를 켰다.
상점 카테고리 / [캐릭터 설정] – [병대]
※ 터치 시 상세내용 확인 가능
1. 일반 – 200p
2. 건장한 덩치 – 500p
3. 무기소지 일반 – 800p
4. 무술 경력자 – 1,200p
5. 하급 전투요원 – 1,5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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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자······ 요 정도로 상대가 가능하려나?’
▶ [중급 전투요원] 상세 페이지.
-특징
: 일반인 완력의 10배, 각종 전투기술 섭렵. 다룰 수 있는 무기 수 17여종. 단체 작전 수행 가능.
-대여기간
: 6시간 – 1,800p
: 12시간 – 3,000p
: 24시간 – 5,000p
-특이사항
: 묶음 구매 시 할인.
-10인 이상 10%
-100인 이상 20%
-1,000인 이상 30%
‘하여간에 더럽게 비싸네.’
가격이 높으니 판단하기도 더욱 애매했다. 개개인을 묶음으로 사서 할인을 받는 게 나을지, 아니면 아예 조합이 되어 있는 병대 단위로 곧장 구매를 해야 할지.
15. 이름 없는 D급 모험단 – 100,000p
16. 모험가 협회 신설 기동대 – 120,000p
17. 국제평의회 전투조C-1 – 150,0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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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굳이 비싼 돈을 들여가며 병력의 수를 늘리려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부터 부닥쳐야 할 적의 수가 어마어마할 것이기 때문에.
군단장 피르미노의 [서기관의 족쇄]는 설정 상, 부하를 무한히 늘릴 수 있다. 물론 아직 이 녀석이 원작에서 등장할 때만큼 능력이 강한 것도, 또 시간이 많았던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최소 천 명 이상의 적은 있을 것이다. 크누크산 에피소드만 때만 해도, 스스로 오천의 병력이 있다 외쳤던 녀석이니.
“천 명이라······.”
당연지사, 그들 모두를 때려눕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이런 정신지배 쪽 능력은 우두머리를 잡느냐 잡지 못하느냐 싸움이기 때문에, 끌어내 시간만 끌 수 있을 정도면 됐다.
내가 알기로, 이 녀석이 수하의 능력까지 강화시키는 것까진 아니었다. 대충 ‘무술 경력자’에서 ‘하급 전투요원’ 수준의 적이 천여 명 있다고 생각하면 될 듯싶었다.
이들을 유인해낸 뒤, 잠시라도 버티려면 우리 쪽 병력은 얼마나 있어야 할까.
‘중급요원으로 최소······ 이, 삼백 명 정도는 있어야겠지?’
이백 명으로 6시간만 해도 360,000p.
어째 가슴이 벌렁벌렁 거렸다.
나는 주문을 외우듯 되뇌었다.
“아까운 거 아냐. 아까운 거 아니다······.”
이어 크게 심호흡한 뒤, 중급요원으로 일단 백 명을 질렀다.
잠시 후,
-슉. 슉. 슉.
공터 한 복판에 하나둘 사람들이 생성되었다.
“오······.”
다시 봐도 놀라운 광경이었다. 등장하는 모습들이 막 워프게이트를 타고 넘어온 터미네이터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옷은 다 입고 있었지만.
기묘하게도, 중급요원들은 나타나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며 악수를 나누기 시작했다. 새로 배역을 맡은 엑스트라들끼리 인사를 하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때였다.
“놀이공원 때처럼 그 꿈속 병사들을 부르시는 모양이죠?”
“응?”
멀찍이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치누아비였다.
녀석은 흥미로운 듯 소환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딱히 그 방법이나 능력에 대해 묻진 않았다. 사실 그리 신기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는 비단 녀석이 도깨비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이 세계의 인간들 대부분이 그랬다. 딱히 놀라워하지 않는다는 것.
애당초 기본 세계관 자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이 통용되는 곳이다 보니, 갖가지 능력들을 보면서도 그리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매번 실제로 구현하는 내가 가장 놀라곤 했다.
“이번에도 꽤 많이 부르시려는 모양이네요. 그것도······ 제법 강한 병사들로?”
“이번에 적의 수가 좀 되거든. 더 있어야 돼.”
“상대할 적이 몇 명이지요? 지금만 해도 얼추 백은 되는 것 같습니다만. 충분하지 않나요?”
“적은 천이야.”
“그러니까요. 충분하네요.”
“······호오.”
나는 약간의 의아함을 담은 채 녀석을 쳐다봤다. 전투 도깨비 시험에서도 수차례 낙방한 녀석이 웬 건방진 발언?
“지휘관이 훌륭하면 병사의 수는 중요한 게 아닌 법이지요.”
“······맞는 말인데, 내가 전투에 참여할 게 아니라서. 아까 말해줬잖아, 나는 따로 잠입해야 된다고. 또 따로 불러야 돼. 한 두어 명 더 지휘능력이 있는······.”
“왜 참여할 게 아니지요?”
그 순간,
뾰롱-.
내 눈앞에 또 하나의 주걱턱이 나타났다.
녀석은 어디서 났는지 모를, 웬 새빨간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마치 병졸을 지휘하는 장군의 그것과도 같은.
“여기 지휘관 주걱턱이 있는데?”
*
쿵- 쿵- 쿵-.
쿵- 쿵- 쿵-.
“······뭐야?”
요란한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남자는 습관적으로 지상으로 연결된 망원경으로 눈을 갖다 댔다. 그게 도시의 경계를 맡은 남자의 임무였기 때문이다.
곧이어, 남자는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그만 말문을 잃고야 말았다.
“저, 저게 무슨······.”
거대한 지렁이 같은 무언가가 도시 입구를 몸으로 들이받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세 마리 씩이나.
다행히 고장 난 그의 입과는 달리, 그의 손은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땡땡땡-.
땡땡땡-.
습격을 알리는 종소리가 지하도시 전체에 울려 퍼졌다.
“비상, 비상!”
“습격이다!”
“정체는?”
“정체가 뭐야!? 뭐 하는 놈들인데!?”
남자는 자신에게 본 것을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희한하게도 이를 행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거, 거대 지렁이랑······ 주, 주······.”
“지렁이? 지렁이랑 또 뭐!?”
‘저 인간’을 표현할 만한 수식어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희한하게도 그즈음 남자가 떠올린 건 평소엔 잘 쓰지도 않는 단어였다.
그러나 잠시 후, 남자는 그것이 꽤나 정확한 지칭이었다는 걸 확신했다.
“주걱턱! 주걱턱이야!”
웬 빨간 망토를 두른 주걱턱이 거대 지렁이를 탄 채, 백여 명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네오 아카이브를 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