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79
79화 도깨비씨름
***
“아주 그냥, 어? 발을 걸어 메다 꽂아버리라고! 이렇게, 어? 이렇게 말이야, 이렇게!”
나는 내 허리춤을 잡은 채 낑낑대는 피에로 꼬맹이를 말없이 바라봤다.
“발을 엉? 이렇게 차! 이렇게 차란 말이야! 거는 것도 좋지만, 일단 차버려. 그럼 중심이 넘어가게 되어 있다니까?”
“······.”
나는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어이가 없었다.
얘는 또 갑자기 웬 희한한 컨셉을 잡아가지고는.
“미안한데, 이거 그렇게 하는 거 아냐.”
“엉?”
“할 줄도 모르는 게 어디서. 나와 이제.”
“허허, 이 주걱턱 좀 보게? 내가 무슨 씨름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인 줄 알아?”
“너 한 번도 안 해봤잖아.”
“허허······.”
“나와 봐, 좀.”
나는 코코아의 옷깃을 잡곤 옆으로 들어 치웠다. 마침 상대측에서도 한 도깨비가 슬슬 걸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은 굉장히 왜소한 체격의 한 도깨비였다. 어찌나 작았던지, 고작해야 코코아보다 약간 더 큰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는 녀석을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어우······ 쟤 잘하겠다.
물론, 나의 이 판단이 ‘반전 외모를 가진 캐릭터가 외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소년만화의 흔한 클리셰에 의거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딱 봐도 잘할 것 같이 생겼던 것이다. 얄팍하고도 음흉해 보이는 웃음하며, 끊임없이 힐끔거리며 눈치를 살피는 기색하며.
사실 여기서 ‘잘한다’는 게 ‘힘이 세다’와 동일한 의미는 아니었다.
도깨비씨름에서 힘은 그다지 중요한 역랑이 아니다. 외려 패배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지.
이 종목에서 승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도깨비스러움’이다.
장난, 거짓말, 변덕, 허풍, 훼방.
즉, ‘속임수’와 ‘혼동’, 그리고 ‘교란’에 관련된 역량이다.
도깨비 씨름의 규칙은 매순간 바뀔 수 있다.
이는 실제 원작에서 키리코가 도깨비씨름을 진행하는 와중 직접 언급한 내용으로, 이 경기의 특성을 가장 쉽고 명확하게 정의내린 것이다.
씨름에서 이기려면, 그 바뀌는 규칙들을 그때그때 알아차려야 한다고.
헌데 웃긴 건, 이게 또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깨비씨름의 규칙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씨름과 동일하다. 상대를 먼저 바닥에 닿게만 하면 이긴다.
그러나 막상 시합에 들어서면 이를 ‘까먹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이는 상대로 나온 도깨비가 ‘교란’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교란이라 함은 별 게 없다.
치누아비의 고유능력인 [규칙을 가지고 노는 장난꾸러기]의 작동방식이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데, 어떠한 규칙 혹은 법칙에 매여 있는 대상을 혼동에 빠뜨려, 본래의 규칙을 잊어먹게 만드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 도깨비씨름이라는 건 순수한 물리적 힘보다는 정신침투와 관련된 능력대결이다.
도깨비들은 가진 바 개성에 따라 교란시키는 방식이 다르나,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1. 개념적으로 교란시키는 것.
2. 감각적으로 교란시키는 것.
간단하다.
전자는 시시때때로 바뀌는 룰을 가지고 혼동을 일으키는 것.
후자는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만져지는 것에 거짓을 섞는 식이다.
그리고 물론, 두 가지를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아주 악질적인 놈들도 존재했다.
과연 이 녀석은 어떨까나.
나는 대결장소로 마련된 모래판 위에 가만 선 채,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 나오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실실거리고 있던 표정과는 달리, 녀석이 대뜸 내뱉은 말은 꽤나 공격적인 것이었다.
“뭘 봐?”
호오.
쉽게 파악이 되는 녀석이었다.
일단 건방지고.
“건방진 인간. 도깨비와 씨름을 하겠다고?”
자기객관화가 잘 되지 않으며,
“단숨에 끝내주마.”
거짓말을 잘 하기까지.
도깨비들은 놀이할 껀덕지와 놀이상대만 있으면, 곧 죽어도 이를 잘 관두려하지 않는다. 최대한 오래토록 이를 즐기려 하지.
즉, 저렇듯 실실거리며 웃는 녀석에게 금방 끝낼 생각 따위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때였다.
“자, 여기 집중.”
어느새 모래판 위로 올라온 심판이 나와 녀석의 주의를 끌었다.
“갑작스레 진행되는 대결이라 샅바는 없다. 두 사람은 각자의 허리춤을 잡으면 돼. 규칙을 모르진 않겠지만 한 번 더 설명해주지. 상대방을 먼저 바닥에 닿게 하면 된다. 그게 승리조건이다.”
나는 심판에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내 상대로나온 도깨비는 그저 한껏 비아냥댈 뿐이었다.
“알았으니까 얼른 시작이나 하라고. 심판은 얼어 죽을. 그런 게 왜 필요해? 갓난아이도 시작하자마자 알 텐데. 승자가 누군지.”
그러곤 나를 보며 씩 웃는데, 멍청함이 덕지덕지 묻어 나오는 미소였다.
쯧쯧, 하여간에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 모름지기 어떤 승부에서건 심판에게 잘 보여야 하는 법이거늘.
그즈음,
“우우, 애송아! 넌 주걱턱에게 질 거다!”
“져라 져! 벌써부터 지루하다!”
“아니, 어쩌다 저 얼간이 녀석이 상대가 된 거야?”
“이 자식아 주걱턱! 내가 상대하겠다! 나를 지목해!”
“저 심판 녀석은 또 뭐야? 훼방꾼 녀석들은 이 따위 시합에 관심도 없다고!”
도깨비 측에서 응원이지, 뭔지 모를 함성들이 터져 나왔다.
대충 만화를 보면서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현장에서 보니 확실히 과격함이 느껴지는 응원문화였다.
사실 심판이 존재하는 이유 또한 게임 자체의 진행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저 구경하는 도깨비들의 난입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더 컸다.
도깨비들 중엔, 특히나 높은 확률로 장난꾸러기 신과 훼방꾼 신을 받은 녀석들의 경우, 제멋대로 게임을 망치는데 희열을 느끼는 녀석들이 제법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하여, 심판은 모래판 위에 선 이들을 제외하곤 어떤 도깨비도 능력으로 시합당사자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제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즈음,
“이봐, 주걱턱! 지기만 해! 엉? 우리 수수께끼 주걱턱 풍물패의 위상을 떨어뜨리기만 해보라고!”
내 뒤편에서도 커다란 응원소리가 튀어나왔다.
‘······풍물패는 또 뭐야?’
순간 나는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하는 소리마다 황당하긴 했지만, 웃긴 건 그게 또 희한하게 힘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여튼 특이한 녀석이라니까.’
곧이어,
“자, 양측 다 단단히 잡고,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시작하면 되는 거야. 자, 그럼······.”
삐-!
시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녀석도, 또 나도 가만히 서로의 허리춤만 잡고 있었다.
이에 약간 당황했는지, 녀석이 도발하기 시작했다.
“이봐, 주걱턱. 뭐해? 해보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나는 아무런 힘도 주지 않을 테니.”
“어어, 너나 해.”
이 녀석이 가만히 있는 이유에 대해선 쉽게 짐작이 가능했다. 좀 놀아보려고.
간단하다. 도깨비의 입장에서야 내가 힘쓰고 용쓰고 하는 걸 원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내가 뻘짓하는 그림’을 연출하기가 쉬우니까. 땅바닥을 상대로 엎어치기를 시도한다든지, 허공에다 대고 죽어라 다리를 후린다든지 하는 식의 그림을.
도깨비에게 이렇게 상대를 골려주고, 놀려주는 게 중요한 이유는 그 자체에서 얻는 기쁨이지만, 구경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악질인 동시에 관심종자인 도깨비들은 보는 이들이 환호하고, 욕하고, 반응할수록 더욱 기뻐 날뛰는 습성을 지녔으니.
‘미쳤냐 내가. 누구 좋으라고.’
현재 나는 딱히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본래의 상태 그대로였다. 하지만 나는 이 녀석이 이미 내게 뭔가를 했다는 걸 확신했다. 모래판에 들어선 순간, 녀석의 눈이 한순간 번쩍 하고 빛났던 것이다.
‘뭘 했으려나. 개념이 바뀐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여전히 이 녀석을 바닥에 닿게 하면 내가 이긴다는 규칙을 되뇔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현재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나, 녀석의 허리춤을 잡고 있던 내 손아귀 힘에 교란이 일어났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에이, 재미없게. 뭐야? 이 덩치만 큰 주걱턱은. 차라리 저기 뒤의 광대 가면을 쓴 꼬맹이 쪽이 더 재미있겠어.”
“······.”
뭐,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나는 내가 이 녀석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으니.
도깨비들의 교란에 맞서려면, 기본적으로 그와 비슷한 수준의 정신 쪽 고유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걸 차단할 수 있는 방어능력이라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그러한 방어능력을 보유한 캐릭터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는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 도깨비들이 등장하기 시작할 중반부 들어서. 그리고 내가 일찍이 [서기관의 족쇄]를 빼앗았던 피르미노가 본격적으로 활약할 즈음부터.
아직 정신 쪽을 공격하는 능력이 제대로 발달하지도 않았는데, 이를 막을 방어능력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웃기지 않겠는가.
하지만 물론,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현재의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키리코는 도깨비 씨름에서 승리했다.
그 때 키리코가 쓴 방법은 간단했다.
그저 현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외부의 누군가가 직접 개입하여 두 사람을 떼놓고 승패를 정해주기 전까지, 그저 상대인 도깨비를 꽉 잡은 채 움직이지 않는 것.
그렇게 무려 반나절 동안이나 지속된 씨름은 결국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도깨비의 패배선언으로 끝이 났던 것이다.
다만 나는 이 방법 또한 쓸 수가 없었다. 애당초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힘을 빡 준 키리코와는 달리, 나는 처음부터 느슨하게 자세를 잡았기 때문이다. 힘을 줘 상대를 억압해두는 방식이 아니라, 그저 나만 넘어지지 않게 버티는 식으로.
즉, 지금은 이제 힘을 주려고 해도, 팔 대신 괄약근에 힘이 들어가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고로,
“덩치가 아깝다, 덩치가. 어휴, 뭐 좀 해보라고! 엉? 언제까지 나만 이렇게 끌어안고 있을 거야? 내가 그렇게 좋아?”
녀석의 조롱도 묵묵히 참아내는 수밖에.
“빌어먹을, 힘 좀 써보라고! 이 턱만 큰 얼간이가!”
또한 그즈음엔,
“우우!”
“때려 쳐라, 때려 쳐!”
“아니! 저 인간, 지금 뭐하는 거야!?”
구경하던 도깨비들조차 뿔이 나서 고함을 쳐댔지만, 계속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에잇, 인간과는 처음이라 엄청 기대했더니······ 그만 끝내야지 원. 지루해서 못해먹겠네.”
신호가 도착할 때까지.
그러다 결국,
“양측 경고! 뭣들 하는 거야? 둘 다 공격 안 해? 주걱턱! 공격해! 공격하라고.”
심판의 경고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
상대가 갑작스레 입을 다물었다.
이어, 나는 말을 멈춘 녀석에게 나직이 중얼거렸다.
“근데 이거 뭐 점수제냐? 심판이 경고를 다 주네. 경고 두 번이면 실격이고 그래?”
“······.”
“그래 뭐, 실격 당할 수는 없으니······ 이제 힘 쓴다?”
“······.”
“왜 대답이 없어, 이제까지 잘만 떠들더니.”
나는 녀석의 허리를 잡고 그대로 들어올렸다.
가벼웠다.
“끝낸다?”
이어,
쿵!
냅다 바닥에 메다꽂았다.
······.
어느새 장내는 조용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정적이 순식간에 웅성거림으로 뒤바뀌어갈 즈음,
“승자, 주걱턱!”
하나의 외침이 널리 울려 퍼졌다.
이윽고,
“생각보다 빨리 끝냈네? 안 들키고?”
나는 슬쩍 미소 지은 채 심판에게 다가갔다.
“그럼요, 제가 누굽니까. 이 우물 안 개구리들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형님 따라다닌 시간이 얼만데.”
“지금 얘는 어떤 식으로 교란한 거야?”
“아, 이 녀석 말씀이십니까? 지금 혼자 머릿속에서 열심히 숨바꼭질 중일 겁니다. 소리 내거나 움직이면 잡히는 거지요.”
“음, 잘했네. 안 그래도 시끄러웠는데.”
“그럼 내려가실까요? 저기 참, 표정들이 좋네요.”
치누아비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
심판을 가장해 모래판에 올라가 내 상대를 교란시키는 것.
이 방법을 제안한 건 다름 아닌 치누아비 본인이었다.
대결상대로는 지원이 많이 몰릴 것이나, 심판을 하려는 이는 극히 드물 거라고. 하여, 먼저 하겠다 나서기만 하면 크게 문제가 없을 거라고.
“게다가 심판 또한 고유능력을 쓸 수가 있거든요. 모래판 위에 올라가 있으니까.”
좋은 방법이었다. 더 나은 게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다만, 문제는 후환이었다. 이 녀석은 도깨비지 않은가. 심지어 이곳에서 줄곧 자라온.
“다른 도깨비로 둔갑을 한다 해도 결국엔 들킬 거 아냐. 너, 괜찮은 거야?”
도깨비들이 가만두겠냐고 물으니,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후후, 두근두근 하네요.”
외려 신나서 열의를 불태우는 게 아닌가.
하여간에 도깨비들이란.
그리하여 꽤 만만찮은 관문이 될 거라 판단했던 도깨비씨름을 생각보다 쉽게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제 겨우 첫 번째 관문에 불과했지만.
그즈음,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
노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는 마치 똥을 씹다 뱉은 걸, 재차 주워든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뭐든 다 되는 거지?”
“······그래, 허용할 수 있는 범위 내라면 뭐든.”
“뭐야, 말이 다른데? 안 되는 게 있어?”
“그럼 뭐, 당연한 거 아니냐? 막말로 네놈이 우리더러 죄다 코 막고 바다에 뛰어들라고 하면, 다 죽어주게?”
“에이, 설마 그런 걸 요구하겠어?”
“그러니까 일단 말부터 해보라고.”
흐음.
뭐 어쩔 수 없나.
나는 잠시간 노형의 눈치를 살핀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신제를 치르고 싶은데. 도깨비 식으로.”
영신제.
말 그대로 신을 맞이한다는 뜻의 제의(祭儀)로, 어린 도깨비들의 고유능력 각성을 돕는 의식이다.
1년에 한 번 꼴로 진행하는 연례의식이며, 도깨비들 최대의 행사이기도 했다.
내 말에 다들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도깨비들의 의식을 알고 있다는 것만 해도 놀라운데, 이를 하고 싶다고까지 하니.
잠시간 적막이 흐른 뒤, 곧이어 걷잡을 수 없이 아우성들이 터져 나왔다.
말들을 들어보니, ‘저 인간이 미쳤나?’, ‘그게 뭔 줄은 알고 말하는 건가?’, ‘뭐하는 인간이냐’, ‘신기하다’, ‘보고 싶긴 하다’ 정도로 간추려졌다.
곧이어,
“네 놈,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굳은 표정의 노형이 입을 열었다.
그러곤,
“좋다! 그렇게 하지.”
흔쾌히 승낙했다.
“응?”
솔직히 좀 당황했다. 이렇게나 흔쾌히 받아들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으니.
그때였다.
“다만 조건이 있다.”
그럼 그렇지.
“그게 뭔데?”
“다른 종목으로 한 판 더 해, 이 자식아!”
호오.
“우리가 이기면 없던 일로. 너희가 이기면 뭐, 영신제든 뭐든 다 할 수 있게 해주마.”
“흐음, 정말이지?”
물론 기다리던 바였다.
“근데 우리가 이기면 소원이 하나 더 늘어나야지. 그게 계산에 맞잖아. 안 그래?”
“······호랑말코 같은 녀석. 좋다! 대신, 종목은 이번에도 우리가 정한다. 괜찮겠지?”
“뭐, 좋아.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대충 뭘 할지는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이어, 노형이 제시한 종목은 역시나 예상범위 내의 것이었다.
100인 숨바꼭질.
룰은 간단하다. 100명의 도깨비가 지정된 구역 내에 숨으면, 제한시간 내에 우리가 녀석들을 찾는 것이다.
이 종목 또한 미리 나올 걸 예상하고 해법을 마련해둔 상태였다.
다만 문제는,
“이번 대결은 종족 대 종족으로 한다. 도깨비 대 인간으로! 즉, 이번에는 저 인간과 내통한 건방진 어린 도깨비가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이지!”
“아니! 노형, 갑자기 종족을 끌어들이시다니······ 언제 이렇게 치사해지신 겁니까? 저는 도깨비이기도 하지만, 주걱턱 모험단의 일원으로······.”
“닥쳐라, 이 녀석아! 너, 너······ 누구였더라? 너······ 그래, 이놈 치누아비! 도깨비 망신은 다 시키는구나! 네놈은 이따 보자!”
“아니 그······.”
“주걱턱!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죄다 없던 일로 하겠다! 선택해!”
“······.”
이 대결에서 승리하려면 치누아비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
도깨비들의 숨는 방식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하다. 웬만한 녀석들이야 문제될 게 없지만, 몇몇 놈들은 치누아비가 없으면 결코 찾을 수 없는 놈들도 있다.
‘······야단났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무를 순 없는 노릇.
일단 시간을 끌며, 저 늙은 도깨비를 회유할 방법을 한 번 찾아봐야 할 듯 싶었다.
그러고 막 말을 꺼내려던 순간이었다.
“필요 없다고, 저깟 도깨비 녀석! 주걱턱 풍물패는 그 대결을 받아들이겠소!”
내 뒤쪽에서 느닷없는 발언이 튀어나왔다.
놀라 돌아보니, 피에로 가면을 쓴 꼬맹이가 가슴을 쭉 편 채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아, 아니 잠깐······.”
나는 서둘러 이를 취소하려고 했다.
그러나,
“좋다! 그럼 두 번째 대결은 인간 대 도깨비, 100인 숨바꼭질이다!”
노형이 기다렸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결을 선언했다.
······.
나는 내게로 걸어온 피에로 꼬맹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너 뭐하냐?”
“후후, 걱정 말게 주걱턱. 내 저 도깨비가 맡은 역할 또한 충분히 수행할 수 있으니.”
“뭐? 허······.”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다.
물론 이 대결에서 치누아비 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욱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게 이 꼬맹이긴 했다. 이 녀석의 길눈으로 도깨비들이 숨은 장소를 찾아야 했으니.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이 꼬맹이가 치누아비의 역할까지 맡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아니, 네가 어떻게 치누아비를 대신한다고······ 뭐, 도깨비세요?”
그러자,
“후후, 바로 맞췄군. 실은 내 본래의 정체를 숨기고 있었지.”
“······.”
신나 조잘대는 걸 보니, 또 희한한 컨셉을 하나 잡은 모양이었다.
이어 코코아가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황당하게도, 녀석의 이마엔 나무로 조각한 듯한 자그마한 뿔이 달려 있었다.
“다시 한 번 내 소개를 하지. 어릴 적 도깨비소굴을 떠나 풍물패 생활을 해온 떠돌이 도깨비, 코코아비라 하네. 그간 정체를 숨겨서 미안하군.”
······하.
설마 이거······ 이거 컨셉질 한 번 해보려고?
“후후, 놀랄 것 없어. 가자고, 주걱턱.”
“······.”
나는 쑤셔오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생각지도 못한 정체를 숨기고 있던 웬수같은 꼬맹이를 따라 숨바꼭질 대결 장소로 이동했다.
*
뛰어난 길잡이가 숨바꼭질과 같이, ‘무언가를 찾아내는’ 관문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길을 안다는 것만으로 모두가 그 길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길이 자물쇠가 채워진 철문으로 막혀있다면, 해독가 없이는 이를 지날 수가 없다.
가는 도중 보물을 지키는 수호자가 튀어나온다면, 대적자 없이는 이에 맞설 수가 없다.
즉, 길잡이 하나만으로는 관문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모든 장애물에 대응할 수가 없으니.
숨바꼭질 시작 3분 째.
“아, 얼른 따라 오라고!”
“뭐해 안 오고!”
“이쪽이라니까?”
“이 굼벵이 주걱턱!”
둔갑한 도깨비를 감별해낼 해독가 없이 숨바꼭질을 시작하게 된 나는 끝끝내 긴 한숨을 토해냈다.
네 명의 코코아가 내게 자신을 따라오라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