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49
49화 말괄량이 길들이기(2)
***
선실로 돌아가니 이미 코코아와 치누아비가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코코아가 대뜸 한 마디를 내뱉었다.
“재수 없어.”
“엉?”
“그 여자. 재수 없어.”
치누아비를 쳐다보니, 녀석이 슬쩍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몇 마디 해보지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경계심이 상당한 분이시더군요.”
“왜, 뭐라고 하던데?”
“그냥 꺼지라고.”
코코아의 말을 치누아비가 수정해줬다.
“별 말 안했습니다. 그냥 슬쩍 한 번 쳐다본 뒤, 휙 가버린 게 전부입니다.”
“웬 꼬맹이들? 이러고 콧방귀 뀌고 가긴 했어. 이건 정말이야.”
흐음.
어린 아이들이라면 그래도 좀 접근이 용이할까 싶었는데,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그 여자가 꼬맹이들과 어울리는 모습 또한 다소 어색한 그림이긴 했다.
“그래 뭐. 차라리 잘됐네. 친해질 필요 없어.”
“응? 왜?”
나는 조금 전 구상한 나의 환상적인 계획에 대해 말해줬다.
그러자,
“좋아! 대찬성이야!”
“하······ 주걱턱 형님. 그게 무슨 말이나 되는······.”
반응이 둘로 갈렸다.
“얼른 납치해버리자. 하는 김에 몇 대 쥐어박아 버리고.”
“형님······ 암만 그래도 일국의 왕녀입니다. 더군다나 두골 제국과 관련이 있는 분 아닙니까. 두골 제국은 심지어 저희 도깨비 소굴에까지 그 이름이 알려진······.”
“그러니까 더더욱 서둘러야지. 그 두골 제국의 암살자들이 그녀를 노리고 있으니까. 말이 납치하자는 거지, 실제론 보호라니까?”
“맞아, 바보 도깨비 같으니라고.”
“······그렇다한들 괜히 그분의 미움만 사게 되지 않을까요? 그냥 옆에 머물며 보호하는 것만으로도······.”
“그런 식으론 그 여자의 성질머리를 못 고치지.”
“······예?”
“됐고, 코코아. 지금 왕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어?”
“문제없어. 아직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을 테니까.”
“오케이. 바로 움직이자.”
이윽고, 우리는 코코아의 인도에 따라 갑판 위로 나왔다.
왕녀는 생각보다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딱히 숨어 있지도 않았고, 두건을 쓰고 있다는 걸 제외하면 딱히 모습을 감추려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어라?”
“······일행이 있네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기까지 했다.
살짝 당혹스러움이 밀려들 무렵,
“······아!”
저게 그리 이상한 광경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함께 있는 이들의 정체에 대해선 쉽게 추론이 가능했다.
두골 제국에서 왕녀를 설득하기 위해 파견된 자들.
다시 말해, 이제껏 왕녀를 귀찮게 따라다니던 자들.
그들이 분명했다. 이외엔 달리 왕녀가 대화를 나눌 만한 상대가 없을 테니.
짐작하건대, 어젯밤 암살자들의 습격 때문에 저들을 찾아간 듯 싶었다.
“잠깐만 좀 보고 올게.”
“응? 그럼 나도.”
“넌 됐어. 치누아비랑 같이 납치하기 좋은 장소나 물색하고 있어. 거기다가 도깨비 은막치고 작업할 거니까.”
“그냥 거처로 돌아왔을 때 덮치면 되는 거 아냐?”
“거기는 두 번 다시 들어갈 생각 없어. 제압하는 와중에 이것저것 튀고 묻을 거 생각하면······ 어우. 대충 돌아가는 길목 근처로 잡아보던가.”
이어, 나는 조심스레 왕녀 쪽으로 접근했다.
왕녀와 함께 있는 이들은 총 다섯이었다.
노인이 하나, 젊은 남자가 셋, 그리고 약간 떨어진 채 주위를 경계하는 여자가 하나.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을 자세히 살폈다.
‘전투력이 있는 건······ 노인을 제외한 전부인가?’
물론 확실하진 않았다. 차고 있는 장비와 풍기는 분위기, 걸음걸이, 드러난 신체 밸런스 따위를 보고 추정한 것에 불과했으니. 고유능력의 보유 여부 또한 모르고.
‘딱히 위협이 될 만한 녀석은 없는 듯 보이긴 한데······.’
하지만 그렇다고 쉬이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만약 저들이 고유능력을 지닌 강자들이라면, 그 능력이 무엇이건 간에 경계심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능력자 간 대결에선 절대적 우위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계의 기초 상식이었다.
내가 이들의 전력을 분석하려 한 이유는 간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이 될 것이기 때문에.
현재 왕녀의 입장에서 저들은 적이 아니다. 귀찮고 싫을 순 있겠지만, 목숨을 위협해 오진 않으니까. 외려 암살자들에게서 왕녀를 보호하려 들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는 곧, 내가 왕녀를 납치한 순간부터 저들은 나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왕녀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적.
자연히 신경 써 살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견적을 내본 결과, 큰 무리는 없을 거라 판단했다.
오히려 현재까진 왕녀가 가장 문제가 되는 수준이라 봐도 무방했다. 어젯밤 목격한 저 여자의 힘은 정말이지 생각 이상이었으니까.
물론, 나보단 못하지만.
“흐음.”
딱히 더 살필 건 없을 듯했다.
나는 재빨리 코코아와 치누아비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돌렸다.
슬슬 준비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
테르미스는 조금 전 대화를 곱씹으며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노인네.”
도움을 청하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었다.
혹 습격자들에 대한 정보를 좀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찾아간 것이었다. 괜히 자는 데 방해받는 것보다야 직접 가 손봐주는 편이 훨씬 나을 테니까. 그리고 모른다한들, 상관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런데,
“······혼내고 지랄이야.”
저 따위 반응이라니.
테르미스의 머릿속으로 아까의 상황이 다시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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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들 짓이야?”
저들은 다짜고짜 등장한 자신을 보곤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어떤?”
“무슨 일이신지?”
테르미스는 새벽에 습격을 받은 사실에 대해 얘기했다. 말투로 보아하니, 두골 제국 출신 같았다고.
“물론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들이었지만······ 기분이 나빠서 말이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가 어찌······.”
“당신들이 했다는 게 아니라, 짐작 가는 놈들 없냐고. 혹시 있으면 내게 정보를 넘······.”
그때였다.
“테르미스 왕녀님,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겝니까.”
무리 뒤쪽에 있던 노인이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래, 저 노인네가 웬일로 가만 듣고 있다고 했다.
“습격을 받으셨다고요? 이건 결코 대충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암살단이 움직였다는 얘기지 않습니까. 그들은 오래 전부터 따라다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배를 작업 장소로 잡은 것이고요.”
“아아, 나도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혹 아는 정보라도 있으면 넘겨달라고 말하는 거잖아. 대비를 하려고.”
“정보요? 대비요?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테르미스 왕녀님께서 암살자들의 정보를 알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저희 곁에 머무르시면서 보호를 받으시면 되니까요.”
“······하.”
“항해가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저희와 함께 지내시는 걸로 합지요.
결혼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을 테니.”
저 노인네는 늘 제멋대로 주장하고, 그게 당연하다는 듯 결론을 짓는 버릇이 있었다.
제1황자의 스승.
왕사(王師) 바타르.
자신이 끔찍이도 싫어하는 노인네였다.
“됐어. 당신들 보호 따윈 받을 필요도, 받을 생각도 없으니까.”
“왕녀님, 다시 한 번 재고해 주시지요. 그런 식의 행동은······.”
“애초에 나는 당신들도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뭘 어떻게 믿으란 거야? 똑같은 제국 놈들인데. 그리고 한 가지 더. 제발 부탁인데, 그만 좀 쫓아오지? 당신들도 똑같이 죽여 버리고 싶거든?”
그러고 쏴 붙인 뒤, 막 돌아서려 할 즈음이었다.
“왜 저들이 그대를 죽이려 들까요!”
서릿발 같은 음성에 당황해 돌아보니, 노인 바타르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저이가 저토록 흥분을 하다니.
“간단하지 않습니까. 그대의 죽음이 곧 전쟁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암살자들이 그대를 죽인 뒤, 그 시체를 감추면? 제국은 그대의 실종을 왕국의 탓으로 돌리며, 전쟁을 선포하겠지요. 왕국은요? 그들 또한 왕녀님의 원한을 갚겠다며 이에 응하겠죠. 더러운 제국 놈들이 마침내 야욕을 드러냈다면서.”
“그, 그런 일은······.”
“자꾸 어린애처럼 구실 생각이십니까!”
“······치이.”
결국 제대로 대꾸한 번 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자리를 뜨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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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어쩌다 일이 이렇게까지 돼버린 걸까.
테르미스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의 상황은 한 마디로 쉽게 정의할 수 있었다.
꼬일 대로 꼬였다.
본래 테르미스에게 두골 제국은 증오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었지.
어렸을 적부터 ‘두골 제국의 황가에서 사내로 태어났어야 할 아이’란 말과 함께, 그쪽 황제들이 이룩한 업적들을 밥 먹듯이 듣고 있다 보면, 없던 동경심도 자연히 생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성정 자체도 워낙에 괄괄하여, 또래의 남자애들이 도저히 배겨내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 때문이었을까.
놀랍게도, 일곱 살이 될 무렵부터 테르미스는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두골 제국 아이들의 환경을 그대로 흉내 내 따라했다.
말과 함께 놀고, 말과 함께 먹고, 말과 함께 자고.
침실보다는 말의 우리에서 자는 날이 더 많았고, 궁중 연회에 참석하는 시간보다 말과 함께 초원을 달리는 시간이 수십 배는 더 많을 정도였다.
왕실에서도 테르미스의 행동을 크게 제지하지는 않았다.
애당초 정형화된 공주의 역할을 기대하기엔 너무나도 ‘다르게’ 태어난 데다, 어차피 연합정부의 기조 아래 국가 간 관계가 나날이 개선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테르미스의 꿈인 ‘두골 제국의 대장군’을 그저 우스갯소리로만 여길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무력을 숭상하는 두골 제국에서 마이닌 왕가의 공주가 대장군이 된다면, 오랫동안 이어져온 휴전 상태를 끝내고 새로이 정전협정의 서두를 마련할 계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여, 알게 모르게 지원까지 해줄 정도였으니.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일이 터져버렸던 것이다.
두골 제국의 1황자가 교류를 목적으로 마이닌 왕국에 방문한 날이었다.
본래는 연회에 참석할 계획이 전혀 없었다. 귀빈을 접대하는 건 자신의 몫이 아니었고, ‘공주’란 이유로 참석을 강요받는 일 또한 이미 아홉 살 무렵 졸업한 이후였으니.
다만, 제국의 전설적인 장군 ‘몽’이 1황자와 함께 방문했다는 소리를 들은 게 화근이었다.
그렇게 그의 모습만 잠깐 보고 가겠다는 마음으로 참석한 연회에서,
“저 여인은 누구지?”
하필이면 그 약골 환자 녀석이 자신을 지목했던 것이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그때를 떠올리자 다시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이후론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었다.
자꾸만 쫓아다니는 1황자 녀석을 피해 도망치듯 궁궐을 떠나야 했고, 수시로 자신을 설득하러 오는 왕가 쪽 대신들과 제국 쪽 협상자들을 목이 터져라 쫓아내야 했으며, 끝내 말을 타고 도성을 빠져 나오기까지 해야 했다.
그러곤 이제 대충 잠잠해질 줄 알았더니, 또 어떻게 알고 따라붙어선 대뜸 한다는 말이 자신 때문에 전쟁이 날 거라니.
“하······.”
처음으로 겪어보는 무력함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뭐든 부수지 못할 게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테르미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피가 통하지 않은 주먹이 금세 하얗게 변했다.
“······어젯밤이 좋았는데.”
테르미스는 새벽에 찾아왔던 습격자들을 떠올렸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활력이 잠시나마 샘솟은 시간이었다.
세 명 밖에 없다는 게 아쉬웠다. 좀 더 있었더라면, 이 응어리진 마음을 조금은 더 풀 수 있었을 텐데.
“암살단이라······.”
테르미스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위험하기는 개뿔. 속에서 끓기만 하던 분노를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아무나 와라, 아무나. 완전히 짓뭉개버릴 테니까.
그러고 중얼거리며 걷고 있을 때였다.
문득, 정면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테르미스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거기, 웬 커다란 덩치 하나가 자신을 보며 가만 서 있었다.
전형적인 삼류악당처럼 생긴 녀석이었다.
몹시도 심술궂은 얼굴에, 가슴팍에 닿을 듯 삐죽 나온 주걱턱이라니.
심지어,
“흐흐, 거기 이쁜이. 잠깐 시간 있어? 우리 좋은 데 가서 얘기나 좀 할까?”
저토록 판에 박힌 행동과 대사까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흐흐, 곱게 간다면 다치게 하지는 않······.”
“그래, 가. 시간 많으니까.”
“응?”
“시간 많다고.”
약간 당황해 하는 눈치였다.
“어······ 그래?”
테르미스는 뜻밖의 행운에 감사했다. 화풀이 대상이 제 발로 찾아와주다니.
이 멍청한 녀석이 암살자 같지는 않았지만, 사실 뭐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지금 당장은 분노를 달래줄 희생양이 필요할 뿐이었으니.
녀석을 따라 간 공간은 의외로 쾌적한 한 창고였다. 음침한 곳으로 안내할 줄 알았더니, 생각 외로 깔끔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흐흐, 지금부터 내 말만 잘 들으면 딱히 문제는 없을······.”
“됐고, 너 뿐이야?”
“응?”
“혼자냐고.”
주걱턱이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 일단은 그렇긴 한데.”
“하, 재미없게.”
테르미스는 이어 소매를 걷어 올렸다.
“잘됐다, 기분도 꿀꿀했는데. 일단 너 좀 맞자. 맞을 짓 한 거 맞지? 너 나 납치한 거잖아. 그렇지?”
녀석의 표정이 더욱더 멍청하게 변했다.
“······어, 그렇긴 한데······.”
더 들을 것도 없었다.
테르미스는 곧바로 녀석을 향해 쇄도했다.
‘한 번에 기절시키면 안 되니까 약간 힘 조절을 해서······.’
그러곤 적당히 힘을 실어 녀석의 턱주가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런데,
착!
“······어?”
주먹이 잡혔다.
고작해야 삼류 악당으로밖엔 보이지 않는 주걱턱의 손아귀에 자신의 주먹이 고이 들어가 있었다.
어찌나 당황했던지, 테르미스는 자신도 모르게 발을 멈췄다.
“뭐야, 갑자기 공격은.”
“······.”
진정하자.
생각보다 숨겨둔 한 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테르미스는 방심한 자신을 책망하며, 팔에다 힘을 꽉 주었다. 그러곤 힘껏 당겼다.
헌데,
“······뭐, 뭐야.”
팔이, 팔이 안 움직였다.
마치 단단한 암석에 팔이 끼인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고작해야 그 정도가 아니었다. 이건, 이건······ 그냥 말이 안됐다.
순간 테르미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 주걱턱, 괴물이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아니, 아직 준비한 대사 안 끝났다고. 잘 들어. 말만 잘 들으면 다치지 않을 거야. 어? 나 그렇게 나쁜 놈 아니라고.”
그러곤 녀석이 계속해서 뭐라 뭐라 떠드는 것 같았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애당초 이 상황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
경악에 찬 테르미스는 그저 한 마디 말을 내뱉을 수 있었을 뿐이다.
“너, 너······ 대, 대체 뭐하는 놈이야!”
그러자 주걱턱이 씩 웃었다.
그제야 제대로 바라본 녀석의 얼굴은 삼류악당의 그것이 아니었다. 아니 얼굴은 그렇다 쳐도, 눈동자에 든 빛은 분명 어디에나 있는 불량배의 그것이 아니었다.
포식자.
“응? 뭐야, 알고 있던 거 아니었어?”
테르미스는 이어 자신의 얼굴을 덮쳐오는 거대한 손바닥에 대한 기억을 끝으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나 납치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