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160)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160화(160/186)
***
채리와 인영 두 사람은 관리과 4팀 팀장 하재윤과의 미팅을 마친 후,
해가 저물어가는 동안 사무실 안에서 열심히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으으… 차라리 출격할 일이라도 생겼으면 좋았을 텐데.”
보통 일반적인 히어로들은 인영이 하고 있는 업무를 할 필요가 없다.
가끔 활동 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나 간략한 보고서를 작성하지,
대부분의 일은 관리과에서 처리하기 때문이다.
“아이언메이든 님께선 세 명 뿐인 S급 히어로시잖아요.
다른 히어로들과는 또 다른 막중한 임무가 있으신 거에요.”
인영이 히어로 역량 관리나 운영 예산 확정안 같은 관계 없는 업무 처리에 동원되는 건,
그녀의 직위인 S급 히어로는 엄연히 연합의 간부와 같은 직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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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에 다른 히어로들은 볼 필요도 없는 서류를 꼼꼼히 읽고,
뭔지도 모르는 내용을 전부 확인하며 사인까지 일일히 마쳐야 한다.
게다가 함께 일을 나누어야 할 나머지 두 명의 S급 히어로가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기에,
사실상 인영 혼자서 세 사람분의 일을 전부 도맡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다른 히어로들과는 달리 아주 중요한 전장에만 출격하기에,
업무 처리조차 없는 날에는 사실상 백수나 다름없는 한가로움을 자랑하기도 한다.
‘난 매일 같이하는 일인데…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렇기에 인영의 앙탈은 채리의 눈엔 그저 별거 아닌 투정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으아! 이제 이거만 사인하면 끝이야… 이제 끝이라구!”
일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려 혈안이 되어 있는 인영.
서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눈에 핏줄이 설 정도였다.
“그으으으… 으아!”
그리고 마침내 그 마지막 서류까지 사인한 후,
팔을 쭉 펴 우렁한 기합과 함께 기지개를 켜며 자기 일이 끝났음을 자축했다.
“아… 어차피 퇴근까지 10분 남았었구나.
뭐… 빨리 안 했으면 내일 쉬지도 못했을 테니까!”
퇴근까지 생각보다 그렇게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는 기쁨이 식으려다가도,
그래도 열심히 했으니 내일은 놀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푼다.
“우리 비서 님은 얼마나 남으셨으려나?”
“어… 아직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출장 다녀온 사이에 밀린 게 아직 좀 남아서… 그래도 오래 걸리지는 않겠네요.”
인영은 일하는 중간에 간식이라도 먹으며 쉬는 시간을 가졌지만,
채리는 그마저도 거르며 쉬지 않고 키보드를 두드리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 그러면… 끝나고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러 갈까?
출장도 끝나고 온 김에 소갈비 먹으러 가자!”
반짝거리는 눈으로 채리에게 소갈비를 먹으러 가자고 조르는 인영.
“오늘 업무 후에 선약이 있어요.
출장 가기 전부터 잡혀 있던 약속이라… 취소할 수도 없어요.”
그러나 채리는 약간은 수줍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선약이 있어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대답했다.
“에엥? 선약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보통 퇴근 시간대가 된 채리는 시들어버린 식물처럼 비실거리다,
자리에서 힘없이 일어나 가방을 메고 터덜터덜 사무실을 나서는 것이 일상.
그러나 지금은 업무를 쉬지 않고 계속하면서도 지친 기색이 없고,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다크서클도 오히려 옅어진 듯 보였다.
‘뭐야…! 평소에는 힘들다고 누구 만나러 가지도 않더니…,
갑자기 웬 약속이 잡혔다는 거지?’
어지간하면 퇴근 후에 개인 약속을 잡지도 않고,
심지어는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단체 회식 자리에도 웬만하면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게 채리.
‘설마… 진짜 남자 생긴 거 아니야?’
아침에 했던 그 의심을 다시금 떠올리게 할 정도로 수상쩍다고 느껴졌다.
“끄으으…!”
혹시나 정말 채리에게 남자친구가 생겨 자신과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결국 짝사랑에서 그치고 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구 솟아났다.
‘수상한데… 미행이라도 해볼까?’
채리의 업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나가 미행이라도 하겠다는 심산.
인영은 일부러 배고픔을 참고 다른 업무가 있는 척 태블릿을 뒤적거리며,
채리의 손가락이 키보드에서 떨어지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 10분, 15분, 20분.
30분에는 살짝 미치지 못하는 시간이 흘렀을 무렵.
“그럼 전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저녁 식사 맛있게 하세요.”
“아! 응….”
채리가 자리에서 일어는 것부터 유심히 살피는 인영.
늘 까먹어서 새로 산다는 충전기까지 가방에 제대로 넣고,
재킷을 입고 가방을 어깨에 멘 뒤 사무실의 문을 열어 나서는 과정까지 확인한다.
“나간 거 맞겠지?”
채리가 퇴근 준비를 마치고 나간 걸 확실하게 확인한 채리.
곧바로 재킷을 입고 그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확실해. 원래라면 저렇게 퇴근할 때 경쾌하게 걷지 않아.
내가 저 뒷모습을 얼마나 많이 봤는데…!’
채리를 짝사랑하며 그녀가 눈에 담고 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걸음걸이.
지쳐 터덜거리는 것이 아닌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 느껴지는 무브먼트였다.
‘으아앗! 이러다가 놓치겠어…!’
채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재빠르게 1층까지 내려가려 하자,
인영은 다급하게 바로 옆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다행히 두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타이밍 차이가 크지 않아,
인영은 채리의 뒤를 놓치지 않고 무사히 미행을 계속했다.
그렇게 히어로 연합 사옥을 나온 채리와 인영.
채리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홀로 거주하고 있는 오피스텔 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에 있는 연합 근방에 있는 번화가로 향했다.
‘뭐지…? 여기는 죄다 술집이나 노래방 같은 게 있는 곳인데….
정말 친구라도 만나러 나온 거려나?’
마침 인영이 채리를 미행하고 있던 날은 직장인들의 임시 해방을 알리는 금요일.
내일이 주말이니 마음껏 먹고 마시자는 생각을 하는 직장인들이 많고,
채리도 마찬가지로 그런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친구를 만나러 온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채리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근방에 보이는 술집이나 음식점이 아닌,
꽤 고급스럽고 가격대가 있어 보이는 한 호텔.
호텔 앞에서는 인영의 눈에도 익숙한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잠깐만… 저 남자… 아까 그 하재윤 팀장 아니야?’
채리는 하재윤 팀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무언가 대화를 나누더니,
기쁜 듯 활짝 웃으며 품에 안기기까지 한다.
‘끄으으…!!!’
인영은 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예상이 맞아떨어지자,
참을 수 없는 질투심에 피가 나올 정도로 입술을 꼭 깨물었다.
하지만 폭발하는 질투심에도 미행을 멈추지 않는 인영.
두 사람이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며 호텔 안으로 들어가자,
인영도 아무렇지 않은 척 조심스럽게 호텔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뭐야… 진짜 저 두 사람 사귀기라도 하는 거야?
안 그러면 이런 호텔에 같이 다정하게 올 리가 없잖아…!!’
입술에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두 사람이 어느 호실에 묵는지 엿들으려는 인영.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둔 채 청각을 곤두세운다.
‘1107호… 오케이….’
두 사람이 묵는 객실이 1107호라는 것까지 확인한 인영.
카드키를 받아서 든 두 사람이 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리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자 곧바로 데스크 앞에 달려갔다.
“혹시… 1108호 방 남나요?”
“예? 1108호… 라면 빈 객실이기는 합니다만…,
예약하지 않고 현장에서 구매하시는 경우에는 조금 더 가격대가….”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급하게 달려가는 인영.
구체적인 객실 번호까지 운운하는 손님은 보통 없으니,
호텔 프런트 직원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상관 없어요.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꼭! 그 방에서 오늘 하루 자게 해주세요.”
그러나 인영의 입장에서는 돈이 문제가 아닌 상황이었고,
프런트 직원도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걸 눈치챈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결제는 이쪽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
평소에는 올 일도 없는 값비싼 스위트룸 안에 짐 하나 없이 홀로 들어온 인영.
“칫…! 꼭 확인하고 말 거야.”
깔끔하고 정갈한 객실 내부를 볼 필요도 없다는 듯,
문도 제대로 닫지 않고 곧바로 채리가 있는 객실 쪽 벽에 귀를 바짝 댄다.
“아앗…♥ 주인님…♥”
그러자 약간 어렴풋이 들리기 시작하는 1107호의 소리.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애교 넘치는 목소리가 누군가를 주인님이라 부르며,
온갖 아양을 다 떨고 있는 것이 인영의 귀에 들어왔다.
‘엥…? 저게 선배 목소리일 리가…?’
인영이 알고 있는 채리의 목소리와는 좀 다르기도 했고,
방음이 어느 정도는 되는 상황이었기에 자신이 헷갈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 저 방은 두 사람이 묵고 있는 1107호가 확실하다.
그리고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버릴 그 다음 대사.
“꺄앗…!♥ 그렇게 거칠게 하시면… 보지 축축하게 젖어버려요…♥”
채리가 저렇게나 천박하고 음란한 말을 입에 담을 리 없었지만,
분명 애교와 아양이 잔뜩 섞인 채리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끄으으으으…!!!”
질투심이 폭발하고 또 폭발하는 인영.
입술도 모자라 이제는 손가락까지 물어뜯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다음에 들려올 채리의 세 번째 말은 곧 인영의 행동을 멈춰버렸다.
“그런데… 누가 옆에서 엿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왠지 엄청나게 질투하면서 입술을 깨문다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