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97
97화 거래
***
이, 있다!
나는 속으로 만세삼창을 외쳤다.
코미어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그제까지의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한순간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있어서’ 다행이었다.
솔직히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진 저 녀석이 아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설정상 이 녀석이 이곳에 머물기 시작한 건 3개월 전이지만, 그건 설정일 뿐이다. 아직 챕터가 시작되지 않은 이상엔, 그리고 이 구역이 챕터의 권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이상엔, 이곳은 그저 수정과 변경이 가능한 ‘작품 외적 설정집’에 불과한 것이니.
물론 선행플롯 내에서 무대배경으로 확정된 도시이긴 하나, 그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바로 이전 챕터가 그랬듯이.
하여, 혹시나 싶었던 것이다. 혹시나.
나는 얼굴에 검은 때가 잔뜩 묻은, 금발의 청년을 보며 씩 웃었다.
“반가워.”
“······넌 누구지?”
다만, 코미어는 순수한 기쁨에서 우러나온 내 미소를 음흉함과 음험함의 일종으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나를 바깥으로 따로 불러낸 뒤, 코미어가 잔뜩 경계한 기색으로 물었다.
“적은 아니니까, 경계는 풀어도 돼.”
“그렇게 말하는 것보단 일단 정체부터 밝히는 게 순서 같은데.”
“아아, 그렇지. 히로라고 해.”
“······이름을 물은 건 아닌데.”
“그래, 그래. 나는 주걱턱이다.”
“······.”
흐음.
표정을 보니 이것도 아닌 듯했다.
“들어본 적 없어? 주걱턱. 아니면 괴물. 나 요즘 유명한데.”
“전혀.”
정말로 모르는 듯했다.
하긴 약간이라도 들은 바가 있었다면, 저러고 미친놈 보듯 쳐다보고 있진 않았겠지.
코미어는 내가 핀트를 잡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곧바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원하는 건······ 네가 나를 어떻게 알았느냐 하는 거다.”
“아아, 그거?”
예전 같았으면, 저와 같은 물음에 어떻게든 그럴싸한 대답을 꾸며내려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솔직히 이것보다 대답하기 쉬운 질문도 별로 없었다. 이건 그냥 ‘척’만 하면 되니까.
“그걸 왜 묻는 거지?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네가 더 잘 알 텐데.”
곧이어,
“······.”
코미어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
역시나 성공이었다.
이스트랜드에서도 유용하게 써먹었던, 알아서 지레짐작 후, 대충 납득하는 루트.
아마 이스트랜드에서 왕녀와 같은 상황이 코미어의 머릿속에서 진행되지 않았을까.
“······이렇게나 빨리 찾아올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추적이 될 리도 없고.”
“방법이 궁금한 거야?”
그러자 코미어가 슬쩍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보단 이유가 더 궁금하군. 나를 잡는 게 아니라, 별도의 내 협력을 구한다? 너희들이?”
호오.
생각보다 본론으로의 전환이 빨랐다.
‘역시 쿨가이 코미어인가.’
코미어가 레오 일행에 합류한 뒤, 커뮤니티 내 일부 사람들로부터 ‘키리코와 약간 캐릭터가 겹치는 면이 있지 않나?’ 하는 소리가 나온 적이 있었다.
이는 녀석의 시원시원하고 똑 부러지는 점 때문이었는데, 이것이 키리코의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행동하고 보는 습성과 언뜻 닮아 보였기에 나온 말이었다.
다만, 나는 이에 동의하진 않았다. 키리코가 엉뚱한 동시에 과격한 면이 있다면, 코미어는 훨씬 더 냉철하고 실리를 따지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약간의 오해부터 먼저 좀 풀어야겠네. 일단 내가 완전히 그쪽 사람인 건 아냐. 말했잖아, 당장의 적은 아니니 경계는 풀어도 된다고. 나는 그저 너를 추적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것뿐이니까.”
“······의뢰?”
이에 코미어가 짧게 반문했다.
자신의 ‘적’이 굳이 다른 집단에다 암살의뢰를 맡길 만한 녀석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이에 대한 대처방안이야 별 게 없다.
빠르게 화제 넘기기.
“서로 간에 굳이 깊게 파고들 생각은 하지 말자고. 어쨌거나 나는 그들보다는 네가 더 내게 이득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했거든. 그래서 제안 차 들른 거라고. 녀석들에게서 네 정보를 받은 뒤에 솔직히 좀 많이 놀랐거든.”
“······.”
이내 코미어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들어볼 가치가 있는지 어떤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듯 싶었다.
그리고 그 숙고하는 얼굴에서, 나는 ‘가능성’을 읽었다.
저 녀석과 정말로 내가 함께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
‘이거······ 반응이 나쁘지 않은데?’
뭐랄까, 내 생각보다도 녀석의 ‘적’에 대한 저항감이 훨씬 덜했다. 분명 노스랜드 에피소드에 등장할 때의 이 녀석은 거의 복수의 화신 같은 이미지였는데.
그 이유에 대해선 약간이지만 짐작이 갔다. 아직 이 녀석의 캐릭터 배경이 그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짜여 있지 않기 때문에.
일단은 ‘추격자들의 눈을 피해 행적을 감추고 도망 중’ 정도로, 약간은 러프하게 설정이 잡힌 상태가 아닐까.
실제로 코미어의 과거가 드러나기까진 한참이나 남은 시점이니, 이는 타당한 일이라 생각됐다. 외려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잡혀 있다면, 캐릭터의 말과 행동에 훨씬 더 많은 제약이 가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즈음,
“의뢰에 대해 물으면 대답해줄 수 있나?”
코미어가 슬쩍 입을 열었다.
“에이, 그건 좀 힘들지. 아무래도.”
“그럼 하나만 더. 의뢰에 투입된 인원은?”
“투입된 인원?”
“너 혼자인가? 나를 아는 게?”
순간,
‘오!’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를 뻔했다.
몹시도 기다리던 질문이 나왔던 것이다.
내가 따로 노력하지 않고도, 가장 극상의 상황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질문.
코미어 스스로 긴장의 끈을 놓게 하는 마법의 질문.
“맞아, 맹세코 나 혼자야.”
“······그렇군.”
그러곤 녀석이 다시금 생각에 들어갔다.
현 상황은 내게 있어 굉장한 행운이었다. 적에 대한 저항감도 낮고, 스스로 납득하기 위한 질문도 던지고.
실은 가장 우려하고 있던 지점이었던 것이다. 내가 코미어의 과거를 들먹거리려면 일단은 이 녀석의 ‘적’ 행세를 해야 하는데, 만약 반감이 강했다면 대화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을 테니.
이렇게 되면, 이제 나도 어느 정도는 해 볼만해진 것이다.
뭔가 될 것 같다는 긍정적인 기운이 어디선가 무럭무럭 샘솟기 시작했다.
어차피 코미어는 차후 레오 모험단의 일원이 되는 녀석이지만, 당장 이 에피소드에서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선 그저 캐릭터에 대한 흥미만 유발해두고, 나름의 인연을 만들어두고 후일을 기약하는 느낌이랄까.
즉, 잘해야 ‘찜’ 수준이라는 것이다. 또 그렇다고 양측이 무슨 ‘미래를 함께하자’니, ‘다시 만날 땐 우린 동료야’ 하는 식으로 주고받는 것도 없고.
레오 일행 자체는 문제가 될 게 없었다.
다만, 작가가 코미어와 붙어먹으려는 나를 어떻게 볼까가 염려될 뿐이었지.
바로 그때였다.
“제안이 뭐지?”
코미어가 미끼를 물었다.
됐나?
나는 흥분을 감춘 채, 나직이 대답했다.
“말했잖아, 네가 내게 이능병기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그건 제안이 아냐. 요구사항에 불과한 거지.”
“아하, 내가 네게 뭘 줄 수 있냐고?”
코미어는 대답하는 대신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반응을 좀 보려 하는 것 같았다.
물론, 현재 나는 가진 게 전혀 없었다.
산더미만한 황금을 내민다 하더라도 받을지 어떨지 모르는데, 그조차도 없었다.
하지만 주고 싶은 건 있었다.
미래, 신뢰, 그리고 내 몸(?).
한 마디로, ‘내가 네 동료가 되어 너의 적과 맞서 싸우겠다는 약속.’
사실 이게 내가 가장 바라는 궁극적인 그림이기도 했다. 단순한 일회성 협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모험의 탑 끝까지 함께하는 동료가 되는 것.
문제는 이걸 코미어가 받아들일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연하지 않나, 나를 어떻게 믿고.
또한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이는 코미어에게 있어 그리 대단한 유인책이 되지 못했다.
이유야 간단하다. 지금 내가 이 녀석이 보고 혹할 만큼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론, 현재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의 이 녀석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코미어가 본인의 ‘전투장비’를 풀로 착용한 다음이라면······ 칼 자이드조차 쉽사리 승부를 장담하지 못하는 괴물이 된다.
그래서 결국,
“이거.”
내가 줄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나는 품속에서 자그마한 천에 쌓인 물건 하나를 꺼냈다.
현재 지브란테 근처에 있는 수많은 인원들이 쫓고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이게 좋은 거거든.”
코미어는 물건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내 눈을 쳐다봤다.
“그게 뭐지?”
“거울이야.”
“거울?”
“라미레스라고, 영혼의 거울이라 불리는 고대 유물이지. 아마 딱 보면 가치를 짐작할 수 있을 거야. 이것에도 특정한 능력이 주입되어 있거든.”
“특정한 능력이라······.”
그제야 코미어는 관심이 가는 듯 한 차례 라미레스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올렸다.
“어떤 능력이지?”
“비치는 대상의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줘.”
“숨기고 싶어 하는 것?”
“대개의 경우······ 본인의 약점이겠지? 아마도.”
나는 그러곤 코미어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분명 관심을 보이는 듯한 기색이었다.
물론,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나는 녀석이 라미레스에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뭐, 원작에서 그랬으니까.
웬 허름한 창고에 숨어 망치만 뚜들기던 녀석이 어쩌다 흘러들어간 소문 하나에, 온갖 전투 장비를 챙겨 입곤 전투에 난입할 정도면······ 지대한 관심을 보일 거라 예상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한 번 봐도 되나?”
“마음대로.”
나는 곧바로 녀석에게 라미레스를 건네줬다.
이어,
“······.”
거울을 본 녀석의 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이 무엇을 봤는지는 묻지 않았다.
다만, 녀석이 진정이 될 때까지 그저 기다려줬을 뿐이다.
이윽고,
“필요한 게 뭐라고 그랬지?”
녀석이 내게 천천히 물었다.
됐다.
나는 씩 웃으며 녀석의 손에서 라미레스를 홱 낚아챘다.
잔뜩 힘을 주고 있었는지, 이를 놓친 녀석이 손이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별 거 아냐. 일단 만들어둔 무기 있으면 싹 다 가져와. 부비 트랩도 설치해야 되니까 폭발물도 좀 있어야 할 것 같고. 그리고 혹시 로봇들 좀 있나? 만들어둔 거.”
“······뭐? 아니, 잠깐······.”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전투장비. 지금 내가 상대해야 하는 녀석들이 많기도 많은데다, 좀 세거든. 아까 말했지? 이능장갑기병.”
“하······.”
그러자 녀석이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왜? 뭐? 너 이거 가지고 싶잖아. 이미 혹했잖아.”
나는 녀석의 눈앞에서 라미레스를 흔들어 보였다.
“······.”
어차피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녀석을 포함한 다수의 강자들이 라미레스를 탐내는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이걸 통해 다른 이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의 적을 무너뜨릴 핵심열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즉, 적이 있는 녀석들은 탐낼 수밖에 없다. 특히나 그 적이 강대하면 강대할수록.
“힘 좀 써보라고. 정말 줄 테니까.”
잠시 후,
“알았다.”
코미어는 그렇게 말하곤 등을 돌렸다.
“기한은?”
“기한?”
“네가 말한 장비들을 제공해야 하는 기한.”
나는 잠깐 고민한 뒤, 대답했다.
“일주일.”
“······촉박하군.”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이력을 들으니 화려하던데.”
“······.”
코미어는 대답 없이 등을 돌렸다.
아마 머릿속으론 이미 작업순서를 정하고 있을 것이다.
빠릿빠릿한 녀석이니까.
그때였다.
“근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걸어가던 코미어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뒤돌아 나를 봤다.
“뭐지?”
“그, 이능······ 장갑 뭐? 그건 뭐냐?”
“엉?”
“이능기병? 그게 뭐냐고.”
“······뭐?”
*
나흘 후.
어느 늦은 밤.
지브란테 공장지대의 왼쪽 귀퉁이 부근.
줄지어선 허름한 창고들 사이, 웬 자그마한 폐건물 하나가 홀로 우뚝 솟아 있었다.
우뚝 솟았다고는 하나, 기껏해야 3층 높이에 불과한 낮은 건물이었다.
딱 60~70년대 괴담에나 나올 법한 정신병동 느낌이 나는 외관의 건물 앞에서, 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여기가 맞나?”
물론, 내가 담력시험을 위해 이곳에 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코미어와 함께 있는 쟝이라는 밀수업자에게 듣기로, 이곳 지하가 바로 지브란테 세 명의 ‘밀수총책’ 중 하나가 머무르는 공간이었다.
밀수의 총책임자라곤 하나, 실제로 이 자들이 업자들 각각의 밀수행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그저 업자들의 관리 및 보호만을 담당한다고 하는데, 그 보호업무에는 노스랜드 쪽 거래상대로부터의 위협에서부터, 업자들끼리의 다툼, 고객으로부터의 클레임, 심지어는 웨스트정부로부터의 추적까지 포함된다고 했다.
무려 한 대륙의 정부조차도 쉽사리 건드리지 못하는 게 바로 이 거대 밀수시장이라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억제력은 고작해야 단 한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밀수왕 카포네.
라미레스 쟁탈전의 주요 강자 5인 중 하나.
이곳 지브란테의 실질적인 지배자.
즉, 이곳의 밀수총책들은 카포네의 최측근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세 명의 측근 중 하나를 습격하려 하는 중이었고.
“옛날 생각나네.”
나는 폐건물을 한 차례 둘러봤다.
그러고 보면 내겐 이와 같이 검은 조직들을 습격했던 전적이 꽤나 있었다.
처음 버진시티에서 마피아들에게 쳐들어갔을 때부터 시작해, 코코아를 추적하려 웬 카페테리아로 잠입했던 일, 데스톰브의 마피아 우두머리의 거처로 곧장 진격해 들어갔던 일, 코코아의 표식을 없애러 피르미노의 지하도시로 침투했던 일까지.
그리고 이제껏 나와 엮였던 모든 조직들의 결과는 하나 같이 동일했다.
괴멸.
아마 이곳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어, 나는 호흡을 정돈한 채 폐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조용했다. 근
거지가 지하라고는 들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너무나도 조용했다. 인기척 하나, 소음 하나 없었다.
“내려가는 통로가 어디려나······.”
나는 눈을 부릅뜬 채 주위를 살폈다.
길눈을 통해 아래로 향하는 길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5분이 지나도록 뚜렷이 보이는 뭔가가 없었다.
이는 단순히 내 길눈의 숙련도가 형편없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짐작하건대, 허가되지 않은 침입자를 방지할 목적으로 특정한 기능이 ‘설계’된 것이 아니었을까.
“흐음.”
그로부터 3분을 더 둘러본 뒤,
“포기.”
나는 길 찾기를 포기했다.
능력의 한계를 체감했다기보다는,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괜히 눈알만 아프지.
그 대신, 나는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어디 보자······.”
나는 코미어가 일러준 대로 오른팔을 슬쩍 들어올렸다.
시동어는 ‘레이저 포’였다.
“레이저 포.”
이어,
위잉-.
슥- 착.
오른손에 찬 장갑이 한 차례 빛을 뿜어내더니, 길게 늘어나 내 어깨 후면까지를 다 뒤덮었다. 가죽 재질이던 장갑은 어느새 강철로 변해 있었으며, 손바닥 면엔 에너지 사출구가 생겨났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흐흐흐······.”
어째 바라만 봐도 뿌듯함이 올라오는 비주얼이랄까.
사실 내가 본래 녀석에게 주문한 전투장비는 ‘이능장갑기병’이었다.
이는 두 가지 특수능력이 탑재된 탑승형 로봇병기를 말하는 것으로, 코미어 설계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모르겠는데? 그런 건 처음 들어봐.”
이 녀석이 그걸 모른다는 것이었다.
내가 착각을 했나?
‘아닌데······.’
물론 이 에피소드에서 그 병기가 등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 코미어의 입에서 저 단어가 나왔던 건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엔 ‘진짜’를 가져올 테니 제대로 한 번 붙어 보자고.
그러고 언급했던 게 바로 ‘이능장갑병기’였던 것이다. 탈 수 있는 로봇이 있다고.
물론, 실제로 이것이 등장했던 건 한참 뒤의 노스랜드 에피소드 때였지만.
어쨌거나 존재 자체는 있는 줄 알았던 것이다. 미리 말하면 만들 수도 있을 줄 알았고.
‘흠······ 뭐, 어때.’
그것 대신, 일단 쟝의 가게에서 온갖 걸 긁어모아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낸 게 바로 이 ‘팔’이었다.
이것만으로 어디야.
이 팔에만 ‘충격파’와 ‘고열’, 두 가지 특수능력이 들어가 있었다.
‘어느 정도나 되려나.’
나는 에너지 사출구를 건물을 향해 조준한 뒤, 나직이 중얼거렸다.
“발사.”
그와 동시에, 오른 팔에 강력한 진동이 느껴졌다.
이어,
펑-.
“······와우.”
레이저 포를 맞은 건물이 그대로 사라졌다.
흔적도 없었다.
나는 손과 정면을 번갈아 바라봤다.
“와우······.”
파괴력이 생각 이상이었다.
물론 소모품이긴 했다. 그래도 한 세 번은 쓸 수 있다고 했으니······.
그즈음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어,
“저기인가?”
나는 건물이 있던 자리 한 쪽에 뻥 뚫려 있는 공간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 지하계단이 하나 있었다.
“좋아,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