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88
88화 가져와 이제
***
약간······ 더 강한 수준인가?
시험 삼아 몇 명을 날려보니, 대충 견적은 나왔다.
이들 또한 그리 강한 녀석들은 아니었다. 이스트랜드에서 온 추격자들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
하기사 이들은 다 과거의, 그 ‘약한 하카’가 간부로 있던 집단의 조직원들일 것 아닌가. 하물며 엑스트라들인데. 이들이 내가 놀랄 만큼 강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개중엔 조금 더 나은 녀석들이 있기도 했다. 조금 전 비도(飛刀)를 날린 녀석은 날래기도 날랜데다, 제법 날카로운 면이 있었던 것이다.
뭐, 그래봐야 비둘기 형태의 구구에게 제압당하는 수준이었지만.
“구구, 그거 계속 때리고 있지 말고 하늘로 가서 정찰 좀 해! 이 녀석들 수가 어느 정도인지 좀 살펴봐.”
나는 이미 기절한 듯 보이는 녀석의 머리를 돌멩이로 사정없이 강타 중인 구구에게 소리쳤다.
“에잇! 이 녀석이 내 깃털을 잘라냈다고!”
구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녀석을 딱 한 차례 더 들이박고는 금방 하늘 위로 올라갔다.
이스트랜드 녀석들과 전체적으로 비슷한 수준이긴 하나, 그럼에도 이들이 보다 더 까다롭게 느껴지긴 했다. 움직임이 훨씬 더 조직적이었기 때문이다.
좁은 산길에서도 최소 셋에서 다섯의 무리가 동시에 움직였고, 한 무리가 공격에 나서면 다른 무리들은 퇴로를 차단하는 둥, 유기적으로 역할을 나누어 공격해왔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우리를 발견하면 일단 호루라기부터 불고 시작했다.
삐익–!
“여기다!”
“산등성이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계속 위치 보고해!”
녀석들의 이 같은 행동은 내게 확실한 만족감을 줬다. 전에 비해 습격자들의 수준이 올라갔다는 게 확연히 드러나 보일 정도였기 때문이다.
분명 독자들도 보면서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 좀 더 센 녀석들이 등장했구나.
다만,
‘머리수만 좀 적으면 더 좋았을 텐데.’
문제는 역시나 이들의 숫자였다. 산을 빼곡히 채울 정도의 인원.
머리가 아팠다. 이들을 몽땅 없애는 것도, 또 남겨두는 것도 애매했으니.
타냐가 그녀의 동료인 헌팅턴 도적단을 만나 라미레스를 넘겨주는 건, 중부도시 ‘사르망’에서의 일이다.
내게 정확한 지리적 지식이 없던 탓에 대충 짐작할 수밖에 없지만, 짐작건대 열흘은 더 가야할 거리였다.
하지만 고작해야 ‘이 정도 수준의 녀석들’로 장장 열흘이란 기간을 긴장감 있게 보낸다는 건······ 사실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러기엔 내가 너무 강했으니까.
격이 떨어지고, 신체능력이 하락했다곤 하나, 고작 이 녀석들에게 어려움을 겪을 정도는 당연히 아니었다.
약간 위기인 척, 당황한 척 행동하고는 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금방이라도 이들을 전멸시키는 게 가능했다. 아마 반나절이면 다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중요한 건, 독자들이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는 것이다. 요즘 독자들이 얼마나 민감한데. 약간의 허둥거림 정도야 귀엽게 봐주겠지만, 그 이상 내가 우물쭈물 하는 모습을 보였다간 곧바로 지적을 당할 수밖에 없다.
또 무엇보다도, 애초에 나부터가 독자들 앞에서 딱히 당하는 장면을 보일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등장을 안 했으면 안 했지.
고로, 대충 상황을 보다 몽땅 다 털어줘야 한다는 것.
그러나 문제는 이들을 다 없앤 뒤, 그 다음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습격인원이 더 늘어난다거나, 훨씬 더 강력한 이들로 대체가 되어야 하는데······.
“후······.”
그런 녀석들이 있을 리가.
딱 봐도 모아놓은 조직원들을 죄다 털어놓은 모양새가 아닌가.
하여,
“이쪽으로.”
“여긴······ 지나쳤던 길인데?”
“알아. 그래도 길이 좁으니 둘러싸일 염려는 없겠지. 훤히 트인 대로 나갔다가 녀석들이 활이라도 쏴대면 어쩌려고.”
일단은 최대한 시간을 버는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
물론 상관없었다. 활을 쏘든 총이나 대포를 쏘든.
설사 키리코가 마탄을 갈긴다 한들, 아무런 손상 없이 막아낼 자신이 있었으니.
내가 루트를 개척하는 기준은 단 하나. 저들의 수를 최대한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강 대신 산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도, 되도록 수풀이 우거진 쪽으로 이동한 것도 다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최대한 적은 수로 보여야, 그나마 며칠간만이라도 저들로 재탕이 가능할 테니.
“일단 뒤가 안전한 곳부터 찾자고. 계속 쫓길 순 없잖아? 반격이라도 해야지.”
“뒤가 안전한 곳······.”
그즈음,
“······왜 안 보이지?”
새로운 문제가 터졌다.
타냐가 묘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왜?”
“여긴데?”
“뭐?”
“안전한 곳······ 여기라고. 내가 길잡이라서 길을 좀 잘 보는 편이거든.”
“······.”
그러고 보니 깜박하고 있었다. 이 여자가 엄청나게 뛰어난 능력의 길잡이라는 걸.
당연하게도, 이 산 어디에도 내 옆보다 안전한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어······ 그래? 희한하네.”
“여기 뭔가 숨겨진 장소가 있나? 아닌데?”
“음······ 지금 당황해서 길이 잘 눈에 안 들어오는 게 아닐까? 다시 한 번 살펴보라고.”
“······그런가?”
떠들 시간이 없었다.
이 여자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얼른 아무 동굴이나 찾아 들어가야 했다.
하여 잽싸게 사방을 훑으며 동굴을 탐색하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주걱턱 씨 오랜만입니다.
웬 살랑거리는 듯한 음성이 귓가로 들려왔다.
“응?”
놀라 고개를 돌렸으나, 눈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뭐지?
그때였다.
-쉿, 저 하카입니다. 지금 바로 옆 나무 그늘 아래 숨어 있습니다. 알아 들으셨으면 고개만 끄덕여 주시죠.
오오!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카의 말에 반응했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레 고개가 움직였다.
드디어 당사자가 왔다.
약 먼저 주고, 이어서 병 준 녀석이.
나는 하카가 말한 나무를 슬쩍 쳐다봤다.
어째 나무 그림자가 흔들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속삭임 물약이라는 특수물약을 사용한 상태입니다. 지하 조직들을 관리하다보니 이 같은 물약들이 많이 들어오더군요. 코코아비 씨에게 들으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 모습을 들키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특별히 이 같은 방법을 쓰게 되었습니다.
속삭임 물약? 아아.
예전 골담 카지노에서 쓴 적이 있는 것이었다.
당시 한 테이블에 앉았던 레오에게 이기게 해주겠다며 쏘아붙였던 기억이 났다. 아마 그때가 레오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내 존재를 처음으로 각인시켰던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원작에서의 전개를 처음으로 비틀었던 때이기도 하고.
살짝 감상에 젖을락 말락 할 무렵, 하카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놀랐습니다. 다짜고짜 전 병력을 이끌고 와서 본인을 공격하라니요.
“······.”
나는 입술을 꽉 물었다.
억울했다. 그렇게 말 안했다. 물론 정확한 수치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차례차례 나눠서 병력을 투입하라고 했다.
코코아 내 이 녀석을······.
그때였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10분의 1로 줄여서 투입하기는 했습니다만······.
······뭐?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지금 뭐라고?
-최하급과 하급의 인원들만 일단 1차적으로 투입한 것이기도 하고······.
‘······이게?’
황당했다. 아니, 말이 안 됐다. 본래는 이거에 10배나 된다는 게.
지금만으로도 산을 가득 메웠는데?
게다가 약한 녀석들만 먼저 내보낸 거라고?
-표정을 보니 제가 실수했나보군요. 지금이라도 당장 인원을 확충하여 이 산을 모조리 덮는 쪽으로······
순간,
“안 돼!”
나도 모르게 고함을 치고 말았다.
“뭐, 뭐야 갑자기? 멍하니 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어······ 아니야. 아무 것도.”
나는 타냐에게 대충 대답한 뒤, 머리가 아픈 척 고개를 털레털레 저었다.
이 정도면 차고 넘친다. 더 늘면 큰일이다.
곧이어,
-역시 많았던 모양이군요. 상황 봐가며 대충 병력을 물리겠습니다. 적당히만 남기고요. 아, 표식을 남겨둘 테니 밤이 오면 저를 찾아오도록 하시죠.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 하카에게서 흘러나왔다.
놀라웠다. 목소리가 마치 꿀이라도 발린 듯 귀에 착 감겨져 오는 느낌이랄까.
아아, 좋다.
역시 이 녀석은 결코 평범한 캐릭터가 아니다.
원작에서처럼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만한 녀석이 절대 아니다.
‘너는 내가 끝까지 데려간다!’
그렇게 굳게 다짐하고 있을 즈음,
“근데 여기······ 계속 있을 셈이야? 내가 길잡이긴 하지만, 틀릴 수도 있어. 지금 주위에······.”
타냐가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그녀의 손가락이 어느새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복면인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 아, 뭐. 괜찮아.”
“응?”
“괜찮다고.”
나는 씩 웃었다.
이제부터 마음 편히 싹 정리할 생각이거든.
*
그날 밤.
나는 잠이 든 타냐의 모습을 확인한 후, 동굴 밖으로 나왔다.
습격자들을 처리한다는 명목 하에 정신없이 이동하며 굴렸더니, 금세 곯아떨어진 모습이었다.
밖에는 네로와 구구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녀석들 또한 피곤했을 것이다. 별 의미도 없이 계속해서 이 산, 저 산 계속해서 정찰만 하고 돌아다녔으니.
아직 저 둘에겐 내 계획을 공유하지 않은 상태였다. 구구 하나 만이었다면 잠깐 짬을 내 말을 했겠지만, 언젠가부터 네로 녀석이 계속 붙어 있어 말을 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아직도 저 고양이가 어째서 여기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야야, 들어가서 자. 둘 다.”
“······엉? 주걱턱, 어디 가냐?”
“산책 겸 정찰.”
그때였다.
“설마······ 타냐를 두고 도망가는 건 아니겠지?”
네로 녀석이 엉뚱한 소리를 꺼냈다.
황당했다.
“도망은 무슨. 아니, 그나저나 넌 왜 여기 있냐? 뭐 할 일 없어?”
내친김에 녀석의 의중까지 물어보기로 했다.
“구구가 그러던데, 두골제국에서부터 자꾸 나 따라다녔다고. 대체 이유가 뭐야?”
그러자 잠시간 침묵하던 녀석이,
“남이사.”
그러곤 도도한 척 고개를 홱 돌리는 게 아닌가.
“허······.”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당장은 시간이 없어 넘기지만, 언제 한 번 저 희한한 고양이와도 제대로 말을 나눠봐야 할 듯 싶었다.
‘짜식이 귀엽다, 귀엽다 해주니까.’
이어 두 녀석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뒤, 나는 곧바로 표식을 찾아 이동했다.
하카의 은신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실은, 100m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언제 오시나 했습니다.”
하카는 하나 변함없는 얼굴로, 하나 변함없는 태도로 나를 맞이했다.
“여, 오랜만.”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뭐. 하카 너는 보니까 잘 지낸 것 같은데?”
하카가 말없이 씩 웃었다.
눈이 슬쩍 올라가며 실눈이 되는 걸 보니, 뭐 나쁘진 않은 듯했다.
“그나저나 치누아비님은? 설마 도깨비소굴에 남겠다고 하신 건가요?”
“아냐, 아냐. 그것부터 물어볼 줄 알았지.”
나는 곧바로 도깨비들에 관한 사항을 들려주었다.
현재 치누아비는 내가 함께 데려온 무려 백 명의 도깨비들과 함께 중부의 어느 한 도시에서 대기 중이라고.
“어때? 백 명이야. 두근두근해?”
헌데,
“흐음, 그렇군요. 궁금하긴 하네요.”
반응이 뭔가 이상했다. 밋밋했다.
“뭐야, 감상은 그게 다야?”
그러자,
“더 이상 그들에게 집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도깨비도 아닌 인간이, 도깨비에게 집착한다는 게 뭐랄까······ 좀 이상하긴 하더라고요.”
하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씩 웃으며 대답했다.
“허······.”
나는 당황했다.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하카가 도깨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다고? 캐릭터 정체성상 그럴 수가 있나?
분명 도깨비에 대한 그리움으로 점철된 캐릭터일 텐데······.
순간, 작가가 뭔 짓을 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생성된 캐릭터에겐 딱히 직접적으로 손대지 못하는 거 아니었나?’
만약 작가의 마음대로 그 같은 설정 개입이 가능했다면, 나라는 캐릭터는 이미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일전에 단 한 번, 칼 자이드의 상처를 멋대로 회복시킨 것(물론 이 또한 심증이긴 하지만)을 제외하곤 딱히 그런 적이 없었다.
“흐음······.”
아니다. 설혹 그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작가가 직접 손을 대진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의 전개에서 하카가 그리 중요한 캐릭터는 아니니까.
그렇다는 건, 어쩌면 애당초 하카란 캐릭터를 관통하는 핵심이 ‘도깨비’가 아닌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즉, 도깨비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다른 무언가가 대체했다는 것.
‘설마 동료······ 뭐 이런 건가?’
하카 녀석에게 그다지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었지만, 혹시 또 모를 일이었다. 저 녀석, 아닌 척해도 그토록 사람들의 애정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하지만 물론, 당장은 이에 깊이 파고들 시간이 없었다.
나중에 시간이 생기면 따로 대화를 나눠보기로 하고, 일단은 중요한 것부터······.
“아니, 잠깐.”
갑작스레 소름이 돋았다.
“너 그럼 설마······.”
“예?”
“혹시 안 했어?”
“어떤······?”
“도깨비 전파. 레오 녀석들에게 도깨비 얘기 안했어?”
설마 했다. 설마.
물어보면서도 설마.
“······시치미 좀 떼려고 했더니만 금방 들키고 말았네요. 주걱턱 씨 눈치가 늘었군요? 훗.”
······웃어?
“대신 이렇게나 많은 인원들을 모으지 않았습니까.”
“허······.”
어이가 없었다. 제일 중요한 걸 하지 않다니.
레오 일행에게 도깨비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는 건, 독자들 또한 그에 대해 잘 모른다는 뜻이었다.
이는 생각지도 못한 문제였다.
도깨비에 대해 모르면, 제아무리 연출을 잘해도 녀석들을 등장 시키는 과정에서 별다른 임팩트를 이끌어낼 수가 없다. 기대감이 전혀 없는데,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독자들의 탄성을 이끌어 낸단 말인가. 외관이 그렇게 막 유별난 것도 아니고.
게다가 녀석들이 먼저 설명되지 않으면 내 ‘정체’를 ‘개연성’ 있게 드러낼 수도 없다.
큰일이었다. 도깨비에 관한 건 사실 걱정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즈음 나는 고개를 들어 하카를 쳐다봤다.
저 ‘왜 그러냐는 듯 방긋 웃는 얼굴’을 짓뭉개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
침착하자.
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도깨비······ 이건 나중 일이다. 후에 다시 고민해도 된다.
‘일단은 넘어가 준다. 오늘 예쁜 짓도 했으니까.’
우선은 당장의 일이 시급했다.
실은 오늘 습격자들을 패버리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아주 당연하면서도 간단했던 거라, 이걸 어떻게 깜박할 수가 있었을까 싶은 것이었다.
바로 그들이 모두 하카의 자산이라는 것.
다시 말해, 우리의 전력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뭐 무력이 아주 뛰어난 친구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머리가 ‘띵’ 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한 머릿수는 어디서 뭘 하든 힘이 될 수 있는 법이다. 특히나 정보. 정보의 영역에서 지하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인원들은, 그 무력과는 별개로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 친구들을 오늘 대거 날려버렸으니······.
상황이 급박해지자 간과하고 말았는데, 이게 제법 딜레마가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내 상황에선 샌드백이 필요하긴 한데, 이게 다 제 살 깎아먹기가 되는 판국이니.
그때였다.
“아, 그건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카가 대단히 평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응?”
“저희를 대체할 녀석들을 제가 또 잔뜩 불렀거든요. 아마 사흘 내로 속속 모여들 겁니다. 그때까지만 저희 인원을 돌려쓰면 되죠.”
“뭐······ 누구?”
“혹시 본인이 지금 유명하단 사실 알고 있습니까?”
“내가? 여기 웨스트랜드에서?”
“음······ 따지고 보면 전 대륙에서죠.”
이어, 하카가 말한 내용은 다소 충격적인 것이었다.
“내가 암살대상이라고? 그것도 난다 긴다 하는 괴물들이 노리는?”
“물론 뭐, 아직 그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닙니다. 다만 계속된 위협에서 살아남는다면 뭐······ 그렇게 되겠죠?”
황당한 녀석이었다.
그런 말을 하면서 저렇듯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니.
“물론 대어들이 당장 찾아오진 않을 겁니다. 엉덩이가 몹시도 무거운 자들이니까요.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그 빨강머리 여자가 들고 있는 보물이 진정 값진 것이라면······ 보물을 노리는 자들 틈에 섞여 주걱턱 씨를 습격하러 올지도 모릅니다. 아니, 아마 그렇게 되겠네요.”
“······.”
나는 잠시간 생각에 잠겼다.
이걸 잘했다고 해야 할지.
이 일이 작가의 의도를 해치지 않는 건 당연했다. 외려 그림은 더 좋게 나올 것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이곳에 오는 실력자들이 늘어난다는 건 이 쟁탈전의 수준자체가 올라간다는 걸 의미했으니. 원작보다도 더.
그리고 어쩌면, 이는 내가 활약할 여지 또한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만 단 하나의 문제라면,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것.
‘격이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내가 알기로, 이번 쟁탈전에 참여하는 녀석들 중 나보다 강할 거라 예측되는 놈들만 최소 다섯이었다. 그놈들을 상대하는 것만도 골치인데, 그 와중에 나를 노리는 암살왕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후······.”
“왜, 자신 없으십니까?”
하카가 나를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다시 생각해도 희한했다. 어떻게 단념할 수 있었을까, 저 누구보다 악의적인 도깨비 같은 녀석이.
“······웃기는.”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두근대서 그러는 거야, 신나서. 고놈들 잡아먹고 강해질 생각에.”
“······역시 주걱턱 씨 답네요.”
“됐고, 일단 사르망에 도착하기 전까지 진행할 콘텐츠나 좀 싸보자고.”
“콘······ 어떤 것 말씀이신지?”
“계획 좀 짜보자고. 네가 말한 암살자들이 안 올 수도 있을 거 아냐.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네 조직원들을 동원해야 하니까.”
“그건 틀림없습니다. 올 겁니다.”
“알았으니까, 일단은 지금 조직원들 규모부터 쭉 훑어봐. 또 무력이랑 쓰는 능력까지.”
그렇게 밤새도록 회의가 계속되었다.
*
열흘 뒤.
웨스트랜드 중부 도시 사르망.
“도착했다!”
나는 그러고 방방 뛰며 소리를 지르는 타냐를 말없이 쳐다봤다.
“고마워 주걱턱! 덕분이야!”
“뭐 별거라고.”
지난 열흘은 치열했다면 치열했고, 평탄했다면 평탄한 나날들이었다.
독자들 앞에서 딱 체면치레 할 정도였다고나 할까.
하카의 말대로 사흘이 지난 후, 암살자들이 찾아오긴 했다. 하지만 예상보다는 훨씬 적은 수였다. 또, 약했고.
하카는 이에 대해 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생각보다 빨강머리 여자가 들고 있는 보물이 대단한 모양입니다. 모여드는 인원들의 이름값에 암살자들이 주춤할 정도더군요.”
어이가 없었다.
언제는 뭐, 죽어라 모여들 거라더니.
어쨌거나 예상보다는 훨씬 적은 수가 공격해온 바람에, 미리 배정해둔 인원들보다 좀 더 많은 수의 조직원들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카는 어차피 ‘쓸모없는 녀석들’이라 상관없다고 웃었으나, 찜찜한 게 사실이었다. 저 녀석이야 본래 성정자체가 잔악무도한 인간이니 괜찮을지 몰라도, 난 아니라고.
아니 실은, 그보다는 아깝다는 생각이 조금 더 강하긴 했지만.
그즈음,
“꼭 보답할게!”
타냐가 내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래, 그래. 일행은 어디 있다고?”
“광장에서 기다린다고 했어.”
“거기까지 데려다줄게.”
나는 그녀와 이대로 헤어질 생각이 없었다.
“어? 어······ 괜찮은데. 그럴 것 까지는······.”
“혹시 모르니까. 지난 열흘간 달려든 놈들 숫자 잊었어? 방심은 금물이야.”
“그, 그런가?”
“가자고.”
이어, 나는 쭈뼛쭈뼛 걸음을 옮기는 타냐를 따라 광장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광장엔 ‘그들’이 미리 와 타냐를 기다리고 있었다.
헌팅턴 도적단.
총인원 수가 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광장에 있던 이들은 모두 합해 일곱이었다.
“여!”
“왔구나, 타냐!”
“용케 살았어!”
나는 그들을 향해 달려가는 타냐를 제지하지 않았다.
“주걱턱, 여기 내 친구들이야. 헌팅턴 도적단이라고······ 혹시 알아?”
타냐는 언제 쭈뼛거렸다는 듯, 몹시도 환해진 얼굴이었다.
“어어, 들어본 것 같은데.”
“그럼 그것도 혹시 알아?”
“어떤?”
“우리가 그렇게까지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거.”
“······뭐?”
“지금 대가 받으러 나 따라온 거잖아. 맞지?”
“그야······ 그렇지?”
“근데 미안해서 어쩌지? 나는 줄 게 없는데.”
타냐는 그러고 씩 웃었는데, 정말이지 천진난만해 보이는 미소였다.
보고 있으면 절로 따라 웃음이 나온다고나 할까.
하여,
“어어, 괜찮아. 알아서 가져갈 테니까.”
“응?”
나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그러곤 천천히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뭐하는 거야? 설마 공격하려고? 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강하다한들, 우리는 여덟이고 또 이 주위엔 우리가 고용한······.”
“일곱, 여덟, 아홉······ 열.”
때마침,
띠링-.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했다.
[챕터26 ‘타냐’가 종료되었습니다] [히로의 캐릭터 평가가 갱신되었습니다] [특징에 ‘허둥지둥’이 추가되었습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이 잇따랐습니다]⁝
“챕터 끝. 네 메인시점 끝.”
“뭐? 그게 무슨······.”
“이제 너 보는 사람 없다고.”
이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보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씩 웃어주었다.
“가져와 이제. 라미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