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94
94화 나 잡아봐라
***
“설마 진짜······ 주걱턱?”
레오는 긴가민가해 하며 새로 온 주걱턱에게 물었다.
물론 외형을 보고 구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겉모습 자체는 이틀 전부터 눈에 차일 정도로 보이던 그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으니.
대신, 레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를 대하는 뿔 달린 소년의 태도였다.
주걱턱 모험단의 일원이 분명한 저 소년이 저렇듯 깍듯이 대하는 걸 보면······ 물론 저 또한 새로운 유형의 장난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진짜 주걱턱이 아닐까.
그때였다.
“아직도 모르겠어?”
새로 온 주걱턱이 대뜸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씩 미소 지었다.
어째 낯익은 웃음이었다.
다른 주걱턱들에게선 보지 못했던, 무척이나 자신만만한 미소.
그렇다면······ 정말로?
“나야, 히로.”
“너, 너······!”
“오랜만이다, 레오.”
레오는 그 순간,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감정의 정체는 알지 못했다.
그저 뜨겁고, 강렬하다는 것만 느껴질 뿐.
“이 자식······ 찾았잖아!”
“그랬어?”
“주걱턱! 보물을 내 놔!”
“뭐야, 날 찾은 거야? 보물을 찾은 거야?”
“둘 다!”
레오는 그러곤 그를 향해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갔다.
근래 이렇듯 흥분이 된 적은 처음이었다.
온 몸에서 자연스레 번개가 흘러나왔다.
파츠츳-!
그러나 주걱턱은 여전히 씩 웃어 보이기만 할 뿐, 딱히 별다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워워, 진정해.”
“한 판 붙자! 이긴 사람이 보물을 차지하는 거야, 어때?”
“뭐, 나쁘진 않은데······ 잠깐만. 기다려 봐. 나 얘네 좀 보내고.”
그러곤 슬쩍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그때,
“엉?”
주걱턱의 머리 위 허공에서 뭔가가 스르르 벗겨졌다.
놀랍게도, 거기 주걱턱 모험단의 그 여자 꼬맹이가 숨어 있었다.
“꼬, 꼬맹이다!”
“꼬맹이라니. 내 이름은 코코아야. 코코아비거나.”
“조용, 조용. 잠깐만 기다리라고.”
그러곤 주걱턱은 꼬맹이를 데리고 뿔난 소년에게 다가갔다.
이어 셋은 머리를 맞댄 채 잠시간 속닥거리기 시작했는데, 열심히 귀를 기울여 봤지만 잘 들리지는 않았다.
그나마 확실히 들을 수 있었던 건 두 단어 정도였다.
퍼뜨려라. 그리고 따라와라.
이윽고,
“아아, 기다려줘서 고마워.”
녀석들을 보낸 뒤, 주걱턱이 되돌아왔다.
그는 그러곤 다짜고짜 희한한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둘은 좀 친해졌나?”
“응?”
의아한 물음이었다.
질문의 의도 자체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그 내용 자체가 이상했다. 왠지 자신과 타냐, 둘 다를 아는 듯한 말이지 않은가.
“······서로 아는 사이?”
그러고 타냐를 돌아보자, 그녀가 대답 없이 고개를 홱 돌렸다.
분명 수상쩍은 태도였다.
이어,
“뭐야, 말 안했어?”
주걱턱이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타냐, 주걱턱을 알고 있었어?”
그러자,
“내가 저 녀석을 어떻게 알아! 저, 저······ 교활한 도둑놈을!”
그녀가 갑작스레 빽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뭐야, 자기소개 하는 거야?”
이어진 주걱턱의 말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다름 아닌 타냐가 저 보물을 이스트랜드에서 훔쳐온 당사자라는 것. 심지어 주걱턱과는 한 배를 타고 같이 넘어온 사이라고 했고.
이게 사실이냐 물으니,
“맞아. 그런데 저 주걱턱 녀석이 강탈해버렸지! 내 보물을!”
타냐가 대뜸 그러고 소리를 질렀다.
“뭐, 근데 네 것이라는 표현은 좀 아니지 않나? 어차피 너도 도둑질 한 건데. 아참 레오, 너 설마 그것도 모르는 건 아니지? 이 여자 엄청나게 유명한 도적단 소속인거.”
“응?”
그때였다.
“그, 그만둬······.”
갑작스레 타냐의 목소리가 심히 잦아들었다.
“도적단?”
“그래, 그 여자가 바로 헌팅턴 도적단이야. 혹시 들어봤어?”
무척이나 익숙한 이름이었다.
헌팅턴? 헌팅턴이라면······.
“설마 그 헌팅턴?”
“······.”
고개를 푹 숙인 걸 보니,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너 바보냐? 그야 당연하지, 이 여자는 줄곧 이스트랜드에 있었으니까.”
“아하.”
레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곤,
“그런데 그게 뭐?”
“응?”
주걱턱에게 되물었다.
“타냐가 헌팅턴 도적단 소속이라는 게 뭐.”
“뭐냐니······ 너희 모험단이랑 트러블 있는 도적단 아냐? 소문이 그렇던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네가 말했듯이 타냐는 그때 이스트랜드에 있었는데. 그리고 적어도 현재는 나의 길동무라고, 헌팅턴이 아니라.”
그러자 주걱턱이 잠시간 침묵했다.
이어,
“······참나. 누가 주인······ 아니랄까봐. 꼭 티를 내요, 티를.”
“뭐?”
“아니다, 아냐. 좋은 마음가짐이네. 그냥 둘이 어느 정도 친해졌을까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어. 뭐, 나름 나쁘지 않아 보이네. 잘 하고 있어.”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를 자꾸 내뱉는 게 아닌가.
레오는 그즈음 상황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주걱턱이 계속해서 화제를 돌리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하여, 재차 결투에 대해 말하려고 하니,
“이제 됐지? 그럼 얼른 나랑······.”
“아, 미안 미안. 그 전에 하나만 더.”
주걱턱이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제지했다.
솔직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이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나?
“너 진짜 주걱턱 맞지?”
“그럼.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그게 뭔데?”
그러자 주걱턱이 씩 웃더니,
“도깨비들. 어땠어?”
“뭐?”
“내 도깨비들 어땠냐고. 볼만했지?”
또 한 번 희한한 물음을 던져왔다.
“네 도깨비들? 그럼 정말 저 많은 주걱턱들이 다 네 부하란 말이야?”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녀석들과 상대를 좀 해봤어?”
상대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그 녀석들은 입만 열만 거짓말뿐이었으니까. 어떻게든 속여 먹고 장난만 치려하는 통에, 아주 그냥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저 녀석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죄다 가만 안 둘 거라고!”
이에,
“그랬어? 도깨비들 특성이 원래 그거야. 교란, 혼동, 미혹, 거짓, 장난······ 죄다 거짓말쟁이에 변덕쟁이들이지.”
주걱턱이 만족했다는 듯 껄껄대며 웃었다.
“근데, 그거 아냐?”
“응?”
“나도 도깨비야.”
“······어?”
“그나저나 좀 전에 두 꼬맹이들······ 지금쯤이면 흔적도 다 지우고 잘 도망쳤겠지? 네가 쫓아가지 못하도록?”
“아니, 지금 무슨······.”
그러곤 품속에서 웬 허름한 천 조각을 꺼내는 것이었다.
“미안, 보물 걸고 한판 붙어준다는 거 거짓말이었어.”
“······뭐?”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게 도깨비 은막이라는 거거든? 봐봐, 이걸 이렇게 뒤집어쓰면······.”
그 순간,
스르륵-.
갑작스레 녀석의 모습이 사라졌다.
“뭐······ 뭐야!?”
이어 나직이 들려온 주걱턱의 목소리에, 레오는 그만 극심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나 잡아 봐라.”
*
“후······.”
나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대략 5분쯤?
하카가 그림자를 잡아두고 있겠다고 했으니, 아마 그 정도의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빠르게 현재 시간을 확인했다.
낮 2시.
레오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한지 대략 1시간 가량.
지금쯤이면 치누아비와 코코아가 도깨비들에게 다 전했을 것이다.
뭐, 그 내용이야 별 게 아니었다.
할 일 없는 도깨비들, 혹은 심심하다 싶은 도깨비들, 왠지 이대로는 조금 아쉽다 싶은 도깨비들······ 모두 북부 소재의 도시 ‘지브란테’로 따라오라고.
물론 그들이 내 말을 착실히 따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뭐, 설사 따라온다 해도 그들을 데리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하려는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앞으로의 전개를 최대한 어지럽히려는 생각뿐이었다. 어쨌거나 도깨비들이 많이 있으면 있을수록, 전개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으니.
내가 본래의 계획을 모두 뒤엎은 뒤, 라미레스를 쥐고 죽어라 도망치고 있던 이유는 별 게 없었다.
살기 위해서.
*
불과 어제 오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이번 쟁탈전 에피소드에서 활약하기 위해 세운 나의 전략이 틀렸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비록 내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약해졌고, 무력을 통해 종횡무진 할 만한 소지가 굉장히 줄어들긴 했으나, 그럼에도 내가 그린 전체적인 틀에선 딱히 어긋나지 않았다고.
그런데 그날 저녁 무렵,
“······이러면 완전히 나가린데.”
마침내 도시 안까지 진입해온 ‘암살협회’를 보곤, 나는 내가 너무 안일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하카의 설명은 불충분했다.
저 암살협회라는 것들은, 그리고 그 총회장 그로니얀이라는 녀석은, 나의 추정치를 가뿐히 넘어서는 괴물이었다.
새까만 도복을 갖춰 입은 채, 선두에서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고 있던 중년의 사내.
얀과는 정반대의 장대한 체구와 무성히 난 수염이 언뜻 산적을 연상케 하나, 다소 서늘한 빛을 뿜어내는 눈매는 마치 벼려진 검을 떠올리게 했다.
그가 터덜터덜 내딛는 발걸음 한 번 한 번에, 온 산이 진동하고 있었다.
“······무슨 마왕이냐.”
일말의 과장 없이, 아직 약점이 드러나지 않은 저 칼 자이드조차 이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한 기세에, 그만한 위압감이었다.
현재 칠왕이 존재한다면 바로 저와 같은 느낌일까.
물론, 실제로 그렇게까지 강하진 않을 수도 있다. 제아무리 미리 기획이 되어 있던 캐릭터라 할지라도, 그만한 힘을 가진 녀석을 대뜸 내놓기엔 작가로서도 부담이 갈 수밖에 없으니. 또 전에 비해 약해진 나이기에, 상대가 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면이 없잖아 있을 것이고.
하지만 적어도, 현재의 나보다 강한 건 분명했다.
저렇게 딱 봐도 ‘나 강합니다’ 하고 생긴 녀석이 약한 경우는, 이 직관적인 소년만화에서 그리 흔한 사례는 아니니까.
마치 뒤통수를 ‘쾅’ 하고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저만한 녀석의 존재는 내가 이제껏 세운 계획을 근간부터 뒤흔드는 것이었으니.
내가 도깨비소굴에서 도깨비들을 데리고 나왔다는 걸 모두 알고 있는 작가가, 그냥 보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크나큰 오산이었다.
‘이거 완전히 나 묻으려 나온 것 같은데······.’
묻는다는 건 두 가지 경우 모두에 해당됐다.
1. 이제까지의 나의 활약이 녀석의 존재감에 가려 묻힌다.
2. 실제로 땅에 묻힌다.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문제였다.
설사 작가가 나에 대한 악감정이 없다 하더라도, 자신이 새로 만든 저 그로니얀이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써먹기 위해선, 그에게 일정분량 이상의 ‘서사’와 ‘활약상’을 부여해줘야 한다.
저 괴물이 활약하는 방법이야 별 게 있겠는가.
간단하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걸맞은 상대를 거꾸러뜨리는 것.
칼 자이드? 레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녀석의 상대로 적합한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바로 나.
사실 보면 당연한 전개였다. 현재까지 이번 에피소드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게 나이기도 하거니와, 애당초 그 자체가 나를 표적으로 삼은 채 이곳으로 진격해왔단 설정이었으니.
나는 그제야 어째서 이곳에 칼 자이드가 왔는지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바로 저 그로니얀 때문이 아니었을까. 저 녀석을 제어할 또 다른 괴물이 필요할 상황이 발생할 것이기에.
물론, 짐작일 뿐이지만.
나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녀석과 대적한다는 건 미친 짓에 가까웠다.
도깨비들, 그리고 하카의 부하들과 협력을 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저토록 강한 녀석이 쩨쩨하게 혼자 오지 않은 것도 다 그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겠는가.
별 수 없을 듯했다.
‘······도망치는 것 말곤 방법이 없겠네.’
분하지만, 훗날을 도모하는 수밖에.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녀석에게서 도망을 치려면 그 전에 먼저 한 가지 미션을 반드시 완수해야만 했다.
바로 챕터를 종료시키는 것.
도망만 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냥 이대로 사라지면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이때까지 이번 챕터에서 벌어둔 게 모두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가령, 내가 없는 상황에서 챕터가 질질 끌리게 된다면? 심지어, 대적할 상대를 잃은 그로니얀이 결국 칼 자이드에게로 시선을 돌려 두 사람이 맞부딪치기라도 한다면?
내가 이전에 했던 일들이 순식간에 이에 가려져 임팩트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 당연히 챕터가 끝난 후의 보상이 현격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독자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없을 테니까.
챕터의 보상이 줄어들면 그때부턴 정말로 답이 없어진다.
나는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캐릭터의 격을 통해 성장하는 시스템을 지녔다.
그리고 그 격의 성장은 캐릭터 정산 때의 보상을 통해 이뤄진다.
이미 나보다 강한 녀석들이 속속 등장하는 판국에, 보상시기를 놓친다? 심지어 벌어둔 것까지 다 까먹고?
구조상, 갈수록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고로, 도망을 가도 챕터를 끝내놓고 가야만 했다.
그것도 기껏 쌓아놓은 이미지를 해치지 않는 형태로.
골치가 아팠다.
“······돌아가시겠네.”
사실 챕터를 끝내기 위한 방법 자체는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게 하나 있었으니까.
바로 라미레스를 들고 이 클론시티에서 벗어나는 것.
내 짐작이 맞다면, 아마도 이번 ‘챕터의 권역’은 클론시티로 한정되어 있을 것이다.
이유야 별 게 없다. 이 도시 내에서 뭔가를 할 게 아니라면, 굳이 칼 자이드가 등장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나는 녀석이 이 도시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심지어 이젠 그로니얀까지 들어왔으니.
분명, 이 도시 내에서 뭔가 끝을 보려고 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는 건, 이 도시 안에서 작가가 그로니얀을 통해 일으키려는 사건이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일단 그것이 진행되지 않고 넘어가는 한, 이후의 선행플롯은 꼬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될 경우, 결국 작가로선 챕터를 종료시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전개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칠 수도 있을 테니까.
물론 이는 짐작에 불과한 것이고, 도시를 벗어난다고 해서 챕터가 곧장 끝날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실제로 원작만 하더라도, 이곳이 아닌 ‘버킹엄’에 이르러서야 챕터가 끝났으니.
하지만 거기에 하나의 조건을 더한다면 어떨까.
챕터를 끝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챕터에서 진행될 이야기가 모두 끝이 났다는 걸 독자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로니얀을 통해 새로운 서사가 시작되기 전에, 내가 먼저 이 챕터의 가장 중요한 소재는 ‘나’와 ‘라미레스’이며,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목적은 나와 이 라미레스를 쫓는 거라는 걸 명백히 상기시킨 후, 냅다 도시를 빠져나간다면?
어쩌면······ 챕터를 종료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
하여, 지금 이렇듯 어설픈 도망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계획한 방법은 간단했다.
1. 현재 메인시점인 레오의 눈에 걸친 채로 계속해서 도망친다.
2. 그 상태로 클론시티 전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3. 모두가 나를 주목하는 자리에서 선언한다. 이 도시엔 더 이상 볼일이 없다고,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가겠다고. 나를 붙잡고 싶거나, 라미레스를 가지고 싶다면······ 따라오라고.
문제는 두 번째 단계였다.
전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
이 ‘사람들’에는 당연지사 칼 자이드와 그로니얀 또한 포함되어 있다.
즉, 레오에게 쫓겨 도망치는 와중에도 굳이 그들 쪽으로 가, 한바탕 주의를 끌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는 어쩌면 작가가 원하는 그림일지도 모른다. 내 발로 그 괴물들에게 다가가는 것이었으니.
하지만 이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목숨 걸고 뛰는 수밖에.
때마침,
“주걱턱!!!”
어느새 따라온 레오가 멀찍이서 나를 향해 소리쳤다.
녀석은 나를 찾기 위해 여태껏 타냐를 업은 채 뛰고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팔팔한 모습이었다.
“거기 서! 가만 안 둬!”
“······후.”
너라면 서겠니.
그러고 다시금 뛸 준비를 할 때였다.
삐-.
난데없이 홀로그램이 적색으로 물들더니, 경고메시지가 떠올랐다.
[경고!] [개연성을 위반하려는 의도가 포착되었습니다] [선행 플롯에 의해 행위가 금지됩니다] [누적 페널티로 2분간 움직임이 제한됩니다] [작가호감도가 10 하락합니다.] [캐릭터의 격이 소폭 하락합니다] [제재를 무시하시겠습니까?]-남은 기회 : 2번
또?
‘진짜 돌아가시겠구먼.’
나는 재빨리 거부권을 사용했다.
황당하게도, 이 선행플롯의 제재라는 게 한 번 거부했다고 해서 완전히 거부되는 게 아니었다.
현재 레오에게서 도망치는 것이 제재에 걸리는 행위인데, 이게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되다보니, 무슨 시간 단위로 계속해서 제재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제 남은 거부권은 고작해야 두 개에 불과했다.
물론 거부권 외에도 ‘제재 무시 권한’이 2회 남아있긴 했지만, 이건 지금에 와서 쓰기엔 너무 아까웠다. 암만 매몰비용이라는 걸 알아도, 사람이란 게 그렇게 합리적인 선택이 잘 안 된다니까?
어쨌거나,
“느려, 이 자식아!”
나는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충분히 쉬었으니, 슬슬 괴물들의 이목을 끌어야 할 시간이었다.
*
“헉헉······ 휴, 힘드네.”
칼 자이드는 자신 앞에 나타난 주걱턱을 보곤 당혹스러움에 이어 분노를, 그 다음으로는 의아함을 느꼈다.
당혹스러움을 느꼈던 건, 말 그대로 그가 갑작스레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어 지친 듯 숨을 고르는 행동 또한 이해할 수가 없었고.
다음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이유는,
“네 놈······ 진짜로군.”
“여, 오랜만?”
“······내가 찾아갈 생각이었다.”
“누가 가든 뭔 상관이야.”
“······준비는 된 건가? 죽을 준비 말이다.”
“엉? 안 됐는데?”
녀석이 자신을 상대로 장난을 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감히 이 칼 자이드를 상대로 말이다.
비록 녀석을 단 한 번 무너짐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건 단순한 우연에 불과했다. 다시 맞붙는다면 결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에 이어 곧바로 의아함이 들기도 했는데,
“너······ 뭐하는 거지?”
녀석이 정말로 자신과 싸울 생각을 하지 않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대신에 주걱턱은 자신을 보며 씩 웃기만 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소였다.
“너 나랑 싸울 생각이지?”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보물은?”
“그것 역시, 내 것이 되겠지.”
“흐음, 그래?”
이어 잠시간 침묵하던 주걱턱이 이내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러면 너······.”
그리고 그것은 머릿속에 든 의아함을 단번에 살의(殺意)로 바꾸는 것이었다.
“나 잡아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