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13)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13화(13/117)
***
이른 저녁, 히어로 연합 기숙사.
“지우! 좀 이따 저녁 먹으러 갈래?”
“응? 저녁?”
도화는 샤워 후 젖은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리며 지우에게 물었다.
“뭐 먹을 건데.”
“저기 앞에 고깃집 새로 생겼잖아. 거기 가자.”
도화는 신난 얼굴로 지우에게 새로 오픈한 고깃집에 가자 제안했다.
지우는 고기 이야기에 반짝이는 눈으로 헤드셋을 벗었다.
“가자. 지금 바로.”
“하여튼 고기 이야기만 나오면 참 좋아한다니까.”
널널한 후드 집업과 청반바지로 재빠르게 갈아입은 뒤,
지우는 폴짝폴짝거리며 신나는 발걸음으로 운동화를 신었다.
“아! 벌써 가려고?”
“응? 왜. 빨리 가야 자리 안 차는 거 아니야?”
도화는 신나서 뛰쳐나가려는 지우의 손을 붙잡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그게. 우리 둘이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친구 한 명도 같이 가기로 해서.”
“친구? 누구? 언니 친구가 있어?”
지우는 ‘친구가 있냐’는 다소 묵직한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날렸다.
“그건 무슨 말일까? 지우야?”
촌철살인 같은 질문에 도화는 입술을 꽉 깨물고 눈을 크게 떴다.
그녀에게 친구가 없는 건 정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화가 친구와 함께 가기로 했다며 굳이 지우를 데려가는 건,
지우가 고기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알고 지내던 선배야. 얼마 전에 우연히 연락이 닿아서.”
“그래? 약속 몇 시로 잡았는데?”
“응? 한 30분 있다가 나가면 될 거 같은데.”
대개 남자를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남자친구 내지는 썸 상대냐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지우는 별 신경 쓰지 않는 듯 운동화를 벗고는 다시 게임기를 집어 들었다.
게임 죽순이인 지우가 연애나 사랑 이야기에 전혀 관심이 없을 뿐더러,
애초에 도화가 연애를 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언니가 히어로라는 건 알아?”
“당연히 모르지. 다른 사람한테 알려주면 안 되잖아.”
히어로는 정체를 숨기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
아무리 친한 친구이더라도 알리지 않아야 한다.
“그럼 나도 그냥 언니 아는 동생인 척한다?”
“응. 혹시 몰라서 말해놨어.”
***
히어로 연합 본부 근처에 위치한 한 고깃집.
이제 막 6시를 넘긴 시각이지만 벌써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풍긴다.
“뭐야? 아직 안 왔나 보네.”
“아! 저기! 오빠!”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도화와 지우의 눈에 보이는 한 남자.
“안녕. 오랜만이네!”
도화가 오빠라고 부른 남자의 정체는 바로 시윤.
도화가 지우를 불러낸 것은 시윤이 내린 명령 때문으로,
‘도미네이터의 스파이’로서 지우를 시윤에게 소개하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룸메이트이자 동료까지 자신의 주인에게 바치려는 것이다.
“아… 안녕하세요.”
“아! 이분이 그… 아는 동생 분이시구나.”
지우는 약간은 불편한 기색으로 시윤을 올려다보며 인사했고,
시윤도 그런 지우에게 고개를 숙이며 환한 미소로 답했다.
지우의 신장은 157cm.
여자 기준으로는 엄청 작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184cm의 훤칠한 키를 가진 시윤과 비교하자면 머리 하나는 차이가 나는 수준.
자신을 어린아이 보듯 내려다보는 시윤의 행동은,
평소 키가 작은 걸 신경 쓰는 지우에게 있어서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전 하시윤이라고 하는데… 동생 분은…?”
“알아서 뭐 하시게요.”
“지우! 얘 이름은 지우에요. 저랑 두 살 차이 나요.”
시윤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먼저 이름을 밝혔지만,
지우는 어쩌라는 식으로 고개를 돌리며 혼자 고깃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몇 분이세요?”
“세 명이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은 세 사람.
시윤은 메뉴판을 들어 두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도화는 뭐 먹고 싶어? 지우 씨도요.”
“저는 기름기 적은 게 좋은데… 헤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소 가격대가 있는 소 채끝살을 가리키는 도화.
시윤은 가격에 약간 놀란 눈치였지만 아무 내색하지 않았다.
“뭐… 나도 같은 거로….”
도화와 같은 걸 고르겠다는 지우.
시윤은 채끝살의 쉽지 않은 가격에 잠시 머리가 어질했지만,
A급 히어로라는 거물을 고작 몇십만 원 따위에 놓칠 수 없었다.
‘아이… 하필이면 소고기를 먹으러 오자고 해서.
그래. 뭐 나도 오랜만에 위에 기름칠 좀 하지 뭐.’
“사장님! 여기 채끝살 3인분 주세요. 찌개랑 밥도 주시구요.”
“3인분? 겨우?”
지우는 불만 가득한 말투로 겨우 그거만 시킬 거냐며 툴툴거렸다.
1인분, 약 150g에 4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을 얻어먹는 주제에 저런 태도라니.
시윤은 저 보라색 밤톨 대가리에 한 대 콩 쥐어박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먹고 또 이따가 시키면 되지! 어차피 지우 너 많이 못 먹잖아.”
“치… 알았어.”
정말 많은 돈을 버는 A급 히어로 기준으로도 그렇게 싸지는 않은 가격임을 알았기에,
도화는 난감한 표정으로 지우를 만류했다.
“술은? 내일 평일이라 술은 좀 그런가?”
“한 병? 소주 한 병만 나눠 마실까요?”
“언니가 술을 다 마셔?”
소주 한 병을 셋이서 나눠 마시자는 말에,
지우는 도화에게 원래 술을 마시냐고 놀라며 말했다.
술을 마시자는 도화의 말에 지우가 놀라는 것은 사실 당연했다.
몇 년이나 같이 살면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맛있는 하이볼이 새로 출시되었을 때 같이 그녀가 마시자고 해도,
성실한 히어로에게 술은 용납되지 않는다며 거절하던 것이 도화였다.
‘진짜 이상하긴 하네. 게임을 배운다고 하질 않나.술을 마시자고 하질 않나.’
남자를 만나는 것엔 아무 신경을 쓰지 않고 있지만,
분명 평소와는 다른 도화의 최근 모습에 의심을 감추지 않는 지우.
“고기 나왔습니다! 너무 익히지 마시고 조금만 구워서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여기 초록이슬도 한 병 부탁드릴게요. 잔 세 개로.”
“와아….”
그러나 고기가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마블링의 자태에,
방금까지의 의심은 씻은 듯이 금방 사그라졌다.
“지우 씨. 고기 엄청 좋아하시나 보네.”
“아… 아니거든요?”
진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기 마블링을 감상하던 지우를 본 시윤.
지우는 고개를 돌리며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을 돌렸다.
평소 입이 짧아 밥 반 그릇도 못 비우는 지우지만,
아무리 그런 그녀라도 윤기가 흐르는 소고기는 참을 수가 없을 것이다.
– 치이익-
달구어진 철판 위에 치이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구워지기 시작하는 채끝.
표면이 닿자마자 들리는 간지러운 소리와 연기가 지켜보는 이들을 침 고이게 만든다.
“소고기는 오래 구우면 맛 없으니까, 금방 먹을 수 있어.”
살짝 뒤집어 가며 각 면을 골고루 익히는 집게의 움직임.
그리고 그 과정에서 풍겨져 나오는 고소하고 진한 냄새.
지우는 시윤이 자기를 깔보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잊고,
도화는 자신이 스파이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잊은 채 구워지는 소고기의 자태를 감상한다.
그리고 잠시 후.
완벽하게 구워진 상태의 소고기가 두 사람의 앞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맛있게 먹어. 지우 씨도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지우와 도화는 잘 익은 채끝을 아무 소스도 찍지 않은 채 바로 입에 넣었다.
“와! 아니 진짜 맛있는데요? 오빠도 빨리 드셔보세요!”
“오…!!!”
고급스러운 소기름이 입 안에서 녹아내리며 금세 없어지는 채끝.
눈이 동그래진 두 사람은 크게 놀라면서도 천천히 고소함을 음미했다.
“부족하면 더 시켜도 되니까 천천히 먹어.”
아무렇지 않은 듯 별 리액션 없이 무심하게 소고기를 먹는 시윤.
‘하… 역시 비싼 고기가 맛있구나. 크으…’
…라고 생각하며 내심 크게 만족했다.
“그…, 시윤… 오빠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
“아. 저는 근처에서 작게 가게 하나 하고 있어요.”
시윤은 정체를 숨긴 채 근방에서 작게 가게를 영업 중이라고 소개했다.
겉보기에는 그의 아지트도 조용한 바처럼 조성되어 있기는 하니,
엄연히 따지면 완벽히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그 장소가 그렇고 그런 짓을 하는 곳이라는 걸,
자신도 곧 가게 될 거라는 곳이라는 걸 지우는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아까만 해도 엄청 적대적이더니… 갑자기 왜 저러지?’
시윤은 갑자기 직접 말을 걸어오는 지우에게 다소 놀란 듯한 눈치.
소고기 몇 점 먹었다고 반응이 달라졌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지우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줬다는 건 사실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걸 그냥 사주다니… 분명 좋은 사람일 거야. 헤헤…’
키가 큰 시윤이 키가 작은 자신을 내려다본 것에 기분 나빠하더니,
이제는 소고기를 사준 것에 대해 호감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걸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단순하다 못해 멍청한 거라고 해야 할지.
시윤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와… 오빠 손 진짜 크다.”
“응? 제 손이요? 좀 큰 편이기는 해요.”
고기와 함께 술 몇 잔이 들어간 탓인지 시윤의 손을 만지작거리는 도화.
크고 두꺼운 남자의 손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 대상 : ‘이그니션’ 윤도화에게 신체 조종을 적용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시윤이 미리 계획하고 도화가 행동하게 한 것의 일부.
지우에게도 이능력의 각인을 박아넣기 위해선,
시윤의 손이 지우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접촉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와… 진짜 크다. 우리 아빠 손보다 더 큰 거 같아.”
“하하… 이거 참 부끄럽네. 이런 거칠거리는 손이 뭐가 좋다고.”
…라고 말하며 시윤 또한 두 사람의 손을 은근슬쩍 만지작거렸다.
‘저번에는 우연히 한 거라 잘 모르겠는데… 손끝에 집중하면 되겠지.’
손가락 끝에 감각을 집중한다.
며칠 전, 그가 도화에게 각인을 우연히 새기었을 때 느꼈던 가슴의 말캉함.
그 감각을 떠올리며 지우의 손바닥을 살며시 훑는다.
– 슈우우-
“아! 너무 만지면… 좀 실례겠죠…?”
“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신기하면 계속 만져도 보고 그러는 거죠 뭐.”
지우의 손바닥에 새겨진 작은 다이아몬드 모양의 각인.
살며시 붉은색 빛을 내더니 그대로 아무렇지 않은 듯 사라진다.
자신의 손에 소고기의 무서운 진실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못한 채,
그저 소고기 사주는 착한 오빠일 거라고 생각하며 헤실헤실거리는 지우.
시윤은 그런 지우를 보며 만족스러운 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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