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77
77화 가자, 도깨비 소굴로!
***
“흐음······.”
왕녀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내 선언을 작가와 독자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제국의 황제가 될 여인과 끈을 연결해두는 동시에, 별 탈 없이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글쎄,
띠링-.
[챕터24# – 두골제국 전사의 길 최종관문] [히로의 캐릭터 평가가 갱신되었습니다] [특징에 ‘기사도’가 추가되었습니다] [특징에 ‘로맨티스트’가 추가되었습니다] [수많은 독자들의 엄청난 성원이 잇따랐습니다] [인지도가 100,000 증가했습니다] [인지도 초과분은 ‘격’으로 치환됩니다] [작가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작가 호감도가 10 상승했습니다] [서른 명의 독자로부터 팬아트를 받았습니다] [작가 호감도가 30 상승했습니다] [재등장 가능성이 20%로 올랐습니다]기사도 뭐냐고. 로맨티스트 뭐냐고.
이거 소년만화라고. 로맨스 아니라고.
-이름 : 히로(수수께끼 주걱턱)
-특징 : 힘이 무척 세다, 허세가 있다, 말이 많다, 비밀스러움, 알고 보니 미소년?, 리더십, 희생정신, 기사도, 로맨티스트.
-인지도 : 345,259
-작가 호감도 : 82
-재등장 가능성 : 20%
띠링-.
[챕터의 주연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최초 연장챕터의 주연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히로’의 공식 캐릭터 일람에 주요기록으로 등재됩니다] [캐릭터의 격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캐릭터의 격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캐릭터의 격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캐릭터 격의 등급이 ‘주조연’에 이르렀습니다] [캐릭터 격에 대한 정보가 일부 해금됩니다] [캐릭터 격의 상승에 따라 새로운 상품 판매가 시작됩니다] [메인시점 적용이 끝났습니다]-메인시점이 회수됩니다.
띠링-.
[작가에 의해 캐릭터 최종평가가 산출되었습니다] [히로는 다음 챕터의 예비 출연 대상입니다] [인지도 상승에 따라 캐릭터 포인트가 300,000p 지급됩니다] [작가호감도 상승에 따라 캐릭터 포인트가 4,000p 지급됩니다] [재등장률 상승에 따라 캐릭터 포인트가 200p 지급됩니다] [캐릭터 격의 수치가 250 올랐습니다]“······호오.”
기본적으로 뭐가 이것저것 많기도 한데다, 간만에 새로운 정보들이 넘쳐나는 캐릭터 평가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캐릭터의 격’이었다.
나는 찬찬히 반복해 읽으며 이 ‘격’과 관련한 것들을 모두 체크했다.
가장 먼저, ‘인지도 초과분은 캐릭터의 격으로 치환된다’는 문구.
일단 인지도는 10만이 한계수치인 모양이었다.
이는 인지도를 통해 벌 수 있는 캐릭터 포인트가 30만이 최대라는 뜻이었는데, 사실 그게 딱히 아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근래 캐릭터 상점에서 이렇다 할 효용성 있는 상품을 구매한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상품 자체에 하자가 있었다기보다는, 만화 설정 상의 제약 문제가 컸다.
얻을 수 있는 고유능력이 하나로 제한된다는 것.
솔직히 성장단계에 있는 캐릭터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배경’인데, 그게 그 속에 들은 특성 때문이건 혹은 인맥이나 기타 혜택 때문이건 간에, 웬만큼 좋다고 생각되는 것들엔 죄다 고유능력들이 껴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경우엔 처음부터 구매가 불가했다. 고유능력을 안 익혀도 되니까 그 외의 혜택이라도 좀 얻고 싶은데, 그게 다 막히니 원.
그러다보니 기껏 산다는 게 독자코멘트나, 자잘한 배경 몇 종에 그쳤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지금도 포인트는 남아도는 실정이었다. 이번에 받은 포인트까지 합치면, 거의 한 100만에 육박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이번에 새로운 상품들이 나왔다는 것.
‘그래도 포인트를 모아 둔 게······ 전화위복이 되려나?’
물론 이는 상품 종류에 대하여 먼저 확인을 한 다음에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다음으로, 캐릭터 격의 ‘등급’과 이를 달성함으로써 ‘일부 정보가 해금’되었다는 문구.
이건 보자마자 확 관심이 갔다.
‘이걸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 아, 이건가?’
찾아보니, 홀로그램 창 한 구석에 새로 ‘격’이라는 탭이 하나 생성되어 있었다.
나는 곧바로 이를 눌러 확인해봤다.
-현재 등급 : 주조연
-현재 수치 : 1023
-경험치 : 72%
-다음 등급까지 남은 수치 : ?
-선행 플롯 무시 가능 횟수 : 2회
“······오호라.”
굉장히 알기 쉬운 정보였다.
볼 게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등급이니, 수치니 하는 것들은 별 의미가 없었다. 비교 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것이 실제 스탯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는지 전혀 나와 있지 않았으니.
이 중에서 중요한 정보는 딱 하나였다.
-선행 플롯 무시 가능 횟수.
이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항목이었다.
이를 달리 해석하자면, 격이 높아져 작가의 뜻에 저항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사실 이전부터 얼핏 짐작은 하고 있었다. 전에 한 번, 선행 플롯을 어긴 대가로 격이 깎여나갔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별도로 침묵을 강제당하긴 했지만, 그 외의 부가적인 페널티는 없었다. 즉, 실질적인 페널티는 ‘격’의 감소 하나라는 것.
이는 곧, ‘그럼 격만 충분하다면 페널티를 견뎌낼 수도 있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위 정보는 이를 확신하게 해주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를 통해 다음의 결과를 합리적으로 유추해볼 수도 있었다.
격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작가의 의도에 정면으로 반발하며 ‘내 위주’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
“흐음······.”
좋은 소식이었다. 어쩌면 내가 가장 바라마지 않던 내용이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이 같은 결론에 곧바로 환호성을 지르지는 않았는데, 약간 걸리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내게 적용되어 있는 이 ‘캐릭터 시스템’이라는 것과 ‘작가’ 사이의 ‘이질성’에 관한 사항이었다.
과연 시스템과 작가는 같은 것인가?
이는 내가 오래전부터 의문을 품어온 주제였다. 언뜻 생각하면 사실 다를 게 없어야 하는데, 희한하게도 양측이 의도하는 바가 조금씩 충돌하는 지점이 존재했던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삭제 유예권’이라는 상품이었다.
작가가 나라는 캐릭터를 삭제하고자 할 때, 시스템을 통해 막을 수 있다는 것.
물론 이는 작가가 본인의 화급한 성격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에, 본인의 돌발행동을 막기 위해 직접 만들어둔 일종의 제약장치 따위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와 시스템이 같다는 걸, 굳이 말이 되게끔 해석하고자 할 때.
하지만 이 ‘격’이라는 개념은 그마저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예 캐릭터가 작가가 짜둔 전개로부터 벗어나 제 맘대로 행동할 수 있게끔 해주는 장치였으니.
어느 작가가 그 같은 권리를 캐릭터에게 부여한단 말인가. 미치지 않고서야.
하여, 자꾸만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것이다.
그럼 두 측은 완전히 구분될 수 있는 건가?
시스템이 작가와 구분이 된다면, 그럼 이 시스템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든 것인가?
작가는 시스템의 존재를 아는가?
그럼 상품의 가격을 올린 게 작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건가?
아니면 혹, 시스템은 그냥 작가 본인이 엇나가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어둔 보조 장치에 불과한 것인가?
잠시 후,
“······됐다, 치우자.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나는 고개를 털어 이제까지의 상념을 모두 지워냈다.
다 시간낭비였다. 어차피 내가 그걸 알 수 있었다면, 애당초 여기 만화 속 세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지도 않았을 테니.
그냥 내가 이 ‘격’이라는 개념을 통해 가져야 하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좀 더 계획적이고, 반항적으로 작가의 속을 뒤집어놓자는 것.
‘합법적 트롤이라······ 뭐, 나쁘지 않네.’
이어, 나는 새로 나왔다는 상품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상점을 키자마자, 포인트 보유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음, 제법.”
솔직히 별 감흥이 없다 생각하면서도, 눈이 가는 게 사실이긴 했다. 기분이 썩 나쁘지 않기도 했고.
그리고 이제 새로 나온 상품들이 쓸 만한 것이라면, 모아온 보람까지 찾을 수 있을지도.
“어디보자······.”
◆ 캐릭터 설정(New)
◆ 챕터
◆ 특별상품(New)
나는 먼저 캐릭터 설정 쪽부터 훑었다.
대충 살펴보니, 고유능력과 배경 쪽에 최신 업데이트가 진행되어 있었다. 특히 배경 쪽에 이스트랜드와 관련한 상품들이 많이 나왔는데, 약간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볼일이 다 끝나가는데 이제와 판매하면 뭐 어쩌라는 거냐고.
물론, 지금 구매해뒀다가 나중에 본 이스트랜드 쪽 파트 차례가 되었을 때 써먹을 순 있을 것이다.
‘근데 그건 한참 뒤의 일이잖아.’
나는 곧장 카테고리에서 나왔다.
‘기대도 안했다, 기대도.’
어차피 진짜는 이 쪽이었다.
특별상품.
이어 탭을 눌러 들어가 보니,
“이야.”
꽤나 놀랄만한 상품들이 네 가지나 출시되어 있었다.
[특별상품]※ 터치 시 각 상품 별 상세내용 확인 가능
1. 삭제 유예권 – 50,000p
2. 선행 플롯 확인하기 -70,000p
3. 페널티 거부권 – 100,000p
4. 출연 거부권 – 150,000p
5. 메인시점 예약권 – 250,000p
확실히 ‘격’이 오르니 상품의 ‘격’ 또한 확 상승한 느낌이었다. 나라는 캐릭터의 중요도를 드디어 인정받게 된 듯한 느낌도 있었고.
게다가 상품명만 봐도, 앞으로 뭐를 어떻게 해야 할지가 대충 감이 왔다.
필요한 건 차지하고 뺄 건 빼면서, 스스로 적당히 분량과 비중을 조절하는 것.
이를 통해, 확실히 이야기를 뭔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비싼 게 좀 흠이네.”
희한하게 또 보유 포인트가 부족해 보인다는 것.
흐음.
나는 미리 다 사둘까 잠시 고민하다, 일단 탭에서 나왔다.
뭐,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설마하니 방금 출시됐는데 금방 또 가격이 오르진 않겠지.
그리고 이제,
“어이구야,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냐.”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나는 챕터 카테고리로 들어가 최신화의 독자코멘트를 구입했다.
귀검鬼劍 – 주걱턱 졸라 세에에에에에에에엣
유월(六月) – 그냥 자기 자신한테 충성하는 건 안 되는 건가요?ㅋㅋㅋㅋ
하누바람 – 2명 동시 통과라니
모노타입 – 응~ 절대 안 놔줘ㅋㅋㅋㅋ
김태훈 – 주걱턱 믿었다구
ThinkPad – 근데 서약이 ㄹㅇ 약혼자한테 하는 맹세 같네여ㅋㅋ
아우터갓 – 소년만화는 이래야지….
청늪 – 지린다..!
앙칼진놈 – 레오편 재미없어서 보겠누 ㅋㅋㅋㅋㅋ
캬오캬오 – 구구는 주지 말고 데려가자ㅋㅋㅋ
장문충나가 – 레오 어뜨캄ㅋㅋ 이거보다 재미가 덜한데.. 작가 피눈물 흘린다 ㅋㅋ
redwing – 아ㅋㅋㅋ 진주인공이네
퀘나리 – 잘 봤습니다.
아, 좋다!
뭐랄까, 각박한 만화 속 세상에서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힐링 콘텐츠랄까.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다만, 작가를 자극할 만한 문구가 제법 된다는 게 약간 염려가 되긴 했다.
만약 또 작가가 나라는 존재에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피곤하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긴 했다.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건, 다른 쪽엔 이미 그늘이 졌다는 뜻이었으니.
그렇게 찬찬히 읽고 있다보니, 개중에 몇몇 더 눈에 띄는 댓글들이 있었다.
가령, 내가 했던 고민들을 짚어내는 것들.
글리치 – 여기서 왕녀가 제국에 남지 않고 같이 모험단에 끼어들면 부족한 전투원 하나가 보충되는데 어찌될지 궁금하네요.
실제로 나는 왕녀와 함께 떠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어차피 왕녀가 당장 황제가 될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 돌아다닐 시간 정돈 있을 테니까. 더욱이 각성까지 했겠다, 도움이 됐으면 됐지 짐이 될 리도 없고.
그러나,
‘아냐. 적당한 데서 끝내는 게 맞아.’
왕녀는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캐릭터다. 대체할 이도 없고, 없어도 되는 역할도 아니고.
즉, 어차피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캐릭터라는 것.
그럴 거라면 그냥 깔끔하게 빨리 끝내는 게 맞다. 괜히 희한한 전개로 깽판 칠 생각이 아니라면.
아쉬움이야 남겠지만 뭐······ 훌훌 털어버리는 수밖에.
그리고 왕녀에 대한 것보다도, 아래와 같은 댓글들이 좀 더 신경이 쓰였다.
jh7free – 아니, 근데 주걱턱 능력이 대체 뭐임? 제한이 없는 것 같은데.
akdtm1 – 솔직히 너무 사기인 듯. 킹도 그렇고.
슬슬 설명이 들어가야 할 시기였다. 더 지체한다면 독자들의 궁금증이 쌓이다 못해 폭발할지도 모르니.
사실 이와 같은 경우, 작가가 지면을 빌어 해명하듯 정보를 전달할 때도 있다.
가령, 실제 원작에서 이 ‘흉내쟁이 곡예사’가 화제에 올랐을 때가 바로 그 경우였다.
이미 캐릭터가 삭제된 뒤이기도 했고, 딱히 작중에서 드러낼 방법이 마땅찮았기에, 작가가 그냥 대놓고 세부설정에 대해 밝혔던 것이다.
내가 이 능력의 흉내 조건을 알고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 나는 작가의 조치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단순히 작가와의 관계만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은 어떤 말로도 나를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어떻게든 내 힘으로 빠른 시일 내에 이를 개연성 있게 풀어내야 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이것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였다.
도깨비.
현재 자격시험을 쳤던 어드벤티움에서 출발한지 어언 50일 째.
본래 상정한 기간이 최대 3개월이니, 생각보다 시간이 꽤 남은 상황이었다.
치누아비에게 듣기로, 최대한 서두른다면 ‘도깨비 소굴’까지 일주일이면 갈 수 있다고 했다.
“일주일이라······.”
오며 가며 보름. 다시 또 난마 항구까지 일주일. 거기서 웨스트랜드로 넘어가는 데 또 열흘.
움직이는 시간만 따졌을 때 대략 잡아 80~85일 정도.
빠듯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시간은 됐다. 다녀올 여유는 있었다.
“갈 수는 있는데······.”
그즈음엔 솔직히 고민이 조금 되었다.
이유야 별 게 없다. 그냥 안 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본래 그곳을 가려고 했던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작가한테 빡쳐서. 그래서 그곳의 도깨비들을 꾀어, 웨스트랜드로 던져버리려 했던 것이다.
둘째, ‘약화’에 대비하여 칼 자이드의 고유능력을 흉내 낼 방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셋째, 나라는 캐릭터를 설명할 ‘배경’과 ‘개연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헌데 지금에 와 보니,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가 그 동력을 많이 상실해버렸던 것이다.
물론 여전히 작가가 괘씸하다고 생각하곤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한들, 굳이 공들여 도깨비 폭탄을 투하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시간도 여유롭겠다, 곧장 웨스트랜드로 가 더 효율적인 엿 먹일 방법을 구상하는 게 보다 낫지 않을까.
또한 지금껏 염려했던 ‘약화’도 딱히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되레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그래서 사실 임무 중간에 도깨비를 찾아갈 필요 없이, 다이렉트로 모험의뢰를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중간에 약화가 진행됐다면, 이게 또 시간을 얼마나 끌었을지 모른다.
다시 말해, 굳이 칼 자이드의 능력을 탐내지 않고도 전처럼 차근차근 챕터를 준비해도 될 것처럼 보인다는 것.
문제는 이제 이 세 번째 이유인데, 이게 약간 애매하긴 했다.
당장 도깨비 외에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으니.
“흐음······.”
하여, 그즈음에 나는 외려 도깨비소굴을 방문해야만 하는 필요성이 아니라 방문했을 때 나에게 주어질 이점을 생각해보기로 했던 것이다.
첫째. 일단 이스트랜드까지 온 게 아깝다.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이유였다. 확실히 쉽게 오고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니까.
하지만 물론, 그리 중요한 이점은 아니었다.
둘째. 이미 내친 발걸음이라는 것.
가긴 가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다짐한 바가 있는데, 라는 이유다.
음······ 물론, 이 또한 중요하진 않다.
셋째. 만약 운이 따라 줄 경우, 내가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무려 세 가지나 있다.
1. 나를 설명할 배경.
2. 치누아비를 비롯한 도깨비들의 고유능력을 흉내 낼 수 있는 방법.
3. 칼 자이드의 고유능력을 흉내 낼 수 있는 방법.
이건 확실히 탐이 나는 이점이었다.
내 캐릭터의 개연성을 담보할 설명도 설명이지만, 내 능력을 한 차원 높게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니.
다만 문제는 이 때 무엇 하나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스크가 크다는 것. 대박 아니면 쪽박.
그리고 사실 내 생각에, 쪽박이 되는 방향이 좀 더 가능성이 높았다.
“흠······.”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
하카에게 할 말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뭐, 약속했으니까.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래, 다녀오자.”
결심을 내리자마자, 나는 곧바로 밖으로 소리쳤다.
“집합!”
곧이어,
“······왜?”
“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코코아와 치누아비가 졸린 듯 눈을 부비며 나타났다.
“해가 뜬지가 언젠데 여태 자고 있어. 짐 챙겨. 10분 뒤에 출발한다.”
그러자 치누아비의 눈이 번쩍 뜨였다.
“행선지는 어디지요?”
“어디겠어?”
그러고 나는 씩 웃으며 덧붙였다.
“너네 집이지.”
그러자,
“호오······.”
치누아비의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물론, 집을 그리워하는 가출소년의 그것과는 약간 차이가 있는 미소였다.
“도깨비 집! 좋아! 신나!”
그간 좀 심심했던 모양인지, 코코아도 좋다고 난리였다.
그때였다.
“그나저나······.”
치누아비가 어물쩍 거리며 말을 흐렸다.
“뭐, 왜?”
“그게······.”
“말해.”
“인사는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 왕녀님께.”
“왕녀? 아아.”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미리 다 해뒀어. 알아서 떠나겠다고.”
지난 밤, 굳이 직접 찾아가 말까지 했던 것이다. 괜히 황제가 귀찮게 하기 전에, 나 먼저 알아서 가겠다고.
“혹시나 나 찾으면, 당신이 보냈다고 해주고. 그 정돈 해줄 수 있지?”
“······충성을 맹세한 주제에 어딜 가?”
“아아, 좀 봐주라고. 우리가 또 할 게 많아서. 다음에 또 보자고.”
“······언제.”
“그야 뭐, 알아서 찾아올게. 당신이 위험해지면.”
“······참나, 맘대로 해.”
내 말에 치누아비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아하······ 근데 저는 안 했는데요? 인사?”
“상관있어? 친해?”
“에이. 아무렴 예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여태 봐온 정도 있고.”
“나도 안했어!”
“어허, 영영 이별한 것도 아닌데 뭐. 그리고 너네도 이별에 익숙해지는 법을 좀 알아야 돼. 그래야 어른 된다. 빨리 짐 챙겨서 나오기나 해.”
얼른 가자고, 도깨비 소굴로.
*
일주일 뒤. 도깨비 소굴 훼방꾼 터 정문.
“서, 설마?”
훼방꾼 터의 문지기 황개초비는 정면에 보이는 ‘무언가’ 때문에 굉장히 당황한 상태였다.
웬 광대 가면을 쓴 작달만한 꼬맹이가 저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틀림없었다.
놀랍게도, 녀석은 인간이었다.
때마침 뚜벅뚜벅 걸어오던 꼬맹이가 은막으로 가려진 출입구 앞에 정확히 멈춰 섰다.
그러곤,
“안녕하쇼?”
대뜸 인사를 건넸다.
순간, 황개초비는 놀라 비명을 지를 뻔했다.
‘뭐야, 설마 나한테 한 거야?’
급히 입을 틀어막은 덕분에 다행히 소리는 내지 않을 수 있었지만, 놀라움은 여전했다.
보일 리가 없을 텐데.
황개초비는 입을 벌리는 대신, 눈을 치켜떴다.
꼬맹이는 침묵이 이어지자 약간 갸우뚱 하는 것 같더니, 재차 입을 열었다.
“문 좀 열어주쇼.”
“······.”
궁금했다. 저 녀석의 정체는 뭘까. 무슨 목적일까.
인간 꼬맹이들은 말투가 원래 다 저런가?
황개초비는 더는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10초면 많이 견뎠지.
“너 뭐냐!”
그러자,
“아하, 거기 계셨소?”
꼬맹이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저기 뭐야, 수수께끼 주걱턱 풍물패에서 나왔수다.”
호오, 수수께끼?
단어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런데?”
애써 무심한 척 했지만, 황개초비의 귀는 이미 쫑긋 세어져 있었다.
“아니, 이 주변을 지나는데 도깨비란 작자들이 산다고 하지 않겠소. 씨름도 곧잘 하고, 재주도 제법 넘는다는.”
“허어, 그런데?”
“뭐, 별 건 아니고······.”
이윽고, 꼬맹이가 은근한 투로 덧붙였다.
“한 수 겨뤄보시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