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101)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101화(1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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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볕이 지나가는 이마다 이마에서 땀이 흐르게 했던 여름.
유난히도 무덥게만 느껴졌던 그 계절이 시간을 타고 지나가고,
서늘한 바람이 불고 나무들이 울긋불긋하게 물드는 계절이 도래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요즘 가을은 가을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래도 에어컨을 필수로 틀어야 하는 날씨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때문에 가을은 여름보다도 외부 활동을 하기 좋다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로 레저 활동이나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여름 못지않게 많은 계절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시원한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하늘 아래,
S시 시내에 위치한 한 야외 공연장에서는 모 인기 그룹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자! 모두 다 같이!”
최근 국내 가요계에서는 보기 드문 밴드 스타일의 아이돌 그룹.
화려한 악기 연주와 가창력, 그리고 멤버들의 매력적인 외모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서늘한 가을 바람은 어디가고 다시 여름이 찾아온 것만 같은뜨거운 응원의 열기.
그 열기가 열정적인 공연에 더해져 환상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 왜애애애애애애앵ㅡ!!!
갑작스럽게 하모니에 들이닥친 불협화음.
귀가 찢어질 정도로 거칠고 날카로운 전자 기타 소리가 스피커를 뒤덮는다.
“무슨 소리야? 갑자기 스피커에서 이상한 소리가?”
갑자기 들려오는 굉음에 공연을 즐기던 사람들은 두 귀를 막았고,
공연하고 있던 밴드의 멤버들도 당황한 듯 연주를 멈추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 끄그그그그그그그극ㅡ!!!!!
– 왜애애애애애애앵ㅡ!!!!
연주를 멈추었음에도 스피커에서는 계속해서 고통스러울 정도의 굉음이 터져 나왔다.
– 띠링ㅡ!!! 띠링ㅡ!!!! 띠리리리링ㅡ!!!!!
– 찌지지지지지지직!!! 지지지지지직ㅡ!!!!
심지어 공연장의 스피커뿐만 아니라,
공연장 안에 있던 사람들의 스마트폰에서도 아주 큰 소리로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왜… 왜 이러는 거야?! 뭐야!!”
“이건… 비, 빌런인가?”
귀를 막아도 그 틈새를 뚫고 고막을 찢을 기세의 굉음.
“크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귀가!!! 으아아아악!!!”
정말 그 굉음으로 인해 고막이 터져 피를 흘리는 피해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악!!! 난 싫어!!!”
“꺄아아아아아아!!!”
고막이 터진 피해자들을 목격하자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시작했고,
공연장 안은 열정 가득한 하모니 대신 비명과 굉음만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관람객들은 물밀듯이 공연장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고,
귀가 터진 채 쓰러진 이들과 단 한 사람만이 공연장 안에 남았다.
“후우… 아주 듣기 싫었는데 말이지.
진짜 락이 뭔지… 이 무지몽매한 것들한테도 알려줘야겠어.”
공연을 관람하고 있던 피해자들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기분 좋은 듯 웃음 짓는 한 남자.
남자는 텅 비어버린 무대 위로 올라가 바닥에 던져진 기타를 잡아 들었다.
“크으으으… 으흐흐흐흐흐…!!!”
일렉 기타를 손에 든 남자는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며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 지이이이이잉ㅡ 지지지지징ㅡ!!!
이 무대의 주인이었던 밴드 그룹의 산뜻한 감성과는 완전히 상반된 멜로디.
무언가를 찢고 부수려는 듯한 거친 멜로디임에도 불구하고,
불쾌하기는 커녕 불타는 예술의 영혼이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연주를 선보인다.
– 슈우우우우우욱ㅡ
순간 남자가 들고 있던 일렉 기타에 날아드는 크고 묵직한 무언가.
– 콰지지지지직ㅡ!!
“뭐야…!!! 기타가 망가졌잖아…!!!!!!!”
공연장 무대를 구성하고 있던 나무토막이 일렉 기타에 세차게 부딪혀,
기타의 몸체와 줄을 박살 내 연주를 멈추었다.
망가져 버린 일렉 기타를 들고 잔뜩 화가 난 듯 발을 쿵쿵 구르는 남자 앞,
새까만 슈트를 입은 한 히어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쾌한 연주는 거기까지만 하는 게 좋겠는데? 빌런 ‘배드 스피릿’.”
공연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던 남자의 정체는 바로 빌런 ‘배드 스피릿’.
그는 10대 때부터 천재적인 기타 연주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받았지만,
상업과 예술성, 그리고 장르의 벽에 부딪히며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다.
그가 밴드로 데뷔했던 시기는 한창 아이돌 그룹이 범람하며 가요계를 지배했던 시기였고,
긴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거친 창법과 연주를 선보였던 그가 설 자리는 없던 것이다.
결국 밴드가 와해되면서 그는 절망에 빠졌고,
그 시기 얻게 된 자신의 이능력을 이용하여 잘 나가는 아이돌이나 밴드의 공연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뭐야… 네 년도 고막이 터지고 싶은 거냐? 아앙?”
배드 스피릿은 자신의 독주를 방해한 히어로에게 부서진 기타를 던지더니,
분노에 받쳐 손과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러나 부서진 기타는 히어로에게 부딪히지 않고 그대로 멈춰 공중에 뜨더니,
곧 파삭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거 던져도 소용없어. 안 맞으니까.”
– 슈우우우우우ㅡ 콰지지직ㅡ!!!
“끄아아아아아악!!!”
오히려 그녀의 앞에 떨어졌던 일렉 기타의 파편들이 부웅 떠오르더니,
배드 스피릿의 몸에 날아가 다리와 어깨에 박혔다.
“끄으으으으… 네 년… 히어로냐…?”
“그래! 언제 물어보는지 기다리고 있었어.
난 히어로 ‘사이코키네틱’. 너 같은 놈들로부터 시민을 지키는 히어로야!”
빌런이 정체를 물어보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는지,
B급 히어로 ‘사이코키네틱’은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자랑스럽게 자신을 소개했다.
“끄으으… 다리랑 팔이… 안 움직이잖아…!!”
히어로 ‘사이코키네틱’의 이능력은 그 히어로 네임에서 알 수 있듯이,
염동력을 이용해 크고 작은 물건을 마음대로 조종해 움직이는 것.
염동력에 의해 잘게 부서진 조각들을 배드 스피릿에게 발사하여 타격을 입힌 것이다.
“이미 시내에서만 두 곳의 공연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신고가 들어왔어.
네가 지나가는 곳마다 온갖 음향 기기에서 굉음이 들렸다고 하던데… 맞지?”
빌런 ‘배드 스피릿’의 이능력은 음향 장치를 지닌 기기에서 굉음을 뿜어내고,
그 굉음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혼란하게 만드는 ‘불협화음’.
평범한 이들은 그의 이능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굉음에 공포심을 느끼게 되며,
현재 공연장에서도 그런 것처럼 귀가 터지는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 근데 뭐 어쩔 건데. 어쩔 건데…!!!”
– 왜애애애애애애애앵ㅡ!!!!!!
– 끄기기기기그그그기기기기긱ㅡ!!!!
바닥에 떨어져 있는 관람객들의 스마트폰 몇 대,
그리고 공연장의 커다란 스피커에서 굉음이 다시 울리기 시작한다.
“크읏…!”
굉음은 어찌나 거센지 히어로 사이코키네틱이 몸을 가누기 어려워할 정도였다.
“어차피… 굉음이 제일 크게 들리는 건 이거니까…!”
사이코키네틱은 음파의 영향을 최대한 받지 않도록 공연장의 기둥 뒤로 몸을 숨기더니,
손을 뻗어 공연장 안에 떨어져 있던 물건들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 슈우우욱ㅡ 콰지지지지지직ㅡ!!!
팬들이 떨어뜨리고 간 응원용 봉 여러 개가 커다란 스피커를 꿰뚫어 부수자,
가장 크게 들리던 굉음이 멎어든다.
“스마트폰에서 들리는 굉음쯤이야… 괜찮겠지…!”
– 슈우우우우욱ㅡ
사이코키네틱은 스피커의 소리가 멎자,
이번엔 부서진 스피커의 파편을 움직여 배드 스피릿을 향해 발사한다.
– 파바바바박ㅡ!!!
“크하악…!!!”
스피커의 몸체가 배드 스피릿의 후두부를 거세게 가격하자,
큰 충격을 입은 배드 스피릿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러자 스마트폰에서 들리던 굉음도 함께 잦아들고,
뒤늦게 달려온 연합의 수행원들이 다친 시민들을 부축하기 시작했다.
“히어로 ‘사이코키네틱’, 임무 완료했습니다. 이만 마무리할게요.”
“으어어어… 기타… 기타를….”
정신을 잃은 배드 스피릿의 팔과 다리에 묶이는 특수한 포박줄.
사이코키네틱은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단말기에 임무 완료 무전을 전송한다.
– 슈우우우우우우ㅡ
“히어로 님!!! 조심하십쇼!! 뒤에!!”
“으아아앗?!”
– 콰드드드득ㅡ!!!
순간 사이코키네틱의 등 뒤에서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더니,
그대로 반대편의 공연장 무대 벽에 부딪혀 꽂힌다.
“근처에 한패인 빌런이 있었던 건가…?!”
그러나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빌런처럼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전부 연합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수행원들뿐이었다.
“누구냐! 당장 나와! 당당하게 맞서라!”
– 슈우우우욱ㅡ
– 콰드드드득ㅡ!!! 콰지지지지직ㅡ!!!!
“크아아아아악!!! 히어로 님!!! 기습입니다!!!”
“으아아아악!!!”
그러나 공격한 것이 누구인지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그 잠시 동안,
시민들을 피난시키고 상황을 정리하던 수행원들에게 공격이 날아들었다.
수많은 얼음 송곳들이 수행원들의 배와 다리를 꿰뚫고,
새어 나온 진득한 피가 공연장 내의 의자와 바닥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위험해… 어서 지원 요청을…?!”
– 콰드드드드득ㅡ!!!!
빠르게 무대 뒤로 피신하여 단말기를 통해 지원을 요청하려던 순간,
사이코키네틱의 등 뒤에서 솟은 커다란 얼음 기둥이 그녀의 등을 꿰뚫었다.
“커허억… 어서… 지… 원…….”
– 우드드득ㅡ 파사사삭ㅡ!
얼음 송곳에 꿰뚫린 채 선혈을 자아내며 그만 단말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누군가가 그 단말기를 그대로 지르밟아 부순다.
“염동력… 아까운 능력이긴 하지만 비슷한 이능력을 가진 녀석들은 많으니까.
무엇보다… 얼굴이 못생겨서 주인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지도 않고….”
“당신… 은… 누구…….”
단말기를 밟아 부수며 무언가 중얼거리는 한 여성.
정신을 겨우 붙잡고 있는 사이코키네틱이 떨리는 목소리로 여성의 정체를 물었다.
“아직 정신을 잃지는 않은 모양이네? B급치고는… 꽤 괜찮을지도.”
그러나 여성은 정체를 말하지 않고 그저 키득키득 웃기만 하더니,
그대로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현장을 떠났다.
“SLAVE 04… 주인님의 명령을 완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