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45
45화 길눈 활용법
***
잘 할 수 있으려나.
나는 지상을 향해 우르르 뛰어 올라가는 피르미노의 부하들을 가만 지켜봤다.
이제껏 뛰어 올라간 녀석들만 대충 헤아려도 천여 명. 헌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저기 뒤늦게 뛰기 시작한 녀석들도 제법 숫자가 많아 보였던 것이다.
적게 잡아도 천 오백여 명.
변수였다. 기존에 상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설마 맞서 싸우려 드는 건 아니겠지.’
치누아비에게 맡긴 임무는 유인이었다. 대충 도시 밖으로 끌어만 내라고.
본래는 이조차 시키지 않으려 했었다. 녀석은 전투에 익숙한 도깨비가 아니었으니까.
헌데,
“맞습니다. 전투 도깨비 시험은 낙방했지요.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전투기술에 관한 것. 전략은 그와는 또 다른 유형의 능력 아니겠습니까?”
“뭐야, 전략 도깨비가 또 따로 있는 거야?”
“아니요.”
“······?”
“하지만 그에 관한 병법서는 누구보다 많이 읽었지요. 자신 있습니다.”
“아하, 책으로 배웠다? 실전은?”
“첫 출전이긴 합니다만, 한 번 맡겨 보시지요.”
희한하리만치 자신감을 보이는 것이었다. 믿고 써보라는 듯 어깨에 힘을 빡 준 상태로.
“근데 뭐 하나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유인하는 거야. 싸우는 게 아니고.”
“어허, 대충 다 알고 있으니까 맡겨 두시라니까요? 어르신, 왜 이러십니까. 나이 먹고 허구한 날 걱정만 하고 자빠진 뒷방 늙은이 마냥.”
“······.”
처음이었다. 이 녀석에게서 ‘본래 도깨비’의 모습을 본 건. 역시나 ‘점잖음’은 중2병 마냥 한 때 찾아든 컨셉에 불과했던 걸까.
역시 안 되겠다 싶어, 물리려던 그때였다.
“저도······ 코코아 양에게 뭔가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그냥 그러고 싶어서 말입니다.”
“······옆에 있어주는 것도 도와주는 거야. 애가 혼자 있어야 하는데······.”
“압니다. 알지만······ 그 글씨를 보니 참을 수가 없더군요.”
치누아비도 코코아의 목 뒤를 본 모양이었다.
그쯤 되니 할 말이 없었다.
“뭐······ 다치지 마라.”
“걱정 붙들어 매시지요. 저 또한 주걱턱이니.”
“······.”
다 좋았는데 마지막에서 깼다.
그러고 보니 얘는 대체 왜 내 모습을 따라하는 거야?’
아직까지도 그에 대해선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내가 겉보기에 좀 강해보이는 느낌이 있긴 했다. 덩치도 크고, 우락부락한데다, 험상궂기까지 했으니. 하지만 굳이 내 외형이 아니더라도, 훨씬 더 무시무시해 보이는 녀석들이 지천에 널려 있지 않나.
‘약간······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형 따라하는 그런 느낌인가?’
솔직히 외형만 놓고 보면 형 보다는 아저씨 쪽이긴 했지만.
흐음.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 내게 나의 비밀을 묻지 않은지도 꽤 되었다. 전에는 내가 능력을 요청하면, 이를 제공해주는 대신 늘 궁금해 하던 것 하나씩을 물었었던 것이다. 자신이 도깨비인 건 어떻게 알았느냐, 다섯 신들의 대해선 누구한테 들었느냐 등등. 물론 내가 제대로 답해준 적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게 우리의 거래조건이었다.
이것이 중단되었다는 건 글쎄······ 아마도 동료. 어느 즈음부터 내가 녀석의 흥미로운 거래 대상에서 동료가 된 것이리라.
순간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소년만화에서 허구한 날 ‘동료’니 ‘친구’니 찾는 이유가 있었다.
소꿉장난 같으면서도, 이게 기분이 꽤 괜찮았다.
그러던 중,
‘······근데 나 뭐하냐.’
퍼뜩 현실이 겹쳐졌다.
나는 고개를 털어 지난 생각들을 날려 보냈다.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다 뛰쳐나간 듯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숨어있던 벽면에서 나와 슬그머니 걸음을 옮겼다.
*
숨죽여 돌아다니길 10분여.
텅 빈 지하도시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형형색색의 건물들이 거리에 쫙 깔려 있었고, 그 사이로 길들이 미로처럼 나 있었다. 마치 전에 빅시티에서 갔던 카페테리아가 오백 배쯤 확대된 느낌이었다. 복잡하기론 그 이상이고.
그즈음에 나는 ‘커다란 건물이 근처에 있었던 것 같다’는 코코아의 조언을 과감히 잊어버리기로 결심했다. 커다란 건물 따윈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고, 비교적 크다 한들 기껏해야 옆 건물의 1.5배가량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녀석의 눈에 뭐든 다 커보였던 것뿐이다. 예닐곱 살 정도밖에 안됐을 즈음이니. 그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나는 다음으로 내 ‘길눈’을 활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홀로 자신 있게 들어온 것도 사실 이것 때문이었다.
암만 생각해도, 내 길눈이 그리 수준이 낮을 수가 없었으니.
그간 항상 의문이었다.
‘길눈’도 히든 특성인데, 어째서 이것만 능력치가 잘 오르지 않는 걸까.
물론, 여타 ‘힘’이나 ‘민첩성’ 따위의 것들과는 그 능력의 유형이나 중요도가 다르긴 했다. 이는 모험가의 세 포지션 중 하나인 길잡이의 클래스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으니.
하지만 그렇다한들, 아무런 발전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이만큼이나 ‘격’이 상승했는데.
당시에 함께 취득했던 ‘체력’이나 ‘민첩성’ 등은 지금 거의 뭐, 괴물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힘’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곰곰이 생각해본 뒤,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내가 지금 이걸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
이건 ‘힘’이나 ‘민첩’ 같이 그냥 자연스럽게 발휘되는 게 아니라, 뭔가 모종의 활용법이 따로 있을 것이다.
하여, 코코아에게 직접 이에 대하여 묻게 된 것이었다.
“그냥 감이 오는 거야?”
“응?”
“너 길 보는 거. 그냥 이쪽으로 가면 나오겠다······ 뭐 이런 감 같은 게 오는 거냐고.”
“감? 아닌데?”
“아니라고?”
”응.”
“여기인 거 같은데······ 하고 가는 게 아니라고?”
“그건 맞아.”
“그게 감 아니야?”
그러자 코코아가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바보 주걱턱. 여기 같은데······ 하는 건 맞지만, 당연히 근거가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길은 보려고 해야 보이고, 찾으려고 해야 찾아져.”
“오······ 근거? 무슨 근거.”
“그냥 보통 길 찾을 때랑 같아. 지도가 있으면 지도를 보고, 냄새가 나면 냄새를 맡고······.”
황당한 소리였다.
“네가 무슨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 그리고 냄새? 킁킁대지도 않더니만.”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대충 주변 환경을 정확히 이해해야 된다는 거야. 그런 다음에 이제 찾아보는 거지. 길이 어디로 났나 하고.”
“······그게 그냥 감으로 때려잡는 거 아니냐?”
“음, 몰라. 그런가?”
“······.”
이윽고, ‘그러니까 그냥 되던데?’ 하고 대충 얼버무리는 저 재능충을 붙잡고 한참을 더 추궁한 끝에, 나는 길을 찾기 위한 다음의 세 가지 과정을 정립할 수 있었다.
1. 목표 설정
-가장 기본이 되는 단계로, 찾고자 하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이었지만, 코코아의 말을 종합해 봤을 때 실제로 나는 이것을 굉장히 소홀히 하고 있었다.
단순히 뭘 하고 싶다, 어디로 가고 싶다, 누구를 만나고 싶다를 떠올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되뇌고, 구체화시키며, 한시도 목표에 대해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길을 잘못 드는 건 태반이 이를 깜박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곧바로 오늘의 목표에 대해 떠올렸다.
당연지사 그 녀석, 피르미노의 위치.
‘아니지, 잠깐. 그 대머리 녀석부터 만나야 하나? 먼저 손봐주고 싶긴 한데.’
잠시간 고민하다 대머리로 바꿨다. 일단 찾기도 좀 더 쉬울 것 같았고, 피르미노와의 결전을 앞두고 확인해야 할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2. 실마리 탐색
-길의 시작 지점을 찾는 단계. 주변 환경에 섞여 있는 ‘특별함과 낯설음’을 발견하는 것이 관건. 코코아는 이를 ‘길이 트이는 단계’라고 표현했다.
“길의······ 실마리? 그게 어떤 건데?”
“그냥 눈에 들어올 거야. 유독 눈에 띄는 뭔가가.”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그건 그때마다 달라. 형태도, 색도, 모양도 다 가지각색이야. 분명한 건 낯설다는 거야. 그리고 중요한 건, 그 다름을 알아봐야 한다는 거지. 그것부터가 시작이야.”
나는 얼른 주변을 둘러봤다.
건물들 사이에 있는 어느 한 골목. 앞과 뒤가 건물 벽면으로 막혀 있으며, 두어 블록만 나가면 커다란 대로로 이어지는 장소.
‘이제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게 보인다······ 뭔가 낯설고 특별한 게······.’
보이지 않았다.
어느 것 하나 다르지 않았다. 그냥 땅이고, 건물이고, 벽이었다.
한참을 그러고 구석구석 살폈으나, 딱히 특별한 무언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긴 아닌 건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살펴볼까 하다 이내 마음을 접었다.
이미 충분히 살폈다. 이 이상 집착했다간 괜히 평범한 걸 특별하게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눈이 대개 그러한 법이니.
3. 이동.
-실마리가 보이지 않으면 즉시 이동하라.
내가 그나마 망설임 없이 옆의 블록으로 옮긴 게 바로 이 때문이었다.
무엇 하나 없다면 거긴 길이 아니다.
코코아는 제아무리 뛰어난 길잡이라도 목표를 정한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단숨에 길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즉시 옮겨야 한다고.
“그럼 어디로 이동해야 되는데?”
“바보 주걱턱. 정해진 게 어디 있어? 느낌 가는 대로 가는 거지.”
“뭐야, 감 맞네. 감으로 찾는 거 맞네.”
“사실 길을 찾기 위해 그 길을 목표로 새로 지정하는 방법도 있긴 한데······.”
“······뭔 소리야?”
“아냐, 그냥 주위부터 훑어. 그게 빨라.”
옆 블록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초조해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곳에 없으면 그 다음으로, 거기에도 없으면 또 그 다음으로. 계속해서 이동하다 보면 언젠가는 보일 것이다.
잠시 후,
“······진짜 다른 게 있네.”
세 블록을 옮겨간 끝에, 나는 무언가 ‘다른 것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땅에 찍혀 있던 발자국이었다.
발자국은 발자국인데, 주변 것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것에서만 희미하게 노란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괜한 걱정이었다. 내 눈은 ‘다름’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었다. 외려 못 알아본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뚜렷했다.
내 ‘길눈’은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발자국을 따라 이동했다.
발자국은 대략 3~4m마다 찍혀 있었으며, 가면 갈수록 그 빛을 더해가고 있었다.
어느 즈음부턴 아주 멀리서도 목적지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발자국이 웬 건물 현관에 떡 하니 찍혀 있었다.
‘저긴가 보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응?”
“뭐지?”
찾고 있던 바로 그 대머리였다.
녀석은 또 한 명의 인물과 함께 있었는데, 그 또한 간부인 듯했다.
“누가 보내서 왔지?”
“소란 피우던 녀석들은 다 처리가 된 건가?”
녀석은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긴, 기억을 한다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일지도.
나는 그에 대답하는 대신, 녀석을 찬찬히 살폈다.
나를 처음으로 겁먹게 했던 녀석.
내게 ‘격’의 차이를 보이며,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던 녀석.
그리고 내게 ‘죽음’을 느끼게 했던 녀석.
그 녀석은 이제 없었다.
“좁밥이네.”
“······뭐?”
“너 이제 좁밥이라고.”
대머리는 이해하지 못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이제까지 우리 코코아 괴롭혔지.”
“코코아······? 코코아?”
이어,
“아, 꼬맹이! 뭐냐, 너 그 꼬맹이랑 아는 사이냐?”
대머리는 내가 앞서 한 말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듯, 코코아를 언급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외려 옆에 있던 녀석이 인상을 쓰며 앞으로 나섰다.
“지금 그게 문제야? 이 녀석 적인 것 같은데? 게다가 건방지고.”
“와하하, 들어보라고. 그 멍청한 꼬맹이가 매주 나한테 얼마를 갖다 바치는 줄 알아? 무려 천만 골드라고, 천만 골드! 그러면 자기가 자유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이런, 이런.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나는 더 듣지 않았다.
곧바로 녀석에게 쇄도했다.
“너는 그 냄새나는 아가리를 좀······.”
순간 옆에 있던 다른 간부가 놀라 막아보려 했지만, 느렸다.
퍼-억.
나는 왼 손으로 녀석의 턱주가리를 날려버린 후, 곧장 대머리 앞에 섰다.
그러곤,
“어떻게 좀 해야 될 것 같은데?”
대머리의 입을 오른손으로 콱 틀어잡았다. 그러곤 곧바로 위로 쑥 들어올렸다.
“커, 커읍······ 읍읍!”
놀란 대머리가 저항하려 했지만, 내 오른손에 담긴 힘을 느끼곤 이내 잠잠해졌다.
그 이상 움직였을 시, 자신의 하관이 어떻게 될지를 짐작했기 때문이리라.
“내가 너부터 찾았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쬐끄마한 꼬맹이가.”
곧이어 대머리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내 주먹 쥔 또 하나의 손에 넘실거리던 살기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아아, 걱정 마. 네 입은 무사할 거야. 미안하다는 말은 해야 될 테니까. 물론, 다른 부위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곧이어,
“끄, 끄아아악!”
건물은 대머리의 비명소리로 가득 찼다.
*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다.
나는 약간은 개운해진 마음으로 건물을 나섰다.
확인은 끝났다.
이 녀석들은 강하지 않다.
처음부터 내가 자신감 있게 들어올 수 있던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훨씬 더 강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추론의 배경은 간단했다.
이 녀석들이 ‘초기부터 생성되어 있던 캐릭터’라는 점.
내 짐작대로라면, 이 녀석들은 꽤나 강하게 설정된 탓에 제때 등장하지 못하고 출연이 한참 뒤로 밀린 조직이다. 그 당시 레오와 키리코만으로는 쉽사리 처리하지 못할 것 같은 상대여서.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나는 더욱더 이 녀석들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이들의 강함은 기껏해야 극 초반의 레오를 기준으로 잡힌 것이었으니까.
물론, 현재 레오가 그때에 비해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뤄낸 것은 아니다. 아직 ‘위기 후 성장’이나 ‘분노 후 성장’ 클리셰가 적용되기 전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만으로도, 또 새로이 강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강해지는 효과를 누린다. 이는 일종의 주인공 보정효과로, 매 위기의 순간마다 주인공이 이길 수 있도록 일종의 ‘개연성 보강작업’이 들어가지는 것이다.
예컨대, 칼 자이드라는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레오는 이미 또 한층 강해졌을 거라는 것.
하지만 이 녀석들은 다르다. 레오처럼 아무 조건 없이 강해질 수 없다. 주인공이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그 레오가 강해진 것보다도, 훨씬 더 강해진 상태였다.
후일 작중에 정식으로 등장하게 될 이 녀석들의 미래조차 현재의 내게 상대가 될까 말까인데, 한참 전인 지금이야 뭐.
나는 이어 다음 상대를 떠올렸다.
대머리도 손봤으니 남은 건 피르미노 하나뿐이었다.
간부 둘이 도시 내에서 쓰러졌으니, 이젠 녀석 또한 또 다른 습격자가 내부에 들어왔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집 나갔던 녀석들이 돌아와 귀찮아지기 전에 얼른 피르미노를 찾아야했다.
나는 곧바로 녀석을 목표 대상으로 잡은 뒤, 길을 훑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응?”
‘다름’은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못 보는 게 이상했다. 바로 아래 있었으니까.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많았으니까.
‘······이게 뭐냐.’
땅바닥엔 셀 수없이 많은 빛나는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향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지상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피르미노는 지금 지상 위에 있다.
순간, 머리에 불똥이 튀었다.
“······치누아비.”
그 순간엔 머리보다 발이 빨리 움직였다.
나는 빛나는 수천 개의 발자국들을 따라 지상을 향해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