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이제 니들 마음대로 해
***
나는 산 정상에 선 채 아래를 내려다봤다.
오목조목하고 아기자기한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클론시티.
이 자그마한 도시를 도깨비의 출연지로 정한 이유는 무척이나 단순했다.
이곳이 바로 레오 일행이 처음으로 라미레스 쟁탈전에 끼어드는 도시이기 때문에.
레오의 시점을 통해 독자들이 보게 되는 최초의 전투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냥 그뿐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보다 크고 널찍한 장소를 택했을 것이다. 아무렴 당장이라도 튀어나가고 싶어 안달이 난 도깨비만 백 명인데.
물론 다른 곳으로 옮겨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어쨌거나 지금 라미레스를 쥐고 있는 건 나니까. 다들 따라오지 않을까 싶어서.
다만, 이 안은 그냥 철회하기로 했다. 모여드는 인원수가 인원수다보니, 내 멋대로 접합지점을 옮겼다가 어떠한 나비효과가 일어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등장해야 할 인물들이 제때 나타나지 못한다면, 차후 전개가 죄다 뒤틀려버리지 않을까 싶어서.
헌데,
“검은 그림자라고?”
지금 그 생각이 약간 달라지고 있었다.
“이 녀석이?”
나는 한 손에 틀어쥐고 있던 복면인의 멱살을 슬쩍 들어 올려보였다.
그러자,
“예, 목 뒤쪽에 표식이 있네요. 확실합니다. 제가 간부로 있었지 않습니까.”
하카가 슬쩍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몹시도 당혹스러웠다.
“검은 그림자라니······ 갑자기 그 이름이 왜······ 아니 것보다, 이렇게나 강하다고?”
“······그게 강한 겁니까? 한 대 맞고 쓰러지지 않았나요? 외려 다른 녀석들이 더 버틴 것 같은데. 뭐, 저 녀석이나······ 저 녀석?”
그러곤 하카가 근처에 쓰러져 있던 녀석들을 차례로 가리켰다.
맞는 지적이긴 했다. 저 덩치들은 그래도 서너 대씩은 버텼으니.
그에 비해, 이 녀석은 한 방이었다. 딱 관자놀이 한 방에 순식간에 기절.
문제는, 이 녀석이 비도를 날렸을 때 내가 약간의 위협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고작해야 정찰이나 하러 온 중하급 암살자에게.
이는 내가 아는 ‘검은 그림자’에선 결코 나올 수 없는 수준의 무력이었다.
초반부 최종 흑막집단으로 등장하긴 하나, 그래봐야 1탄 보스 정도가 아닌가. 지금의 내게 위협을 줄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됐다. 그것도 두목이나 간부도 아닌데.
이건 그냥 다른 조직이라고 밖엔 볼 수가 없는······.
순간,
‘아······! 다른 조직······.’
나는 깨달았다.
말 그대로, 이건 그냥 완전히 새로운 조직이라는 것을.
본래 원작에서 검은 그림자는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얀의 합류를 마지막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끝이 났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 내의 설정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조직이 재차 등장한다?
자연스레 잊혀 없어져야 할 조직이?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선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했다.
작가의 개입.
암살자들이 나를 쫓기 시작한 것에 편승하여, 작가가 추가적으로 이들을 되살린 게 분명했다. 그때 당시 써먹지 못하고 묵히게 된 설정과 캐릭터들을 활용할 요량으로.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때 등장했었던 캐릭터들을 부활시킬 순 없다. 나와 맞닥뜨렸던 녀석들은 이미 다 ‘삭제’ 당한지 오래일 테니.
그렇다는 건, 당연하게도 현재의 이 검은 그림자는 그때와 같은 조직일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검은 그림자라는 옷을 걸치고는 있으나, 파워 밸런스의 이점을 얻고 태어난 ‘신규 캐릭터’들로만 새로 채워진 조직이지.
더군다나 수많은 소년만화에선 전에 한 번 나왔던 캐릭터나 조직이 ‘새로운 설정’을 걸치고 재등장할 경우, 엄청나게 업그레이드가 돼서 나오는 경향이 종종 보인다.
이 녀석들 또한 그와 같은 경우가 아닐까.
가령, 검은 그림자 내의 ‘숨겨진 비밀 세력’ 따위의 타이틀로 등장한다든지, 혹은 단주가 비밀리에 키워온 ‘직속 친위대’가 마침내 활동을 시작했다든지 하는 식으로.
“빠르고 은밀했어. 비도에 실린 힘 자체도 묵직했고. 내가 알던 녀석들이 아닌데.”
“흠······ 그랬나요?”
“전혀 위화감을 못 느꼈단 말이야?”
“뭐······ 저야 주걱턱 씨가 그 녀석을 날리는 순간부터 본 거라서요. 그 전의 움직임에 대해선 뭐라 판단할 수가 없죠?”
“······.”
영 도움이 안 되네.
“그나저나 너. 현재 이 녀석들과 연결은 되어 있는 거야?”
“아뇨, 희한하게 이곳은 어느 날 기존의 연결망이 단번에 끊어졌었습니다. 저도 뭐 깊숙이 들어가 있던 건 아니어서, 크게 미련두지 않았고요. 실은 웨스트랜드에서 아예 철수한 줄 알았습니다. 이후로도 들려오는 소식이 일체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다시 등장했다?”
“예, 그것도 무척이나 요란하게요.”
하카가 좀 전에 들려준 내용은 다소 충격적인 것이었다.
검은 그림자가 다시금 전면에 나섰다는 것.
그것도 웨스트랜드 내의 암살단들을 상당수 규합한 채로.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나조차 처음 알게 된 단주의 내력 때문이라고 했다.
검은 그림자의 단주, 그로니얀.
과거 암살왕이라 불렸던 자객이자, 이스트대륙을 주름잡았던 지하의 왕들 중 하나.
“불과 며칠 전에 웨스트랜드 암살협회라는 걸 만들곤 곧장 이곳으로 진격했답니다. 목표는 당연히 주걱턱 씨고요.”
“혹시······ 원래 알고 있었어?”
“예? 어떤 걸요?”
“검은 그림자 단주의 내력.”
“음······ 아뇨?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단주와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없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약간 희한하긴 하네요. 단주의 내력이 함께 소문으로 돈다는 게.”
“역시 그렇지?”
“근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아냐.”
검은 그림자의 단주도 그렇고, 암살협회니 뭐니 하는 것도 그렇고······ 아마 초창기에 작가가 다 만들어둔 설정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저 협회의 창설과정까지 디테일하게 다 짜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게 아쉬워서라도, 이렇게나 급히 욱여넣듯 전개해버린 것이겠지. 심지어 개연성이 걱정될 정도로.
어쨌거나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았다.
가뜩이나 좁은 이 도시에, 보물을 탐내는 수많은 모험단들에 이어, 검은 그림자의 단주가 이끄는 암살자 수백이 추가로 몰려온단다.
나 하나 잡으러.
······.
그즈음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녀석을 대충 던져놓은 뒤, 옆에 있던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내가 상대하려 한 인물들을 쭉 나열해둔 리스트였다.
1. 웨일스 모험단 – 대적자 2인
2. 제로니모 모험단 – 제로니모(군인)
3. 큰거북이 모험단 – 대장거북이, 부대장거북이
4. 쌍둥이 모험단 – 금발 쌍둥이 둘
⦙
리스트에 오른 대상의 요건은 간단했다.
첫째, 이번 에피소드에서 메인시점을 부여받는 인물일 것.
둘째,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일 것.
한 마디로, 내 격을 올리는데 직방인 녀석들이었다.
제아무리 강한 녀석이라도 독자들이 보는 앞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고, 괜히 이기지도 못할 녀석과 싸우는 건 그보다 더 피해야 할 일이었으니.
다만, 이 리스트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을 듯했다. 작가가 새로운 인력들을 대거 투입한 이상, 원작대로 시점이 분배되지 않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기 때문이다.
또 이미 쟁탈전이 아닌 디펜스 게임에 가까워진 상황이었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저마다 난리치는 그림이 아닌, 나 하나를 공략하는 전황으로 이어지게 된다면······ 아마 이들 또한 원작에서만큼 비중을 부여받진 못하지 않을까.
나는 더 생각할 것 없이 리스트를 곧바로 파기했다.
대신, 내가 꼭 수행해야만 하는 사항만을 다시금 되짚었다.
별 거 없었다.
1. 라미레스를 내어주는 것.
2.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것.
앞으로 라미네스를 무조건적으로 소유해야 할 사람은 두 명이다.
레오와 칼 자이드.
솔직히 이 둘에게도 꼭 넘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나 혼자 그냥 들고 있으면 안 될까 하고.
하지만 이는 내가 생각해도 선을 한참 넘는 행위였다. 작가가 만들어둔 선행플롯을 완전히 똥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니까.
저걸 소유하는 과정이 있어야만 레오가 타냐를 동료로 받아들이는 내용도, 칼 자이드의 약점이 드러나는 내용도 존재할 수가 있다.
즉, 존중할 건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
이때 칼 자이드의 경우야 레오가 알아서 건네줄 테니 딱히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레오에게 넘겨줄 때였다.
언제, 그리고 어떻게 줄 것인가.
일단 원작과 똑같은 상황을 재연하는 건 불가능했다.
원작에서 레오는 이곳 도시로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타냐의 도움을 받아 라미레스를 얻게 된다. 타냐의 인도에 따라, 라미레스를 가지고 도망치던 녀석과 곧장 맞닥뜨리게 되고, 녀석을 제압한 뒤 라미레스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쉽게 내어줄 마음이 없었다.
내가 다른 녀석들에게 쫓겨 다니는 그림도 탐탁찮지만, 레오 녀석에게 뒤지게 맞고 빼앗기는 건 죽어도 사양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역시 그 수밖엔 없나?’
계획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때를 대비하여 일찌감치 세워둔 안이 하나 있었다.
플랜B. 일명, ‘될 대로 되라.’
뚜렷한 대응책이 생각나지 않을 때, 이를 억지로 떠올리려 머리를 짜내면 안 된다.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니.
또 내가 모든 걸 감당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알아서 흘러가게끔 두면 되는 것이지.
문제는 ‘그들’이 얼마나 해주냐는 것.
그리고 내가 견딜 수 있느냐 하는 것.
‘······페널티 감당이 되려나.’
그즈음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몰라, 모른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다. 내가 이곳에 도깨비들을 데리고 왔을 때부터. 아니, 엄밀히 말해 작가가 나를 이스트랜드로 날려버렸을 때부터, 이와 같은 일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수습은 알아서 하시고, 갈 때까지 가보자고. 작가 양반.’
나는 그쯤에서 대충 생각을 정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난 김에 당장 준비를 시작해야 할 듯했다.
“코코아랑 치누아비는?”
“같이 모여 있을 겁니다. 코코아비 씨는 아마 우두머리 천막에 있을 거고, 치누아비 님은······ 글쎄요, 무리 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요?”
“그럼 지금 임시로 우두머리를 하고 있는 녀석은? 누군지 알아?”
“샛동아비? 뭐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샛동아비라······ 아, 노형의 산채에서 한 번 봤던 녀석인가? 그나마 다행이네. 그래도 대화는 좀 될 테니.”
이곳에 도착한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놀랍게도 도깨비들은 무려 보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아무런 말썽도 피우지 않고 잘 대기하고 있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저들끼리 재미난 놀이 하나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이름하야 ‘우두머리 바꾸기.’
이 황당한 녀석들이 허구한 날 내기종목을 바꾸며 ‘왕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노형과의 내기를 통해 확실한 우두머리의 직위를 인정받은 나와는 달리, 치누아비는 그저 내가 임명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으니. 다른 녀석들이 순순히 이를 따른다고 했을 때부터 의심을 했어야 했는데.
웃기게도, 치누아비는 내가 맡겨놓은 임시 우두머리 직을 빼앗긴 지 오래였다. 언제는 최상위 승률을 자랑하는 도깨비니 뭐니 하더니만. 그나마 배 안에서 뺏기지 않은 게 다행이랄까.
‘잘 좀 하지, 귀찮게.’
솔직한 심정으로, 도깨비들에게 지령을 내리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녀석들은 특성상 무슨 말을 해도 늘 제멋대로 해석하고, 마음대로 행동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계속해서 옆에 붙어 통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다 모이라고는 했지?”
“전달은 해뒀습니다.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마침내 저들이 원하던 말을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놈이라도 듣기만 하면 돼. 알아서 퍼뜨려줄 거니까.”
이번에 내가 내릴 명령이 바로 ‘이제 니들 마음대로 해’였으니.
*
클론시티 입구 부근.
“난 안가.”
돌연 제자리에 멈춘 채로, 타냐가 선언했다.
“억울해. 못가.”
죽어도 이대론 그냥 갈 순 없었다.
하지만,
“안 가면, 뭐 어쩌게?”
“찾아와야지.”
“풉, 그 괴물에게서? 네가?”
“타냐, 착각하지 마. 넌 도둑이야. 전사가 아니라.”
다른 녀석들은 생각이 다른 듯했다.
“누가 뭐래? 훔쳐 올 거야.”
물론,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다.
방법이 떠오른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타냐는 확신했다. 찾고자 하면 어떻게든 길은 보일 것이다. 이제까지 늘 그래왔으니.
그러나 저들은 그저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이 미련한 것아, 세상에 보물이 그거 하나니? 몇 번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 하나인 건 딱 하나 뿐이야.”
“목숨.”
“바로 그거지.”
“알았지?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가자고.”
그러나 타냐는 움직이지 않았다.
“분명히 말했어. 난 안 간다고.”
이에 그들 또한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그대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래라, 그럼.”
“훔치면 연락해.”
“괜히 꼬리는 달고 오지 말고.”
“······.”
타냐는 그들의 뒷모습을 가만 바라보다, 이내 돌아섰다.
겁쟁이들.
헌팅턴의 원칙이니 뭐니 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그냥 무섭다는 거.
남의 것을 훔치는 주제에, 다른 이들과의 충돌을 두려워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진정 탐이 나는 건 목숨을 걸어서라도 훔쳐볼 생각을 해야지, 이 모험의 시대에까지 ‘도적단’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 부끄럽지도 않나.
“흥.”
헌팅턴과 수많은 나날들을 함께 해왔음에도, 늘 타냐가 독립을 꿈꿔왔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저들에겐 부족했다. 세상을 훔쳐보겠단 웅심이.
욕심도 인간의 그릇이 되는 세상이 아닌가.
자질 부족이다. 도적으로서의 자질 부족.
“나는 달라. 다르다고.”
그러고 잠시간 중얼거린 뒤, 타냐는 한 차례 길게 숨을 골랐다.
그러곤 가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주걱턱에게서 다시금 라미레스를 되찾을 수 있을까.
물론, 단순히 ‘궁리’를 하려 생각에 잠긴 건 아니었다.
와중에도 타냐의 두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멈춰선 것. 이는 바로 길을 탐색하기 위함이었다.
그때였다.
팟-.
“응?”
저 멀리 어느 골목길 근처에서 무언가가 반짝거렸다.
‘뭐야, 이렇게 쉽게?’
주변의 사물들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빛······ 틀림없었다. 길눈이 트인 것이었다.
타냐는 서둘러 빛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응?”
“뭐야, 이 여자야?”
“맞는 것 같은데요? 게다가······ 저 분도 우릴 본 것 같고······.”
네 명이 일행인, 어느 한 무리를 만났다.
스카프를 목에 두른 더벅머리 소년과 다소 움츠러든 듯 왜소한 체구의 소년, 그리고 빨강머리의 건들건들해 보이는 남자와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까지.
그들 전체에게서 빛이 나고 있었다.
“저기······ 모험단?”
타냐는 조심스레 물었다.
‘봤다’는 말은 분명 길잡이가 존재한다는 뜻이고, 이는 저들이 모험단이라는 걸 의미했다. 설마하니 도적단은 아닐 것 아닌가.
“응, 레오 모험단이야. 내가 레오.”
“레오?”
왠지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어디서 들어 봤더라······.
순간,
“헙!”
타냐는 자기도 모르게 놀라 소리를 냈다.
“응? 뭐야?”
“아, 아니······.”
그들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다른 헌팅턴 녀석들과 헤트로 사원의 잃어버린 보물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던 모험단. 이스트랜드에서 받은 서신에 저 녀석들의 대한 욕이 무진장 써져 있어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와, 얘네가 걔네였구나.’
신기한 인연이었다.
타냐의 눈에 금세 호기심이 차올랐다.
“나는 타냐야. 길잡이지.”
“그런 것 같았어. 너도 우릴 본 거지?”
역시나. 길잡이들끼리 서로를 보고 움직인 모양이었다. 다만, 어째서 저들이 자신을 보게 된 건지는 짐작이 잘 가지 않았다.
“맞아, 너희도 혹시 보물이 탐나서 온 거야?”
“응, 그리고······ 지금 그걸 가지고 있는 녀석에게도 갚아줄 게 있어서.”
그러곤 씩 웃으며 주먹을 꽉 쥐는 것이었다.
타냐는 레오를 조금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이 녀석은 ‘그 괴물’을 상대로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겁먹은 기색 하나 없이, 순수하게 만남을 바라고 있었다.
‘자신이 있는 걸까?’
글쎄.
다만, 저 미세한 몸의 떨림이 두려움에 의한 게 아닌 건 분명했다. 녀석은 외려 설레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신기하리만치 눈길이 가는 녀석이었다.
분명 길눈이 이들을 보여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잘됐네. 내가 안내해줄게.”
타냐는 그 순간 결심했다. 당분간은 이들과 붙어 있기로.
“주걱턱이 어디 있는지 알아?”
“당연하지.”
물론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찾는 게 그리 어려울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주걱턱이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채, 올라오는 녀석들을 모조리 박살내고 있다는 건 딱히 비밀도 아니었다. 어느 주점을 가더라도 그 얘기뿐이었으니.
“나만 따라오면 금방······.”
그때였다.
“근데······ 굳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뭐?”
그제까지 가만 침묵하고 있던 빨강머리가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주걱턱 찾는데 저 여자 필요 없을 것 같다고.”
“······.”
어이가 없었다.
“흥, 너도 길잡이인가 보지? 길눈에 자신이 좀 있나봐?”
그런데,
“어······ 아니다, 취소. 필요하겠다.”
갑작스레 또 말을 바꿨다.
뭐 하는 놈이야 이거.
한 마디 쏴붙이려 녀석에게 한 발 다가갔을 때였다.
다시 본 빨강머리의 표정이 희한했다. 뭔가······ 놀라 말문을 잃은 것 같은?
‘뭐지?’
하여, 타냐 또한 빨강머리의 시선이 고정된 곳으로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뭐야.”
경악했다.
빨강머리의 찾을 필요가 없다는 말은 정확했다.
저 멀리 산의 언덕배기 즈음에서 주걱턱의 모습이 대놓고 보이고 있었으니까.
주걱턱이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하, 하나가 아냐?”
“······저게 몇 명이야!”
‘주걱턱들’이.
수십······ 아니, 무려 백 명에 가까운 주걱턱들이 산을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