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6
6화 버진시티의 미친 총잡이(2)
***
나의 당혹스러움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곧바로 찾아온 황당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뭐, 뭐냐 키리코! 네 녀석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한다는 소리가 희한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왜 왔냐고 물어야 되는 거 아닌가?
나는 두 눈 가득 의문을 담은 채, 옆에 있던 하급 관리자를 쳐다봤다.
“오겠다 했으면 통보한 시간에 왔어야지! 중간 간부들이 죄다 네놈을 찾으러 나갔단 말이다! 도망친 줄 알고!”
‘아······.’
그제야 이해가 됐다.
실은 예고된 습격이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키리코 쪽에서 일방적으로 잡아놓은.
키리코 또한 그의 외침에 무안함을 느꼈는지,
“어······ 알람이 꺼져 있더라고.”
이마를 긁적긁적 하며 툭 내뱉었다.
“이, 이익!”
“어쨌든 왔으니 된 거 아닌가? 도망은 니들이 간 거고.”
“헛소리!”
기이한 일이었다.
둘의 대화를 지켜보며, 나는 묘한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얘가······ 처음부터 이랬다고?’
지금 보이는 키리코의 모습은 내가 알던 그 ‘클리셰에 충실한 초창기의 키리코’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도 뻔뻔하고 제멋대로인, 훗날의 키리코에 더 가까웠다.
흐음.
잠시간 혼란이 일었으나, 이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생각해 보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긴 했다. 작가의 구상 속에선 처음부터 저런 캐릭터였을지도 모르지.
‘챕터 밖’은 만화의 일부이긴 하나, 실제 작품에선 드러난 적이 없는 세계다. 말하자면, 작가의 ‘작품 외적 설정집’이라고나 할까.
이는 곧, 눈앞의 키리코가 실제 캐릭터의 원형이 맞을 거라는 얘기였다. 내가 기억하는 초반부 키리코는 작가가 녀석을 매력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한 모습이었을 거고.
뭐,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나는 본래도 ‘저 키리코’의 모습을 더 좋아했으니까.
한편,
“뭐 어쨌든 지금은 니들이 다라는 거지?”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키리코가 뚜벅뚜벅 거어오기 시작한데 이어,
“칫······ 그럼 뒤를 맡기겠습니다, 간부님!”
하급관리자 또한 황당한 소리와 함께 키리코를 향해 돌진했다.
“아니, 잠깐······.”
그러곤,
퍽.
장렬히 쓰러졌다.
“이제 너 하나 남았네? 간부라고?”
“······음.”
“좀 센가? 그렇겐 안 보이는데.”
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채, 천천히 현 상황을 진단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주 그리 나쁜 것도 아니었다. 키리코와의 둘만의 시간. 바라던 바가 아니던가. 대화를 이어나갈 수만 있다면 오히려 좋았다.
나는 다가오는 키리코를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잠깐. 할 말이 있는데.”
“뭐야, 겁이라도 났나보지?”
“나는 이 녀석들과 같은 조직원이 아냐. 대충 눈치로 알았을 텐데. 이 조직의 간부들은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야. 나는 외부인이고.”
“그래? 잘 모르겠는데.”
“이 녀석들은 내 이름도 몰라. 나를 간부님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을 텐데.”
“아하, 그랬던 것 같기도.”
다행이다. 먹힌 듯했다.
“뭐, 어쨌거나 비슷한 놈일 거 아냐.”
착각이었다.
키리코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다시금 한 발짝을 내딛었다. 태연자약한 표정, 한가로운 걸음걸이. 그럼에도 박력이 어마어마했다.
절로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틀렸어. 나는 마피아가 아냐.”
“뭐 그러시겠지.”
“국제평의회 소속 비밀기관 J-34 요원이다.”
“참나, 헛소리는.”
물론 헛소리가 맞다. 하지만 그럴싸한 근거가 동반된다면 어떨까.
“마피아 소탕을 위해 잠입한 상태였지.”
“얼씨구.”
“이 건물엔 비밀통로가 있어. 어차피 간부들이 있었어도 네가 그들을 만나진 못했을 거야. 일반통로로 보이는 곳엔 오히려 각종 함정들이 설치되어 있지.”
이건 사실이었다. 며칠 뒤, 내 눈앞에 있는 당사자가 직접 이 건물을 초토화시키며 알아낼 정보였으니.
“······비밀통로?”
“당장 증명해 보일 수도 있어. 내가 진짜 이 녀석들과 같은 편이었다면 이런 말을 했을까?”
어느새 키리코의 걸음은 멈춰 있었다.
“게다가 나는 너에 대해서도 알아.”
“뭐?”
“키리코. 맞지? 이 녀석들을 조사하던 중에 너를 알게 됐지. 홀로 이들과 충돌해온 버진시티의 미치광이.”
“······.”
“내겐 네게 도움이 될 정보가 꽤나 있다고. 어때, 들어볼 생각 있어?”
그러자 키리코의 얼굴이 마치 똥 씹은 것 마냥 구겨졌다. 녀석이 고민에 잠길 때 나오는 특유의 표정이었다.
잠깐의 침묵 후, 키리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계속해봐.”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거의 됐다. 조금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계획대로 갈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두둥-.
느닷없이 세상이 고요해졌다.
‘뭐, 뭐야······.’
모든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 듯한 느낌. 한 번 겪어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이어,
[모험왕 연재가 재개되었습니다]
[챕터3 – 버진시티의 미치광이]
[진행 중인 챕터의 권역에 속해 있습니다]
[악당3은 이번 챕터의 캐릭터 평가 대상입니다]
머리 위 홀로그램에서 음성이 새어나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말도 안 돼!”
“뭐? 갑자기 뭐야?”
눈앞의 키리코조차 잊은 채였다. 그만큼 당혹스러웠다.
‘아니, 챕터2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게다가 키리코가 여기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새로 챕터가 시작될 수 있다는······.’
그 순간,
‘아······ 그런 거였나.’
하나의 생각이 번쩍 머리를 스쳐갔다.
챕터와 챕터사이에는 일정한 주기 따위가 없다. 주인공의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달라질 뿐이지.
만화에 직접적으로 나온 적이 없어 놓치고 말았다. 레오가 이제까지처럼 걸어 움직인 것이 아니라, ‘가장 강한 녀석’을 만날 생각에 흥분하여 고유능력을 써서 온 거라면? 오히려 한참 늦었다고도 볼 수 있으리라.
그제야 나는 현 상황과 챕터의 시간 흐름을 매치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나는 곧장 키리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 녀석은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된다. 여기가 아니라, 광장 한복판에서 어느 술집 여주인을 희롱하려는 마피아 조직원을 제지한 뒤, 그의 머리에다 총구를 겨눠야 한다. 그리고 그 광경을 이제 막 도시 중심부로 들어온 한 소년에게 목격당해야 한다.
“뭐야, 갑자기 정신이 나갔나? 뭘 그리 멀뚱멀뚱······.”
“대화는 나중으로 미뤄야 될 것 같아. 할 일이 생겼거든.”
그러자 키리코가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하, 그게 네 맘대로 될 것 같아? 그리고 갑자기 무슨 할 일이······.”
“나 말고. 너 말이야. 네가 할 일이 있다고.”
“······뭐?”
“너 찾으러 갔다는 간부들. 그것들 처리해야지?”
“그걸 갑자기 네 녀석이 왜······.”
“너 찾겠답시고 거리를 돌며 온갖 패악질을 일삼을 테니까. 잘 알 텐데, 그놈들 방식. 숨겨주지 말라고 트집 잡으며 본보기로 몇 명 잡겠지. 시민들의 공포감을 조장하는 게 도시를 지배하는데 도움이 될 테니까. 물론 욕은 네가 다 먹겠지만.”
“······.”
“서둘러야 되지 않나? 게다가 거기엔 그 악질도 있다고. 금발머리. 맞지? 네 뱃속에다 총알 두 방을 박아 넣은 녀석.”
이에 키리코가 놀라 두 눈을 치켜떴다.
“너······ 그걸 어떻게?”
“말했잖아. 조사 좀 했다고. 그 인간 말종이 설치는 꼴을 보고만 있을 거야?”
“그 자식이······.”
그러고 무섭게 인상을 쓰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날 뻔 했다. 키리코의 저 분노하는 모습이 솔직히 좀 황당했기 때문이다.
사실 저 ‘금발머리’에 대한 설정은 모험왕에서 나타난 최초의 ‘옥에 티’다.
어쩌다 키리코와 저 금발머리 마피아 사이에 은원이 생겼고, 그로 인해 키리코가 마피아 조직 전체와 적대하게 되었다는 설정.
이게 말이 안 되는 이유는, 실제로 두 캐릭터 간의 능력치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차이나기 때문이다. 아무렴 주연과 엑스트라인데.
훗날 독자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개를 위해 상황을 만든 건 알겠으나, 너무 작위적인 거 아니냐고. 심지어 총까지 맞았다는 설정이니.
쉽게 말해, 유치원생을 두고 이를 갈고 있는 UFC 파이터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즈음,
“하지만 녀석들이 어디에 있는 줄은 알아야······.”
키리코의 고뇌 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아차, 내 정신 좀 보게.
“광장. 광장에 있어.”
“광장? 잠깐, 근데 너는 그걸 어떻게 안······.”
“됐고, 빨리 가라고. 녀석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이번엔 확실히 정리하라고.”
“하지만 네 놈······.”
키리코는 무언가 할 말이 남은 듯 머뭇거렸다.
에이, 시간 없다니까.
하여, 나는 망설이는 녀석을 위해 굳이 한 마디를 더 덧붙여줬다.
“가. 나중에 내가 널 찾아갈 테니까.”
*
“분명히 마지막 경고라고 했을 텐데.”
“사, 살려줘······ 살려줘!”
“암만 쓰레기라도 자기 목숨은 소중한가 보군. 여기서 널 대신해 죽겠다는 녀석이 한 명이라도 나오면 살려주지.”
“제, 제발······ 제발 살려줘!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다행히 늦지 않았다.
나는 심호흡을 반복하며, 세차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정면엔 그토록 고대하던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주위에 널브러진 열댓 명의 마피아들. 흩날리는 먼지. 그리고······ 엉거주춤 선 채로 축축하게 바지를 적신 금발머리와 그의 관자놀이에 겨눠진 총구.
감격스러웠다. 저 광경을 실제로 보게 되다니.
금발머리가 울고불고 애원했음에도 앞으로 나서는 이는 없었다.
키리코가 겨누고 있던 리볼버의 약실을 회전시켰다.
“남기고 싶은 말은?”
“제, 제발······ 제발······.”
그때였다.
“멈춰!”
마침내 이 씬을 완성시킬 또 하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네.
물론 이건 독자이자 구경꾼인 나의 관점이다.
레오의 입장에선 뭐, 약간 늦었다고나 할까.
이어,
빠-앙!
리볼버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바야흐로 신호탄이 울린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진짜 싸움’의 신호탄이.
시작은 레오의 전광석화와 같은 발차기였다.
“뭐하는 짓이야!”
퍼-엉!
“와······.”
무슨 운석이 떨어진 줄 알았다.
바닥에 패인 구덩이는 사람이 처박혀 생성된 것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크고 깊었다.
실제 사람이었다면 아마 저만한 충격을 받은 순간 가루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물론,
“······크윽. 뭐냐 너.”
저기 먼지 가득한 구덩이에 처박힌 녀석은 그런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곧바로 일어난 키리코는 화가 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약간 비틀거리긴 했지만, 심각한 부상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총에 맞아 위태로웠다는 설정이 더욱 황당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당황한 건 레오 또한 마찬가지인 듯했다. 자신의 발차기를 맞고 일어난 인간은 여태 처음이었을 테니.
이어진 둘의 결투는 치열하고, 또 무시무시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통해, 컷으로 이뤄지는 만화 연출의 한계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만화책으로 볼 당시에도 엄청난 박진감을 느낄 수 있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이건 뭐 현장감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양쪽 다 몸놀림이 어찌나 빨랐던지 잔상만 눈에 남을 정도였고, 서로의 주먹과 발이 맞닿을 때마다 무슨 폭발음 마냥 ‘펑펑’ 소리가 났다. 심지어 서로가 서로에게 맞고 날아가면서, 근처에 있던 건물들을 죄다 파괴시킬 정도였다.
이윽고,
“휘유, 너 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까부는데?”
“흥, 너야말로.”
짧았던 탐색전(?)이 끝나고, 마침내 이 싸움의 하이라이트가 다가왔다.
키리코가 허리춤에서 리볼버 한 자루를 빼들었다.
태양빛을 머금은 은색의 총신이 전장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맞으면 아플 거야. 죽기 싫으면 피하라고.”
“너나.”
그러한 둘의 모습에, 다시금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각자의 ‘고유능력’을 활용한 결투가 펼쳐지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키리코의 고유능력은 [작열하는 여섯 탄환]이라는 것으로, 한 자루의 리볼버에서 총 여섯 가지 유형의 마력탄을 쏘아내는 것이었다.
폭발, 관통, 유도, 마취, 섬광, 치유.
하지만 실제로 이를 구분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다. 후에 키리코는 두 자루의 리볼버를 복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이 유형의 한계를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오의 고유능력은 그야말로 전투에 최적화된, 역시나 주인공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능력 [재앙을 멸하는 번개]였다.
마탄(魔彈)의 키리코, 그리고 뇌신(雷神) 레오.
훗날, 이 세계를 진동시킬 거대한 두 힘의 첫 번째 충돌이었다.
물론 나는 이 대결의 결과를 알고 있다. 또한 지금 당장은 저 두 사람이 만화 후반부의 그 어마어마한 힘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도.
하지만 그럼에도 긴장감에 등줄기가 축축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둘의 기세는 이미 공기를 달굴 정도였으니.
“마지막으로 말한다. 피해라.”
“걱정 마. 내가 더 빠를 거니까.”
이윽고,
······쾅!
두 힘이 맞부딪쳤다.
일순간 주위의 소음이 멎었다.
핵이 터진 것 마냥 먼지구름이 높게 솟아올랐고, 바람에 섞인 모래알갱이들이 허리케인처럼 몸을 덮쳐왔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주위 구경꾼들은 모두 무사했다.
그야 뭐, 만화니까.
곧이어 먼지구름이 잦아들으면서 전장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 사람은 버텼고, 한 사람은 쓰러졌다.
승자는 레오였다.
하지만 녀석의 눈은 기쁨으로 일렁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불신과 당혹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한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승자의 함성이 아니었다.
“너······ 이미 상처가······.”
그걸 보고 있자니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처음 저 장면을 봤을 땐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만약 키리코가 총을 맞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기도 했었고.
지금은 뭐······ 외려 금발머리 마피아가 측은할 뿐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저 지독히도 클리셰적인 장면 하나만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걸 알면, 과연 무슨 생각이 들까.
이 이후의 전개야 별 게 없다.
로즈메리따가 키리코에게 달려가 정신을 잃은 그를 부축할 즈음, 레오는 키리코에게 총을 맞은 금발머리에게 달려간다.
그러곤,
“주, 죽지 않았잖아!?”
그래, 저렇게 소리 지르는 것.
이어 모든 게 자신의 오해였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금발머리는 죽지 않았고, 그저 키리코의 마력탄을 맞아 기절한 상태에 불과하다는 걸. 애당초 키리코의 총엔 실탄이 담겨 있지 않았다는 걸.
그러곤,
“그 빨강머리······ 나쁜 녀석이 아니었어······.”
다 들리게 혼잣말 하는 걸로 마무리.
그렇게 챕터3는 잠깐의 여백을 두게 된다.
서로 정반대의 방향으로 멀어져가는 레오와 키리코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활약할 여지가 남아 있을까.
이제 저 둘은 앞으로 닷새 간 휴식을 취하게 된다. 서로에게 받은 상처를 치료하고, 충분히 체력을 회복한 다음, 둘이서 함께 마피아들의 본진으로 쳐들어가는 것이다.
짐작컨대, 마피아를 소탕하러 떠나는 씬부터는 개입의 여지가 전무할 듯했다. 작가의 의도 자체가 팀으로 뭉친 두 사람의 활약을 비추는 것이었으니.
고로, 지금부터 시작될 휴식기간이 내게 남은 마지막 가치증명의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닷새.
언뜻 봐선 그리 적은 시간이 아니지만, 결코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 기간은 만화 내에서의 분량이 극도로 적기 때문이다.
달리 여백이라 표현한 게 아니다. 지면에 그려진 컷 자체도 고작해야 한 페이지에 불과했다.
키리코가 로즈메리따의 가게에서 휴식을 취하는 컷, 마피아 졸개들이 가게 근처를 어슬렁어슬렁 거리는 컷, 그리고 레오가 빚을 졌다며 로즈메리따의 가게를 대신 지키고 앉아 있는 컷. 기껏해야 이 정도가 다였다.
그 이후론 곧바로 ‘닷새 후’란 지시문과 함께, 곧바로 두 사람이 가게를 떠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재개된다.
즉, 어떻게든 저 세 컷 안에 끼어들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가능하려나.”
물론 생각해둔 방안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잘 될지가 의문이었을 뿐.
나는 그 이상 고민하는 것을 멈췄다.
어차피 생각만으로 되는 일은 없다.
실컷 구경했으니, 지금부턴 바삐 움직여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