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55
55화 항해의 끝
***
모험가 등급을 올리기 위한 가장 정석적인 방법은 협회로부터 모험의뢰를 수주한 뒤,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등급 포인트를 쌓는 것이다.
모험의뢰를 수행하는 방식엔 크게 세 가지 루트가 있는데,
1. 어느 한 모험단에 정식으로 소속되어 ‘단’ 단위로 의뢰를 수행하는 것.
2. 대형 모험단의 객원 단원으로 참여하여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
3. 협회의 중개를 통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모험가들이 만나 단발성 임무를 수행하는 것.
대충 이 정도가 바로 그것이다.
처음부터 모험단 단위로 등급을 쌓아올리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언뜻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이는 레오 일행과 같은 주인공 파티에게나 가능한 대단히 특수한 케이스였다.
이유야 간단하다. 대부분의 경우, 가장 기본적인 포지션별 멤버 구성조차 제대로 꾸릴 수 없기 때문에.
일단 구색이라도 맞추려면 적어도 세 포지션에 멤버가 각기 하나씩은 있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처음부터 뛰어난 길잡이를 보유한 채 시작하는 게 아니라면, 또 가는 길마다 동료가 될 만한 특출난 녀석들이 ‘우연찮게’ 나타나 주는 게 아니라면, 애시당초 제대로 된 모험단 결성이 가능한 구조 자체가 아닌 것이다.
하여 대다수의 ‘평범한 녀석들’은 자격시험이 열리는 어드벤티움에서 오랜 기간 죽치고 있다가, 이해관계가 부합한 이들끼리 뭉쳐 시험에 참가한 뒤, 시험 도중 길잡이를 영입해 모험단의 모양새를 갖추고 합격을 노리는 방식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합격하게 될 경우, 열에 아홉은 다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애초부터 자격시험의 통과만을 위해 뭉쳤던 관계이기에, 목표를 이루고 나면 제각기 다양한 더 큰 이득을 좇아 다들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것이다.
모험가 자격증은 갖게 됐지만 정작 소속된 모험단은 없는 상태의 모험가들이 그렇게 생겨난다.
그렇게 탄생한 이 ‘개인 모험가’들이 이제 본인의 모험가 등급을 올리기 위해 선택하는 루트가 바로 모험 의뢰 수행 방식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루트다.
대형 모험단이든, 모험가 협회든 어디든 찾아가 엉겨 붙고, 어느 정도 이름값이 생기기 전까지 계속해서 발품을 팔며 차근차근 등급 포인트를 쌓는 것.
당연지사 시간도 오래 걸리고 원하는 임무를 맡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이다.
한 마디로, 모험가 등급을 올리는 게 어렵다는 건 이 업계에서 분명한 사실이고, 저 빨강머리가 2년 만에 B+에서 S급을 달았다는 것 또한 나름 대단한 일이 맞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말이다.
“뭐, 뭐······ 어떻게?”
빨강머리는 무척이나 당황한 듯,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름 힘을 실었다 생각했던 공격이 내 손아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니.
녀석이 내게로 날린 두 개의 빨간 구체는 그 속의 ‘폭발’이 내재된 일종의 마력구였다. 키리코의 마탄 중 ‘폭발’이 좀 더 크고 붉게 변모된 형태라고나 할까.
녀석의 생각대로라면, 이 구체는 내게 닿은 그 순간 ‘뻥’ 터졌어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연기 하나 내뿜지 못하고 소멸될 것이 아니라.
그즈음 빨강머리가 의문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무시로 일관했다. 내겐 이를 해소시켜줄 생각이 없었으니.
하지만 물론, 이를 직접 알아낼 수 있도록 격려하는 건 잊지 않았다.
“더 해보던가. 얼마든지 받아줄 테니까.”
“······건방진 녀석이!”
곧이어, 앞서의 것보다 조금 더 커다란 구체 세 개가 날아왔다.
나는 이 또한 앞서와 마찬가지로 하나하나 손을 내뻗어 잡았다.
이어,
파스스-.
구체들이 힘을 잃고 소멸되었다.
빨강머리의 눈에 당황을 넘어선 경악이 서렸다.
“대, 대체······ 어떻게?”
“그렇게 혼잣말만 하면 상황파악이 가능해지나? 좀 더 해봐야 되지 않겠어?”
“이익······!”
곧이어 녀석의 손에 엄청난 크기의 구체 하나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모든 힘을 다 끌어 모으려 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녀석의 전투 방법이 저런 식으로 폭발구를 던져대는 것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능력의 성질도 그렇고, 그 자체의 성정도 그렇고, 오히려 근접전일 때 더욱 힘을 발휘할 법한 타입으로 보였으니.
다만, 지금의 녀석은 충격에 별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저렇게 멘탈이 약해서야 원. S급은 어떻게 달았나 몰라.’
나는 혀를 쯧쯧 찼다.
물론, 처음엔 나도 약간이지만 긴장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어쨌거나 S급이긴 하니까. 그것도 모험가의 포지션 중 무력이 가장 뛰어난 대적자 포지션이고.
하지만 그렇다한들, 이 녀석이 현재 레오(나)의 상대가 될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S급을 다는데 2년?
실제로 레오 모험단이 저 등급을 취하는데 걸린 기간은 기껏해야 6개월 이내다. 그것도 여기저기 들르며 시간을 허비할 대로 허비하다 그만큼 걸린 것이고.
칼 자이드의 경우, 2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근데 되겠냐고, 네가.’
이윽고, 녀석의 손에서 사람 서넛이 들어갈 만한 대형 구체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그냥 보고만 있었다.
“후······ 이걸 내게 만들 시간을 줬다는 게 네 패인이다.”
“그래, 수고했어. 이제 던져봐.”
“나도 이것이 만들어낼 충격은 예측하지 못해. 만약 이 배가 날아가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게 된다면······ 그건 모두 네 탓이다.”
와중에 황당한 소리였다.
“아니, 왜?”
“그야······ 네놈이 나를 화나게 했으니!”
그러곤 녀석이 구체를 힘겹게 집어던졌다.
나는 내게로 천천히 날아드는 구체를 보며 오른손을 슬며시 들어 올렸다. 그러곤 검지 하나만을 남긴 채 다른 네 손가락은 접었다.
이걸 없애는데 필요한 건 이것 하나면 충분했다.
곧이어,
펑-!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던 구체가 마치 풍선 터지듯 터졌다.
······.
나는 넋이 나간 듯한 빨강머리에게서 잠시간 고개를 돌렸다. 희한하게도, 그 순간 왠지 모를 묘한 불편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불합리함’이 언제고 내게도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흐음.
분명 녀석의 구체가 제대로 터졌다면 나뿐만이 아니라 이곳 연회장, 아니 정말로 배 전체가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그것에 실려 있던 녀석의 힘은 절대로 약한 게 아니었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빨강머리의 능력이 이리도 쉽게 소멸된 것은 내가 흉내 낸 ‘몇 챕터 뒤의 성장한 레오’의 사기적인 능력 때문이었다.
여기서의 ‘재앙’은 상징적인 의미의 표현이 아니다. 이를 ‘멸한다’는 표현 또한 단순히 비유적으로 쓰인 것이 아니고.
재앙은 레오가 대적하는 상대와 그 ‘능력’을 뜻하며, 레오의 번개는 그 존재 자체를 조건부로 ‘소멸’시켜 버린다. 특히나 재앙으로 지정된 능력의 ‘격’이 뒤떨어질 경우, 그 안에 담긴 에너지의 총량과 관계없이 ‘접촉’조차 불허한다.
극도의 약자멸시(弱者蔑視) 능력
그것이 바로 성장한 레오의 [재앙을 멸하는 번개]였다.
번개 자체가 기본적으로 활용도가 높은 능력인 것도 맞지만, 특히나 대적(對敵), 즉 적을 상대할 때 레오의 능력이 사기가 되는 게 바로 이 때문이었다. 능력 자체에서 먼저 우열이 나뉘어 버리니, 비슷한 격의 능력이 아닌 이상에야 애초에 상대가 되질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 ‘비슷한 격’이란 설정은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작가의 편의주의적 전개를 따르는 측면이 없잖아 있긴 했다.
상대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녀석이라면 보기에 썩 별로인 능력도 맞상대할 수 있게 해주고, 별 비중이 없는 캐릭터라면 제아무리 능력이 괜찮아 보여도 그냥 냅다 무시해버리고.
게다가 후반부에 가면 사실상 유명무실해져 버리는 설정이긴 했다. 그즈음에 나오는 녀석들 중 격이 떨어진다 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을 리 만무했으니.
하지만 적어도, 원작에선 등장조차 한 적 없는 이 빨강머리의 능력이 레오의 번개에 맞설 순 없는 것이다.
곧이어,
터벅터벅-.
나는 천천히 빨강머리에게 다가갔다.
녀석의 전의는 이미 상실된 지 오래였지만, 어쨌거나 마무리는 필요했기 때문이다.
녀석은 나를 봤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면 움직이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고.
나는 구체를 터뜨렸던 검지에다 약간의 전류를 밀어 넣었다.
이어, 그것으로 녀석의 이마를 그대로 콕 찍었다.
파지직-.
감전된 녀석의 몸이 두어 차례 떨리다 이내 풀썩 쓰러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
장내는 고요했다.
어떠한 환호성도 들리지 않았다.
이는 유독 다른 이들이 빨강머리를 응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이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와······!”
“와아!”
“대단하다! 엄청나!”
열띤 환호성이 잠시 후, 저 아래 갑판에서부터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나는 한 차례 씩 미소 지은 뒤,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딱히 심판의 카운트는 기다리지 않았다.
이어 vip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가자, 코코아와 치누아비가 반겨주었다.
“수고했어.”
“역시나 형님이십니다.”
다만 왕녀를 포함하여, 그 외엔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없이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고대하던 메인이벤트가 얼마 지속되지 않아 금세 흥이 식어버린 까닭이었을까.
특히나,
“······유령을 소환하는 거 아니셨습니까?”
네르구이란 녀석의 표정이 가장 가관이었다.
녀석은 놀람과 분노, 당혹스러움이 짬뽕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자신이 꾸몄다는 걸 딱히 숨기려 하지도 않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그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거나.
“내가 유령을 소환한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지?”
“······그, 그야 소문이······.”
“그것도 네가 꾸몄냐?”
“······.”
나는 녀석을 빤히 쳐다봤다.
붉게 달아오른 게 딱히 흑막에 어울리는 얼굴은 아니었다. 치기어린 왕자님이라면 또 모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장난은 그 정도만 하도록 해. 더 했다간 나도 웃고 있지만은 않을 테니까.”
“······.”
나는 굳이 [서기관의 족쇄]로 이 녀석에게 글씨를 새기려 하진 않았다.
그 방법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외려 너무나도 사기성이 짙기 때문이었다. 작가가 이를 보곤 곧장 밸런스 패치를 고려하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만약 이 녀석이 정말 흑막이라면, 내가 이 녀석을 부하로 삼는 즉시 왕녀는 더 이상 암살 위협이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별다른 위기 없이 전사의 길까지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앞으로 ‘별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이와 같은 방식은 내가 당장에 목표한 뭔가를 얻는 데엔 편하고 좋을 수 있지만, 결국 나의 역할과 비중을 깎아먹는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손해인 행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내가 녀석과 같은 흑막들을 부하로 만들고, 또 내게 유리하도록 모든 사건을 조작하는 것은 그것이 설사 당장의 개연성에 어긋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작가가 구상해둔 전개와 파워밸런스를 심각하게 해치는 행위이다.
다시 말해, 나에 대한 작가의 호감도를 저 밑바닥으로 처박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현재도 작가는 실제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나를 없애버릴 수 있다.
단순히 ‘절대 삭제권’을 쓴다는 것이 아니다. 그건 작가의 입장에서도 최후의, 최후의 수단이다. 나로 인해 만화가 존폐의 위기에 몰리지 않는 이상, 아마도 그걸 쓰진 않을 것이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작가는 개연성 내에서 나를 쉽게 처리할 수가 있다.
간단하지 않나. 그냥 칠왕 중 하나를 미리 등장시켜 나와 부닥치게만 하면 된다. 그럼 그냥 끝나는 것이다. 현재의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녀석들을 이길 수 없으니까.
물론 당장엔 독자들의 반발이 솟구치겠지만, 그조차 오래 가진 않을 것이다. 칠왕이 보통 캐릭터들인가. 이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의 상징들인데. 그들의 존재감은 내가 이제껏 쌓아온 것들을 어렵지 않게 잡아먹을 수 있다. 아직 초반부에 불과하니.
고로, 나는 언제까지나 작가가 정해둔 큰 틀을 깨지 않는 선에서 나의 행동반경을 정할 수밖에 없었다.
홀로 무쌍을 찍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성장에 뒤쳐져서도 안 되고. 또한 끊임없이 나라는 캐릭터가 이야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것.
언젠가 그 모든 전개를 무시하고도 당당할 수 있는, 감히 나를 대체할 캐릭터가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숙이고 있어야만 했다.
하여,
“건드려도 괜찮았을 수 있었던 건 딱 여기까지야. 나도, 또 왕녀도. 내가 지금 너를 봐주는 건 네가 두려워서도, 제국이 두려워서도 아니야. 그냥 귀찮아지는 게 싫은 것뿐이지.”
“······.”
나 또한 4황자에게 당장엔 그저 실체 없는 경고를 날리는 것에 그쳤던 것이다.
물론, 이 녀석이 이걸 무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이틀 뒤, 난마 항구.
뚱땡이는 그제까지도 말없이 하선하는 사람들을 보고만 있던 홀쭉이에게 한 마디 했다.
“어쩔 거야?”
“······.”
묵묵부답이었다.
“잔금은 다 받았어. 우리에게 의뢰한 녀석도 그냥 여기까지라는 거야. 하기사 그제 그 광경을 보고도 계속 하겠다 말했다면 그야말로 제정신이 아닌 거지. S급 모험가가 고작해야 손가락 하나에 끝났는데. 독도 안 통해, 밤엔 기척도 없이 사라져, 말도 안 되게 강해······ 그 녀석을 잡으려면 전대의 암살왕이 오지 않는 이상엔······.”
그때였다.
“돌려줘.”
홀쭉이가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응?”
“받은 거 다 뱉어내라고. 계약금은 빼고.”
“······이봐.”
“보수는 성공 후에 받는다. 그게 원칙이야.”
“하지만······.”
“그리고 임무를 완수하기 전까지 포기는 없다. 이 또한 원칙이고.”
뚱땡이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바로 도시 중심부에 있는 모험가 협회 난마 지부를 찾았다.
“다들 여기 있어. 갔다 올 테니까.”
나는 왕녀와 코코아, 치누아비에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 말한 뒤, 홀로 지부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 모를 돌발 상황을, 예컨대 대뜸 왕녀를 내놓으라는 식의, 대비한 것이었다.
헌데,
“그래요? 알겠습니다.”
협회의 반응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대충이었다.
심지어 왕녀는 혹시 모를 암살자를 경계해 따로 보호 중이란 말에, 별다른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대뜸 임무 확인 증서에 도장을 찍는 것이었다.
쾅-!
“일단 첫 번째 의뢰는 성공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다음 연계 의뢰가 있습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안 받아들이면?”
당연히 받아들일 생각이었지만, 일부러 한 번 되물어 본 것이었다. 이제껏 레오가 이를 거절하는 걸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이 말을 했을 때의 반응과 페널티가 궁금했다.
“이전 의뢰도 실패로 간주됩니다.”
뭐, 딱히 별 거 없었다.
“······받아들일게.”
“연계 의뢰는 간단합니다. 왕녀를 두골 제국의 수도로 데려가주시면 됩니다.”
협회와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협회를 나서며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역시나 이게 작가가 짜둔 전개가 맞다. 만약 왕녀를 결혼시켜야 하는 전개였다면 식을 올리기까지 보호하라는 의뢰가 하달됐을 테니.
나는 약간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일행에게 돌아갔다.
“이제 바로 출발하는 거야?”
“그래야지.”
“전사의 길이 시작되기까진 일주일 정도가 남았어. 서두른다면 아마 딱 맞춰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역시나 알맞게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하긴, 작가가 어련히 다 짜뒀을라고.
“문제는 길인데······ 나도 이곳의 지리까진 잘 몰라서.”
“아는 사람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
내가 그러곤 툭 치자, 코코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가볼까?”
이어 치누아비에게 토룡의 소환을 부탁하려 할 때였다.
“잠깐, 탈거는?”
“탈거? 있어. 기다려 봐.”
“기다리라니? 말이 어디 있다는 거야?”
“놀라지나 말라고.”
쿠구궁-.
곧이어 치누아비의 토룡이 세상 밖으로 등장했다.
헌데,
“미안한데, 나는 됐어. 나는 말을 탈거야.”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아니, 승차감이 그리 나쁘지 않다니까? 빠르기도 빠르고.”
“그런 거랑은 관계없어. 나는 말을 타야 해.”
희한하리만치 고집스러운 모습이었다.
왕녀는 따로 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을 타고 가겠단 주의였다.
“그리고 전사의 길을 위해서라도 말 타기가 무척 중요하단 말이야. 연습은 해야지.”
“허······.”
그때였다.
“사러 가자. 마침 저쪽에 마(馬)시장이 있어.”
코코아가 유달리 눈을 빛내며 왕녀의 말에 힘을 실었다.
“아니, 마시장은 또 뭐야. 그냥 대충 거리에 파는 거 있으면 사는 식으로······.”
“가자. 한 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느낌일 뿐이긴 하지만······ 어쩌면 보물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보물? 말 파는 데 보물은 무슨······.”
그 순간,
······아!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 모험왕의 세계에는 여러 진귀한 보물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것이 바로 신수(神獸)였다.
이들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신의 축복(고유능력)을 받은 녀석들로, 실제 인간에 버금가는 능력과 지능을 지녔으며, 심지어 말을 하는 녀석들도 존재했다.
게다가 귀엽기까지.
물론 이들은 보물이라기보다는 ‘친구’ 내지는 ‘동료’로 표현될 때가 훨씬 더 많지만, 어쨌거나 카테고리 상 ‘보물’에 속해 있긴 했다.
신수들은 모험단을 가리지 않고 독자들에게 열렬한 성원을 받았는데, 이에 신수들만을 따로 다루는 에피소드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심지어 레오 모험단의 신수는 ‘메인 시점’까지 부여받았을 정도이고.
사실 나 또한 신수의 중요성에 대해선 일찍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본래부터 예쁘고 강한 동물의 존재는 소년만화에선 필수요소나 다름없으니까. 실제로 이를 위한 배경도 하나 사두기도 했었고.
다만, 레오 모험단이 신수를 받아들이기까지 아직 한참이나 남았기에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벌써 이걸 써먹을 때가 온 건가?’
나는 목록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던 하나의 배경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사우스랜드 국립공원 동물원 사육사]물론, 아직은 설레발에 불과했다.
신수가 어디 마시장이나 저잣거리에서 팔리고 있다는 설정은 듣도 보도 못했으니.
기대가 된 이유는 단 하나 때문이었다.
우리 길잡이가 안내한 길이니까.
“그래, 일단 뭐······ 가보자고.”
그렇게 우리는 약간의 설렘을 품은 채 마시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