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48
48화 말괄량이 길들이기(1)
***
사실 뭔가 더 숨겨진 배경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히 ‘집 나간 말괄량이 왕녀’를 찾아오라는 임무에 ‘A급’이라는 등급이 배정될 리가 없으니까.
또한 이 모험왕 세계에서 이뤄지는 모든 종류의 모험의뢰엔 기본적으로 ‘배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단순히 무거운 짐을 운반해달라는 간단한 의뢰라 할지라도, 난데없이 강도가 출현한다거나, 적대 세력이 이를 빼앗으려 달려든다거나, 하다못해 곰이라도 출현하는 게 이 세계였다.
애당초 이곳에서의 모험가라는 것 자체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보물 따위를 쟁취하는 이들’에 가까웠으니.
딱히 길을 찾을 필요가 없다거나, ‘해독’이 필요 없는 모험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투가 없는 모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물은 하나, 힘을 가진 이들은 여럿. 바로 이것이 모험가 포지션에서 ‘대적자’가 꽃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나는 문 앞에 귀를 갖다 댄 채, 그 너머의 기척을 살폈다.
통로에 있는 건 세 녀석이었다.
그렇게까지 철저한 암살자들은 아닌 듯했다.
그랬다면 저렇듯 말소리를 내지도 않았겠지.
“이쪽 맞아?”
“틀림없어. 아까 시녀가 뛰어 들어가던 걸 봤어.”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잠깐 고민이 됐지만, 답은 금방 나왔다.
개입하여 잡는다.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뒷 세계 녀석들과 부닥치는 게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아무렴 가만히 지켜볼 수만도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내가 모르는 정보를 가진 놈들이기도 하니, 일단 잡고 정체를 파악하는 게 맞을 듯 싶었다.
그렇게 정리한 뒤, 막 움직이려 할 때였다.
“그런데 여긴?”
“몰라. 사람이 있는 것 같긴 하던데. 문소리가 나더라고.”
‘······응?’
당황스러웠다. 갑작스레 녀석들이 우리 선실 쪽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어물쩍거리는 사이, 어느새 나는 녀석들과 문 하나를 두고 마주보게 되었다.
“오히려 이쪽이 왕녀의 거처 아냐? 저기는 좀······.”
“글쎄, 하지만 아까 시녀가 들어간 곳은 분명 저쪽 창고야. 그리고 왕녀는 어디에서든 잘 자니까. 그 천방지축 날뛰는 말 같은 계집이야 짐승이나 다름없지. 물론 외모는 제법 반반하지만.”
“뭐, 확인해보면 되겠지.”
‘어, 설마 들어오나?’
나는 녀석들의 대범한 결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 눈을 파는 것으로 모자라, 유지해야 할 은밀함까지 집어던지다니.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지, 아니면 이런 밤중의 습격이 처음인 건지.
나는 혹시나 싶어 문 뒤로 슬쩍 물러났다.
이어,
끼이익-.
녀석들이 우리의 선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나마 양심은 있었는지, 최대한 숨은 죽인 채였다.
녀석들이 슬쩍 다시 입을 연 건, 잠들어 있던 코코아와 치누아비를 본 다음이었다.
“꼬맹이 둘인데?”
“잘 곳을 찾던 녀석들이 운 좋게 이곳을 발견한 모양이군.”
“하긴, 이리저리 헤맨 게 아니라면 이곳까지 올 수 있었을 리가 없지.”
“어떡할까?”
“소란이 일면 어차피 깰 거야.”
“그러곤 도망치겠지.”
“곤란해지겠군.”
“답은 나왔네.”
더 지켜볼 건 없을 듯했다.
“응, 오답이야.”
나는 그러고 문 뒤편의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녀석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곤 가장 가까이 있던 녀석의 턱을 냅다 후려쳤다.
풀썩-.
녀석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안녕?”
······.
남은 둘은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듯 보였다.
뭐, 나로선 다행스런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나 역시도 저 두 꼬맹이가 깨는 건 원치 않았으니까.
나는 곧바로 고유능력을 발동시켰다.
[서기관의 족쇄]이어 오른손에 생겨난 철필을 재빨리 한 녀석의 팔에다 꽂았다.
“억!? 크, 크윽······.”
“조용. 애들 깨겠어. 그건 원치 않잖아? 일단 나가자고.”
그러곤 철필이 꽂힌 녀석의 입을 다른 한 손으로 틀어막은 채, 조용히 밖으로 끌고 나갔다.
물론 내 시선은 남은 나머지 한 녀석에게 줄곧 고정된 상태였다.
이어, 당황한 채 머뭇거리던 나머지 한 녀석도 슬금슬금 나를 따라 나왔다.
이후는 간단했다.
나는 먼저 철필을 꽂아둔 녀석에게 ‘1’을, 멍청하니 옆에 서 있던 녀석에겐 ‘2’라는 글씨를 새겨주었다.
굳이 ‘멍청한 녀석’이니, ‘얼간이 암살자’니 하고 적지 않은 이유는, 물론 내 자비심의 결과였다.
“이제 조용히 다시 들어가서 쓰러진 놈도 끌고 와. 소리 내면 알지?”
두 녀석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잠시 후, 내 눈앞에 ‘1’, ‘2’, 그리고 한쪽 뺨이 퉁퉁 부어 오른 ‘3’까지 차례로 쫙 줄지어 섰다.
나는 세 녀석을 이끌고 갑판 위로 나왔다.
“자, 이제 털어놔 봐. 니들 뭐야?”
이어 녀석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꽤나 놀라운 것이었다.
세 사람은 모두 두골 제국 출신의 암살자로, 신원을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고용되었고, 배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목표대상은 마이닌 왕국의 테르미스 왕녀이며, 암살기한은 출항 후 3일 이내. 그때까지 왕녀를 암살하지 못할 시, 거래 대금을 받는 대신 목숨 값을 내놓아야 될 거란 말을 들었다고.
“3일 이내? 항해 기간은 최소 열흘일 텐데?”
“대충 눈치 보니 저희 말고도 꽤 많은 녀석들이 고용된 듯합니다. 암살자들도 각자의 방식이 존재하는 법이니, 서로 충돌하지 않게끔 나눈 것이겠죠.”
“그래?”
보아하니, 대충 실력 순으로 차례가 정해진 듯했다. 암만 생각해도 이 녀석들보다 허접한 놈들은 없을 것 같았으니.
나는 이어 줄곧 궁금해 하던 것을 물었다.
“혹시 너희······ 왕녀를 설득하러 온 두골 제국 사람들과도 관련이 있나?”
그러자 ‘1’과 ‘2’가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어떤 무리를 말씀하시는지는 압니다. 저희도 시녀의 뒤를 밟았으니까요. 하지만 모르는 이들이었습니다.”
역시나.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시녀에게서 두골 제국의 무리가 본인을 따라 승선했다는 말을 들었을 당시, 왕녀는 무척이나 귀찮아하는 기색을 보이면서도, 그들을 증오한다거나 죽이려는 마음을 품은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에게서 공격을 당한 게 아니라는 소리였다.
정리하자면, 현재 이 배 안엔 두골 제국에서 온 두 개의 무리가 있다.
1. 순수하게 1황자의 명을 받고
결혼을 설득하러 온 무리
2. 결혼을 무마시키기 위해, 아예
왕녀를 제거하려는 암살자 무리.
나는 녀석들을 쥐어짜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얻어냈다.
“현재 상황은 어떻지? 왕녀와의 혼약에 대한 두골 제국의 분위기.”
“혼약을 한다는 것 자체엔 문제가 없지만, 이를 왕녀가 거부한데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괘씸해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전쟁까지 일으키려고 한다?”
“약간 그런 분위기가 존재하긴 합니다. 우리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저들을 함락할 수 있는 땅이라 여기고 있었으니까요. 그저 옛 대의 인연을 지켜왔던 것뿐이지.”
“그럼 왕녀가 혼약을 받아들이면 전쟁은 없던 일이 되는 건가?”
“뭐······ 그야 그렇지 않을까요?”
“왕녀가 죽으면?”
“글쎄요······ 그것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요? 싸움의 원인이 사라졌으니.”
답답한 소리였다.
“그럼 왕녀를 죽인 뒤 그 사실을 숨긴다면? 왕녀가 도망친 척, 혹은 왕국에서 왕녀를 숨겨주고 있는 척 여론 형성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제야,
“아······.”
“······으음.”
이 녀석들도 깨달은 듯했다.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 것 같았다.
연계된 의뢰가 있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역시나 간단한 사람 찾기로 끝나는 의뢰가 아니었던 것이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저 왕녀를 길들여 제국으로 시집보내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존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제국의 암살자들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기까지 해야 했다.
‘뭐, 죄다 이 녀석들 정도라면 딱히 문제될 것도 없긴 하겠지만.’
그 즈음엔 이들 또한 아는 게 바닥이 난 듯했다.
“이제 더 아는 거 없어? 그녀와 관련해서.”
“예. 저는 이 정도까지.”
“저도······.”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뭐, 죄송할 것까지야.”
이어, 나는 쿨하게 녀석들의 등을 떠밀었다.
“자, 그럼 이제 하던 거 마저 하러 가.”
“옙?”
“······무슨?”
다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뭘 물어? 왕녀 암살하러 온 거 아냐? 하러 가라고. 방해 안 할 테니까.”
“······?”
“······?”
이유야 별 게 없었다.
왕녀의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한편, 그녀의 강함을 한 번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어차피 이 녀석들은 그녀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을 테니.
원작에서의 그녀는 네임드긴 하나, 따로 개인 전투씬이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대규모의 병력을 지휘하는 와중에, 열댓 명의 병사들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장면이 있는 정도?
하여, 이번 기회에 그녀의 일신상의 무력 수준을 조금이나마 파악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알고 모르는 것에 따라, 세울 수 있는 대처 방안의 폭이 달라지는 법이니.
그리고 또 하나.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었다는 걸 알면, 저 뭣 같은 짐승우리에서도 좀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어서.
남들 눈에 띄지 않으려 기피 장소를 찾는 것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저기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정신세계였다.
“자, 출발.”
“어······ 옙.”
“그, 뭐······ 제대로 하라는 거 맞죠?”
“그럼. 제대로 해야지.”
“혹시 왕녀의 편이시라거나······.”
“아냐, 아냐. 편하게 해.”
“아니, 아무래도 오늘은 그냥 돌아가고 내일을 기약하는 편이······.”
“에이, 어디 가. 여기까지 왔는데. 빼지 말고 확실히 해. 뒤지기 싫으면.”
“······.”
결국 녀석들은 내 명령에 따라 왕녀의 거처로 머뭇머뭇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녀석들의 용기를 북돋아 줄 겸, 친히 문까지 열어주었다.
“잘 해봐. 힘이 센 여자니까 조심하고.”
곧이어 녀석들이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갔을 즈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아주 살짝만 더 개입했다.
“습격이야!”
*
다음 날 아침.
항해 2일차.
나는 멀찍이서 두건을 쓴 채 갑판 위를 서성거리고 있는 왕녀를 보며 말했다.
“출동.”
그러자,
“아직.”
“섣부른 듯 보입니다.”
둘이 반대했다.
“뭐, 왜?”
“가만히 안 있잖아. 아직 마음에 안 드는 거야, 휴식을 취할 장소가.”
“자리를 잡은 뒤 다가가도 늦지 않을 듯합니다.”
“아니, 너희가 가서 이끌어주면 되잖아. 경치 좋은 곳 있다고.”
“별로.”
“그것보다는 편안한 상태일 때 다가가는 게 좀 더 현명한 선택이지 않을까요? 저 분이 현재 도망 중이라는 상태임을 고려한다면 말이지요.”
참나, 똑똑이들 납셨네.
“그래, 알아서들 해. 갔다 온다.”
“잘하고 와.”
“조심히 다녀오시길.”
이어 나는 코코아와 치누아비를 내버려 둔 채, 곧장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따로 볼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두 패로 나뉘어 움직이기로 한 상태였다.
코코아와 치누아비 쪽 하나, 그리고 나 하나.
둘이 왕녀와 친해지고 있을 동안, 나는 왕녀를 암살하려는 무리를 쫓으려는 계획이었다. 아무래도 저 어린 두 녀석들이라면 왕녀의 경계심을 풀고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나 또한 미소년의 모습으로 변신할 순 있었지만, 기껏해야 보름에 한 번이기에 별 의미가 없었다.
이윽고, 나는 한 선실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에 누운 채 골골대고 있는 세 남자가 보였다.
어제 왕녀에게 맞고 죽다 돌아온 ‘1’, ‘2’, ‘3’이었다.
심지어 갑판을 넘어 바다까지 날아가던 걸 내가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2’와 ‘3’은 이곳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이, 정신 좀 차려보지?”
내가 말을 꺼내자, 그제야 녀석들이 알은 체를 했다.
“으으······ 오셨습니까?”
“지금 몸 상태가 말이 아닌지라······.”
“암살 명령만은 제발······.”
웃긴 녀석들이었다. 물론 내가 부추긴 면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지들이 먼저 왕녀를 습격하러 왔던 게 아닌가.
“됐고, 뭐 하나 물어보려고.”
그제야 녀석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내 쪽으로 몸을 틀었다.
“뭐든지 물어보시죠.”
“너희 암살 총책 정체. 체형과 생김새만이라도 좋다.”
정체를 알고 있을 거란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어차피 신원을 숨겼을 테니.
하지만 그래도 접촉은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비밀리에 암살을 의뢰한 이들에겐 왕녀의 생사 뿐 아니라, 암살자들의 생사 또한 중요할 수밖에 없으니까.
헌데,
“모, 모르는데요?”
“저도.”
“저 또한······.”
대답들이 마땅치가 않았다.
“왜 몰라? 여기서 만난 적 없어?”
그러자 다들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것이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서기관의 족쇄]에 걸린 이들은 내게 거짓을 고할 수 없으니.
이후 이것저것을 더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들은 죄다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모른다, 본 적 없다, 그쪽에서 알아서 연락을 주기로 했다.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어느 정도 실마리는 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녀석들에게서 정보를 얻는 건 일단 포기해야 할 듯 싶었다.
“별 수 없나?”
나는 선실을 나선 뒤, 곧장 길눈을 활용한 탐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다름’은 발견할 수 없었다.
‘찾아야 할 대상’의 정체가 모호해 목표 설정 자체가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직 ‘다름’에 대한 경험이 일천해서인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죄다 수상쩍어 보였던 것이다.
혹 뭐라도 발견될까 싶어, 배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지만 유의미한 소득을 얻진 못했다.
“하······ 돌겠네.”
그러고 한두 시간을 돌아다닌 후, 나는 결단을 내렸다.
이건 아니다. 점조직으로 되어 있는 암살자들을 하나씩 쫓아 소탕해보겠다는 건 미련한 짓이다.
새로운 수를 구해야 했다. 암살자들을 추적할 수 없다면, 오는 녀석들을 되받아치기라도 해야 한다.
문제는 당장 왕녀의 곁에 있기 위한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애들 옆에 붙을까?’
아냐.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괜히 역효과만 날 게 틀림없었다.
어제 ‘1’, ‘2’, ‘3’이 두들겨 맞는 걸 보곤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저 여자, 지금 청혼 받은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있는 상태다.
이 시점에 웬 남자가 이유도 없이 본인에게 다가온다? 그런데 뭔가 껄떡대는 느낌이다? 곧장 두들겨 팬 뒤, 배 밖으로 던지려 할 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암살단에 대한 경계보다도 저 여자를 설득해 시집을 보내야 한다는 게 훨씬 더 막막하게 느껴졌다. 무력과 성질머리, 어느 쪽이 더 거센지 쉬이 판단되지 않을 정도였으니.
나는 다시금 고민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옆에서 지켜주면서, 설득을 시도할 수가 있을까.
어떤 포지션을 잡아야 그게 가능할까.
그렇게 한참을 머리를 싸매고 있던 즈음,
“아!”
한순간 아주 기발한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 번쩍 떠올랐다.
곁에 머물며 암살단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는 동시에, 저 괄괄한 여자의 성질머리를 팍 죽일 수 있는 방법.
하나 있었다.
습격자로 위장해 그녀를 납치해 버리는 것.
곁에 있을 수 있고, 성질머리도 좀 고쳐주고, 저 냄새나는 짐승우리에서도 빼내고.
그야말로 일석삼조였다.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나중에 변명하면 되니까.’
관계야 좀 나빠질 수 있겠지만······ 어차피 그리 오래 볼 사이도 아니었다.
그리고 훗날 그녀가 정식으로 챕터에 등장하게 될 시점에는 나는 이미 미소년의 모습으로 변한 뒤일 테니까 뒤끝을 염려할 필요도 없었고.
“오케이, 지금부터 나쁜 남자 모드로 간다.”
순간, 나도 모르게 씩 웃음이 나왔다.
이상하게 괜히 설레는 기분이랄까.
시작이 이쪽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나 약간 악당 체질인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