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80
80화 코코아비!!
***
3분 전.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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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정확히 백 번.”
“수고했어.”
“그럼 이제 시작된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하늘을 살폈다.
숨바꼭질의 제한시간은 도깨비들의 주특기인 ‘어물쩍’ 타임이 적용되어, ‘해가 다 떨어질 때까지’였다.
현재 해는 정확히 중천에 떠 있었다.
저것이 넘어가려면 대략 대여섯 시간 정도.
아니, 다섯 시간으로 확정해두는 게 맞을 것이다. 무조건 지들 유리하게 해석할 테니.
그 전에 숨은 백 명의 도깨비를 찾아야 했다.
숨바꼭질 구역은 이곳, ‘훼방꾼 터’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국한되었다.
이곳이 구역을 지정된 이유는 간단했다. 가깝기도 가까운데다, 그 이름에 맞지 않게 훼방꾼 기질이 다분한 녀석들이 이 도깨비소굴 내에서 가장 적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도깨비들은 자신과 비슷한 기질을 가진 도깨비들과 어울리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이유인즉슨, 서로가 서로를 굉장히 탐탁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난꾸러기들은 서로의 장난에 금방 싫증을 냈고, 거짓말쟁이들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놈이라며 손가락질 했으며, 변덕쟁이들은 서로를 끈기 없는 녀석이라 욕하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또한 허풍선이들은 서로의 말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라며 무시하기 일쑤였고, 훼방꾼 도깨비들은 애초에 서로가 서로를 견뎌내질 못했다.
결국 고유능력을 각성한 어린 도깨비들이 각자의 신을 모시는 터에 배속된 다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그곳에서 떠나는 것이었고, 이에 터의 종류를 막론하고 해당 신을 받드는 도깨비의 수가 그 터의 거주민들 중 가장 적은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었다. (물론 이로 인한 영향으로, 도깨비들은 결국 어느 터를 가더라도 자신과 같은 기질의 도깨비를 피할 수 없었다.)
그즈음,
“얼른 가자고! 게으름 부릴 시간이 없어!”
어느새 저만치 앞장서 가던 코코아가 나를 불렀다.
가면 대신 뿔을 단 녀석은 어째 어깨에 단단히 힘이 들어간 모습이었다.
도깨비씨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마음이 괜히 저와 같은 행동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저 꼬맹이의 등에서 듬직함을 느끼기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코코아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녀석이 제아무리 뛰어난 길잡이라 해도, 치누아비가 없으면 이 숨바꼭질에서 승리하기가 더없이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령,
“아, 얼른 따라 오라고!”
“뭐해 안 오고!”
“이쪽이라니까?”
“이 굼벵이 주걱턱!”
이와 같이 해독가가 필요한 상황이 언제든 생길 수 있으니.
나는 무려 네 명의 코코아가 각기 네 방향에서 나를 부르는 걸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암만 그래도 너무 빨리 들이닥친 거 아니냐고. 이 참을성 없는 도깨비들 같으니라고.’
그 무렵엔 네 명의 코코아들도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리곤, 놀라 소리를 질러댔다.
“뭐, 뭐야 이것들은?”
“도, 도깨비다!”
“뭐야? 내가 진짜야!”
“이것들은 다 뭐야?”
······.
길잡이와 해독가의 역할은 때때로 상충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관문 혹은 수수께끼인 경우가 그것인데, 가장 대표적인 게 미로다.
미로를 통과하는 건 길잡이의 영역인 동시에, 해독가의 영역이기도 하다.
실제 원작에서도 어느 한 에피소드에선 얀의 유령들이 미로 속 길을 찾지만, 또 어떤 에피소드에선 시아나의 요정이 확률로 길을 결정했었으니.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이는 해독가의 영역이 되는 게 맞다.
독자 커뮤니티 내에서도 이 주제를 관련하여 수차례 토론이 일어났었지만, 매번 결론은 해독가의 손을 들었다. 이유인즉슨, 이것이 길 찾기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문제풀이의 영역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헌데도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은 모두 길잡이의 역할수행 범위가 굉장히 넓은 까닭이다. 길이라는 개념 안에 ‘목표’와 ‘해결방안’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보니, 간혹 이와 같은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해독가의 비중을 보호하기 위해 작가가 만들어둔 설정이 하나 있었다.
일정 거리 내에서 누군가의 ‘고의’로 말미암아, 길을 흐트러뜨리려 하는 ‘특수한 장애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보는 것’이외의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 상황일 경우, 길눈의 능력치가 대폭 하락한다는 것.
간단히 말해, 방해목적의 장애물이 나타나면 길잡이의 눈이 자동적으로 흐려진다는 뜻이었다. 해독가에게로 자연스럽게 턴이 넘어갈 수 있도록.
물론, 그렇다하더라도 먼치킨 길잡이들의 경우엔 이마저도 뛰어넘곤 했지만.
뭐 어쨌거나,
“설마 나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건 아니겠지?”
“주걱턱, 나를 헷갈린다고?”
“대답해! 얘네야, 나야!”
현재 나의 눈으로는 코코아를 구별할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에효.”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물론, 당장은 이게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후후, 이 코코아비는 풍물패에서 다년간 주걱턱과 함께한 몸. 애송이 도깨비들 따위에게 밀릴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저렇게 ‘진짜’가 ‘진짜다운 말’을 해주면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으니.
다만 문제는,
“어······? 이거 바로 들킨 것 같은데? 저 꼬맹이 말투가 너무 달라. 꼬맹이 맞아?”
“희한한 녀석이네······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은데?”
“처음엔 뭐 그럴 수 있지. 다시 가자.”
이 도깨비들 또한 실시간으로 학습을 한다는 것이었다.
곧이어,
펑-.
별 조치를 취할 새도 없이, 연막이 터졌다.
이어 시야를 가리고 있던 뿌연 안개가 가라앉을 즈음,
“엣헴, 여기 코코아비가 있네.”
“뭐야······ 이 도깨비들, 자리까지 바꿨어!”
“······이것까진 생각 못했는데.”
“코, 코코아비는······ 다, 당황하지 않는다······.”
정말로 구분하기 힘든 상황이 왔다.
‘······별 수 없나.’
물론 좀 더 귀찮아지긴 했어도, 애써 구분하려면 못할 거야 없었다. 대충 함께 있었던 일을 물어본다거나, 기억을 대조해본다면 결국엔 다 가려낼 수 있을 테니.
하지만 괜히 이런 것들 때문에 시간을 뺏기고 싶진 않았다. 지금은 셋이지만, 언제 열 명 스무 명 되는 도깨비들이 코코아로 둔갑한 채 달려들지 모를 일이었으니.
‘어우, 그건 좀 선 넘었지.’
본래는 얀의 고유능력을 흉내 내 유령들을 도깨비 수색에 동원할 생각이었다. 물론 코코아가 길잡이 역할을 하기야 하겠지만 제한시간이라는 게 존재하는데다, 찾아야 될 인원이 무려 백 명에 달했으니까. 유령들에겐 내가 가진 히든 특성들이 모두 적용된다는 설정이라, 놀랍게도 길눈까지 장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당장엔 이를 택할 수 없게 되었으니······.
나는 눈물을 머금고 유령 대신 다른 녀석을 불러냈다.
[공평을 싫어하는 확률 조정자]곧이어,
뾰로롱-.
볼 때마다 흠칫하게 만드는 놀라운 턱의 소유자가 내 앞에 등장했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콧방귀를 ‘헹’ 하고 꼈다.
“또 너니?”
“······.”
황당했다.
“아니, 당연한 거 아냐? 너는 내가 만들어낸 요정인데.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널 부를 수 있을 리가······ 아니, 잠깐. 혹시 나 말고 다른 인간에게 소환된 적이 있는······.”
“됐고, 또 뭐?”
“······.”
대놓고 말을 끊는 게 솔직히 황당하긴 했지만, 당장 이를 짚고 넘어갈 새는 없었다. 지금이 그리 막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으니.
“저 중에 누가 진짜 인간인지만 좀 가려내 줘.”
그러고 나는 주위에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무려 99퍼센트의 확률까지 조정할 수 있는 이 녀석에게 고작해야 사지선다(四枝選多)는 문제 측에도 들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녀석에게 도깨비의 둔갑술을 알아볼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녀석을 통해 코코아를 구별해내려면, 귀찮더라도 확률을 이용해야 했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가 인간을 가리킬 확률을 99% 조정해줘. 한 두어 번 던질 테니 대충 알아서······.”
“너는 정말 피곤한 녀석이구나?”
“······엉?”
“뭐 하나 주는 것 없이 받으려고만 하고.”
“······.”
당혹스러웠다.
“아니······ 뭐······ 뭐 줘야 돼?”
“됐어.”
“······.”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아나가 고유능력을 쓸 때면, 그녀의 요정은 늘 친절히 자신의 소환자를 대했던 것이다. 딱히 뭘 받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녀석 또한 틱틱대긴 해도 할 건 해준다는 점이었다.
곧이어 나뭇가지가 떨어지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
“좋아.”
주걱턱 요정이 진짜를 쏙 골라내자, 다른 세 명의 코코아들의 표정이 곧바로 똥 씹은 것 마냥 구겨졌다.
“바로 들켰는데? 저 주걱턱 녀석 희한한 능력을 쓰네.”
“어때, 다시 도전?”
“안 되지 않을까······ 그냥 숨는 건 어때?”
녀석들이 그러고 쑥덕대고 있는 사이, 나는 얼른 코코아에게 다가가 붙었다.
“아쉽구나, 아쉬워. 네 놈 주걱턱! 내 믿었건만, 한 눈에 알아보지 못하고······.”
“됐고, 저 녀석들 숨바꼭질 참가자 맞아?”
이를 물어본 이유는 녀석들이 참가자가 아닐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 훼방꾼 터에 도깨비들이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100명은 훌쩍 넘을 것이다. 그들이 모두 숨바꼭질 참가자인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그들이 이 게임에 개입하지 않으리라는 건 너무도 순진한 생각이었다.
비참가자들 역시도 틀림없이 개입한다. 원작에서도 그랬으니.
즉, 100인 숨바꼭질이라고는 하나, 실제로 숨는 것만 100명이지 방해하고, 장난치고, 거짓말로 꾀려는 녀석들은 수백도 넘는다는 얘기였다.
“음······ 다 맞는 것 같아.”
“오케이.”
나는 곧바로 노형에게 받은 ‘방망이’를 꺼내들곤, 녀석들에게 달려들었다.
이에,
“어, 어어?”
“도, 도망쳐!”
슬슬 발 뺄 준비를 하던 녀석들이 나를 보곤 기겁해 도망가려 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어딜!”
나는 재빨리 방망이로 녀석들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팡! 팡! 팡!
“악!”
“악! 아프다고!”
“아악!”
엄살은.
방망이의 재질이 뭔지는 몰라도, 고무보다도 훨씬 물렁한 것이었다. 아프라고 때렸으면, 손바닥으로 후려쳤겠지.
이 방망이의 역할은 단순했다.
술래에게 들킨 녀석들을 ‘아웃’ 시키는 것.
“흠······ 이대로 둬도 괜찮으려나?”
나는 어느새 돌처럼 굳어버린 녀석들을 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술래에게 잡힌(이 방망이로 얻어맞은) 도깨비들은 게임이 끝날 때까지 돌처럼 굳게 된다. 제자리에 쓰러진 채 반나절을 그러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의식이 있는 채로.
이는 공정을 가하기 위함으로, 한 번 탈락한 녀석들이 재차 숨바꼭질에 개입해 드는 걸 방비하기 위함이었다.
도깨비들은 내기와 대결에 관한 한 투철한 직업정신 같은 게 있어, 훼방꾼 신을 받은 도깨비들을 제외하곤 이쪽으론 굉장히 엄격했다. 심지어 불공평하다는 이유로 정신침투 쪽 고유능력을 죄다 봉인한 채 임할 정도였으니.
다만 원작에서도 느꼈던 바이지만, 확실히 이 도깨비들의 방식은 꽤나 악질적이고 잔인한 구석이 있었다. 이 도깨비들이 돌처럼 굳게 된 것은 단순히 ‘패배’했기 때문이다. 굳이 다른 방식으로 배제하는 것도 있었을 텐데, 졌다는 이유로 길가의 돌 마냥 버려두고 방치해두는 꼴이라니.
흐음.
‘확실히 소년만화 쪽과는 잘 안 어울린단 말이지······.’
그즈음,
“이제 세 명 인가? 금방 다 잡겠는데?”
코코아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 녀석들이 바보라 지들 세 명끼리 온 거지, 참가자가 아닌 녀석들과 섞여 왔으면 시간이 꽤나 소모됐을지도 몰라.”
“그런가?”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 아냐.”
그러곤 나는 곧바로 코코아를 집어 어깨에다 올렸다.
“괜히 따로 다니지 말고, 여기서 말만 해. 이제 어디로 가?”
“좋구나! 처음부터 이랬어야지.”
“빨리! 방향만!”
“정면으로 직진! 둘 있어.”
“오케이. 꽉 잡아. 떨어진다.”
이어, 나는 바람처럼 내달렸다.
*
숨바꼭질에 참가한 도깨비들이 본인을 숨기기 위해 시도한 방식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굳이 이를 구분해 보자면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첫째. 먼저 다가오는 녀석들.
코코아로 둔갑해 내게 혼동을 주려했던 녀석들 또한 이 유형의 일부였다.
이외에도 비참가자인척 하며 슬쩍 지나쳐 가려는 녀석들, 참가자와 비참가자가 섞인 채 우리더러 골라보라고 하는 녀석들, 은막을 뒤집어 쓴 채 졸래졸래 따라오는 녀석들, 대놓고 길을 막은 채 자신과 별도의 내기를 해서 이기면 순순히 잡혀주겠단 헛소리를 하는 녀석까지. (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망이로 녀석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숨바꼭질이라는 놀이의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멍청한 녀석들이었다. 아니면 뭐, 우리를 너무 물로 봤거나.
그리고 둘째.
간단하다. 말 그대로 숨어버린 녀석들.
이 녀석들을 잡는 게 진짜 숨바꼭질의 시작이었다.
다행히 앞서 첫 번째 유형의 바보들이 거의 반절이나 되었기에 시간은 제법 아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었다.
레오 일행이 그랬듯, 어차피 우리 또한 마지막 한두 놈을 찾을 수 있느냐 마느냐에 따라 이 게임의 승패가 갈릴 게 분명했으니.
쾅!
나는 굳게 잠긴 문을 걷어차곤,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훼방꾼 터 입구 쪽 화전(火田)들 옆에 세워져 있던 오두막. 코코아가 말하길, 이 안엔 무려 셋이나 숨어있다고 했다.
들어가자마자 웬 침상에 누워 있는 늙고 병든 도깨비 하나가 보였다.
“코, 콜록! 누, 누구?”
이 늙은 도깨비?
당연히 참가자였다.
“다른 녀석들은?”
“무, 무슨······ 여긴 나밖에 없는데······ 아니, 누구냐니까?”
물론, 나는 이 늙은 도깨비에게 물은 게 아니었다.
“어······ 이상하네? 일단 이 방안에 둘이 있는 게 맞거든? 근데······ 하나밖에 안 보여.”
숨은 도깨비가 무슨 술수를 쓰고 있는 건 틀림없으나, 그게 무엇인지까진 파악이 안됐다.
그리고 이 경우,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이야 별 게 없었다.
일단 보이는 놈부터 제거하기.
“아, 아니 잠깐. 그러고 보니 밖에 웬 인간 손님이 왔다던 게······ 다, 당신인······.”
“말이 많아.”
그러고 나는 방망이로 누워있던 병든 도깨비의 머리를 냅다 후려갈겼다.
“크악!”
그럼 이제 남은 놈이 저절로 나타나지 않을까?
곧이어,
“크, 크윽······ 노인공경도 모르는 놈 같으니······ 갓난아이로 변할 걸······.”
의미 없는 뻘소리만 남긴 채 늙은 도깨비가 굳었다.
나는 이어 코코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안 보여?”
“응, 여기가 맞는데······.”
“희한하네, 아무 것도 없는데. 탁자랑, 침대랑, 옷장 말고는 뭐······.”
그때였다.
“잠깐.”
문득 머릿속에 ‘어떤 생각’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도깨비가 생명체로만 둔갑할 수 있나? 혹, 무생물로는?
이에 대한 건 사실 원작에서도 본 일이 없어 자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딱히 안 된다는 설정을 읽은 적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내려칠 때 힘에 비해 침대가 꽤나 많이 흔들렸던 것 같기도 하고?”
슬쩍 떠보듯 말을 흘려봤으나,
······.
딱히 반응은 없었다.
아닌가?
그때 코코아가 한 마디 했다.
“그냥 쳐봐.”
“그럴까? 여기 있는 거 다 한 번씩 쳐볼까?”
“응.”
하긴. 내려치는데 힘이 드는 것도 아니고.
이어, 내가 방망이로 침대를 가격하려던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잠깐!”
침대가 말을 했다.
“어느 미친놈이 침대를 의심해! 엉? 누가 갑자기 침대를 의심 하냐고! 이게 말이 돼?”
“오, 맞았네?”
놀랍게도, 도깨비들은 사물로도 둔갑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엉?”
“여기서 이러고 있던 것만 두 시간 반이야. 제발······ 나 이러면 너무 억울해.”
녀석 말투엔 말마따나 간절함이 뚝뚝 묻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뭐, 선택에 따른 책임은 자신이 져야하는 법 아니겠는가.
“어, 미안. 잘 가고.”
나는 더 듣지 않고 녀석을 후려쳤다.
“비, 빌어먹을!”
녀석의 단말마는 짧고 굵었다.
이어, 나는 코코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근데 여기 한 녀석 더 있다며? 이번에도 가구?”
그러자 코코아가 말없이 고개를 젓더니,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지하? 여기 지하실 같은 게 있나?”
“몰라. 그냥 아래에 있다는 것만.”
그 즉시 바닥을 살펴봤으나, 지하실 같은 건 없었다. 아래는 그냥 땅이었다.
“······땅을 파고 들어가라고?”
“그런 것 같아.”
“어휴······ 가지가지들 하네.”
치누아비 또한 토룡을 쉬이 다루곤 했으니, 비슷한 방법을 쓴 모양이었다.
“깊이는?”
“깊어. 엄청.”
“하······.”
어쩔 수 있나.
나는 그 즉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만나기만 하면 방망이 대신, 손바닥으로 먼저 후려치겠다는 일념 하에.
*
땅 속에 들어가 있던 놈을 꺼내 잡고, 절벽 아래 동굴에 처박힌 녀석을 후려갈긴 뒤, 산 정상에서 바위로 둔갑해 있던 녀석을 실제 돌처럼 굳혔을 즈음엔 어느덧 해가 산 끝자락에 걸쳐 있었다.
남은 시간은 대략 한 시간에서 길면 한 시간 반 정도.
슬슬 조급함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몇 명 남았지?”
“이제······ 딱 열 명!”
다행히 두 손으로 헤아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문제였다.
아직 ‘진짜’들은 시작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저쪽으로!”
나는 서둘러 코코아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달렸다.
이윽고,
“여기?”
“응.”
어느 한 민가에 도착했다.
평범해 보이는 집이었다. 정문에 엄청난 굵기의 쇠사슬이 묶여있고, 거기에다 묘한 문양이 새긴 자물쇠 하나가 채워져 있는 것만 빼면.
‘진짜’라 함은 다름이 아니다. 해독가가 없이는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장소에 숨어버린 녀석들을 말한다.
이전의 코코아로 둔갑했던 녀석들이나, 비참가자와 섞여서 혼동을 주려고 했던 녀석들은 사실 별 문제도 아니었다.
바로 이 ‘진짜’들을 잡기 위해 치누아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제 어떡한다.
나는 쇠사슬을 슬쩍 당겨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쇠사슬이 두껍다 해도 내 힘으로 끊지 못할 쇠는 없다. 즉, 뭔가 장치가 되어 있다는 소리였다.
“코코아, 이 문 말고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안 보여.”
“······그래?”
빨리 생각해내야 했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도록 떠오르는 게 없었다.
결국 나는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 수밖에 없나?’
딱 하나 있긴 했다. 엄청나게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안에 숨어 있는 녀석과 별도의 내기를 하는 것. 내가 이기면 순순히 잡혀주는 것으로.
이는 실제로 작중에서 시아나가 시도하여 성공한 방법이기도 했다.
물론 시아나의 경우, 단 한 명에 불과했지만.
‘남은 게 열 명이라······.’
빠듯해 보여도 어쩔 수가 없었다. 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으니.
하여, 안에 들어가 있는 녀석을 소리쳐 부르려던 바로 그때였다.
“나와 봐.”
대뜸 코코아가 앞으로 나섰다.
“엉?”
“열어줄게.”
“······뭐?”
당혹스런 말이었다.
“네가 어떻게?”
그러자 갑작스레,
“나 몰라?”
“······뭐?”
희한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혹시 내가 말했었나? 두골제국에 있을 때 칸이라는 녀석이 돈 엄청 줬다는 거?”
“뭐? 돈?”
“응, 그것도 황금과 각종 보석으로.”
“아니······ 갑자기 그게 뭔······ 그랬어?”
“응. 내 주머니에다 가득 채워뒀지.”
그러곤 문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었다.
이어 녀석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가죽주머니를 열더니,
“열쇠야 나와라.”
황당한 소리를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윽-.
실제로 웬 열쇠 하나가 나왔다.
이어 코코아가 문의 자물쇠에다 그걸 꽂은 뒤 돌렸다.
그러자,
철컥-.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입 또한 열렸다.
“아, 아니······ 뭐?”
“말했잖아, 나 몰라?”
그때 마침, ‘어떠한 기억’ 하나가 벼락처럼 떠올랐다.
이 녀석이 네오 아카이브에서 난데없이 바주카포를 꺼내들었던 것.
나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그거였다. 그······ 필요한 거 꺼내기.
들어보니,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황금을 그 대가로 썼다는 것 같았고.
이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솔직히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열쇠를 새로 만들어낸 건지, 복사한 건지, 공간이동을 시킨 건지······ 저 능력의 한계는 뭔지 등등 제대로 알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코, 코코아! 이 녀석!”
놀라운 능력을 숨기고 있던 녀석의 이름을 외치는 것뿐이었다.
“바보, 틀렸어. 내가 누구라고?”
“어······ 어?”
“내가 누구라고?”
“······아!”
나는 그 순간 또 한 차례 놀랐다.
이 녀석은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게 아니었다. 단순한 컨셉질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만한 역할을 수행해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이어, 나는 우리 모험단에 등장한 새로운 해독가의 이름을 목 놓아 외쳤다.
“코코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