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8
8화 회수되지 못한 떡밥
***
버진시티 타워 근처까지 왔음에도 아무런 경고메시지가 뜨지 않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리고 정문을 지키고 있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두 번째로 가슴이 뻑적지근해져 오는 걸 느꼈다.
세 번째, 박살난 건물 내부에서 조금의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을 때.
네 번째, 그나마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보스의 방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다섯 번째.
“와······ 진짜 있네.”
그곳에서 작은 냉장고만한 금고를 찾았을 때, 나는 심장이 용솟음치는 걸 느꼈다.
기억은 정확했다. 두 사람이 코앞까지 들이닥쳤단 말을 듣곤, 보스가 ‘그, 금고라도 챙겨야 되는데······’라고 하며 우왕좌왕 했던 장면이 얼핏 생각이 났던 것이다.
나는 금고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슬쩍 만져봤다.
철로 된 게 제법 단단해 보이긴 했으나 왠지 그냥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빙의된 이 악당3이란 녀석은(현재는 주걱턱이 되어버렸지만), 무려 ‘힘이 약간 세다’라는 특징을 가진 캐릭터다. 그리고 이 만화에서 ‘힘이 세다’고 칭해지는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집채만한 바위쯤은 쉽게 들어올린다.
‘부숴볼까?’
나는 금고의 윗면을 잡은 채 슬쩍 힘을 줬다.
그러자,
우드득-.
금고가 단숨에 구겨졌다.
“오, 역시.”
잘하면 잡아 뜯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어 몇 분간 씨름한 끝에, 나는 금고의 문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었다.
“······대박.”
금고 안엔 돈다발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 옆에는 담아가기 좋게 자루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이게 다 얼마야?”
언뜻 봐도 지폐뭉텅이만 수십 개 가량 됐다.
물론 당장 그 금액까진 파악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의 돈 단위가 ‘골드’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지, 실제 지폐를 본 건 처음이었으니.
“뭐, 천천히 세 보면 되겠지.”
나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돈을 쓸어 담았다.
이어 돈으로 가득 찬 자루를 어깨에 짊어지니,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충만감이 일었다. 험난하게만 보이던 생존의 길에 한 줄기 서광이 깃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뚜벅뚜벅-.
여섯 번째로 내 심장을 떨리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떨림은 지난 다섯 번의 두근거림 따위완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센 것이었다.
정말이지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실례지만, 혹시 좀도둑이신가요?”
처음이었다. 놀라 몸이 얼어붙은 건.
나는 놀란 가슴을 애써 가라앉힌 채 뻣뻣이 굳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내 시선이 닿은 곳에 웬 남자가 서 있었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눈이 가로로 쫙 째진, 흔히 말하는 ‘실눈 캐릭터’.
그가 묘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딱히 당신을 어떻게 할 생각은 아니니.”
“······.”
그의 차분한 어조에도 나의 심장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세게 날뛰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자루 안에 돈 말고 들은 게 있나요?”
“······.”
나는 대답하는 대신, 천천히 고개만 저었다.
“확인 좀 해도 될까요?”
끄덕끄덕.
나는 자루를 내려놓은 채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곧이어 그가 다가와 자루를 열었다.
“알차게도 담으셨네.”
“······.”
“그나저나 어떻게 오셨죠? 여기 마피아들과 관계가 좀 있으신 분인가요? 혹시 정체가?”
나는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킨 후, 간신히 소리 내 대답했다.
“그냥······ 좀도둑인데요······.”
“흐음.”
눈앞의 저 실눈 캐릭터의 이름은 하카. 생김새 그대로 대단히 비밀스런 녀석이었다.
그 정체가 어찌나 베일에 꽁꽁 싸여 있던지, 심지어 이 만화를 완결 직전까지 읽은 나조차도 녀석의 비밀을 거의 알지 못할 정도였다.
쉽게 말하자면, 녀석은 이 모험왕에 처음으로 나온 ‘회수되지 못한 떡밥’이었다.
초반부터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대단한 뭔가가 있는 것처럼 연출되다가, 어느새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린 비운의 캐릭터.
내 생각엔 작가의 실수가 분명하지만, 작가의 논리대로라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해 없어진 녀석 중 하나랄까.
저 녀석은 가면 갈수록 초반부의 포스를 잃어버리고 온갖 희한한 모습들을 보여주게 된다. 냉혹하고, 음험하며, 장난스럽게 살인을 저지를 것만 같던 녀석이 점차 덜떨어진 개그 캐릭터로 전락한다고나 할까.
아마 작가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분명 저 녀석을 위해 준비된 스토리가 있었겠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그냥 지나쳐버리게 되었고, 그 이후부턴 더는 써먹기 힘든 캐릭터가 되어버렸을 테니. 별 수 없이 개그캐릭터로라도 활용하는 수밖에.
다만,
“사실 거짓말이었어요. 당신을 어떻게 할 생각 없다는 거.”
후에 희한한 모습을 보인다한들 당장은 아니었다.
적어도 현재의 이 녀석은 대단히 비밀스럽고 위협적인 캐릭터가 맞다. 당장 주인공들조차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미안하지만, 어떻게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녀석이 씩 웃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어떡하지.
머릿속 경종이 울렸다. 조심하라고, 진짜로 살해당할 수도 있다고.
나는 정신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아직은 괜찮아, 기회는 있다.’
이 놈은 위험하다. 하지만 괴짜 같은 면도 분명히 있다. 내가 기억하기로, 이 녀석은 단번에 사람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기회를 한 번 드리도록 하죠. 이대로는 너무 억울할 수 있으니까. 제가 수수께끼를 하나 낼 테니 정답을 맞히면 곱게 보내드리겠습니다. 못 맞히면 뭐······ 아시죠?”
그래, 바로 지금처럼.
황당하리만치 느닷없는 수수께끼 제안. 하지만 이는 이 녀석의 습관 중 하나이자, 작가가 이 캐릭터에게 넣으려 했던 주요 설정 중 하나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이 씩 웃으며 수수께끼를 냈다.
나를 포함한 나의 형제는 총 다섯입니다.
나는 교란과 속임수, 이간질에 능하고 숨바꼭질을 좋아합니다.
늘 세 가지의 물음을 품은 채 세상을 바라보는 나.
나는 누구일까요?
“혹시 답을 아시겠습니까?”
녀석의 물음에 나는 침묵했다.
사실 답은 문제를 듣자마자 알았다. 이 문제는 녀석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였으니까.
다만 내가 머뭇거렸던 까닭은 현 시점에서 이걸 맞힐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수수께끼의 답이 되는 ‘녀석들’은 작품의 중후반부나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종족이다. 당장 이들의 ‘소굴’부터가 현재 주인공 일행이 돌아다니는 웨스트랜드와 정반대에 위치해 있었으니. 심지어 그곳에서조차 전설상의 종족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보기 힘든 존재들이 아니던가.
솔직히 말하자면, 이 녀석이 이 시점에 이들에 대해 묻는다는 것 자체부터가 설정 오류에 가까웠다. 그들과 끈이 있다는 건 더더욱 그렇고.
그럼에도 이 같은 설정이 적용된 이유를 굳이 짐작해 보자면······ 아마 작가가 이 종족을 구상한 뒤, 당장이라도 써먹고 싶은 마음에 이 녀석을 통해 드러내려 했던 게 아닐까. 현 시점에서 가장 비밀스런 캐릭터가 바로 이 녀석이었으니. 후에 어떻게든 다 풀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고.
다만, 이게 오히려 캐릭터에겐 독이 된 경우였다. 메인 스토리에서 풀리지 못한 채 수년을 묵히면 그게 떡밥인가. 족쇄지.
어쨌거나 답을 맞히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이 종잡을 수 없는 녀석에게서 살아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게 문제였지.
“침묵한다는 건 답을 모른다는 거겠죠? 그럼 뭐······ 안타깝지만 여기서 마무리 하는 걸로.”
하지만 뭐, 어차피 내게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으니.
나는 내 앞으로 다가온 녀석을 보며 중얼거렸다.
“······도깨비.”
“그럼 안녕히······ 예?”
“도깨비라고, 도깨비. 맞죠?”
“어······ 어?”
“이제 가도 됩니까?”
나는 녀석이 당황한 틈을 타 잽싸게 자루를 짊어졌다.
“자, 잠깐!”
그러자 녀석이 다급히 나를 붙잡았다.
“하, 하나 더! 그럼 도깨비들의 고유능력인, 그들의 다섯 신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나요? 이것까지 맞힌다면 인정하고 보내드리겠습니다!”
저 말이 진짜일까?
물론 답이야 어려울 게 없었다.
“장난꾸러기 신, 거짓말쟁이 신, 변덕쟁이 신, 허풍선이 신, 훼방꾼 신.”
“······.”
“맞죠? 갈게요.”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녀석은 내가 자루를 챙겨 방을 나갈 때까지도 가만 제자리에 선 채 입만 벌리고 있었다. 혹, 녀석의 머릿속에서 무슨 설정충돌이라도 일어난 게 아닐까.
어쨌거나 내게는 몹시도 다행스런 일이었다.
‘일단 뛰어야겠지?’
나는 마음먹은 즉시 죽어라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쫓아오는 것 같진 않았다.
얼마 후.
로즈메리따의 가게로 돌아온 나는 녀석과의 만남에 대해 되새겨봤다.
생각지도 못한 캐릭터를 만났고, 죽을 위험에 처해졌었으나, 의외로 쉽게 살아났다.
그즈음에 든 생각은 꽤나 긍정적인 것이었다.
‘이거 혹시 잘 된 일인가?’
후에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 것과는 별개로, 녀석은 초반부 챕터에선 꽤나 자주 얼굴을 내비치는 캐릭터다. 더욱이 ‘검은 그림자’가 연관된 에피소드들에선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일단 녀석이 가진 여러 신분 중 하나가 바로 ‘검은 그림자 비밀단원’이니. 아마 이곳에 나타난 것도 그와 관련된 뒷 설정 때문일 것이다.
만약 녀석이 나의 존재를 기억한다면? 혹, 내가 새로운 떡밥으로 떠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
또 하나.
저 ‘회수되지 못하고 사라질 떡밥’을 내가 주워다가 스토리에 엮는다면?
‘작가가 좀 좋아하지 않으려나.’
비단 녀석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회수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떡밥들이 곳곳에 생겨나게 된다. 이것들을 잘 엮어다 나를 통해 푼다면? 작가의 호감은 물론이고, 독자들의 호감까지 거머쥘 수 있지 않을까.
애당초 떡밥이라는 것 자체가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떡밥이 복선이 되고, 복선이 실제 이야기로 드러나는 순간, 그 중심에 있는 인물에게로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쏠릴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 바로 나.
“흠흠.”
물론 당장은 아이디어 정도에 불과했다. 상황을 잘 살펴가며 판단해 봐야겠지.
나는 이쯤에서 녀석에 대한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어차피 더 해봤자 결론이 나오는 게 아니었으니.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 가져온 전리품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려 딴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씩 미소 지은 채, 자루의 입구를 벌렸다.
모르겠고, 일단 돈부터 세자.
*
“주걱턱 씨! 안녕히 가세요!”
“그래, 잘 지내.”
나는 배웅 나온 로즈메리따에게 인사한 뒤, 대기시켜둔 말 위에 올라탔다.
끝까지 주걱턱이라니.
수차례에 걸친 수정요구는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암만 이름을 가르쳐줘도, 전혀 아랑곳없이 주걱턱이라 불러댔던 것이다. 놀랍도록 뻔뻔한 얼굴은 덤이었다.
물론 그녀의 지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시스템적으로 뭔가 설정이 되어 있는 거겠지. 하지만 어째 놀림감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흐음.
어쨌거나 슬슬 떠날 시간이었다.
나는 로즈메리따에게서 건네받은 지도를 펼쳐들었다.
작중에 소개되지 않는 지역의 지도가 과연 어떤 식으로 그려져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역시나 별 게 없었다.
두루뭉술하게 그려진 지형에, 크고 작은 점들만 군데군데 찍혀 있을 뿐이었다. 점 크기가 도시의 규모를 뜻하는 듯했다.
“뭐,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냐 만은.”
어차피 대도시로 나가는 길의 방향은 숙지해둔 상태였다.
나는 지도를 품에 넣곤, 곧바로 말을 움직였다.
3시간 후.
나는 이 근방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빅 시티’에 도착했다. 황당하리만치 직관적인 네이밍이었다.
도시에 들어선 나는 두 가지 점에서 크게 놀랐다.
첫째, 도시 간 문명발달 수준이 엄청나게 차이난다는 점.
이는 이곳이 만화 속 세상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시티라 이름 붙긴 했으나, 버진시티에서 문명의 이기라 불릴 만한 것은 기껏해야 총 정도가 다였다. 말이나 마차 따위가 이동수단의 전부였으니.
헌데 이 도시는 그완 완전히 달랐다. 당장 눈앞에 차와 전차가 운행되고 있었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훨씬 더 현대적이었다. 그리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둘째, 이 도시의 외관이 그리 낯설지 않다는 점.
이건 상당히 의아한 일이었다. 실제로 나는 만화책에서 이 도시를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일행이 간 적이 없었으니까.
특히 몇몇 건물과 장소들은 기시감이 들 정도로 낯이 익었는데, 실제로 이것들이 배경으로 쓰인 컷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하여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나는 하나의 사실을 가정할 수 있었다.
이곳은 내가 이제껏 만화책에서 봐온 도시들의 이모저모가 짜깁기 되어 만들어져 있다.
“신기하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도시는 작가의 의식 속에서 ‘대도시’, 혹은 ‘근대문명도시’ 따위의 설정으로만 존재할 테니까. 따로 그려둔 게 없는 이상에야, 작중에 나온 도시들을 토대로 대충 구성되어 있을 수밖에.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아주 간단하게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다.
[빅시티 특수물약 상점]
예상대로였다. 만화에서 잠깐 잠깐 비춰진 특수물약 상점들은 대개 독특하면서도 직관적인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 가게의 목적성을 알 수 있게 생겼다고나 할까. 마침 그와 비슷한 것이 여기에도 하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커다란 약병 모양으로 된 건물 안으로 곧장 들어갔다.
인간을 개조시키고, 초자연적 힘을 인위적으로 부여하는 특수약물. 뭔가 설명만 들어도 불법적인 느낌이 나고, 음지에서 밀매될 것 같은 품목이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무척이나 세련된 인테리어에, 활짝 웃으며 맞이하는 종업원들, 또 베스트 상품부터 스테디셀러, 할인상품, 신상품까지 품목별로 정리댄 진열대까지. 무슨 트렌디한 편집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심지어는,
“고객님, 찾으시는 상품 있으신가요?”
“어······ 이, 일단 구경 좀 할게요.”
“네,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부담스럽게 따라붙는 것까지.
나는 얼른 직원을 피해 구석진 곳으로 도망친 뒤, 거기 있던 약물들부터 슬슬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흠.”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상품 옆에 첨부된 설명서가 생각보다 훨씬 더 디테일했기 때문이다.
사실 특수능력은 만화에서 그리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고유능력’이란 보다 업그레이드된 능력이 존재하는 까닭에, 기껏해야 초반부 악당들이나 쓰고 마는 정도였다.
물론 중반부에 한 번 특수능력을 쓰는 이가 메인이 되는 에피소드가 나오긴 하지만, 그 또한 능력 자체보다는 인물의 개인사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진 것이었다.
즉, 만화 내에서 특수능력에 대한 설정이 이토록 자세하게 소개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헌데 설명서엔 약물에 의해 발생되는 능력, 능력의 효용과 한계, 지속시간, 일회성 여부, 부작용 등의 내용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솔직한 말로, 이걸 보기 전까지 나는 1회성 물약과 영구지속 물약이 따로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단순히 눈에 들어오는 특수약물만 수천 종에 달했으니 만약 저 약물들이 모두 다른 종류이고 설명서 또한 제각각이라면, 작가가 만들어놓은 특수능력에 대한 설정이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얘기였다. 가히 A4 몇 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아닐까.
나의 놀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허······ 미친.”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백, 백만 골드?”
1회용 특수물약 10개 묶음 세트 따위가 100만 골드씩 했다. 내가 마피아의 금고를 털어 챙긴 돈이 500만 골드였는데,
무슨 뭐, 대단한 능력을 주는 물약도 아니었다. 약명은 [윽! 냄새나 노린재 물약]. 지독한 냄새를 뿜어낼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지속시간이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물약이었다.
심지어 이게 가장 싼 거였다. 능력이 강력하고, 지속시간이 긴 것들은 당장 낱개로도 몇 개 사지 못할 판이었다.
‘망했네.’
요긴한 특수능력들을 대거 쟁여두고 앞으로의 챕터에 대비할 생각이었는데······ 계획 수정이 불가피할 듯했다.
나는 고뇌에 빠졌다.
이제 어쩐다.
물론 답은 간단했다.
돈을 더 벌면 된다. 시간이야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문제는 그 방법이었다.
“후······.”
잠시 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특수물약 두 개를 구매했다. 모두 낱개로 산 것이었음에도 무려 300만 골드가 들었다.
거의 전 재산의 60%를 투자한 셈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게 가장 빠르고 간단할 듯했으니.
나는 내 손에 들린 특수약물 두 개를 번갈아 쳐다봤다.
[히히, 안 보이지롱! 투명화 물약]. 그리고 [얍, 가벼워져라! 무게 감소 물약].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내 계획은 간단했다.
은행을 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