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159)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159화(15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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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리가 건네준 서류 더미를 한 장씩 천천히 읽어보는 인영.
“아으으… 어차피 다 똑같은 말이잖아.
내 성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더 열심히 해서 꼭 잡아라!”
“그렇겠죠. 상부에서는 과정이나 이유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결국에는 인영의 성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기회를 더 줄 테니 꼭 다음에는 ‘히어로 사냥꾼’을 박멸하라는 것.
단 두 줄로도 정리할 수 있는 말을 굳이 서류랍시고 길게 늘여 쓴 것이다.
“그리고… 왜 굳이 하나하나 다 사인까지 해야 하는 거냐구! 아으으….”
“어쩔 수 없죠. 안 그러면 전산에 올릴 수도 없을 거고,
상부에서도 아이언메이든 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을 테니까요.”
히어로라는 직업의 존재 의의는 빌런을 물리치는 것도 있겠지만,
결국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이들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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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도착하기 이전 히어로 사냥꾼과 싸우고 있던 히어로들도 현재 치료 중이고,
미리 시민들을 대피시켜 놓았던 덕에 인명 피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상부에서는 어찌 되었든 간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원하기에,
히어로들은 시민의 안전보다도 빌런을 잡는 데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지켜온 시민의 수는 어림 잡을 수 없지만,
잡아 처넣은 빌런의 수는 단순하게 셀 수 있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조금 후에 관리과에서 직원 한 분이 오실 거에요.
아이언메이든 님을 도울 페어 역할의 히어로 몇 분을 소개시켜 주신다고 하더라구요.”
“에에? 난 페어 같은 거 필요 없는데? 혼자가 편하단 말이야.”
신입 히어로들의 현장 경험을 위해 A급 히어로와 함께 같이 붙어 다니거나,
혹은 단독 해결이 어려운 사건의 경우 여러 히어로가 함께 출격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S급 히어로가 된 이후로는 거의 단독으로만 활동해왔던 인영.
그녀의 입장에서는 같이 다닐 히어로가 있다고 해도 도움이 되지도 않고,
자기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는 짐덩어리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상부의 지시에요. 저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데…,
형식상으로라도 만나는 보셔야 할 거 같아요.”
“아으!!! 그놈의 형식에 규칙에 다 자기들 마음대로 정해 놓고!”
늘 일방적이고 수직적이기만 한 상부와의 소통 체계.
상부와 조금이라도 접점이 있는 히어로나 직원이라면 누구나 답답해한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들이 연합의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존재들이니까.
상부의 입장에서는 A급이든 S급이든 그저 좀 더 약하고 강한 도구일 뿐이고,
그 도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도 그들 뿐이다.
“지금이 9시 40분이니까… 얼마 뒤에 오시겠네요.
일단 이 서류들은 전부 읽고 사인하신 거죠?”
“응. 30분 내내 사인만 하느라 손 아파 죽겠어.”
채리는 사인만 30분 넘게 하느라 아프다는 인영의 손을 살며시 쓰다듬고는,
사인을 모두 끝마친 서류 뭉치를 들고 업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언메이든 님도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이따가 오실 분께 드릴 것도 타야 해서.”
올려놓은 서류 뭉치를 정리해 두꺼운 파일 안에다 끼워 넣고,
사무실 책장 옆에 있는 탕비 공간에서 커피 기계를 만지작거렸다.
“아! 그러면 아메리카노 말고 우유 넣은 걸로 해줄 수 있을까?”
S급 히어로라는 대단한 직위와 쿨하고 시크해 보이는 외모.
하지만 인영은 그 이미지와 상반되게도 아주 초등학생 같은 입맛을 가지고 있다.
쓰디쓴 음식을 먹는 걸 매우 싫어해서 술도 도수 낮고 순한 발포주만 마시거나,
커피는 무조건 우유가 들어간 연한 라떼만 마신다거나 하는 그런 입맛이다.
그 때문에 채리는 항상 사무실 냉장고에 달달한 초콜릿 아이스크림이라거나,
커피에 타 마실 우유 같이 인영이 좋아하는 걸 미리 구비해놓고 있다.
‘후후…♥ 이럴 줄 알고 미리 가져오길 잘했네…♥’
커피에 우유를 넣어달라는 인영의 주문.
채리는 그 주문을 듣고는 어딘가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미리 냉장고 안에 넣어두었던 텀블러 안의 음료를 타 놓은 커피에 섞어 넣는다.
그러고는 각설탕 반 개를 넣고 티스푼으로 부드럽게 저은 뒤 테이블 위에 내어놓았다.
“고마워! 잘 마실게.”
인영은 아직 오기로 한 손님이 사무실 문도 두드리지 않았는데도,
참지 못하고 커피잔을 들어 맛을 보았다.
“으음….”
꽤 심각한 표정으로 여유롭게 커피의 맛을 음미하는 인영.
‘뭐야… 원래 커피가 이렇게 맛있는 음료였나?
엄청 달콤하고 고소하고… 우유의 풍미가 엄청 깊어…!’
분명 사무실에 올 때마다 늘 마시는 커피였을 터인데,
오늘따라 커피의 맛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구수하고 진한 커피의 향과 풍미 깊고 달콤한 우유와 한데 섞여,
호텔 바리스타도 못 만들 것 같은 고급스러운 맛을 자아내고 있었다.
“오늘따라 커피가 평소보다 더 맛있는 거 같아!
평소랑 다른 재료라도 넣은 거야?”
어느새 한 잔을 모두 비우고 빈 잔을 내려놓는 인영.
도대체 채리가 커피에 뭘 넣었는지 궁금해질 정도의 맛이었다.
“아… 아주 고급스럽고 영양가 있는 재료를 넣었어요.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아주 귀한 재료랍니다.”
“그래! 그래서 그게 뭔데?”
“후후…♥ 조만간 알게 되실 거에요.”
채리의 눈빛과 말은 아주 수상하고 의심쩍다고 생각할 만했지만,
인영은 그저 입에 남은 커피와 우유의 풍미가 너무 좋아 푹 빠져있기만 했다.
텀블러 안에 들어 있던 우유 같은 재료의 정체는 바로 도화의 모유.
모유 개량이라는 이능력 덕분에 매일 같이 몇 리터씩 짜낼 수 있는 데다가,
맛과 영양까지 아주 탁월해 시윤과 슬레이브들이 좋아하는 음료이다.
게다가 각인의 잠식도를 올리는 것과 함께 강렬한 최음 효과까지 같이 포함되어 있어,
암컷을 공략하는 데에 있어 아주 좋은 물건이었다.
‘뭔가 저 커피를 마시니까… 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커피에 넣은 건 아주 적은 양이었기에 효과가 그렇게 대놓고 드러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인영은 몸이 조금 따뜻해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이렇게 더 타서 놓고….”
채리는 같은 레시피로 손님에게 대접할 커피를 더 탄 뒤,
손님이 앉을 자리 앞에 내어놓았다.
– 똑똑똑ㅡ
“오신 것 같네요. 들어오세요!”
채리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의 문을 열자,
훈훈한 인상의 건장한 남자 한 명이 번듯한 정장 차림으로 웃으며 걸어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관리과 4팀 팀장하재윤이라고 합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건 관리과 4팀의 팀장인 하재윤.
정확히는 번듯한 정장 차림으로 그를 연기하고 있는 시윤이었다.
“아앗…♥ 주… 아니 재윤 팀장님! 여기 앉으세요.”
채리는 자신도 모르게 시윤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려다,
지금이 인영을 꾀어내기 위한 작전이라는 걸 다시 상기하며 말을 고친다.
“커피… 참 좋아하는데.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시윤은 인영이 마신 것과 같은 커피가 담긴 잔을 들고 향을 맡더니,
무엇이 들어갔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마셨다.
“그래서… 페어 역할을 할 히어로라는 게 무슨 이야기죠?”
채리를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냉랭하고 무례한 태도.
인영은 상당히 고압적이고 깐깐한 태도와 말투로 시윤에게 물었다.
“페어 역할을 할 히어로라는 건 즉,
쉽게 말해서 아이언메이든 님을 옆에서 도울 히어로를 붙여드린다는 겁니다.”
시윤은 함께 들고 온 가방에서 태블릿 하나를 꺼내더니,
화면을 이리저리 조작하다 아이언메이든 앞에 내어놓았다.
“이 문서를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태블릿 화면에는 열 명 정도 되는 A급 히어로들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뛰어난 사격술을 통해 지원 사격이 가능한 히어로라거나,
혹은 주위에 있으면 근력이나 시력 같은 걸 북돋워 주는 이능력을 가진 히어로라거나.
“흐음….”
적어도 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 A급 히어로들이었기에,
어지간한 히어로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대단한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이능력의 힘을 가진 인영에게는,
그저 걸림돌이나 될 법한 별거 아닌 잔챙이들일 뿐이었다.
“딱히 괜찮아 보이는 분이 없는데요.”
거의 던지듯이 시윤의 앞에 태블릿을 내려놓는 인영.
‘생각보다… 좀 싸가지 없는 녀석이네.
아니지. S급 히어로로서의 자존심이라는 건가?’
시윤은 감히 일개 암컷 따위가 자신에게 이런 태도를 보인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녀가 강자라는 건 확실했기에 오만한 태도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게다가 어차피 저 오만한 암컷의 손에 닿기만 한다면,
저런 드높은 자존심 따위는 금방 짓밟아버릴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건 어떠실까요?”
이 정도면 충분히 뜸을 들였다고 생각한 시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태블릿이 들어있던 가방 안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꼭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고는 일부러 아이언메이든의 손에 직접 꼭 쥐여주면서,
그녀의 손이 자신의 손과 맞닿을 수 있도록 했다.
‘뭐야 이 사람…? 이 정도면 관리과 팀장이라기보단 물건 팔러 온 영업사원이잖아.’
이상할 정도로 적극적인 시윤의 태도가 미심쩍었지만,
어차피 페어 히어로를 붙여준다는 목적은 들어주지 않을 생각이었기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 상태 : 각인 1단계 (잠식도 0%) ]‘역시 주위 사람을 먼저 공략하는 선택은 옳았던 것 같군.’
물론 인영이 생각하는 건 시윤의 진짜 목적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