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11)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11화(11/117)
***
S시 시내에 위치한 한 건물 지하 1층.
“으아! 여기 차리느라 진짜 개고생했네.”
빌런 조직을 직접 차려보겠다고 선언한 뒤 며칠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전투원으로 일하는 동안 모았던 돈과 자취방 전세금까지 전부 합쳐서 계산해도,
조직원은 고사하고 아지트 건물을 구하는 것도 막막하게 느껴졌다.
다크 나이츠처럼 수많은 조직원을 거느리며 큰 건물 하나를 아지트로 삼았다면 좋았겠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어차피 내 목적은 히어로를 타락시켜서 내 휘하의 빌런으로 만드는 거고,
다른 조직처럼 파괴나 약탈 활동을 일삼을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건 내 개인 생활을 위한 개인 공간과 히어로 조교 공간 정도로 확 줄어든다.
조직 창설을 결심한 그날 온종일 공인중개사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작년까지 너튜브 스튜디오로 쓰였다는 이 장소를 찾아냈다.
그리고 간단한 인테리어와 시설 구비 후 이사까지 단 3일.
말이 사무실이지 사실상 자취방의 연장선이었기 때문에 딱히 준비할 절차도 없었다.
마침 자취방 건물과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았던 덕분에,
짐을 옮기는 것도 금방이었다.
벽과 바닥은 싹 검은색으로 칠하고, 커다란 소파와 긴 바 테이블를 놓았다.
그리고 은은한 조명과 장식용 술병, 위스키 글라스, 그리고 크고 푹신한 호텔 침대도 하나 장만했다.
“그나저나 여기 이름을 뭘로 하지.”
조직을 차리겠다고 해 놓고 정작 이름을 정하지 않았다.
“다크 뭐시기? 어둠의 뭐시기? 너무 촌스러운데.”
자고로 악의 조직이라는 건 컴팩트하면서도 간지가 나야 하는 법.
그러면서도 내가 여태껏 들어 본 조직들의 이름과는 겹치지 않아야 했다.
“쉐도우? 클리포트? 아… 개 어렵네?”
역시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이름 짓기라고 했다.
어느 한 가수 그룹은 이름을 짓느라 일주일 넘게 싸운 적도 있다고 들었으니.
“으음… 에덴? 유토피아?”
계속 ‘에덴’과 ‘유토피아’라는 단어가 입에서 맴돌았다.
양쪽 다 낙원을 뜻하는 단어이지만 유래가 달라서 어감에도 차이가 느껴진다.
“그래. 이제부터 우리 조직의 이름은 유토피아다.”
좀 더 입에 착착 감기는 단어라고 생각되는 ‘유토피아’를 선택했다.
사실 앞에 다크나 보이드 같은 중2병스러운 걸 붙이고 싶었지만,
‘다크 유토피아’나 ‘블랙 유토피아’하면 너무 길고 부르기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정해야 할 것.
그럼 내 빌런 네임은 뭐로 정하지?
언제까지 전투원 505호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조직을 세운 수장이 이런 이름으로 다니기엔 멋이 안 난다.
유토피아의 총수! 전투원 505호!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으으음….”
딱히 생각 나는 이름이 없다.
빌런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제일 중요한 걸 정해 놓지 않았다니.
이럴 때에는 히어로와 빌런을 막론하고 사용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본인의 이능력을 뜻하는 영어 단어를 변형하는 방법이다.
명확하게 하나로 정의하기엔 좀 무리가 있기는 하지만,
종합해서 생각하면 내 이능력은 무언가를 지배하고 조종하는 능력.
저 두 단어를 포함한 비슷한 것들을 곧바로 포털 사이트 영어 사전에 검색한다.
“컨트롤… 마스터마인드… 도미네이트…”
게임이나 만화에서 언뜻 들어 봤던 다양한 영어 단어들의 향연에 조금은 머리가 아프다.
‘학교 다닐 때도 제일 못 하는 과목이 영어였는데….’
미간을 찌푸리며 여러 단어를 계속 입으로 되풀이했다.
“…도미네이터.”
다크 나이츠의 총수의 빌런 네임도 독일어권에서 황제를 뜻하는 ‘카이저’였으니,
조직을 차린 이참에 좀 높으신 분 느낌 나는 이름을 골랐다.
마침 능력이 지배와 조종이기도 하니 딱 맞는 이름일 듯 싶다.
“좋아. 오늘부터 난… <유토피아>의 총수 도미네이터 님이시다! 하하하!
…하.”
갑자기 밀려오는 현타에 숙연하게 고개를 내렸다.
그래.
나중에 조직원도 많이 모이고… 좀 더 강해지면 이런 짓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
“끄으으으! 편하다 편해. 확실히 돈이 좋다니까. 이런 침대도 사고 말이지.”
며칠 전 큰맘 먹고 예약했던 호텔의 침대와 최대한 비슷한 녀석을 구매했다.
아마 아지트를 준비할 때 보증금을 제외하고 가장 비싼 게 이 침대였을 거다.
– 띠링!
[ 윤도화 : 시윤 님께 드릴 사진입니다♥ ]새로 산 침대를 만끽하고 있던 중에 울린 알림 소리에 놀라 휴대전화를 보니,
몸에 딱 달라붙는 래쉬가드를 입은 채로 찍은 윤도화의 사진이 도착해 있었다.
[ 시윤 : 좋네요. 섹시하고. ] [ 윤도화 : 시윤 님… 그,혹시… 제가 싫어지신 건 아니죠…? ]엥? 이게 무슨 소리야. 싫어졌다니?
[ 시윤 : 그럴 리가요? 도화 씨는 제 소중한 노예인걸요. ] [ 도화 : 그치만…며칠이나 절 안아주지 않으셔서… ]그러고 보니 최근 며칠 동안 아지트를 차리겠다고 분주하게 움직였던 탓에,
이 녀석에게서 사진만 계속 받고 있었다.
그녀는 성처리 노예로서 사용되지 못한다는 것에 오히려 불안함을 느낀 모양이다.
[ 시윤 : 저번에 왔던 호텔 앞으로. 히어로 슈트도 가지고 오세요. ] [ 윤도화 : 네♥ ]이렇게 열심히 아지트를 만들어 놨는데, 개업식도 해야 하지 않겠어?
***
S시 시내의 어느 호텔 앞.
도화는 주인의 호출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며칠 만에… 시윤 님께 안길 수 있다니… 너무 기뻐…♥’
시윤이 아지트 마련을 위해 3일 넘게 그녀를 안아주지 않았던 탓인지,
도화는 혹시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 것일지 걱정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알몸 셀카와 속옷 셀카를 찍어 보내고,
시윤에게서 곧바로 긍정적인 답장을 받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거근 자지에서 풍기는 묵직한 수컷의 냄새.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걸쭉하고 하얀 정자 덩어리.
그걸 맛보지 못한 도화는 요 며칠 동안의 히어로 활동에서도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평소라면 주먹 한 방에 정리했을 잡범을 제압하는데 무려 15분이 걸리고,
룸메이트인 지우와의 합동 작전에서도 이능력 컨트롤에 실패해 빌런을 놓칠 뻔했다.
도시를 지키는 히어로로서도, 주인을 만족시킬 노예로서도 문제였다.
“시윤… 시윤 님!♥”
“오랜만이네요.”
머리를 쓸어 넘기며 호텔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온 시윤은 도화에게 손을 흔들었고,
도화는 그에게 달려가 반갑게 인사했다.
“오… 오늘은 호텔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시나요?”
“네. 도화 씨를 위해서 제가 선물을 준비했거든요. 히어로 슈트도 가지고 오셨죠?”
“그럼요! 명령하신대로 준비했습니다♥”
도화는 오른손에 쥐고 있는 쇼핑백을 시윤에게 들어 보였다.
히어로는 원칙적으로 슈트를 활동 외의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지만,
규정을 무시하고 시윤의 말을 듣고 가져온 것이다.
“여기에요.”
시윤이 도화의 손을 잡고 5분 정도 걸어 도착한 곳은 평범해 보이는 한 건물.
도화는 지하로 내려가는 시윤을 뒤따라 내려갔다.
“어때요?”
“이곳이… 시윤 님께서 준비하신 장소…?”
검게 칠해져 아늑한 분위기에 은은한 조명을 더해 퇴폐적인 느낌이 드는 장소.
바처럼 보이는 곳을 지나 더 안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침대 하나가 놓여 있다.
시윤은 곧바로 크고 푹신해 보이는 침대에 누웠다.
“이제 가지고 오신 슈트로 갈아입고… 시작하세요.”
“네♥ 시윤 님♥”
입고 온 옷을 모두 벗고 히어로 이그니션으로서의 슈트를 착용한 도화.
주황색 무늬와 장식이 달린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색 바디슈트,
보조용 부츠와 글러브까지 모두 장착했다.
“이제부터… 도화 씨는 빌런에게 붙잡힌 히어로가 될 거에요.”
“붙잡힌… 히어로…?”
시윤의 주문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도화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도미네이터라는 이름의 빌런에게 붙잡혀 능욕당하는 히어로. 뭐 그런 컨셉이죠.”
시윤은 분명 컨셉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컨셉이 아니라 모든 것이 진실이다.
자신이 새롭게 창설한 빌런 조직 ‘유토피아’의 이름을 지으며,
전투원 505호로 활동할 수는 없으니 ‘도미네이터’라는 빌런 네임을 지은 시윤.
그런 도미네이터에게 붙잡혀 능욕당하는 히어로 이그니션 도화.
이는 틀린 점 하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빌런에게 붙잡혀서… 능욕당하는 히어로라고?’
도화는 순간 멈칫하며 고민했다.
아무리 지금의 자신이 시윤의 성처리 노예라고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히어로로서의 자아는 훨씬 그 이전부터 형성된 것이다.
빌런에게 패배해 능욕 당하는 히어로 연기를 하라니.
이전의 그녀라면 가만히 듣고만 있지 않았을 이야기이다.
“혹시… 하기 싫으신가요?”
“그… 그건…!”
도화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보이자 시윤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듯한 액션을 취했다.
‘그… 그래. 한 번이면 되잖아. 시윤 님께서 원하시는데…♥’
도화는 침을 꼴깍 삼키고 큰 소리로 심호흡을 하더니,
스스로 슈트의 앞쪽 지퍼를 살짝 열었다.
“그…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 이 비겁한 빌런… 도미네이터! 나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