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136)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136화(136/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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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301. 그리고 H4302.
너희 두 사람은 도시를 지키는 히어로가 되기 위한 실험을 견뎌내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는 이곳이 아닌 또 다른 연구소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도 히어로가 되기 위한 실험에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아직 어린 소녀들을 사람 그 이하의 무언가로 취급하던 연구소 총괄 관리자.
그는 실험에서 살아남은 H4301과 H4302를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칭찬하며,
앞으로 또 다른 비밀 연구소에서 지내게 될 거라 통보했다.
“안녕…? 앞으로 잘 부탁할게.”
새파란 하늘과 물빛을 닮은 듯한 머리카락과 황금처럼 빛나던 눈동자.
H4302는 먼저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다.
“…응.”
실험의 부작용으로 크게 지쳐 퀭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H4301과는 달리,
H4302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음에도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해가 안 되네. 뭐가 저렇게 즐겁다는 거지?’
분명 자신처럼 머리가 텅 비어버린 채로 실험에 시달렸을 텐데.
저렇게 헤실헤실 웃고만 있을 좋은 상황이 아닐 텐데.
H4301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뭐. 어차피 곧 죽어버리고 말 텐데.’
하지만 어차피 다른 실험체들처럼 버티지 못하고 곧 죽어버리거나,
혹은 자신이 먼저 죽어버리거나.
결말은 결국 둘 중 하나 뿐일 거라 생각한 H4301이었다.
그렇게 원래 있던 대형 연구소를 떠나 또 다른 비밀 연구소로 이송되고,
두 실험체는 새로운 곳에서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인사해라. 너희를 히어로의 길로 인도할 새로운 연구소장이시다.”
새로운 실험체를 맞이하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온 비밀 연구소의 소장.
그렇게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벗겨진 머리와 다크서클 때문인지 굉장히 초췌한 인상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H4302와 인상을 쓰며 툴툴거리는 H4301.
“지금… 이 어린 녀석들로 실험을 하라는 겁니까?”
소장은 두 어린 소녀를 보고는 이런 아이들은 실험체로 쓸 수 없고,
이런 일을 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연합의 지시를 거부하겠다… 라는 말로 이해해도 되겠나?”
“그… 그건….”
실험을 거부하겠다는 말에 강압적인 태도로 맞받아치는 총괄 관리자.
연구소장은 어린 아이들을 실험에 쓸 수 없다며 거부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에게 벌어질 후폭풍이 어떤 일인지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후 몇십 년 동안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겨우 연합의 비밀 프로젝트에 합류해 연구소장이라는 직위를 얻은 차였다.
그런 이유로 연구소장은 입을 더 이상 열지 못했다.
“그럼… 한 달 뒤에 다시 찾아오지. 히어로 님과 함께.”
고작 한 달이라는 시간을 주며 다음에는 히어로와 함께 찾아오겠다는 마지막 말.
마땅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좋은 꼴은 못 보게 될 거라는 말과 같았다.
“쳇… 새파랗게 어린 녀석들을 데리고 무슨 짓을 하라는 건지 참….”
빌런의 테러 사태로 인해 이전의 기억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설명.
그리고 이용 가치가 높고 잠재력이 뛰어난 이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 보고.
연구소장은 자식뻘 되는 두 소녀가 이름 한 자도 없이,
고작 몇 줄의 설명이 덧붙여졌을 뿐인 실험체로 여겨지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 사실 때문에 실험을 진행하지 않는다면 더 큰 화가 올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그는 결국 두 소녀에게 가혹하고 위험한 실험을 행하기를 선택했다.
그 대신 연구소장은 두 소녀에게 삶의 의미와 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그녀들에게 단순한 히어로가 아닌 ‘히어로 마법소녀’가 되기를 권했다.
“H4301… 자네의 눈과 머리카락 색은 세라피나이트라는 보석의 빛을 닮았어.
앞으로는
세라피나
… 라고 부르겠네.”
“세라피나….”
“그리고 H4302에게는
아쿠아마린
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겠네.
맑은 하늘과 물을 닮은 머리색에 잘 어울리는 보석의 이름이지.”
“아쿠아마린…!”
세라피나와 아쿠아마린.
두 소녀의 머리색을 닮은 보석은 소녀들의 이름이 되었다.
“이 옷 어떤가. 정말 귀엽고 예쁜 옷 아닌가?”
새하얀 고무를 뒤집어쓴 듯한 실험체 전용 슈트도,
실험에 임하지 않을 때만 입을 수 있는 허름한 흰색 가운도 아닌 옷.
“이 옷을… 저희에게 주시는 이유가 뭐죠…?”
“자네들이 성인이 되고 나면… 도시와 시민을 지키는 히어로가 될 거라네.
세라피나와 아쿠아마린이라는 이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히어로 코스튬이지.”
귀엽고 하늘하늘한 다채로운 색의 드레스와 마법 지팡이는 두 소녀의 히어로 코스튬이 되었다.
“히어로 마법소녀. 정말 멋진 울림을 가지고 있는 이름 아닌가?
다른 녀석들에게는 없는… 자네들만을 위한 특별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게 되는 거야.”
세라피나와 아쿠아마린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삶의 의미.
기억을 모두 잃은 채 그저 쓰다 버려질 실험체로만 몇 년을 살아왔을 그녀들에게,
‘히어로 마법소녀’라는 정체성은 선물과도 같았다.
그 정체성은 그녀들이 앞으로의 삶을 갈망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고,
혹독하고 고된 실험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의 혹독한 실험을 견뎌내며,
어느덧 히어로로 활동할 수 있는 성인이 된 두 소녀.
“히어로 마법소녀 매지컬 세라피나!”
“히어로 마법소녀 매지컬 아쿠아마린!”
“히어로와 마법소녀, 두 정의의 이름으로… 너희 빌런들을 단죄하겠다!”
연구소장이 만들어 준 하늘하늘한 드레스 코스튬을 입고,
자신들을 ‘히어로 마법소녀’라고 칭하며 히어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히어로의 세계는 그녀들이 겪었던 고된 실험만큼이나 가혹했다.
오로지 비밀 연구소의 실험으로 만들어진 이능력의 힘에 의존해야 했고,
다른 히어로를 보조하여 실전 경험을 쌓아본 적도 없어 합이 맞지 않거나 실수를 연발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두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대로 연구소 안에서 H4301과 H4302라는 이름으로 죽어버렸을 실험체가 아닌,
세라피나
와
아쿠아마린
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엿한 히어로였으니까.
빌런으로부터 도시와 시민을 수호하는 사명감과 책임을 가진,
희망의 상징이자 빛나는 이름의 마법소녀였으니까.
피와 살을 깎아가며 두 사람만의 콤비네이션을 만들어내고,
그 콤비네이션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한 혹독한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들이 다섯 번째 빌런을 상대할 때가 되어서야,
생채기 하나 없이 완벽하게 빌런을 제압하는 데에 성공했다.
“아쿠아마린… 드디어 우리의 힘으로 해냈어…!”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멋진 히어로 마법소녀 콤비가 되는 거야!”
누군가에 의해 성공과 실패가 정해졌던 두 소녀가,
마침내 자신들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
그 순간의 짜릿하고 뿌듯한 경험은 두 소녀를 바쁘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녀들이 무찌른 빌런의 수가 하나둘 늘어갈수록,
더 압도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진 빌런을 상대해야 했다.
그녀들은 히어로 연합 비밀 연구소가 가진 기술의 정수가 담긴 결정체였고,
연합은 그런 그녀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구소장은 두 마법소녀의 성과가 윗선에게 만족감을 주어야 했기에,
점점 더 가혹하고 위험한 실험과 시술을 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드레날린을 일시적으로 폭발시켜 이능력의 출력을 증가하도록 하는 약을 주었다.
그리고 한 주 뒤에는 그녀들의 자율신경계에 특수한 약물을 투입해,
그 누구보다 빠른 반사 신경과 판단 속도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한 달 뒤에는 중추 신경과 뇌에 전기 시술을 가해,
이능력의 출력을 대폭으로 상승시키고 통각을 덜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한 달, 두 달, 그리고 세 달.
그녀들이 1년 동안 받은 크고 작은 시술과 실험을 모두 합하면 거진 10건에 달할 정도.
세라피나와 아쿠아마린은 H4301과 H4302라는 이름을 가진 실험체였을 때보다,
더욱 가혹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무너지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들이 아무리 수많은 강화 시술을 통해 강해졌더라도,
젊고 어린 소녀의 몸으로 견뎌내기에는 너무나도 큰 무리가 있었다.
“아쿠아마린…?! 괜찮아?!”
아쿠아마린은 아무런 전조 증상 없이 갑자기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기 시작했고,
“세라피나…?! 갑자기 왜 그래?! 일단 내 손을 잡아!”
세라피나는 전투 중에 휘청거리며 넘어지거나 갑자기 호흡 곤란이 오는 일이 잦아졌다.
망가져 가기 시작한 어린 소녀들의 여린 몸.
그런 가운데 서서히 강해져만 가는 흉악한 빌런들.
그리고 그 현장에 계속해서 내몰려야만 한다는 불안감과 압박감.
도시와 시민을 지키는 희망의 빛이어야만 할 두 마법소녀는,
꺼져 가는 전구의 흐릿한 불씨처럼 사그라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