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83
83화 다섯 도깨비 신
***
“장난, 장난.”
독자들이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아주 우스운 꼴을 당할 뻔했다.
나도 모르게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으니.
‘······황당하네.’
솔직히 이 말로도 부족했다. 조금 전 본 그 요괴마냥 쫙 벌어진 입은 분명 웃기지도, 그렇다고 귀엽지도 않았다. 외려 고어하단 느낌까지 드는 모습이었으니.
또 한 번 도깨비의 ‘비소년만화스러움’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그제까지도 키득거리고 있던 아이를 바라봤다.
좀 전에 본 것과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천진난만한 장난꾸러기의 미소.
장난꾸러기 신은, 정말 이름 그대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장난꾸러기 신······ 맞으시죠?”
그러자 아이가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
“솔직히 좀 당황했습니다. 그 입을 벌릴 때의 얼굴도 얼굴이지만······ 사실 처음 봤을 땐 훼방꾼 신인 줄 알았거든요. 장난꾸러기 신께서 가장 먼저 마중을 나오실 줄이야.”
“그 애도 장난기가 심한 편이긴 하지만, 이런 류의 장난을 좋아하진 않지. 유치하다고 생각하거든.”
“으흠.”
왠지 그럴 것 같긴 했다. 훼방꾼 신은 확실히 좀 스케일이 큰 편이니까.
“그런데 왜 훼방꾼 신이라고 생각했지? 얼굴을 아는 것도 아닐 텐데.”
“아······.”
그러고 보니 별 생각 없이 내뱉고 말았다.
나는 짧게 고민하다,
“딱히 외형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기보다는······ 훼방꾼 신이 막내이지 않습니까? 제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나타난 걸로 봐선 안내자 역할인 듯싶은데······ 뭐 제가 그리 대단한 존재도 아니고, 만약 그 같은 역할이라면 아무래도 제일 아래 서열이 맡지 않을까 싶어······.”
어느 세계관에서나 보편적인(물론 도깨비 소굴 내에서는 그게 그리 중요한 듯 보이진 않았지만), 장유유서 사상을 들이밀기로 했다.
원작에서 그 같은 얼굴을 봤기 때문이라곤 말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자 장난꾸러기 신이 킥킥거리며 웃더니,
“그게 말이 돼? 서열이 낮으니 먼저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를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도깨비에게 예의를 따진다라······ 차라리 그냥 생긴 게 무진장 심술궂어 보였다고 할 것이지.”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이에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뭐 더 꼬치꼬치 캐물을 것 같진 않았기에 나도 그냥 순순히 인정했다.
“아, 예. 맞아요. 사실 그것 때문이에요. 얼굴이 엉망이더라고요.”
장난꾸러기 신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로부터 한참을 더 킥킥거렸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진정을 한 듯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내가 큰형인건 맞지만, 우리 사이에 딱히 위계가 있진 않아. 내가 먼저 나온 건 그냥 좀 들은 게 있어서야. 잘 좀 봐달라는 얘기를 어찌나 하던지······.”
“아······.”
치누아비의 얘기인 모양이었다.
녀석, 걱정은.
“그리고 어차피 다들 곧 올 거야. 인간의 냄새는 그리 흔한 게 아니니까. 또 구면이기도 하잖아?”
그 말 그대로였다.
때마침,
출렁-.
내 주위로 흐르고 있던 빛의 물결이 한 차례 요동쳤다.
‘······왔다. 누구지?’
나는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며 잠시간 기다렸다. 그러나 산란하는 빛들 외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흐음.
굳이 실체를 갖추고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이번에 온 신은 장난꾸러기 신만큼 장난기가 넘치진 않는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아! 너구나?
웬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왔다.
‘응?’
어째 살랑거리는 듯한 음성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아주 약간이지만 감격에 젖었다.
분명 전에 들었을 땐 저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들렸었던 것이다. 귀가 찢어지는 줄 알았는데.
“······후.”
그제야 나는 조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사실 그제까지도 신들의 격에 과연 내 몸이 버틸 수 있을까 긴가민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장난꾸러기 신과 대면하곤 있었지만, 예전 경험이 경험이었는지라.
버틸 수 있었다. 충분했다. 아니, 차고 넘쳤다.
아직 둘 밖에 없긴 했지만 나는 확신했다. 다섯 명이 몰려와도 괜찮다고.
어느새 이토록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한 종족의 신들 앞에서도 당당히 서 있을 수 있을 정도로.
물론, 무구의 덕택이 크긴 하겠지만.
어쨌거나 이제는 좀 마음 편히 있어도 될 듯 싶었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누구신지?”
-나? 음······ 말해주고 싶지 않아.
“아······ 예, 알겠습니다.”
변덕쟁이 신인 듯했다.
그때였다.
“슬슬 다들 온 것 같은데?”
장난꾸러기 신이 어느 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빛이 심상찮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이어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일렁임이 점차 주위로 번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내가 있는 곳으로까지 그 세를 불렸다.
이윽고,
쿠구궁-.
세상이 뒤집히듯, 한순간 빛이 사방으로 폭발했다.
······.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신들이 곁에 도착한 상태였다.
‘넷뿐인가?’
그러나 이내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섯이 맞는 듯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또 하나의 빛의 물결이 심상찮게 출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와의 만남을 부끄러워하는 신이 누구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 무렵, 나는 내 몸부터 돌아봤다.
약간씩 떨리긴 했으나 괜찮았다.
이는 외부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가슴 속 두근거림에 의한 것이었으니.
나는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변덕쟁이 신과는 달리, 이번엔 장난꾸러기 신의 장난에 동참한 이가 둘이나 더 있었다.
새로 나타난 두 명의 아이는 내가 그들을 보고 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흥미롭다는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려! 인간이 이곳 몽중계에 오다니! 것도 두 번씩이나!”
“두려워하는 기색도 전혀 보이지 않고. 이야, 엄청나게 강한 걸? 너 정말 인간 맞아? 붙으면 내가 지겠는데?”
대충 말투를 보니, 허풍선이 신과 거짓말쟁이 신인 듯했다.
그렇다는 건, 저기 멀찍이서 부끄럼을 타고 있는 게 바로 훼방꾼 신이라는 소리였고.
좋다. 이제 모일 이들은 다 모였다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다들 반갑습니다.”
나는 별 부담감 없이 편하게 인사했다.
압박감도 딱히 없고, 관심은 이미 끌었고. 딱히 꿀릴 건 없었다.
이어,
“일단은 제가 저번에 이어 두 번씩이나 이곳 몽중계를 방문하게 된 경위와 제 용건에 대해서 말씀을 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은 그 후에 받도록 하죠.”
곧바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저는 다른 이들의 고유능력을 흉내 낼 수 있는 고유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뭐, 웬만한 것들은 다 흉내 낼 수가 있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여러 능력들에 관심이 가게 되었고, 결국 그게 도깨비들의 능력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냥 하는 소리였다. 대충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인간과 도깨비는 고유능력을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들의 능력을 흉내 내려면 우선적으로 당신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죠. 그래서 제가 직접 이곳을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뭐, 첫 방문 때는 제가 좀 준비가 부족하긴 했습니다만.”
그때였다.
“그러고 보니, 여긴 어떻게 올 수 있었던 거지?”
신들 중 하나가 내게 물었다.
“이곳을 방문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제 능력 덕택입니다. 흉내를 내려고 시도해봤더니, 이곳으로 오게 되더군요. 물론 능력을 쓰지는 못했습니다. 당신들에게서 허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나는 말하면서도 청자들과 눈을 맞추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장난꾸러기 신, 거짓말쟁이 신, 허풍선이 신······ 그리고 허공도 슬쩍 한 번 봐주고.
그들은 여전히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경청하는 태도가 아주 훌륭했다.
“자, 제 용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들의 힘을 활용할 권한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물론, 제게 어떤 특정한 능력을 주려고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허락만 해주시면 됩니다. 제가 당신들이 간택했던 또 다른 귀염둥이들의 능력을 쓸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러고 말을 마치자마자,
“어이, 어이! 잠깐만.”
“근데 그게 가능해?”
“우리 모두의 권한을? 그냥 허락만 하면 된다고!?”
세 아이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또한,
-그것도 간택의 일종인 건가? 하지만 우리의 간택은 고유능력을 부여하는 개념인데······ 이미 능력을 보유한 이에게 어떻게 우리가 다······.
허공에서 지켜보던 변덕쟁이 신까지도.
“음······.”
그즈음 나는 약간의 황당함을 느꼈다.
저들이 너무나도 1차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고작 한 마디를 덧붙이지 않았다고 저러는 건가?
당연한 말이지만, 고유능력의 중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게 원칙이니까.
하지만 예외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저들이야말로 늘 그 광경을 보던 이들이 아닌가.
나는 잠시 양해를 구한 뒤,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물론. 한 분은 예외입니다. 여기서 조금 떨어져 계신 한 분이요. 그 분은 제게 특정한 하나의 능력을 선사해주셔야 합니다. 말마따나, 제가 여기 계신 분들의 힘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말이죠.”
그러자,
“아아······.”
“그렇지, 그게 맞지.”
“난 또! 웬 도깨비 같은 소리인가 했네!”
-흐응.
이제까지의 내 모든 말은 실은 단 한 명만을 겨냥한 것이었다. 내 앞에 있는 이 네 신들은 그 하나를 움직이게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고.
훼방꾼 신.
애당초 나는 처음 이곳에 올 당시부터 이들 넷의 반응에 대해선 조금도 염려하지 않았다. 이유야 간단한데, 이들은 그냥 ‘평범한 도깨비의 성향’을 지닌 이들이기 때문이다. 흥미가 돋고 재미만 있을 것 같으면, 그냥 그렇게 쉽게 하자고 하는 스타일이랄까? 설득에 공을 들이니 뭐니 할 필요도 없었다.
문제는 나머지 하나, 훼방꾼 신.
그는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신이자, 가장 까다로운 상대이기도 했다.
그 또한 재미를 추구한다는 면에선 다른 신들과 다를 게 없지만, 즐거움을 느끼는 포인트가 남달랐다.
그는 다른 이들을 기껏 구축한 것들을 깨뜨리고, 부수고, 방해하며, 훼방 놓는데서 희열을 느끼는 말 그대로 ‘악질 사이코’였다.
더욱이 스케일까지 커서, 도깨비 종족 자체를 멸종 위기에 몰아넣을 뻔했다는 설정까지 있을 정도였다.
내가 이 훼방꾼을 움직이기 위해 짠 계획은 간단했다.
1. 먼저 네 명의 신에게서 호감과 관심을 산다.
2. 그럼 자연스레 훼방꾼 신이 나타난다.
3. 이제 그를 설득하여, 내가 다른 신들의 능력을 흉내 낼 수 있게 만들어달라고 한다.
당연지사, 문제는 세 번째 단계였다.
훼방꾼의 성격 상, 남들이 원하는 것과는 반대로 움직이려 할 테니까.
이 지점이 모순이긴 한데, 사실 나는 이 또한 그리 염려하지는 않았다.
바로 훼방꾼 신의 두 가지 특징 때문이었는데, 하나는 그가 결코 멍청하지 않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의 스케일이 그리 작지 않다는 것이다.
그도 알 것이다.
지금 나와 다른 네 신들의 바람을 훼방 놓는 것은 고작해야 한순간의 즐거움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또한 오래도록 가지고 놀 장기 말을 필요로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늘 능력 있는 도깨비들을 간택하려 애쓰는 것이며,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도 끝까지 남아 내게 힘을 주려고 했던 게 아닌가.
즉, 분명 어느 정도 참을성을 발휘할 여지는 충분하다는 것.
때마침,
“차라리 내게 곧장 다가와 무릎을 꿇고 능력을 달라 빌었어야지. 그럼 보기 좋게 까버렸을 텐데. 멀리서 내 얘기나 하고 말이야.”
빛의 출렁거림과 함께 훼방꾼 신이 나타났다.
기묘하게도 그 또한 아이의 모습을 한 채였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물었다.
“혹시 제가 전에 했던 말 기억나십니까?”
“안 나지.”
“다섯 신 모두에게 간택을 받겠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러가 그가 ‘헹’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간택이란 말의 정의를 잘 모르고 있나 보군. 그건 그냥 네가 마음에 든다고 표현하는 것 따위가 아냐. 말 그대로 능력을 하사하고······.”
“그럴 생각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부탁드리는 것 아닙니까. 좀 도와주시죠?”
물론,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오직 훼방꾼 신만이 내가 다른 도깨비들의 능력을 흉내 낼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될까?
글쎄.
솔직히 그의 확답을 자신할 순 없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여기서 내가 안달하는 모습을 내비칠수록 그 확률이 떨어질 거라는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으로 무심함을 연기했다.
잠시 뒤,
“좋아.”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빨리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물론, 이게 실제 승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나 쉬운 존재는 아니니까.
“대신 조건이 있다.”
역시나.
“말씀하시죠.”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알고 있지?”
“······대충은? 남 괴롭히고, 방해하고, 사사건건 따라가 훼방 놓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그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맞아. 그걸 해줘야 돼. 주기적으로.”
“뭐, 어렵지 않네요.”
이건 내 진심이었다.
실제로 내가 현재 이 이야기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의도치는 않았으나(?), 저 훼방꾼 신의 취미생활과 제법 닮아 있는 게 사실이었으니.
허나, 나는 이게 전부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짐작대로,
“바로 지금 시험을 통과해야 돼.”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시험? 지금 당장이요?”
이건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어떤?”
그러나 훼방꾼 신은 내게 대답하는 대신, 갑작스레 모습을 감췄다.
이어 당황스럽게도, 다른 도깨비 신들 또한 차례차례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응? 나도 해? 귀찮은데······.
보아하니, 훼방꾼 신이 꾸미는 뭔가에 모두가 동참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윽고, 갑작스레 주변의 빛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팟-.
나는 약간 멍한 눈으로 정면을 바라봤다.
어느새 눈앞엔 완전히 똑같이 생긴 아이 다섯이 서 있었다.
“어······ 다섯 쌍둥이? 그게 본래 생김새들이신겁니까?”
그러자,
“바보, 그럴 리가 있냐.”
그 중 중앙에 있던 녀석이 말했다.
이어, 왼쪽에 있던 아이부터 차례차례 입을 열었다.
“시험은 간단해.”
“우리를 제대로 구분하기만 하면 돼.”
“정체를 구분해 맞히면 그 신과의 교류를 가능하게 해주지.”
“그것도 맞히는 수만큼.”
“한 번 잘해 보라고.”
“······호오.”
놀라운 얘기였다.
실은 훼방꾼 외에 다른 한 명의 간택만 허용이 되어도 괜찮은 결과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 이상이 가능한지도 몰랐고.
사실 원작 내에서도 ‘어떠한 규칙도 따르지 않는다’란 이 엄청난 설정을 제대로 소화해 낸 도깨비는 딱히 등장하지 않았었다. 고작해야 고유능력 두 개를 번갈아 쓰는 게 최대였으니.
그래서 솔직히 그게 한계일 줄 알았는데······.
“그럼 다 맞게 구분하면, 다섯 신 모두와의 교류를 허용해준다. 그게 사실이겠죠?”
그러자 다섯 아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하지만 설사 그게 가능해졌다고 해서, 고유능력 다섯 개를 동시에 쓸 수 있게 되는 건 아냐.”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차피 그 이상의 능력은 독이 될 수밖에 없다. 파워인플레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단칼에 잘려나가고 말테니.
“그럼 시작하기 전에 하나만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뭐지?”
“제가 이번에 다 맞히게 되면, 어쩌면 다섯 분 모두 저와 함께하실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때 저와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에 대해, 각자 원하는 것과 그 포부에 대해서 한 말씀씩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 꼼수였다. 이들의 말투를 보고 구분해내기 위한.
솔직한 심정으로, 현재 나는 단 한 명도 제대로 구분해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이어,
“아참, 앞으로의 제 목표와 방향성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는 게 순서겠네요. 저는 킹스로드를 건너 미들랜드로 향한 뒤, 거기 있는 모험의 탑 꼭대기에 오를 예정입니다.”
머뭇거리는 그들을 위해 굳이 한 마디를 더 덧붙여주었다.
“전 모험왕이 될 생각이거든요.”
다행히 내 마지막 말에 느낀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곧이어 다섯 아이가 차례로 입을 열었다.
1) “뭐라? 모험왕이라고? 그건 바로 이 세계의 왕을 뜻하는 이름이야! 이 자식, 꿈이 엄청나잖아?”
2) “호오, 좋지. 그래도 제법 쓸 만한 목표를 가진 녀석이로군.”
3) “모험왕이라······ 왠지 그리운 이름이긴 하네. 조금은 아픈 이름이기도 하고.”
4) “모험의 탑? 에이, 거기 볼 게 뭐가 있다고. 거긴 가봤자 볼 게 없어. 세상엔 훨씬 더 재미난 게 많다니까?”
5) “흐음, 글쎄······ 근데 그게 네 마음대로 될까?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방해 해주고 싶은 걸?”
뭐, 쉽네.
나는 곧바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
“노, 노형! 비, 빛나는 데요?”
“······나도 눈 있다 이 녀석아.”
그러고 종달새 관리인 녀석에게 쏘아붙인 뒤, 노형은 재차 정면을 응시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누워있는 주걱턱의 머리 위로 웬 구 하나가 생성되더니, 새하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신이 녀석의 몸에 깃들고 있다는 표시였다.
“허······.”
솔직히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 그것도 고유능력을 가진 녀석이······ 도깨비의 신을 받다니.
처음엔 그저 우스운 마음뿐이었다. 대체 무슨 장난을 치려는 건가 궁금하기도 했고.
심지어 녀석은 몽중경을 작동시키지도 못했다.
애초에 믿지도 않았지만, 그 광경을 보곤 확신했었던 것이다. 지랄하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라고.
물론, 녀석이 난데없이 툭 정신을 잃었을 땐 약간이나마 감탄하긴 했다.
오랜만에 보는 ‘연기에 진심’인 녀석이었으니.
한 번 놀래켜주겠다는 일념 하에, 저토록 최선을 다하다니.
그래서 그냥 굳이 깨운다거나 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던 것인데······
노형은 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어떤 신이······.’
몹시도 궁금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신이 녀석을 택했으며, 그래서 얻은 능력은 무엇인지.
하여, 죽어라 눈을 빛내며 녀석이 눈을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노, 노형! 저, 저기!”
“······.”
갑작스레 녀석의 머리 위로 구가 하나 더 생겼다.
이어 그것에서도 똑같이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이, 이럴수가······.”
두 개의 구, 두 개의 빛.
이런 광경은 난생 처음이었다.
이건 단순히 훼방꾼 신을 받은 도깨비가 두 가지 고유능력을 얻게 된 것 따위가 아니었다.
저 빛은 도깨비 신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두 명의 신이 녀석을 택했다는 것이었다.
“어, 어찌 이런······.”
바로 그때였다.
“노, 노형······.”
뒤이어 펼쳐진 광경에, 노형은 그만 말문을 잃고야 말았다.
앞선 두 개의 구 옆으로, 또 다른 세 개의 구가 동시에 생성되고 있었다.
“······.”
잠시 후, 노형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그조차도 의식하지 못했던 아주 오래된 옛 전설의 편린이었다.
“······도깨비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