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1)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1화(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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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이라 불리는 마법과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종종 나타나기 시작한 세상.
이능력을 이용해 삶을 편리하게 살아가거나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힘으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이들도 생겨났다.
위와 같은 사악한 이능력자들을 사람들은 ‘빌런’이라고 불렀고,
‘빌런’으로부터 도시와 시민을 지키는 영웅을 ‘히어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히어로 연합’으로 대표되는 히어로들.
그리고 수많은 빌런과 빌런 조직들이 대립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세상.
‘다크 나이츠’는 그 수많은 빌런 조직 중 꽤 악명이 자자한 집단이었다.
***
다크 나이츠 전투부대 소속 전투원 505호.
빌런이라고 하기엔 투박하다 못해 멋 하나 느껴지지 않는 그런 이름이다.
세상을 뒤흔드는 잔악무도한 대악당이 되어 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빌런 조직인 이곳에 당차게 입단해 저 이름을 달았던 것이 벌써 몇 년째.
마법과도 같은 능력을 가진 이능력자들이 나타나는 세상에서,
정말 사소하다 못해 미미한 이능력 하나 가지지 못한 주제에 대악당이라니.
남들보다 조금 더 좋은 체력과 힘을 가진 게 전부인데,
이런 걸로는 C급 히어로 한 명 상대하기도 벅차다고.
그저 전투에서 목숨이라도 부지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지가 오래다.
‘아으… 빨리 휴일에 집에 가서 맥주나 한 캔 따고 싶다.’
그렇다고 이 빌런 조직에서 마음대로 나가고 싶다 해서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년도 못 가서 죽어 버리거나 금방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한 게 하급 전투원인데,
튼튼한 몸과 질긴 맷집만으로 다치지도 않고 버틴 지가 몇 년째.
조직에서 나 같이 내구성 높은 고기 방패를 가만히 나가게 놔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타 하급 조직원들에 비해 많은 돈을 받고 좀 더 좋은 취급을 받는 건 맞지만…
애초에 이런 밑바닥 조직원들의 우두머리가 되려고 온 게 아니었다고!
‘에휴… 맨날 이렇게 혼자 투덜거리면 뭐 하냐.’
갑자기 이 조직이 폭삭 망해 버려서 자유의 몸이 되거나.
혹은 갑자기 이능력의 선택을 받아 진짜 내가 바라던 악당이 되거나.
둘 중 하나라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지길 바라며,
한숨을 깊게 내쉬고 묵묵히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 위이이이이이이이잉!!!
갑자기 느닷없이 대기실 안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뭐야? 아으….”
새벽 내내 잠도 못 자고 대기하던 인원들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보통 사이렌을 울려댄다고 하면 출격 호출이 났다거나 혹은 비상 상황이라는 건데.
“큰일 났다!!! 히어로 녀석들의 습격이다!!”
“뭐라고? 히어로?”
한 전투원은 이미 부상을 입은 듯 팔을 붙잡은 채로 다급하게 지휘관실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다른 전투원들 또한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인지한 듯 전투 준비 태세에 돌입했고,
나 또한 전투복의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지휘관의 명령을 기다렸다.
“전군 전투 준비에 돌입하라!”
방금 뛰어들어간 전투원에게 습격 사실을 보고 받았는지 즉시 대기실로 뛰어들어와서는,
잔뜩 긴장한 듯한 전투원들을 향해 전투 준비 명령을 내렸다.
“A급 혹은 B급 히어로로 추정되는 녀석이다. 바짝 긴장하도록.”
여태껏 히어로들이 조직의 아지트를 습격한 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전부 B급 혹은 C급 히어로들의 습격이었다.
C급 히어로 정도는 나 같은 전투원 3명 정도면 상대가 가능하고,
B급 히어로는 두 자릿수의 인원을 투자해야 제압이 가능하다.
하지만 A급 히어로는 지휘관 정도 되는 인물도 상대하기가 버거울 정도.
A급 히어로의 등장은 조직 입장에선 충분히 비상 상황이었다.
지금껏 다크 나이츠가 A급 히어로와의 전투 경험이 결코 없는 것도 아니었고,
지휘관 내지 사령관 급 인물이 나선다면 승리할 확률이 꽤 높다.
다만 그것도 습격을 미리 알고 상대를 대비했을 때의 이야기지,
지금 같은 기습 상황에서는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A급 히어로라니! 이러다가 다 죽는 거 아닙니까?”
“지, 지금이라도 아지트 내부를 폐쇄해야 합니다!”
A급 히어로라는 말에 전투원들은 두려운 목소리로 지휘관에 호소했다.
‘아. 진짜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닌가?’
이곳에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지낸 나도 두려움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였다.
“조직을 버리고 도망치겠다는 건가! 다크 나이츠의 힘이 고작 그 정도라는 말인가!”
지휘관은 겁에 질려 사기가 떨어진 전투원들을 크게 소리치며 다그쳤다.
무척이나 흥분한 지휘관의 얼굴에도 땀이 흐르는 걸 보면,
저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본인도 적지 않게 당황하고 긴장한 거겠지.
지휘관은 참다 못해 몇몇 전투원들의 팔을 붙잡고 강제로 뛰어 나갔고,
결국 나를 비롯한 다른 인원들도 마지못해 그를 따라나섰다.
“크아아아아아악!!!”
“이야아아아아압!!”
복도로 나왔을 때에는 이미 쓰러진 전투원들과 함께 쑥대밭이 된 상황.
“전군! 돌격하라아아아아아!!!!!!!!!”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
지휘관은 주황빛 머리카락을 가진 A급 히어로를 향해 돌격하라 명령했고,
강제로 따라나선 전투원들 수십 명은 어정쩡한 자세로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 쿠과과과과과과과과광!!!
“크아아아아아악!!!”
“하하! 이 히어로 ‘이그니션’ 님을 쓰러뜨리고 싶다면 더 강한 녀석으로 데려오라고!”
손에서 거대한 불길을 뿜어내며 순식간에 수십 명의 전투원들을 바싹 구워 버리더니,
자신을 히어로 ‘이그니션’라고 밝히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내비쳤다.
그럼 그렇지. 상대는 A급 히어로라고. 우리 같은 병신 허접 전투원들이 뭘 할 수 있는데.
“안 되겠군. 전투원 505호!”
“예… 옙!”
그렇게 의지를 불태우던 지휘관도 당황한 듯한 기색을 내비치더니 나를 불러냈다.
“기습 상황이라 전황이 어려운 데도 어째서인지 사령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무슨 일인지 505호 네가 직접 사령실로 가 확인 후 지원을 요청해라.”
나 같은 말단이 높으신 분들이 어디 계신지 어떻게 압니까!
…라고 하면 안 되겠죠.
“사령실이 어디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8층의 가장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이걸 가져가서 도움을 요청해라.”
지휘관은 자기 명찰을 내 손에 들려주고는 전투원들을 학살 중인 히어로를 향해 뛰어 들었다.
***
“헉… 헉. 왜 이렇게 높이 쳐 계신거냐?”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사령실이 위치한 8층을 향해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몇 년이나 이 아지트에서 생활했지만 8층까지 올라와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것도 사령실로 갈 무거운 짐이나 가구들을 옮기라고 해서 가 본 게 전부다.
“뭐야.”
평소라면 몇몇 조직원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며 사령실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마치 이사라도 간 것처럼 아무도 없이 문만 열려 있었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사령관 님! 총수 님!”
지키는 사람 한 명 없이 방치된 유리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그 안에 있는 건 야반도주라도 한 듯 난장판이 되어 버린 사령실의 모습뿐이었다.
“아니 벌써 도망을 갔다고? 조직의 대가리라는 놈들이? 씨발?”
화려한 소품과 다크 나이츠의 깃발은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난 상태에,
총수 자신의 커다란 초상화는 챙길 여유가 없었는지 포장이 되다만 상태.
히어로의 습격을 먼저 알아차린 건지 부하들을 내버려둔 채로 도망친 모양이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다크 나이츠의 총수 카이저는 여태껏 부하들 앞에 제대로 나타나지도 않고,
늘 사령관이나 어딘가에 감춰진 채로 목소리만 비출 뿐이었다.
어찌 보면 이런 상황에 자기들끼리만 도망친다는 건 저들에겐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포함한 부하들이 곧 느끼게 될 배신감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 아니지만.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제 어떻게 여기서 살아 도망치느냐다.
“진짜 죄다 비싼 물건들이네. 이거라도 몇 개 들고 가서 도망가야 하나?”
도주 경로를 고민하며 바닥에 엎어져 있는 고가의 물건들을 잠시 보고 있던 중,
총수의 것으로 보이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어떤 귀금속 하나가 눈에 띄었다.
투명한 유리 케이스 안에 담긴 채 꽤 영롱한 빛을 뽐내고 있는 보랏빛 보석.
아름답게 세공된 데다 크기도 꽤 큰 탓에 가격대가 엄청날 듯 보였다.
“부하들한테 맨날 일 시켜서 이런 거나 사는 거였어? 참나….”
딱 봐도 수억 원은 가볍게 넘길 것만 같은 이 보석 하나라도 가져간다.
다른 것들은 어차피 너무 크고 무거워서 들고 도망칠 수도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 이거라도 가져가서 몇 년 고생한 보답 좀 받자.’
비싸게 팔아 먹으려는 속셈으로 보석을 조심스레 주머니에 넣고,
빨리 히어로가 오기 전에 조용히 도망칠 방법이 없는지 계속 생각한다.
도대체 사령관과 총수가 어떻게 도망친 건지는 몰라도,
바로 지상으로 이어지는 비밀 계단이나 통로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
“어? 저건가?”
그냥 내려가야 하나 싶었던 순간 작은 구멍 하나가 보였다.
벽과 똑같이 생긴 뚜껑이 열린 채 미끄럼틀처럼 경사면으로 아래와 이어진 듯한 탈출구.
아마 이곳으로 도망친 모양이었다.
신나서 구멍 안으로 쏙 빠져나가려는 그 순간.
“그렇게 순순히 도망칠 수는 없을 텐데?”
“아.”
아까 복도에서 들었던 저 당당하고 활기찬 듯한 여자 목소리.
이 목소리는 설마…
“거기 딱 가만히 멈춰 서 계시지? 안 그러면 그냥 구워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