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63
63화 노랭이와 검은 고양이
***
묘한 녀석이었다.
산쾡이인지 뭔지 모를 저 노란 빛깔의 짐승은 제자리에 멈춰 선 채 우두커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녀석은 소리를 내지도, 이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저 붉게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녀석이 야생의 신수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작중 설정에 따르면, 대부분의 야생 신수들은 인간에게 적대적이다. 특히 폐쇄적인 녀석들의 경우,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에게 다짜고짜 선제공격을 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했다.
헌데 녀석은 공격은커녕, 내게 딱히 적의를 품은 것 같지도 않았다. 녀석의 붉게 물든 두 눈에 들은 것은 그보다는 오히려 무심함에 가까웠다.
이는 내게 묘한 인상을 남겼는데, 흡사 생명체가 아닌 기계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약간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반복된 강압적 통제에 의해 흥미와 호기심을 말살당한 듯 보인다고나 할까.
야생의 신수라기엔 어울리지 않는 얌전함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구 녀석의 반응이 심상찮다는 게 그 증거였다.
구구는 저 짐승이 나타난 이후로 줄곧 날개를 부르르 떨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잔뜩 움츠러든 꼴이 상당히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다만, 저 짐승이 무서워 떤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전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괴로워하는 듯했다. 결국 자신을 잡으러 ‘놈들’이 오고 말았다는 생각에, 저 스스로 패닉에 빠져버린 느낌이랄까.
나는 구구의 날개를 가만 잡아주었다.
“······주걱턱?”
“괜찮아, 뭘 떨고 그래.”
“하, 하지만 놈들이······.”
“괜찮다고.”
잠시 후,
“······하, 빌어먹을.”
다행히 구구는 약간이나마 진정이 된 듯했다.
“저 노란 짐승. 아는 녀석이야?”
내 물음에 구구는 부리를 저었다.
“저 녀석을 아는 건 아니야. 다만 냄새가······.”
“냄새가 왜. 그 녀석들의 냄새가 나는 거야? 너를 잡아두고 있던 조직?”
구구는 이에 대답하는 대신, 노랭이를 향해 몸을 돌렸다. 뭔가를 기억해내기 위함인 듯했다.
이윽고,
“······한 명이 아냐.”
요상한 소리를 했다.
“뭔 소리야.”
“빌어먹을······ 혼자 온 게 아니야.”
구구는 그러곤 재차 패닉에 빠졌다. 트라우마가 생각보다 깊었던 모양이다.
흐음.
눈치껏 파악해 보자면, 대충 저와 같은 신수를 부리는 놈이 여럿 왔다는 얘기인 듯싶었다. 신수 또한 저 노랭이 외에도 몇 마리가 더 있는 것 같았고.
“쯧······.”
그즈음 나는 이 불안정하고 겁 많은 비둘기 대신, 그제까지도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던 노랭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굳이 힘들여 추론할 것 없지 않은가. 저 녀석도 신수인데.
나는 곧바로 녀석과 대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흠흠, 어이 노란 고양이. 너 혹시 말도 하냐?”
잠시 기다려봤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알아들을 순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찾아온 거야? 네 주인은 어디 있지?”
내가 원작에서 본 신수들은 모두가 다 그랬다. 말을 하는 녀석은 소수지만, 주인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녀석은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신수들의 지능은 기본적으로 동물보다는 인간에 가까웠으니.
그리고 역시나,
그르릉-.
녀석이 작게 소리를 냈다.
뭔가 녀석의 목적에 맞는 말이 나온 모양이었다.
“우리를 찾아왔다라······ 목적은?”
그러자 녀석이 슬그머니 뒤로 돌았다. 그러곤 두어 차례 고개를 까닥거렸는데, 따라오라는 신호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접근방식이 예상과는 많이 달랐지만, 어쨌거나 분명한 건 무려 ‘신수를 부리는 적’들이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여럿이.
‘이거······ 갭이 너무 큰 거 아냐?’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어중이떠중이들 다음으로 온 녀석이 곧바로 가장 우려했던 놈들이라니.
잠시간의 고민 끝에, 나는 왕녀를 불렀다.
“혹시라도 내가 두 시간 내에 안 돌아오면 먼저 이동하고 있어. 뒤따라 갈 테니까.”
“왜, 무슨······ 설마 저 짐승 때문에?”
“있어. 구구를 잡아두고 있던 못된 놈들이 찾아왔거든. 별 것 아니니 신경 쓸 것 없어.”
“하지만······.”
“괜히 같이 있다가 휘말리지 말고. 당신은 이 이상 적을 늘려선 곤란하니.”
“······.”
웬만해선 왕녀와 떨어질 생각이 없었으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이 녀석들은 유일하게 그 목적이 다른 적이었다. 왕녀가 아닌, 구구를 되찾으러 온 녀석들. 왕녀를 신경 쓸 것 없이 후다닥 해치우고 오는 편이 보다 깔끔하고 빠르게 해결하는 길일 것이다.
물론, 그 시간동안 왕녀 스스로 본인을 잘 지키고 있어야겠지만.
“위험하다 싶으면 그 할아범 부르고.”
“······나도 약하지 않아.”
“그래, 알아서 해.”
그리고 어차피 위기가 없으면 이 곳의 캐릭터는 성장하지 못한다.
하여, 애당초 나는 가능한 한 조금씩이라도 왕녀를 위기에 노출시킬 생각이었다.
“명심해. 두 시간이야.”
이어 나는 구구를 덥석 쥔 채, 노랭이를 따라갔다.
*
노랭이가 안내한 곳은 우리가 지나쳐왔던 근방의 한 숲이었다.
우거진 수풀을 지나 숲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니, 낙엽으로 뒤덮인 웬 공터가 나왔다.
그리고 거기,
“여기야, 여기.”
요란한 복장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흰 도포에 갖가지 색들이 수놓아진 웬 무복(巫服)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본인 취향이라면 참으로 특이하다 생각될 만한 것이었다. 양 볼에 연지곤지만 찍는다면 영락없는 무당이었으니.
뭐, 저것이 조직의 유니폼이라고 한다면 더 할 말이 없겠지만.
이어 녀석이 입을 열었다.
“나 알지?”
시작부터 황당한 말이었다.
“내가 널 어떻게 아냐. 처음 보는데.”
심지어 원작에서조차 본 적이 없는 녀석이었다.
“아, 내 말은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냐는 거였어. 알지? 걔한테 다 들었을 테니까.”
그러곤 녀석이 내가 걸치고 있던 망토의 왼쪽 주머니를 가리켰다. 구구를 넣어둔 주머니였다.
“그건 알지. 못된 놈들이잖아. 신수들 잡아다가 제약 걸어두고. 그걸로 모험가들 유인해 습격하는 아주 악질인 놈들.”
내 말에 녀석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잘 아네.”
“그리고 지금은 나를 그 타깃으로 삼은 거고.”
“맞아.”
녀석은 이어 웃음을 멈춘 채, 나를 빤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본래는 여기서 볼 생각은 없었는데······ 참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 말이야.”
품속에서 웬 방울을 하나 꺼내들었다.
녀석이 그걸 흔들자, 노랭이가 천천히 다가가 그 옆에 섰다.
“봤거든.”
“뭘?”
“집어 던지는 거.”
“······돌?”
그러자,
“돌? 아······ 하긴, 아까 그 녀석이 돌대가리긴 했지. 힘의 차이도 알아보지 못하고 그러고 건방을 떨었으니 말이야.”
녀석이 또 한 차례 낄낄거리며 웃었다.
흐음.
보아하니, 이 녀석도 내 예선 때의 모습을 본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근데 여기 너 밖에 없냐?”
희한하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짐승들이 더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의아했다. 왜 저 녀석 혼자일까.
이는 단순히 구구의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저 녀석과 저 노랭이 신수만으로, 그 같은 악독한 짓들이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 하나뿐이냐고.”
“호오, 왜 그런 걸 묻지?”
“너도 힘의 격차를 모르고 깝치는 돌대가리인가 싶어서.”
“······.”
이 세계에서 상대의 강함을 알아보는 가장 핵심적인 기준 중 하나가 바로 외모다.
잘 생기면 강하고, 예쁘면 강하고, 무게 좀 잡는다 싶으면 역시나 강하고.
물론 예외가 되는 경우도 꽤나 많고, 이야기 후반부에 이르러선 정확성이 많이 떨어지긴 한다. 나오는 캐릭터들이 모두 다 강하기에, 외모보다는 개성의 강조가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모두 ‘인간’이 대상일 때의 얘기다.
신수의 경우, 외모가 강함의 기준으로서 엄격히 기능한다.
간단하다. 작고 귀여울수록, 강력한 신수다.
올망졸망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게 생겼다? 녀석의 힘은 S급 모험가를 가뿐히 즈려밟을 정도다.
물론, 진체(眞體)는 크고 우람할 수 있다. 하지만 평소 모습은 무조건 예쁘고 귀여워야 한다. 그게 이 소년만화 속 강력한 신수의 조건이다.
그리고 만화가 끝날 때까지 이 공식엔 결코 변함이 없다.
눈앞의 노랭이는 제법 힘이 느껴지긴 하나, 일단 외모에서부터 탈락이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작지도 않고 귀엽지도 않았으니.
즉, 고작해야 저 신수 하나로는 제아무리 어쭙잖은 모험가들이라 해도, 쉬이 털어먹기 힘들 거라는 얘기였다. 그들 또한 모험가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상엔, 어느 정도의 능력은 보유하고 있었을 테니.
그리고 말마따나,
“너 설마······ 나를 네게 당한 그 멍청한 놈들이랑 동급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친구 있으면 빨리 불러.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힘의 격차를 알지도 못하는 저 돌대가리 같은 놈이 그렇게 강할 리도 없었고.
*
나는 현재 캐릭터의 강함을 아주 간단히 등급화해 나눈다고 했을 때,
1. 약함
2. 보통
3. 강함
4. 괴물
나 스스로를 이 중 네 번째 등급인 ‘괴물’ 수준이라 명백히 규정하고 있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존재하는 캐릭터들 중에서 칼 자이드를 제외하곤 딱히 두려워할 만한 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세계관이 확장되지 않았고, 그만한 힘을 갖춘 캐릭터들이 등장하지 않았으니까.
이 세계의 파워밸런스는 어디까지나 레오를 기준으로 설정되어 있고, 현재 레오의 힘은 4단계 ‘괴물’급이다. 지금 당장 등장하는 빌런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레오가 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밸런스가 흔들려 버리니까. 이번 챕터에서 그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헌팅턴 도적단들 또한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자격시험에서 레오보다 높은 순위를 받은 둘(나와 칼 자이드)을 제외하면 당장엔 레오보다 강하다고 여길 만한 녀석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상황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
본래 소년만화에서의 파워밸런스라는 건 처음부터 완벽하게 딱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외려 정기적으로 등장인물들의 힘이 급상승하게 되는 구간이 찾아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세계관의 확장’과 동시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격변의 시기’이다.
주인공에게 새로운 환경과 목표가 주어지고, 활동 무대가 비약적으로 넓어지며, 동시에 새로운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하는 시기. 그간 ‘설정’으로만 존재하던 캐릭터들이 실제 세계에 구현되어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시기.
이때 레오의 등급 또한 자연스레 조정이 되는데, 4단계 ‘괴물’ 등급에서 대개 2단계 아래인 ‘보통’으로, 심할 경우 1단계 ‘약함’으로까지 떨어지게 된다. 이에 반해 새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죄다 3단계 ‘강함’ 내지는, 4단계 ‘괴물’이고.
즉. 당장 내가 4단계인 ‘괴물’급이라 하더라도, 이 시기가 되면 나 역시 단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가장 빨리 예정되어 있는 격변의 시기는 바로 ‘보물 라미레스 쟁탈전’이 일어나는 챕터이다. 이 때를 기점으로, 내 강력함의 순위는 속속 밀려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3단계 ‘강함’조차 유지하기 힘들어질지도.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다시 등급을 4단계 ‘괴물’로 끌어올린다하더라도, 후에 킹스로드를 건너 ‘미들랜드’로 진입하게 되면, 다시 또 1단계 ‘약함’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레오가 그렇게 되니까.
종합해 보자면, 머지않은 미래에 막강한 녀석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면서 내 강함은 그리 특별한 게 아니게 된다는 것.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지금 당장엔 그 어디에서도 나보다 센 녀석을 찾아보기 힘들다.
고로,
“하······ 하하. 아까 그 마적놈들 좀 잡았다고 해서 너무 건방진 거 아냐? 지금 내 옆에 있는 게 뭔지 모르지 않을 텐데? 바로 신수라고, 신수. 네 옆의 비둘기처럼 힘이 억제된 것도 아닌, 진짜 신수!”
저러고 떠드는 녀석이 그저 돌대가리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즈음 녀석이 방울을 흔들며 노랭이의 귀에다 대고 뭐라 뭐라 속닥거렸다.
이어, 노랭이가 슬쩍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그걸 보면서도 딱히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별 이유는 없었고, 그냥 위협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저 요란한 복장의 녀석은 내가 겁을 집어 먹어 발이 굳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봐, 그러고 가만히 있다간 잡아먹힌다고. 내가 지금 이 귀염둥이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녀석은 내게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낄낄거리며 본인이 먼저 답했다.
“네 발 하나 떼어먹으라고 시켰어.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이빨이 꽤나 날카로운 녀석이거든.”
참 웃기지도 않는 놈이었다.
“내 발보다는 여기 이 녀석 발이나 좀 신경 써줬으면 좋겠는데.”
그러고 나는 구구를 가리켰다.
“너 잡으면 얘 발에 달린 거 제거할 수 있냐?”
그러자 녀석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내 귀염둥이를 쓰러뜨리면 알려주지.”
이어,
그르렁!
노랭이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때 나는 약간 당황하고 말았는데, 녀석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욱 느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녀석은 고유능력을 쓰지도 않았다.
그저 발톱을 세우고, 입만 벌린 채 내게 달려든 것이었다.
‘건방진 고양이 같으니라고.’
나는 날아든 녀석의 앞발을 가뿐히 피한 뒤, 녀석의 목덜미를 잡았다.
그르릉-?
그러곤 그 자리에서 몇 차례 뱅뱅 돌렸다.
그, 그르릉······.
이어,
“다시 돌려줄 테니 잘 받아. 나 힘은 좋은데 제구가 잘 안 돼. 봐서 알지?”
아직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녀석을 향해 냅다 집어 던졌다.
그, 그르렁!!!
부웅-.
“자, 잠깐······.”
물론, 나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노랭이를 던짐과 동시에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흐업!?”
가까이서 본 녀석의 얼굴은 놀람과 당혹스러움으로 가득했다.
“뭘 놀래. 이제 시작인데.”
그러고 막 내가 녀석의 멱살을 틀어쥐었을 때였다.
“멈춰라!”
순간 뒤쪽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나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곧이어,
쾅-!
내가 있던 자리로 웬 불덩이가 날아들었다.
“위험했구나. 쯧쯧, 그렇게 기다리라고 말했더니.”
“멍청한 녀석! 강하다 싶은 적을 만나면 곧바로 신수의 고유능력부터 개방시키라 일렀거늘.”
돌아보니, 녀석의 일행처럼 보이는 두 남자가 수풀 너머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그리고 그 옆에는 노랭이의 형제처럼 보이는 두 마리의 고양잇과 짐승들이 붙어 있었다. 불덩이는 그 중 한 녀석의 작품인 듯했다. 녀석의 입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 새로이 나타난 두 남자 중 하나가 내게 소리쳤다.
“네놈은 누구냐!”
“응?”
다소 의아한 물음이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건 내가 물어야 되는 거 아닌가? 나를 쫓아온 건 니들이잖아.”
“닥쳐라!”
······?
내가 밀려드는 황당함에 어질함을 느끼고 있을 무렵,
“······놈! 조금 전엔 방심했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거다!”
첫 번째 노랭이의 주인이 분노를 담아 외쳤다. 별 볼일 없는 놈의 아주 전형적인 대사였다.
“근데 그럼 이제 다 나타난 거야? 너희가 전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흐흐, 더 이상 요행을 바랄 순 없을 거다.”
의아했다. 정말 저 녀석들이 전부라고?
솔직히 저 두 놈이 더 나타났다고 해서 그리 위협적일 것도 없었다. 좀 더 세기야 할 테지만,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하지만 기묘하게도, 그즈음 나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뭔가가 더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
심지어 약간이긴 하지만, 위기감마저 들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잠시 후, 나는 그 위화감의 근원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 멀지 않았다. 바로 내 왼쪽 주머니.
구구 녀석의 떨림이 멈추질 않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나는 말없이 떨고 있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무엇이 이 녀석을 떨게 만드는 걸까.
눈앞의 인간들이나 저 노랭이들은 아니다. 그건 확신할 수 있었다. 어딘가에 또 다른 녀석이 존재하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열심히 주위를 훑었다.
눈앞의 멍청이들이 내게 뭐라 뭐라 떠들어 댔지만 무시했다. 녀석들이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분명 다른 녀석이 어딘가에······.’
바로 그때였다.
······어?
열심히 주변을 훑던 와중, 무언가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걸 포착한 건 찰나에 불과했지만, 자연스레 고개가 딱 멈춰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그토록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던 것.
그것은 저 멀리 떨어진 나무 위에 앉아 있던 한 검은 고양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사위, 더군다나 우거진 수풀 사이였음에도 나는 똑똑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녀석의 황당하리만치 아름다운 미모를.
저 고양이······ 미쳤다.
그리고 그 순간 확신했다.
저 녀석이 원흉이다. 구구를 떨게 만든 원흉.
때마침 검은 고양이 또한 나의 눈길을 알아차린 듯했다.
돌연, 나무 위에서 폴짝 뛰어내린 녀석이 내게로 사뿐사뿐 다가왔다.
“아, 아니!”
“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굳이 나서실 것 까진······.”
검은 고양이는 녀석들의 외침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넌 누구지?”
내게 말을 걸었다.
그즈음 나는 놀라 대답하는 것도 잊고 말았다. 그저 멍하니 입만 벌린 채 녀석을 쳐다봤을 뿐이다.
다만 이는 녀석이 말을 했기 때문도, 추격자들의 대장이 인간이 아닌 신수라는 점 때문도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 검은 고양이의 외형이 상당히 익숙했기 때문이다.
윤기가 흐르는 검정 털에, 에메랄드와 사파이어를 박아 넣은 듯한 오드 아이.
그리고 목에 걸려 있는 커다란 붉은 색 루비.
분명 내가 아는, 원작에서 본 그 고양이가 맞았다.
나는 조심스레 그 이름을 불러봤다.
“네로?”
순간, 나를 향해 다가오던 검은 고양이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
놀란 녀석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