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15)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15화(15/117)
***
“으으으으! 피곤해 죽겠네 진짜.”
“요즘 엄청 열심히 나가네?”
게임기도 내려놓은 채로 기운이 쭉 빠져 소파에 드러누운 지우.
심각할 정도로 쌓인 호출 거부 스택을 빨리 덜어내기 위해,
며칠 동안 게임 한 판 제대로 못 하고 열심히 뛰어다닌 그녀였다.
“내일부터 4월이니까… 이제 이 짓거리는 안 해도 되겠지?”
“그래도 평소에 자주 다녀와야지. 그러다 또 이번 달처럼 된다?”
“알았어…, 으으으….”
만약 오늘 세 번의 출격을 한 번이라도 거절했다면,
아마 지우는 B급 히어로로 강등되거나 급여가 절반 넘게 삭감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랭크 게임의 티어와 게임 캐릭터의 스펙이 중요하더라도,
지우 또한 자신이 도시와 시민을 지키는 히어로라는 자각은 충분하다.
물론 처음에는 이능력으로 편하게 돈을 벌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더 커졌다.
어릴 때부터 조용히 컴퓨터와 게임기만 만지작거리며 자라왔던 지우.
그녀가 아무리 훌륭한 게임 실력을 뽐내더라도 주위에서 인정해주는 이 하나 없었지만,
히어로 일을 하며 인정도 받고 편하게 게임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윤 오빠가 내일이나 모레 놀러 와도 괜찮다는데. 어때?”
“오! 정말?”
지쳐 쓰러진 지우에게 시윤이 가게로 초대했다는 이야기를 툭 던지자,
지우는 눈을 번쩍 뜨더니 벌떡 일어났다.
“보통 월요일이나 화요일에는 오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 문을 잘 안 연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내일이나 모레 오라더라.”
물론 도화가 지우를 데려가려는 곳은 가게가 아닌 시윤의 아지트.
지우에게 각인을 새기는 데에 성공한 시윤의 명령이었다.
“근데 시윤 오빠가 한다는 가게가 뭐 하는 곳이야?”
“아! 내가 알기론 술집이야. 칵테일 바 같은 거 알지?”
술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지우.
그녀는 어딘가 아쉬운 듯한 표정이었다.
“가면 안주도 맛있는 거 많대. 스테이크도 해주신다던데?”
“스테이크? 소고기?”
실망하는 듯한 표정을 눈치챈 도화는 가면 스테이크도 있을 거라며,
지우가 마음을 돌리지 않도록 말을 지어내 구슬린다.
“내일 7시에 선남대 정문 앞에서. 알겠지?”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지우는 다시 헤드폰을 쓰고는 게임기를 잡았다.
“오늘은 게임 안 하는 거 아니었어?”
“안 돼. 며칠이나 레이드를 못 뛰었단 말이야. 나 길드에서 짤려.”
***
시윤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기로 한 약속 당일.
지우는 약속 시간 10분 전에 도착하여 시윤과 도화를 기다리고 있다.
“히히! 오늘도 소고기 먹는다!”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을 생각에 신이 난 지우.
두 사람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지우!”
“오늘은 제대로 왔네. 긴급 출격 없어서 다행이다.”
지우와 마찬가지로 설레는 얼굴로 약속 장소에 도착한 도화.
“언니 근데. 옷이 왜 이 모양이야?”
“응? 내 옷이 왜?”
검은 속옷이 다 비치는 시스루 탱크탑과 사타구니가 보일 것만 같은 초미니 핫팬츠.
노는 여자 내지는 과장을 보태어 콜걸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는 않을 패션이었다.
지우는 도화의 파격적인 복장에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내가 이런 옷 입는 거 처음 봐서 그래?”
“아니… 무슨 클럽 가는 거도 아니고. 이게 뭐야.”
그런 도화에 비하면 평범하게 후드티와 널널한 반바지를 입고 나온 지우의 모습.
사실 어느 쪽이 더 이상하고 평소 같지 않냐고 하면 지우의 말이 옳았다.
긴 머리를 묶어 지탱할 수 있는 베이스볼 캡,
그리고 프리 사이즈의 티셔츠에 청바지나 레깅스가 원래 도화가 애용하는 패션.
지우는 도화의 도발적인 옷차림에 부담스러워하며 애써 고개를 돌렸다.
“어! 오빠!”
“도화 오늘 예쁘게 입고 나왔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던 중, 시윤은 도화의 패션을 칭찬하며 등장했다.
“지우… 씨도 안녕하세요.”
“말, 놓으셔도 상관없어요.”
아직은 어색한 말투로 지우에게도 인사를 건네는 시윤.
지우는 시윤에게 말을 놓아도 상관없다며 웃어 보였다.
“하하. 그럼… 앞으로는 지우라고 부를게. 일단 갈까?”
***
모이기로 한 장소에서 5분 정도 걸어 도착한 시윤의 아지트가 위치한 건물.
겉보기엔 다른 상가 건물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이는 곳이다.
그러나 건물 안의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폐쇄적이면서도 조용하고 꽤 인상적인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눈을 즐겁게 한다.
“여기야. 오늘은 문을 안 여는 날이라 좀 정리가 안 되긴 했는데.”
“오오….”
새까만 바닥과 벽을 배경으로, 그 위에 더해지는 은은한 조명과 클래식한 인테리어.
늘 본부 기숙사 안에서 지내는 지우에게는 꽤 독특하고 특이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 끼이익… 쿵-
순수한 마음으로 제 스스로 걸어들어온 먹잇감의 숨구멍이 닫히는 소리.
아직은 두 명뿐인 빌런 조직 유토피아의 아지트의 문이 잠겼다.
그러나 지우는 문이 잠기는 소리를 듣지도 못했는지,
의자에 앉아 바 테이블을 신기한 듯 만지작거렸다.
“후후… 우리 지우는 참 순진해서 좋아.”
“응? 왜! 나도 이런 데는 와 봤다 뭐.”
바 테이블을 신기하게 여기는 자기 모습을 보며 피식거리는 도화에게,
지우는 와 본 적 있다며 툴툴거렸다.
하지만 도화가 지우에게 건넨 말의 의미는 조금 달랐다.
“지우야. 혹시 이런 말 들어 본 적 있어?”
그리고 시윤은 글라스에 얼음을 옮겨 담아 위스키를 따르더니,
지우의 앞에 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소고기 사주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어. 왜일까?”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우는 술잔을 들고 위스키를 홀짝거리며 물었다.
“돼지고기나 닭고기 같은 경우엔 가격이 싸서 단순 호의로도 사주는 경우가 많지만…
소고기는 가격이 나가는 만큼 어느 정도의 대가나 부탁을 바라고 사주거든.”
실제로 몇 년 전 고깃집 안에 써진 현수막 사진이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많은 이들이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했던 주제이기도 하다.
즉, 비싼 걸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사람은 한 번 정도는 의심하라는 말이다.
“그…, 그럼 혹시 제가 돈이라도 드려야… 하나요?”
당황하여 술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인 지우.
순간 자신이 무언가 잘못이라도 한 건지 뜨끔하는 마음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테이블 너머 지우의 옆자리에 앉은 시윤.
“나랑 도화가 말하려는 건 네가 나에게 잘못했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야.”
“그… 그러면…?”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렇게 비싼 걸 사주는 난 말이지.
사실 지우 네가 생각도 못할 정도로 엄청 수상하고 무서운 사람이거든.”
시윤은 고개를 푹 숙인 지우의 턱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며 눈을 맞추고는,
마치 강아지의 턱을 간질이는 듯 검지손가락을 꿈틀거렸다.
“헤헤…♥ 도미네이터 님… 지우를 여기까지 데려오면 상을 주신다고 했는데…♥”
태도가 돌변한 도화는 시윤의 옆에 딱 붙어 그를 도미네이터 님이라고 칭하고는,
지우를 데려왔으니 상을 달라며 간들거리는 목소리로 애교를 부렸다.
“어… 언니? 지금 뭐 하는 거야?”
“응? 왜? 주인님께서 널 이곳까지 데려오면… 상을 주신다고 했다구♥”
“그게 무슨 소리냐니까!”
“아하하! 무슨 소리긴…♥ 지우는 나한테 속은 거야.”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지우의 턱을 스윽 만지며 비웃는 도화.
지우는 깜짝 놀라 의자에서 번쩍 일어나더니 뒷걸음질 쳤다.
‘도화 언니… 며칠 전부터 이상하다 했는데…’
지우는 뒤로 물러난 채 자신의 이능력 < 무기 구현 > 을 시전하고자 두 팔을 뒤로 뻗었다.
– 슈우우우우-
잠시 푸른 빛이 휘감기던 양손에는 그녀가 애용하는 게임 캐릭터의 무기,
날렵한 권총 두 자루가 들려있다.
“아핫♥ 저 이능력이 바로 지우의 능력… 게임 캐릭터의 무기를 구현하는 능력이에요♥”
“게임 캐릭터의 무기를 구현하는 능력이라. 꽤 심플하면서도 독특한 이능력이네.”
가디건을 벗어 던진 채 시윤의 옆에 무릎을 꿇고 있는 도화.
그리고 도화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지우를 지켜보는 시윤.
‘뭐야…? 뭐 때문에 언니가 저렇게 되어 버린 거지…?’
지우는 변해 버린 도화의 모습을 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언니! 정신 차려! 언니는 도시를 지키는 히어로잖아!”
그리고 도화를 향해 간절하게 소리쳤다.
“히어로? 맞아! 난 도시를 지키는 A급 히어로 이그니션이야.
하지만… 이제는 위대하신 도미네이터 님의 부하이자… 성처리 노예라구♥”
그러나 그 외침은 인식 개변으로 인해 이미 갈 데까지 가 버린 도화에게 닿지 않았다.
“시윤 오빠… 좋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빌런이었군요.”
“워워! 사람한테 막 그렇게 총 들이대면 못 써!”
시윤은 지우의 양손에 들린 권총을 보며 강도라도 마주친 것처럼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도화처럼 비웃음만이 가득했다.
쏠 거면 쏴 보던가.
쏠 수 있다면 말이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언니… 도대체 어쩌다가…?’
지우는 완전히 달라져 버린 도화의 모습을 보며,
하루라도 빨리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채 순진하게 밥이나 얻어먹은 자신을 탓했다.
그러면서도 저 녀석으로부터 언니를 구하겠다고,
금방 다시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려 놓겠다고 다짐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 슈우우…
“뭐… 뭐야? 왜… 왜 총이 사라졌지?”
하지만 지우의 외침이 도화에게 닿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의 이능력 < 무기 구현 > 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조용히 사라져 있었다.
[ 대상 : ‘플레이어’ 연지우에게 이능력 무효화를 적용합니다. ] [ 상태 : 각인 1단계 (잠식도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