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120)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120화(120/186)
***
무언가 새까만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듯한 느낌.
그 늪에 빠져 팔도 다리도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점점 잠식되는 듯했던 악몽.
빠져나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악몽 속에서,
아쿠아마린은 그저 눈을 뜨는 것 하나만으로 길고 길었던 잠에서 깨어났다.
“하아….”
아무리 힘든 일들이 그녀를 괴롭히고 마음 아프게 해도,
이렇게 끔찍한 악몽에 빠져본 적은 별로 없었다.
“우으으… 무서운 꿈이었어.”
매지컬 아쿠아마린은 늘 밝고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시민들을 지키는 정의의 히어로이지만,
이럴 때만큼은 그녀도 소녀와 같은 면모를 보이곤 했다.
“세라피나…? 세라피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눈을 뜨자마자 세라피나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찾는 아쿠아마린.
연구소의 실험체 동기로 처음 만난 두 소녀는 친자매는 아니었지만,
몇 년을 함께 붙어 지내며 어느덧 친자매 못지않은 관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면 서로가 좋고 싫어하는 것도 잘 알게 되고,
서로가 어떤 성격인지도 잘 알게 되기 마련.
세라피나가 자주 허둥대거나 어리바리하게 행동한다는 걸 알았기에,
아쿠아마린은 세라피나를 챙겨주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없어… 어디 간 거지?”
아쿠아마린이 누워 있던 침대는 혼자 사용할 만한 사이즈가 아니었고,
옆 베게에는 세라피나의 푸른 빛이 감도는 녹색 머리카락이 몇 가닥 빠져 있었다.
“나보다 먼저 깨어나서… 다른 어딘가로 갔다는 거구나.
여기가 어떤 곳인지 먼저 알아보러 나간 건가?”
아직 침대에도 온기가 약간 감돌고 있는 만큼,
세라피나가 침대에서 일어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예상했다.
“분명… 히어로를 사냥한다는 녀석들에게 당해서 쓰러졌었던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이러고 있었던 거지…?”
손가락에 잠시 동안 감각이 없을 정도로 몸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고,
고운 하늘색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하게 헝클어져 있다.
평소 히어로로서 칼 같은 자기관리를 고수하는 아쿠아마린에게,
굳어버린 몸과 헝클어진 머리는 아주 어색했다.
“그래… 머리가 중요한 게 아니야.
일단 세라피나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는 게 우선이야.”
아쿠아마린은 헝클어진 머리를 대강 손으로 빗어 넘기고,
다치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뭔가… 잡혀 왔다고 하기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장소네.
도대체 어떤 빌런이 포로를 이렇게 좋은 방에 데려다 두는 거지…?”
포로를 수용하는 곳이라기엔 너무나도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방.
아쿠아마린은 굳은 몸을 풀면서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디며,
잠들어 있던 곳이 어떤 장소인지 파악하기 시작한다.
– 끼이익…
‘엄청 크고 고급스러워… 누군가의 별장 같은 곳이려나?’
한눈에 봐도 꽤 부유한 이들이 거주할 법한 고급 주택이거나,
혹은 휴가를 위해 찾아오는 별장 정도로 생각할 법한 저택의 전경.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에 벽에 몸을 기대어 경계하면서도,
고급스럽고 깔끔한 저택의 전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어서 세라피나를 찾아야 하는데….’
혹시나 적진 한복판에 있는 걸지도 모르는 데다,
저택 안은 정말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상황.
순간 고급스러운 저택의 전경에 눈을 돌렸던 아쿠아마린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른 쪽으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주변을 탐색했다.
‘여기도 없고… 저 방은 닫힌 것 같고.’
살짝 열려 있는 문의 틈새를 슬쩍 들여다보기도 하고,
문이 닫혀 있다면 귀를 대고 안에서 나는 소리를 엿듣기도 한다.
“하아아….”
하지만 아쿠아마린이 있던 층의 방 안에서는 세라피나를 찾지 못했고,
그녀는 살금살금 발소리를 최대한 줄여 아래층으로 걸어 내려갔다.
“쮸웃…♥”
‘무… 무슨 소리지…?’
계단을 내려가 조용히 복도를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던 중,
어딘가로부터 뭔가를 빨아 마시는 듯한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사람 소리… 뭔가 음료수 같은 걸 빨대로 빨아 마시는 듯한 소리야.’
소리의 근원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천천히 살금살금 걸어가자,
다른 방보다 좀 더 크고 넓은 것 같은 방 안에서 소리가 점점 커진다.
“쪼오옥…♥ 하아…♥”
‘이건… 뭔가 소리가 좀… 그렇고 그런 것 같은 느낌인데….’
쪼옥 하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야릇한 여성의 숨소리.
문이 아주 살짝만 열려 있어 내부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안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대충 어떠한 지는 아쿠아마린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아…♥ 기분 좋아요…♥ 주인님의 손길…♥”
꽤나 달콤한 스킨십을 나누는 듯한 여성의 목소리.
‘잠시만….’
보통 저런 대사를 들으면 대개 부끄러워하거나 낯간지럽다는 반응을 보이겠지만,
아쿠아마린이 집중하고 있는 건 대사보다는 목소리였다.
‘이상하다… 너무 익숙한 목소리인데…?’
그녀가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그 어떤 목소리보다도 자주 귀에 들려오던 그 목소리가,
지금 저 방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라피나…? 세라피나가 저런 상스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리가….’
하지만 아쿠아마린은 저 목소리가 세라피나라는 걸 믿기가 도저히 어려웠다.
평소 세라피나가 전장 바깥에서 하는 말들은 대부분 투덜대거나 징징대는 내용.
게다가 말투조차 저렇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오히려 틱틱거리는 편이었으니까.
“아앗…♥ 주인님께서도 제 가슴이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에요…♥”
계속 듣고 또 들어도 세라피나의 목소리가 아니라고 부정하기에는 너무 똑같았기에,
아쿠아마린은 슬슬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저 목소리의 주인공이 세라피나라면,
지금 세라피나는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희롱을 당하고 있다는 것.
– 쿠당탕ㅡ!
“세라피나…!!!”
그 누구보다도 세라피나를 소중하게 생각했기에,
아쿠아마린은 침착함과 평정심을 잃고 그만 문을 다급하게 밀어 열었다.
“오옷…♥ 거기잇…♥ 기분 좋아요옷…♥”
문이 열리자 보이는 충격적이고도 음란한 광경.
세라피나는 속옷 한 장도 걸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한 채,
한껏 흥분한 표정으로 이름 모를 남자에게 덮쳐진 채 몸을 주물러지고 있었다.
그것도… 흥분감에 휩싸여 너무나도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으로.
“깨어났구나. 매지컬 아쿠아마린.”
이름 모를 남자의 정체는 역시나 시윤.
세라피나의 1단계 각인 잠식도를 100%까지 가파르게 상승시킨 후,
그녀를 자신의 귀여운 암컷 노예로 삼아 몸 곳곳을 주무르던 중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죠…?! 세라피나에게 무슨 짓을…!!”
아쿠아마린은 설마 했던 상상이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되자,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차마 앞을 보지 못했다.
“무슨 짓이냐니…♥ 주인님께서는 나에게 마사지를 해주고 계신 거라구?”
평생 본 적도 없을 남자에게 꼭 안기며 ‘주인님’이라고 칭하는 세라피나.
아쿠아마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시선을 돌린 채 사색이 되었지만,
순간 장면을 포착했을 때의 세라피나의 눈빛은 정말 이상했다.
‘정신계 이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우리를 공격했던 그 녀석들도 이 남자의 부하…?’
세라피나의 강점이 유연하고 빠른 움직임과 반사 신경이라면,
아쿠아마린이 전장에서 가지는 강점은 바로 응용력과 빠른 상황 판단.
‘저택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지만… 매복하고 있는 인원은 없는 것 같네.’
세라피나가 있던 곳까지 오면서 3층과 2층을 꼼꼼히 살폈지만 아무런 기척도 없었고,
방의 문을 벌컥 열었을 때도 누군가가 튀어나오지 않았으니 매복은 없다는 판단.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세라피나였다.
‘세라피나가 저런 상태라면… 섣불리 다가가거나 공격하는 건 무리야.
오히려 날 공격하려 들 수도 있으니까.’
이미 세라피나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고,
그렇다는 건 섣불리 공격했다가는 오히려 역공을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최대한 빠르고… 조용하고… 강력하게.’
그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
세라피나가 공격을 눈치채고 역공할 틈조차 주지 않고,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시윤을 제압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
‘아직 컨디션이 그렇게 좋은 것 같진 않지만… 해 보는 수밖에…!’
마치 총을 겨누는 것처럼 손가락을 쭉 뻗는 자세.
그리고 뻗은 손가락 끝에서 엄청난 압력으로 분사되는 단 하나의 물줄기.
‘손끝에서 뻗어나가는…
초고압 워터젯.’
아쿠아마린은 완벽한 이미지 트레이닝까지 마치고,
차마 쳐다도 보지 못하고 있던 세라피나와 시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시윤의 머리가 있는 곳을 향해 손가락을 겨누었다.
“어… 어라…?”
하지만 손가락 끝에서는 물 한 방울조차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