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54
54화 너였냐?
***
그날 밤.
화이트 레인 vip전용 연회 홀.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채 무언가를 꾸미고 있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홀은 이미 꽤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모인 면면들을 보니 단순히 vip들 뿐 아니라 그들의 수행원들, 술과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들, 공연을 준비하는 이들 등 연회 자체를 위해 준비된 인원들도 많이 들어와 있었다.
또 일부 1등칸 승객들에게도 개방된 듯, 과하게 화려한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채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이들도 눈에 들어왔다.
딱히 출입제한을 엄격히 실시하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와······ 전면이 다 뚫렸네?”
“정확히는, 유리창으로 바뀐 듯합니다.”
홀 전체를 둘러싸고 있던 벽면이 어느새 몽땅 투명한 창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달빛 아래 밤바다를 구경하라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를 통해 최상층의 연회가 전 승객에게 공개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당장은 아래 갑판에서도 나름의 선상파티가 진행 중인 상태라 그리 큰 주목을 끄는 듯 보이진 않았지만.
그러고 주변을 둘러보며, 슬슬 거닐고 있을 즈음이었다.
“오셨군요! 주걱턱 모험단.”
어디선가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예의 그 흑발 청년이었다.
본인을 두골 제국의 4황자라 소개했던 녀석.
“네르구이입니다. 혹시나 까먹으셨을까봐.”
“아아.”
“이리로 오시지요.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앞장서 걷는 녀석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뭐하는 인간일까, 이 녀석.’
본래는 별 생각이 없었으나, 다시 보니 굉장히 수상한 인간이었다.
제국의 4황자라지 않는가. 현 황제의 넷째 아들.
그런데 녀석은 어째선지 처음부터 줄곧, 우리의 안내역을 도맡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갓 정식 모험가가 된 햇병아리 모험단을 말이다. 그것도 마치 당연한 일을 하는 듯, 불편해 하는 기색 하나 없이.
물론 저 녀석의 현재 제국 내 위치라든가 권력구도, 황제 승계 방식 따위에 무지한 까닭에, 이곳 vip실에서의 녀석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는 게 사실이긴 했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욱 쩌리 취급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황제의 아들이 건방지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녀석은 전형적인 엑스트라에서 꽤나 벗어난 캐릭터 유형이긴 했다.
적어도 당장 다음 행동이 예측 가능한 캐릭터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녀석의 외모.
흑발에, 작은 눈, 약간 웃는 상. 잘생기지도 않고 못생기지도 않은, 그냥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
실제로 녀석이 스스로에 대해 밝히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녀석이 우리를 안내하는 상황을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같은 vip긴 했지만, 신분이 그렇게까지 고귀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유야 간단하다. 녀석보다 무난하게 생긴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으니.
이 평범한 얼굴이란 건, 본래는 비중 없는 캐릭터의 전형적인 특징이 맞다. 한두 번 나오고 말 엑스트라의 외모에 굳이 공들일 이유는 없으니까.
다만 한 가지 예외인 경우가 있는데, 바로 신분이 높은 녀석이 그럴 때이다.
신분이 높다는 건 당연지사 등장확률도 높아진다는 말인데, 그런 녀석이 무난하게 생겼다? 이는 일부러 그렇게 의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드러나선 안 되는 비밀을 감추기 위한 용도로.
즉, 저 녀석 또한 그럴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이를테면, 녀석이 바로 그 ‘흑막’이라거나.
실제로 흑막의 외형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1. 딱 봐도 흑막인 유형.
2. 전혀 아닐 것처럼 생긴 녀석이 알고 보니 흑막인 유형.
‘높은 신분의 무난한 얼굴’이 바로 이 두 번째 유형에 속하는 것이다.
다만 이 모험왕에선 전자의 경우가 월등히 많았기에, 나도 모르게 간과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다시 보니 웃는 모습이 약간 음흉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이 녀석이 다소 신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또 외모가 무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곧장 의심의 눈초리를 들이댈 생각은 없었다. 정말로 별 의도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다만,
‘경계는 해야 하겠지.’
눈은 떼지 않는 걸로.
때마침,
“아, 저기들 모여 계시네요.”
녀석의 걸음이 분수대 옆 정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멈췄다.
정원에는 이제 조금 익숙해진 얼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S급 모험가라는 빨강머리와 전형적인 흑막 외형의 타마르라는 중년인, 그리고 그 외에 다른 vip들까지.
그때였다.
“바타르?”
왕녀가 한 곳을 보며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거기 그 자가 있었다. 두골 제국에서 왕녀를 설득하기 위해 내려왔다는 노인.
“타마르 대신께서 초청해 주셔서 오게 되었습니다. 왕녀님을 뵐 수 있다 하여.”
“아아······.”
“함께 다니던 시녀는 저희가 잘 데리고 있습니다. 왕녀님이 사라진 직후, 헤매기를 반복하다 결국 저희를 찾아왔더군요.”
“······고마워.”
“고마우실 필요 없습니다. 이를 위해 왕녀님을 쫓아 내려왔던 것이니까요. 이제 왕녀님만 오시면 됩니다.”
그러나 이엔 왕녀가 단호히 거절했다.
“그 애를 맡아준 건 고마운데, 그건 됐어. 나는 알아서 갈 생각이니까.”
“또 그 소리시군요. 이런 자리에서까지 얼굴을 붉히고 싶진 않으니, 조금 있다 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됐어, 오지 마.”
“시녀가 왕녀님을 참 뵙고 싶어 하더군요. 함께 가겠습니다.”
“······.”
그 무렵,
“이제 다들 모이신 거 같군요.”
홀로 정원 한 편에서 와인을 즐기고 있던 타마르가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어, 마치 연설이라도 하듯 우렁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굳이 여러분을 이곳까지 불러 모은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본격적인 연회가 시작되기에 앞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기 때문입니다. 다들 짐작하고 계시다시피, 마이닌 왕국 제2왕녀의 문제입니다.”
그러곤 대뜸 왕녀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요즘 제국과 왕국 간 분위기는 다들 아실 겁니다. 무척이나 흉흉하죠. 자, 여러분께 하나 묻겠습니다. 이게 제국 1황자와 저기 저 마이닌 왕국 2왕녀만의 문제일까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이미 마이닌 왕국의 귀족들이 재산을 뒤로 빼돌리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로 드러난 지 오래입니다. 다른 나라, 아니 심지어 저 웨스트랜드로까지 돈이 이동하는 형편이니까요. 여기 계신 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번에도 딱히 대답이 나오진 않았지만, 약간의 반응들은 있었다.
나지막이 헛기침을 한다거나, 괜히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한다거나.
“제국과 왕국을 오가던 상인들의 발걸음이 어수선해지고, 농사에 전념하던 농부들이 밭을 돌보지 않게 되었죠. 다음 해 수확을 할 수 있을지 어떨지를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왕국만 그러하냐? 아닙니다. 당연히 제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뿐일까요? 두 나라의 생활과 경제 흐름이 완전히 흐트러지는데, 과연 주위 다른 나라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거기까지 말한 후, 타마르의 눈길이 아래 갑판을 향했다.
“만약 제국과 왕국 간에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여기 계신 분들은 괜찮을 겁니다. 하지만 저기 저 아래, 갑판 위에 있는 이들은 어떨까요? 저들 또한 절대 현 상황과 무관한 이들이 아닙니다. 당장은 저렇듯 웃고 떠들고 있지만 말이죠.”
그를 따라 모두의 시선이 한 차례 갑판을 훑었다.
이어 타마르는 잠시간 침묵을 가졌고, 다른 이들은 숨죽인 채 그를 지켜봤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왕녀를 향했다.
“이걸 왕녀 본인이 깨닫고 있는 줄 알았건만, 여태 아무 말이 없으시더군요. 더 늦기 전에 확실히 정리를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이들이 앞으로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것이 이제까지와 같은 평온한 삶이든, 혹은 피비린내 나는 지옥이든 간에.”
“······.”
각오는 하고 온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저쪽의 연출이 컸던 모양이다.
왕녀는 우물쭈물 거리다 이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나, 나는······.”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vip들의 질문에, 왕녀의 말은 그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아니, 어찌할 셈입니까? 왕녀님, 말씀을 좀 해주시죠.”
“결혼을 하실 생각이오?”
“아니면 1황자의 청혼을 거부하실 겁니까? 정면으로?”
개중엔 왕사 바타르 또한 껴 있었다. 그는 이를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 듯했다.
“왕녀님, 도대체 어째서 고집을 부리시는지 모르겠군요. 황자님은 따뜻하신 분입니다. 모두가 바라는 명쾌한 해결책이 있는데, 어째서 자꾸 미루기만 하시는지. 설마 이번에도 도망치실 생각입니까?”
왕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망은······ 안 쳐.”
“그럼?”
이윽고, 왕녀가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나는······ 나는 두골 제국의 수도로 갈 겁니다!”
그러자 다들 ‘그럼 그렇지’ 하는 반응들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었던 것이다.
이에 타마르가 한껏 조소하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을 이제까지 대체 몇 명의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 건지 참······ 전에 말했던 대로 배는 아이막 항구까지 가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제가 친히 호위대와 함께······.”
“됐어, 나는 난마 항구에서 내릴 거야. 도움 따윈 필요 없어.”
그러자,
“그렇지. 왕녀님은 우리랑 같이 가면 될 것이오, 타마르 대신.”
이때다 싶어 왕사 바타르가 달려들었다
“왕녀님 입장에서 그대를 믿고 여정을 함께하긴 쉽지 않은 일 아니겠소? 그러니······.”
“아니, 그쪽이랑도 안 가.”
“······.”
“어쨌거나 이제 됐죠? 내리자마자 곧장 수도로 갈 거예요. 지체할 것도 아니니 안심들 하세요.”
그때였다.
“그 말을 어떻게 믿죠? 만약 도망이라도 치신다면요?”
녀석이었다. 4황자 네르구이.
“혹시나 엄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오늘 이 자리가 무의미해 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도망 안 쳐요. 내 명예를 걸죠.”
그러자, 희한하게도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
“명예를 건다면야······.”
왕족의 명예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선 일종의 하이패스와 같은 기능을 하는 듯했다.
딱히 이해하긴 좀 힘들었지만.
다만 4황자는 아직 할 말이 남은 듯했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뭣 합니다만······ 설사 본인은 도망칠 생각이 없다하더라도, 납치의 위험이 있지 않겠습니까. 굳이 두골 제국의 호위를 거절하시겠단 이유가?”
왕녀는 이에 간단히 대답했다.
“내겐 이미 동행을 약속한 이들이 있으니까요.”
그러곤 나를 슥 돌아봤는데, 그 두 눈엔 묘한 신뢰감이 가득했다.
흠흠.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 예. 우리가 함께 갈 예정입니다. 제국의 수도까지요. 뭐, 얼마 안 된 햇병아리 모험단이긴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것 까지는······.”
그때였다.
“하······ 여전히 시건방진 소리를 잘도 해대는군.”
기다렸다는 듯 빨강머리가 앞으로 나섰다.
뭐, 예상했던 바였다.
“자신은 있고? 왕녀를 지켜줄 자신 말이야. 얼마 전 암살자들의 습격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던데······.”
“아, 그거? 알고 있었나 보네? 별 일 아니라서 다 모를 줄 알았는데.”
“건방은 화를 부르는 법이지. 네가 강한 것 같나, 주걱턱?”
“너보단? 너는 자격시험 3위였다며. 우린 1위인데.”
“······훗, 어설픈 도발이군.”
그렇다고 보기엔 녀석은 머리끝까지 화가 난 듯 보였다. 당장 말아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격시험 3위라는 게 녀석의 발작버튼인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좋아, 주걱턱 모험단. 나 사비에르는 너희에게 대적을 청한다.”
분노에 찬 녀석이 갑작스레 희한한 소리를 내뱉었다.
“뭐?”
“네놈들 따위에게 도저히 왕녀를 맡겨놓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불안해서.”
“뭐라는 거야?”
“왕녀의 호위역은 나로서도 꽤나 탐나는 역할이거든. 소문이 날 테니까.”
“얼씨구.”
“뭐, 이유야 어찌되었건 하나의 보물을 두고 여러 모험단이 겨루는 상황이야 흔한 일 아닌가? 자격시험 때 한 번 해봤을 거 아냐. 이번엔 왕녀가 그 대상인 거지.”
“······.”
물론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저 이 녀석의 선택이 의아했을 뿐이지.
이 빨강머리에게 왕녀는 전혀 관심대상이 아니다. 이 녀석의 관심은 오직 나를 무릎 꿇리는데 있다.
다시 말해, 굳이 이와 같은 방식을 취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냥 나만 찾아왔으면 됐지.
‘어쩐지 그간 잠잠하다 하더라니······.’
대충 알 것 같긴 했다.
이 상황을 기획한 누군가가 따로 있는 게 틀림없었다.
“당연히 네가 너희 모험단의 대적자겠지? 물론, 모두가 함께 덤벼도 상관은 없지만.”
“모두가 덤비긴 무슨. 근데 뭐, 여기서 싸우자고? 이 연회장에서?”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무대는 이미 마련해뒀답니다.”
네르구이가 씩 웃으며 어둠에 가려져 있던 연회장의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순간,
파바밧-.
조명이 켜지며, 웬 무대 하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자세히 보니, 철망으로 둘러싸인 격투경기장이었다.
“하······.”
오늘 이 상황을 염두에 두고 미리 다 준비를 해뒀던 모양이다.
그쯤 되니 대충 다 알 것 같았다. 외려 모르는 게 이상하지.
너였냐? 이걸 다 꾸민 놈이?
나는 고개를 돌려 4황자를 쳐다봤다.
녀석은 그저 씩 웃을 따름이었다.
그즈음,
“와아!”
“와아아!”
저 아래에서 환호성들이 들려왔다.
“허······.”
고개를 돌려보니, 투명한 창이었던 것들이 죄다 전광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격투경기장의 모습이 그 창을 통해 송출되고 있었다.
졸지에 UFC선수로 데뷔하게 된 것이었다.
“후후······ 본격적인 연회의 시작이군요.”
4황자가 와인이 든 잔을 내게 슬쩍 들어 올렸다.
*
“룰은 단 하나 뿐입니다. 승자만이 걸어 내려올 수 있다는 것.”
심판이랍시고 올라왔던 녀석이 그러고 뻘소리 하나만 투척한 채, 후다닥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킥킥······.”
빨강머리는 기분이 좋다는 듯 연신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순간이 왔기 때문일까.
“지금이라도 빌면 살려주지.”
“지겹지도 않냐 그 소리.”
“네놈은 너무 건방져. 언제까지 그 뻣뻣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자격시험 1위라는 별 같잖은 타이틀이 결국 본인 실력을 제대로 돌아보지도 못하게 만들었나 보군.”
“아니, 근데 언제까지 그 자격시험 타령만 할 생각이야?”
“훗, 내가? 그 의미도 없는 걸?”
“······.”
황당했다.
“하나 알려 줄까? 자격시험에서 순위권으로 합격한 녀석들 중 실제로 3년 이내 모험가 등급이 오르는 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 다들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다 골로 가기 때문이야.”
“이야, 그래? 그거 정말 놀라운 사실인 걸?”
“나는 당시 B+등급을 받았었지만 현재는 S급이지. 중요한 건 모험가 등급이야. 내가 자격시험에서 3위를 했다는 사실만을 보고 건방을 떨고 있나본데, 큰 코 다칠 거다.”
황당하다 못해 웃긴 놈이었다.
“미안한데, 네 자격시험 순위에 관심이 있는 건 오직 너뿐이야. 네가 3위건 4위건 그게 뭔 상관이냐고.”
“3위다.”
“그거나, 그거나. 그리고 어차피 1위 아니면 다 똑같은 거 아닌가?”
그러자 빨강머리의 얼굴이 대뜸 붉어졌다.
“이이······! 네 놈! 역시 아닌 척 하면서 실은······!”
“됐고, 뭐 하나 말해줄까? 너는 운이 좋아서 3위라도 한 거야. 네가 나랑 같은 때 시험 쳤잖아? 죽어도 3위 안에 못 들었어.”
이에 녀석이 발끈해 소리쳤다.
“무슨 개소리를······ 우리 때야말로 이제까지 중 최고의 인재들이라며 연일 화제에 올랐던 기수다. 어디서 감히······.”
“그거야 붙어보면 알 일이지. 한 번 보여줘? 우리 때 3위가 어느 정도인지?”
이어, 나는 하나의 고유능력을 흉내 냈다.
순간 몸에서 파지직- 전류가 튀었다.
‘3위라기엔 약간 미안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뭐······ 사실은 사실이니까.’
[재앙을 멸하는 번개]그즈음, 대인전(對人戰) 최강의 능력이라 평가받는 레오의 번개가 내 몸속에 흐르기 시작했다.
“그럼 어느 기수가 최강인지 한 번 가려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