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130)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130화(130/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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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허억… 연략… 연락을… 해야… 해…!”
연구소는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이 평화로웠지만,
그 짧은 틈에 누군가가 침입해 연구원들을 볼모로 삼고 있는 상황.
나이가 적지 않은 소장은 피를 잔뜩 쏟아낸 탓이었는지,
순식간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린 채 숨을 헉헉거렸다.
물론 자신이 이런 긴급 상황에서 죽는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일 수라도 있겠지만,
저 새파랗고 젊은 연구원들과 두 소녀를 살려내야만 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피가 흐르고 있는 팔에 옷소매를 휘감아 피를 꽉 막고,
비틀거리며 약제실 옆 사무실로 걸어 나가려 고개를 들었다.
“결국 건드리신 모양이네요? 연구소장님.”
“자… 자네… 자네가…!”
그리고 고개를 든 소장의 앞에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는 한 여자.
그녀는 자신을 홍서린이라고 소개했던 여성 빌런.
연구원 한 명을 죽이고 옷을 뺏어 변장해 있던 ‘글래머 모드’의 루이린이었다.
“생각보다… 기억력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네?
나이도 있고 정신도 없으셨다는 양반이.”
루이린은 변장을 위해 착용하고 있던 안경과 연구원 복장을 벗어 던진 채,
고통스러워하며 도망치려는 소장의 반대쪽 팔을 붙잡았다.
“그쪽으로 가면 여기 안에 있는 연구원들을 모조리 터트려 죽일 건데.
그래도 도움을 요청하러 갈 거야… 소장님?”
지금 이 여자의 팔을 놓고 옆 사무실로 가서 도움을 요청한다면,
자신을 포함한 붙잡히지 않은 연구원들은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여자의 말처럼 저 스무 명 남짓의 연구원들은 모두 죽게 된다.
“다급해 보이는 소장님께… 내가 특별히 두 가지의 선택지를 줄게.
첫 번째는 이대로 혼자 도망치는 대신 다른 연구원들을 다 터트려 죽인다.
두 번째는 여기서 사이좋게 다 같이 터져 죽는 대신 어디 숨었는지 모를 연구원들은 살려준다!
어때? 꽤 괜찮은 선택지 같지 않아?”
“허억… 허억…!”
지금 저 여자의 말을 듣는다고 어딘가에 숨어 있을 다른 연구원들이 살 수는 있는 걸까?
애초에 지금 선택권이 있기는 한 걸까?
소장은 점점 생기를 잃고 얼굴이 새파래진 채로 고뇌했다.
“빨리 선택해. 난 오래 기다리는 걸 잘 못 참는 편이라서.
빨리 해치우고 가야… 주인님께서 상을 주실 거거든…♥”
“차라리… 차라리 날 죽여… 나만 죽이고 저 연구원들을 살려 줘…!
저 녀석들에게는 아직… 미래가 있단 말이야…!”
차라리 연구소의 총책임자인 자신을 죽이고 나머지를 살려달라는 간곡한 애원.
“아… 소장님. 그런 대답은 영 재미가 없잖아.
너무 옛날 영화를 많이 보신 거 아니야? 실망이네.”
루이린은 옛날 영화 같은 진부하고 지루한 대답을 듣자,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듯 피를 흘리고 있는 소장의 팔을 꽉 쥐고 흔들었다.
“크아악…!!!?”
– 푸와악ㅡ
“아하핫…! 이거… 피가 막 쏟아지고 있네?
어쩌나… 빨리 선택하지 않으면 고르기도 전에 죽어버릴 걸?”
“저… 정말… 살려주는 건가…?!”
“그럼! 난 거짓말은 하지 않아. 소장님 혼자 도망친다고 하면 살려줄 거야.
대신… 여기 있는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펑! 하고 터져 죽겠지?
꺄하하하하하하!!”
광기 어린 웃음을 내지르며 연구소장에게 선택을 재촉하는 루이린.
하지만 소장은 계속 고뇌에 빠진 채 쉽사리 선택하지 못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서서히 몸은 식어가기 시작했고,
어떻게 해야 할 지 판단하기는 커녕 눈 앞의 시야조차 흐릿해져 가고 있다.
살고 싶다.
살아남아야 한다.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
분명 새파랗고 젊은 연구원들과 마법소녀들을 살려내야만 하는데.
내가 여기서 죽음을 선택한다고 저 빌런이 연구원들과 소녀들을 살려줄까?
차라리 나라도 혼자 살아남아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건 아닐까?
– 콰드득ㅡ!
“끄아아악…?!!!!!”
소장의 선택이 길어지자 화가 난 듯 피가 흐르고 있는 팔을 짓밟는 루이린.
그러고는 소장의 머리를 손으로 꽉 잡은 채 잔뜩 화난 듯한 얼굴을 들이댄다.
“빨리… 선택하라고. 안 그러면 다 터트려서 뒈져버리는 수가 있어.”
“아… 아! 알겠네… 서… 선택하겠네!”
결국 협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얼떨결에 선택했다는 말을 해버린 소장.
루이린은 선택했다는 말에 소장의 머리채를 놓고는 화색을 표했다.
“자! 그러면 어떤 걸 고르셨을까?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
소장은 온몸이 묶인 채 재갈을 물고 있는 연구원들이 있는 쪽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죄의식이 가득 담겨 있는 슬픈 죄인의 표정으로.
“미안하네… 난… 살아야… 겠어.”
“어머나! 연구소장님이 부하 연구원들을 버리고 살아남기를 택했다니.
이거 정말 충격인데? 안 그래? 세라피나랑 아쿠아마린?”
“어…?”
애처롭게 피를 흘리며 바닥을 기어 옆 사무실로 가고 있는 소장의 앞에,
분명 지쳐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있던 세라피나와 아쿠아마린이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다.
“정말… 실망이에요.”
“아저씨… 그런 사람이었어…?”
혼자 살겠다고 바닥을 빌빌 기고 있는 소장을 보며,
항상 밝고 쾌활했던 두 소녀의 얼굴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그… 그런… 게… 아니라… 저 녀석이… 혀… 협박을…!”
“여태까지 우리 같이 젊고 어린 실험체들을… 얼마나 많이 데려다 써먹었을까.”
“그러게. 처음에는 생명의 은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기 연구를 위해 사람들의 목숨을 허비하는 사람이었던 거야.”
“그런… 게… 아니… 야… 그저… 그게…!”
빨리 선택하지 않으면 터트려 죽이겠다는 루이린의 협박 때문이었지만,
결국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게 된 꼴이 되고 만 소장.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변명할 수 있는 기회도,
변명할 거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혼자라도 살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니까.
도저히 그런 적 없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으니까.
“제발… 내 말을….”
게다가 이미 소장은 3분이 넘는 시간 동안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움직이는 건 고사하고 말소리조차 내는 것도 버거웠다.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들을… 약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몸으로 만든 원흉.
마음 좋은 아저씨처럼 연기하면서 우리를 연합의 병기로 만들어 낸 원흉.”
그에게는 마음으로 품은 자식이자 보석과 같았던 두 소녀.
그런 두 소녀가 보내고 있는 원망과 경멸의 시선.
분명 연합 상부의 명령 때문에 강제로 시작했던 이능력 강화 실험이었고,
소장은 아무 것도 모르는 두 소녀를 부추겨 실험에 임하게 했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소장은 자신의 선택에 죄악감을 가지고 후회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세라피나와 아쿠아마린은 버려질 것이 뻔했다.
그래서 두 소녀가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녀들을 대했다.
그녀들이 조금이라도 소녀의 마음을 가졌으면 해서 마법소녀가 되기를 권했다.
‘단 한 번도… 너희를 내 사사로운 욕심을 위해 이용한 적은 없었다.
물론 내 선택이 너희를 고통스럽게 했다면 그건 온전히 나의 잘못이겠지.
하지만… 내가 그런 존재로 너희의 기억 속에 남는다는 것이 고통스럽구나.’
소장은 부서진 팔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고통보다도,
두 소녀에게 그렇게 기억된 채 죽어간다는 사실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이 자리에서 죽어줘야겠어. 역겨운 아저씨.”
“안녕히 가세요. 쓰레기 소장님.”
아쿠아마린과 세라피나는 늘 빌런에게 향하던 마법 지팡이를 소장에게 향했다.
“미안… 하다….”
– 콰드드드득ㅡ!!!!
– 슈아아아앗ㅡ
결국 체념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소장.
세라피나의 가시덩굴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고,
아쿠아마린의 초고압 워터젯에 그대로 미간이 뚫리며 최후를 맞이한다.
“하아…♥ 엄청 상쾌한 기분이에요.
몸을 꼭 옥죄고 있던 사슬을 단번에 풀어낸 느낌…♥”
“응…♥ 이제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얻은 거야.
이제 온전히 주인님을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거겠지…♥”
여태까지 몇 년 동안 소장이 어떤 심정으로 소녀들을 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소장이 두 소녀에게 몇 년 동안의 실험을 감행하며 고통을 주었던 건 사실이었고,
시윤은 ‘인식 개변’을 통해 그 원망과 증오를 살짝 건드렸을 뿐이다.
“후우… 제법인데? 아주 멋진 솜씨야.
위대하신 오라버님…♥ 주인님께서… 꽤나 기뻐하시겠는데?”
첫 사냥에 나선 두 소녀를 돕기 위해 나섰던 루이린.
세라피나와 아쿠아마린의 첫 악행에 손뼉을 치며 칭찬했다.
“아아…♥ 주인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다면…♥
이것보다도 더 힘들고 잔인한 일이라도… 해낼 수 있어요…♥”
“주인님이 주시는 힘과 쾌락이 있다면…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어…♥”
소장을 살해하고도 시윤이 줄 ‘타락의 쾌락’을 상상하며 흥분하는 두 암컷.
그 사이 루이린은 흥분하고 있는 두 암컷의 옆에서 연구원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이 녀석들은 어떻게 하지?”
소장을 제외한 수십 명의 연구원이 소장의 피를 뒤집어 쓴 채 공포에 떨고 있는 상황.
소장의 잔혹한 죽음을 눈앞에서 보고만 연구원 몇 명은 이미 충격에 실신하거나,
차마 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벌벌 떨고 있었다.
“일단… 연구소 내부에 있는 CCTV는 채령 언니의 분신이 다 망가트렸으니까…,
저 녀석들을 모조리 터트려 죽이면 딱히 증거가 남지 않겠네.”
연합의 비밀 연구소는 말 그대로 아주 비밀스러운 시설이고,
소장이 사용하려던 비상 통신 장치 외에는 연락 수단이 전무하다.
루이린과 타락한 두 마법소녀가 벌인 일은 불과 5분 남짓한 사이에 일어났고,
함께 잠입해 있던 채령의 분신이 이미 녹화 장치를 모조리 망가트린 상태.
그 사이에 연구소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는 건 저 연구원들을 모두 죽이면 증거가 남지 않는다는 것.
“그럼… 다 죽여버리면 되겠네요…♥”
“좋은 생각이야…♥”
두 마법소녀는 무고한 연구원들을 향해 마법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모두… 죽어 버려♥””
– 콰지지지지지직ㅡ!!!!
– 솨아아아아아앗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