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57
57화 양아치 비둘기
***
나는 홀린 듯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녀석은 자그마한 새장에 홀로 갇힌 채 어느 커다란 좌판 위에 올라가 있었는데, 좌판 위에 있던 주위 수많은 새들 사이에서도 가히 군계일학처럼 빛나고 있었다.
잠깐, 좌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판매 중인 건가?’
이는 꽤나 희한한 일이었다.
딱히 신수인 걸 알아보고 못 보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눈이 이상한 게 아니라면, 녀석은 그리 대단한 미적 감각의 소유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단번에 시선을 빼앗길 만큼 몹시도 아름다운 새였기 때문이다.
작고 귀여운 애들은 원래 다 쉽게, 쉽게 사가는 거 아닌가?
여타의 새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좌판 위에 올라와 있다는 것도 의아했고, 여태 팔리지 않고 있다는 것 또한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인은······ 없나?’
이 아이가 파는 아이냐고 물어보려 했으나, 막상 좌판을 지키고 있는 이가 없었다. 잠시 일을 보러 간 모양이었다.
차라리 잘됐다. 주인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녀석을 구경할 기회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놀랍게도 녀석 또한 고개를 쳐들었다. 마치 나를 의식이나 한 듯이.
“종달새 과인가?”
새에 대하여 문외한에 가까운 나였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함이 드는 외형이었다.
‘에이, 암만 그래도 그런 흔한 종일 리가.’
나는 한뼘 더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디보자, 요 녀석 생김새가······ 응?”
순간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자세히 보니 비둘기였다.
작고 앙증맞은, 흰색 비둘기였다.
“······비둘기라니.”
물론 굉장히 예뻤다.
굉장히 예쁘긴 한데······ 비둘기.
희한하게도, 처음의 그 놀라움과 신비로움이 약간 경감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선입견이다. 비둘기면 뭐 어때. 비둘기라고 예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다고.
바로 그때였다.
“매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비둘기가 아니라.”
“······?”
“어딜 보냐, 멍청한 주걱턱 녀석아.”
이어, 나는 경악했다.
“······허.”
녀석이었다. 말을 한 건 바로 이 눈앞의 새였다. 이 작고 하얀 비둘기가 인간의 말을 한 것이었다, 그것도 완전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비둘기가 말을······.”
“매라고, 이 자식아. 백응(白鷹). 하얀 매.”
“비둘기 주제에 말을······.”
“하, 그냥 꺼져라. 덜떨어진 주걱턱 같으니라고.”
“······.”
나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일단 이 녀석의 정체.
역시나 이 새는 신수였다. 예쁘장한 생김새도 생김새지만, 뭣보다도 인간의 말을 하니까.
모든 신수가 인간의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말을 하는 동물은 거의가 다 신수다. 극히 드문 몇 가지의 케이스를 제외하면 말이다.
다만 이를 확신하자마자, 혼란스러움이 극대화 되었다.
단순히 이 녀석이 인간의 말을 했다는 것에 놀란 게 아니다. 오히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이 이렇게 대로에, 그것도 그냥 좌판에, 아무렇지 않게 올라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신수에 대해 무지할 순 있다. 애당초 그리 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동물이라는 설정 아닌가. 그 정체조차 알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뛰어난 모험가가 아닌 이상에야 알아보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것이고.
하지만 이번엔 그 경우가 달랐다. 이 녀석은 말을 하니까.
아니, 말하는 새가 여기 있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설마 ‘동물친화’ 특성 때문에 나한테만 이 녀석의 말이 들리는 건가? 했더니,
“하핫, 고 녀석은 그러고 지나가는 이들에게 시비를 걸곤 하죠. 지렁이 하나 던져주면 좋다고 받아먹을 겁니다.”
그것도 아니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주인처럼 보이는 이가 씩 웃으며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
이뿐만이 아니었다.
때마침 말 상인처럼 보이는 웬 아줌마가 슬쩍 다가오더니,
“흰둥이 요 녀석, 잘 지내고 있었니?”
익숙한 듯 모이를 휙 던져주는 것이었다.
그러곤,
“감사 인사 해야지?”
인사를 재촉하기까지.
“고마워. 맛있다. 맛있다.”
“어유, 그래. 맛있게 먹어.”
“······.”
나는 이 광경을 말없이 지켜봤다.
알고 보니 사람들이 신기해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관심을 주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녀석은 분명 이 가게의, 좌판의 마스코트이긴 했다.
다만, 그게 전부였다.
‘말하는 앵무새 취급이나 당하고 있다니······.’
신수라기보다는 한물간 서커스 원숭이에 가깝다고나 할까.
하지만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어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는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말을 하는 것이 그다지 신기한 곳이 아니다. 요정도 있고, 수인족도 있고, 또 뭐가 많긴 하니까.
아무렴, 인간이 하늘을 날고 불을 뿜어대도 딱히 놀라지 않는 이들이 아닌가.
즉, 처음에야 물론 신기해할 수 있지만, ‘이 정도쯤’은 이내 익숙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녀석이 자신의 고유능력까지 선보였다면 또 모르지만, 당장 현재로선 딱히 그런 모습을 보였다거나, 보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닌 듯 보였다. 애당초 저렇게 새장 속에 갇혀 있는 것부터가 신수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니.
‘아니지, 잠깐. 정말 신수가 아닌가?’
그즈음엔 어째 나조차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진짜 정체가 뭘까. 신수가 아닌 걸까?
아니면 새장에 뭔가 엄청난 제약이라도 걸려 있는 건가?
어쩌다 말만 할 줄 아는 새가 된 건가?
그럼 혹, 저것도 저주의 일종?
그러나 생각만으로는 어떠한 답도 도출해낼 수 없었다.
하여, 나는 녀석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마침,
“빌어먹을 인간. 이 따위 쓰레기나 내게 던지고 가다니.”
모이를 먹다 말고 슬쩍 고개를 쳐든 녀석이 냅다 욕설을 내뱉었다.
“······.”
정말이지 언밸런스한 광경이었다. 저 예쁘장한 새의 부리에서 대뜸 욕설이 튀어나오다니. 그런데 또 목소리는 꾀꼬리 같고.
게다가,
“퉷, 이 따위 걸 누구더러 처먹으라는 거야.”
하는 행동과 성격은 무슨 길거리 양아치가 떠오르기까지.
실로 황당한 녀석이었다.
모이는 이미 80%가량 사라진 뒤였다.
다 먹고서 그런 말은 좀 아니지 않나?
그때였다.
“뭐야, 주걱턱. 너 아직도 안 꺼졌냐?”
씩씩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던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어······ 아직.”
“어디 뭐, 구경났어? 얼른 꺼지라고.”
마침 대화를 좀 나눠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나는 약간 조심스러운 투로 말을 건넸다.
“너······ 새 맞냐?”
“내가 새가 아니면, 넌 인간이 아니냐?”
“아니 뭐, 보통 새는 아닌 것 같아서. 인간 말도 하고.”
“내가 좀 특별하긴 하지.”
딱히 신수냐고 대놓고 묻진 않았다. 이 녀석이 신수와 고유능력의 개념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는데다, 마침 주인이 멀찍이서 나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 아직까진 신기한 새에게 관심을 가지는 구경꾼 정도로 생각하는 듯 했지만.
“너는 출생지가 어디지?”
“알아서 뭐하게.”
“그냥 궁금해서. 여기는 아니지? 잡힌 건가?”
“환장하겠네. 그럼 좋아서 새장 속에 들어가는 새도 있냐?”
“역시 그렇지?”
확실히 뭔가 완벽한 상태는 아닌 모양이었다. 무슨 제약에라도 걸려 있는 게 아닐까.
“잡히기 전에는 어디서 뭘 했는데?”
“뭘 자꾸 물어. 귀찮게 좀 하지 말라고.”
“그냥 궁금해서. 네가 예쁘다보니 자연스레 관심이 좀 가네?”
그러자 놀랍게도,
“뭐······ 이것저것 하긴 했었지. 괴물들과도 싸우고, 모험도 하고······”
녀석이 약간은 풀어진 듯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칭찬에 좀 약한 타입인 듯했다.
“괴물에 모험? 이야······ 그만한 녀석이 이유 없이 새장에 갇혀 있을 것 같진 않은데?”
그래서 한 번 떠봤다.
헌데,
“그건······ 몰라도 돼. 궁금하면 네가 직접 사서 확인해 보던가.”
“아, 그건 꼭 사야만 알려줄 수 있는 거야?”
“참나,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안 살 거면 꺼지시라고요.”
녀석이 대뜸 다시 쏘아붙였다.
대충 보아하니, 저기 주인과 무슨 관련이 있는 모양이었다. 구매를 해야만 알려줄 수 있다는 건, 주인에게서 벗어나야만 말할 수 있다는 것과 동일했으니.
나는 좀 더 목소리를 낮췄다.
“아냐, 나 돈 많아. 너 살까?”
그러자,
“뭐? 흠······ 얼마나 있는데.”
왠지 솔깃해 하는 느낌이었다.
“너 살 정도는 충분히 될 거야. 나 진짜 부자거든.”
“그래? 음······ 너는 그래도 말이 좀 통하는 것 같군. 확실히 뭔가 좋은 느낌이 난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
녀석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이는 아마도 동물친화 특성 때문일 것이다.
“그래, 그럼 잠시만 기다려······.”
그때였다.
“그 녀석은 지나가는 모험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이야기인양 말하는 게 특기죠.”
주인이 씩 웃으며 다가왔다.
푸근해 보이는 게,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었다.
“녀석에게 관심이 있으신 모양이죠?”
“예, 뭐. 판매하는 거 맞죠? 이 녀석은 얼마나 합니까?”
순간 그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예, 판매하기는 합니다만······ 가격이 꽤 나갑니다. 보시다시피 예쁘고, 말도 할 줄 아는 데다, 저희 가게 마스코트인 녀석이라서요······.”
“그렇군요. 얼마죠?”
그리고 이어진 주인의 말에, 나는 꽤나 놀랐다.
“10억 골드입니다.”
“······.”
흐음.
그제야 뭔가 좀 감이 왔다.
주인은 이 녀석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다. 알고서도 이렇듯 좌판에 내놓은 것이다.
게다가 저 금액이 말도 안 되는 금액도 아니다. 신수의 가치를 아는 모험가라면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더 께름칙했다 신수의 가치를 아는 자가 정말로 이를 판매하기 위해 내놓았다고? 그것도 꽤 혹할 만한 금액에다가?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게 단번에 느껴졌다.
나는 슬쩍 뒤돌아봤다.
그쯤 되니 좌판이며, 새장이며, 모든 게 다 수상쩍어 보였다. 그냥 대충 늘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갖가지 저주가 걸려있을지도.
이걸 어떻게 한다······.
“이봐, 주걱턱! 잘해줄게! 사! 나 키워! 키우라고!”
······.
잠시 뒤, 나는 주인과 새를 번갈아보다 나지막이 말했다.
“일단······ 기다려보세요. 돈 가지러 갈 테니.”
이어, 나는 양아치 비둘기의 화난 음성을 뒤로 한 채 경마장을 향해 이동했다. 마침 경마가 끝날 시간이었다.
“거 보라지! 저 가난뱅이 주걱턱! 저 자식이 나를 놀렸어! 빌어먹을!”
*
내가 참여한 경마는 단승식으로, 1등 한 마리만을 꼽는 경기였다.
총 13마리의 경주마 중, 내가 돈을 건 녀석은 8번 말. 녀석의 배당은 적중 시 2560배로, 최고배당이었다.
그도 그럴 게, 시합 10분 전 난데없이 배탈이 난 말을 대신하여 대충 구색만 맞출 겸 근처에 있던 아무 말이나 끌고 온 것이었으니.
그런데 웬걸, 그 말이 우승했다.
정말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수중에 있던 100만 골드로 수수료를 뗀 실배당액만 20억을 챙기게 되었던 것이다.
“이게 다야. 진짜 별 거 없어. 운이 좋았던 것뿐이지.”
“······.”
“너무 아쉬워하지 마. 고작해야 5억 정도가 차이 날 뿐이었으니까. 너도 잘했어.”
치누아비는 주먹을 불끈 쥔 채 말없이 고개만 떨어뜨렸다.
“······5억.”
“너무 슬퍼하지 말고. 언젠가 한 번은 네가 이길 수도 있겠지.”
“······.”
“일단 움직이자. 급히 갈 때가 있으니까.”
이어, 나는 의기소침해진 치누아비와 함께 아까 그 좌판으로 향했다.
혹시나 그 사이 뭔 일이 있을까 싶어 서둘러 갔는데, 다행히 ‘녀석’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다시 봐도 감탄이 나오는 자태였다. 양아치 비둘기이긴 하지만.
때마침,
“이, 이 빌어먹을 주걱턱! 여기가 어디라고!”
나를 본 녀석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진정해. 돈 가져왔으니까.”
“······뭐? 돈?”
“그래, 주인은 어디 있어?”
“오······ 진짜인가? 주인은 저기 가게 안에······ 아니, 정말로 돈을 가져왔다고?”
“그렇다니까? 가게라면······ 저기 저거?”
그때였다.
“아니, 이 새······ 말을 하는군요?”
치누아비가 어느새 초롱초롱해진 눈빛으로 비둘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래서 내가 산다고 한 거야. 좀 비싸긴 해도. 자세히 좀 살펴보고 있어. 새뿐만 아니라, 새장도.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어 나는 주인이 있다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마침 밖으로 나오고 있던 주인과 마주쳤다.
그는 나를 곧바로 알아봤다.
“오······ 설마 정말로 돈을 가져 오신 건가요?”
“예. 시간 없으니 당장 거래하시죠.”
그즈음 나를 아래 위로 훑던 주인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하······ 그런데 이를 어쩌죠?”
“뭐가요?”
“가격이 올랐는데.”
나는 피식 웃었다.
왠지 그럴 것 같더라니.
“얼마요?”
주인은 슬슬 내 눈치를 살피는가 싶더니,
“지금은 일단 어······ 한 15억 정도? 아, 물론 약간 깎아드릴 순 있습니다만······.”
대뜸 5억을 올려 불렀다.
뭐, 예상범위 내였다.
나는 곧장 호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종이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바로 20억 골드짜리 마권이었다.
이를 본 주인의 입이 한순간 쩍 벌어졌다.
“거스름돈은 됐습니다. 갈 길이 바빠서.”
“어, 어······ 예예. 감사합니다.”
“그냥 가져가면 됩니까?”
“아······ 예, 새장 채로 가져가시면 됩니다.”
그러고 씩 웃는 주인의 표정이 약간 걸리긴 했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가게를 나선 뒤, 곧장 소리쳤다.
“치누아비! 새장 챙겨서 와!”
*
“아니! 그 새! 뭐야! 예뻐!”
코코아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워워. 손 대지마. 저주 걸릴 수도 있어.”
“괜찮아!”
“괜찮긴.”
대뜸 새장 속으로 손부터 집어넣으려는 걸 말리느라 혼났다.
“빌어먹을! 주걱턱! 이 꼬맹이 좀 치워! 내 깃털 뽑으려 한다고!”
“뭐야! 말까지 해? 미쳤다!”
“······.”
결국 코코아를 저 멀리 내쫓을 수밖에 없었다.
왕녀의 반응 또한 예상외였다.
“아니, 주걱턱! 뭐야, 전사의 길에 대해 모르는 척 하더니······ 이런 걸 다 준비한 거야?”
“엉? 뭔 소리야.”
들어보니, 전사의 길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보통 말과 흰 새를 선물로 준다는 것이었다. 그게 제국을 건립한 ‘우미르 칸’의 상징이라나 뭐라나.
“그런 거 아냐. 꿈도 꾸지 마. 이 새는 내 것이니까.”
“흐음······.”
헌데 몇 차례나 못 박았음에도 탐욕스런 눈빛이 꺼지질 않는 게 아닌가.
잠깐 소개나 해준답시고 보여준 게 화근이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얼씬도 하지 말라며 호통을 친 뒤, 다시금 치누아비에게 다가갔다.
치누아비는 내가 온 것도 모른 채 생각에 열중해 있었다.
“여어.”
“아, 오셨는지요. 대충 파악이 끝났습니다. 새장에 걸려 있는 저주만 열두 개네요. 추적기능도 한 서너 개 되고. 새를 그대로 빼내려 했다면 꽤 문제가 되었을 겁니다.”
온갖 게 다 걸려 있을 거란 생각은 정확했다.
“해독 가능해?”
“저를 뭘로 보시고······ 저 도깨비입니다, 형님.”
치누아비가 간만에 믿음직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새장 말고는?”
“지금 보이시는지요? 새의 발목 부근에 걸려 있는 발찌 하나. 사실 그게 가장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말마따나, 녀석의 발목 부근엔 묘한 빛깔의 발찌 하나가 채워져 있었다.
“저게 뭔데?”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 새의 진체(眞體)를 잡아두고 있는 구속구 같긴 합니다.”
“진체라······.”
어쩌면 본인을 매라고 말했던 게 거짓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알았어. 나 잠시 애랑 대화 좀.”
이어, 나는 곧바로 새장을 든 채 자리를 이동했다.
둘만의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왜 아무 말 안했냐. 상태가 이렇다는 거. 아까 귀띔이라도 해주지.”
딱히 추궁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저 이전까지의 과거가 궁금했을 뿐이다.
“팔리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하면 안 돼. 그 수염······ 성격이 지랄 맞거든.”
가게 주인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정말 구매할 줄은 몰랐는데······.”
“왜, 마음 약해지냐?”
“욕쟁이 비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거기다 가격도 비싼데.”
“뭐야, 비둘기 맞네. 지금 비둘기 인정하는 거야?”
“······.”
장난칠 기분은 아닌 듯했다.
이 녀석, 내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이때까지 몇 번이나 팔려갔었냐? 다른 모험가들에게.”
녀석은 순순히 대답했다.
“한······ 네 번이지 아마?”
“매번 다 다시 잡혀온 거야? 추적자에게?”
“그렇지 뭐.”
녀석은 애써 고개를 피하는 듯했다.
“아까 그 녀석이 찾아오는 건가? 그 주인?”
“아니, 수염은 그저 말단일 뿐이야. 추적자는 따로 있어.”
정리하자면 간단했다.
이 녀석은 돈 많고 어수룩한 모험가들을 꾀는 미끼였다. 신수인 걸 알아볼 정도는 되지만, 그 밑에 깔려 있는 함정은 보지 못하는 수준의.
그들이 싼값에 신수를 얻었다고 좋아할 즈음, 추적자가 찾아가 녀석들을 제거하고 다시금 신수를 찾아오는 방식인 것이다.
한 마디로, 아주 악질인 놈들이었다.
‘······희한하네.’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이만한 짓을 하는 악당들이라면 내가 알 법도 한데, 전혀 짐작 가는 이들이 없었던 것이다.
이곳 이스트랜드 내에서의 작중 분량이 확실히 적긴 적었던 모양이다. 이토록 특징적인 인물이고 단체고 넘쳐나는데, 원작엔 얼마 실리지도 못했던 걸 보면.
“추적자는 언제쯤 추적을 시작하지?”
“매번 달랐어.”
“최대한 멀리 갔던 건?”
“몰라. 바다를 건넌 적도 있기는 해.”
“호오, 그래도 바로 추적해오지는 않나 보지?”
“때때로 달라.”
“네가 추적자에 대해 따로 알고 있는 정보는?”
“없어. 아주 커다란 조직이라는 것 외에는. 다만 나 같은 신세의 녀석들이 몇 있었던 것 같아.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흐음.”
알만했다. 신수를 잡아다 미끼로 걸고 모험가를 털어먹는 녀석들이 작은 조직일리는 없겠지.
“일단 알겠어.”
그때였다. 몸을 일으키려던 나를 녀석이 잡았다.
“······주걱턱.”
“엉?”
녀석은 두어 차례 한숨을 내쉰 뒤, 이내 말을 이었다.
“나는 너희에게 미안해하지 않을 거야.”
“뭐?”
“너······ 나를 계속 데리고 있다간 아마 죽을 거다. 그냥 놓고 가는 게 나아. 그럼 추적은 이어지지 않을 테니까.”
“뭐라는 거야.”
“돈은······ 니들이 멍청한 탓에 속은 것뿐이야. 그냥 버렸다고 생각해. 지금이라도 나를 두고 간다면 목숨만은······.”
나는 녀석의 말을 제지했다. 어떤 말을 할지가 대충 예상이 됐기 때문이다.
돌려, 돌려 말하겠지 뭐. 속여서 미안하다. 그냥 가라.
“됐어, 말 안 해도 이미 알아. 너 양아치인거.”
“······.”
“근데 상관없어, 나는 딴 녀석들과 다르니까. 곧 날게 해줄게.”
“······.”
그즈음 치누아비가 묘한 미소를 지은 채 다가왔다.
뭔가 풀어낸 게 있는 듯했다.
“일단 새장에 걸려 있는 것들 중 두어 개 해독법을 찾은 듯한데······ 바로 해독 시작할까요?”
“이야, 빠르네.”
“하핫, 별말씀을.”
“근데, 하지 마. 일단은 내버려둬.”
“어······ 예?”
“천천히 하자고. 어떤 놈들이 쫓아올지 궁금하니까.”
내가 이곳 이스트랜드로 오기를 결정했을 때, 세워놓은 행동원칙이 딱 두 가지 있었다.
첫째, 모든 사건은 키우고 본다.
둘째, 어떤 녀석이든 일단 엮이고 본다.
이유야 간단하다. 그래야 뭐든 볼거리가 생기고, 뭐든 말할 거리가 생길 테니까.
그리고 이제,
“뭣들 해! 다들 말에 올라! 출발하자고!”
다시 움직일 시간이었다.
*
닷새 후.
마침내 두골 제국의 수도 ‘바란토르’에 막 첫 발을 내디딜 즈음이었다.
띠링-.
느닷없이 홀로그램으로 하나의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뭐지? 뭐가 올 타이밍이 아닌데?’
곧이어, 이를 확인한 나는 경악하고야 말았다.
[작가로부터 챕터 내 메인시점 제안이 왔습니다]-동의 시 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사의 길을 하루 앞둔 날, 작가로부터 푸시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