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176)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176화(176/186)
***
enN1WnIzcFhHMVJuR0JvdkNPc013emF4c3JiZlgyd05LcVFyeWJaeDRMblpqKzg2MktPWkhqRW9YQ0lpVTlxZA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분주하게 지나다니는 수많은 차량.
전철은 매일 같이 바쁘게 철도를 따라 움직이는 전철.
누군가에게는 아주 일상적이고 쉽게 볼 수 있는 그 풍경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저 세상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기준과 방향을 정해놨기 때문이고,
그 기준 위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할 방법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삶 속에서도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라는 존재는,
친구나 연인부터 가족에 이르기까지 필사적일 정도로 관계라는 것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또 다른 도시의 인간이 태어나고,
그들이 또 관계를 맺으며 그 다음 세대가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하게 만들어지고 볼 수 있는 그런 도시의 가정에서,
한채리는 어느 누구나 걸어올 법한 평범한 길을 걸으며 자라나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라고 말해도 들을 사람은 없겠지.”
왜 다니는 줄도 모르겠지만 부모님이 가라고 하니까 다니는 학원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어도 그녀를 반겨주는 이는 없다.
그저 집안의 차가운 공기가 휘이잉 하고 불어오는 소리,
그리고 그 바람 때문에 저절로 현관문이 닫히며 잠금 장치가 움직이는 소리만 날 뿐이다.
“오늘도 야근이면… 또 컵라면이나 먹어야겠네.”
채리가 컵라면 한 개로 저녁 끼니를 때우기 시작한 지도 벌써 몇 년째.
심지어 이번 주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홀로 끼니를 때우고 잠드는 중이다.
물론 채리가 이렇게 매일 같이 영양실조에 걸릴 것만 같은 식사에 허덕이게 할 정도로,
그녀의 부모가 그녀를 방치하고 싶어 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건 전혀 아니다.
‘다 너를 훌륭하게 키워내기 위해서 고생하는 거야’
‘네가 먹고 입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어’
현대 사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꼭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부모의 변명.
저런 말을 아이에게 해야만 하는 부모의 마음을 차마 헤아리기 어렵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미안하다는 말도 자꾸만 내뱉다 보면 아무렇지 않게 되는 법이다.
그런 말을 한두 번 들었어야 그걸 듣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다 보면 나중엔 잘 들리지도 않는다.
“아… 이거 어제 먹었던 건데. 다른 거 뜯기는 아까운데….”
심지어는 어제 먹었던 같은 맛의 컵라면보다도 더 질릴 정도니까.
– 띠링ㅡ
“이런 거 안 보내도… 야근하는 거 다 아는데.”
컵라면 말고 도시락이라도 같이 사 먹으라는 소정의 용돈이 담긴 메시지.
어릴 땐 그저 돈이 생겼다며 기뻐했지만 이젠 귀찮기만 할 뿐이다.
“귀찮아… 그냥 이거나 먹고 잘래.”
채리는 맞벌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를 정도로 어릴 때부터,
부모의 관심이라고는 제대로 받아본 적도 없이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게 몇 년이 더 지나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니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채리의 부모는 이전처럼 야근을 하거나 집을 비우지 않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 때마다 어색할 정도로 따뜻하게 맞이하고,
가방과 외투를 벗으며 거실에 들어설 때면 식탁 위에는 벌써부터 식사가 마련되어 있다.
“왔니?”
“배고프지? 채리가 좋아하는 걸로 차려 놨으니까 씻고 와서 먹어.”
마치 화목한 가정을 급조해 연기하려는 듯한 엄마와 아빠를 보고 있자니,
채리는 도저히 그 연기를 받아줄 용기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입맛 없어요. 두 분이서 드세요.”
20년 가까이 살아오는 동안 아무런 관심도 준 적 없으면서,
이제와서 다정한 척 다가오려고 하는 부모는 그저 남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일 뿐.
오히려 자신이 곧 스무 살이 되니 무언가 뜯어내려는 건 아닐지 걱정되고,
자신을 키워준 대가를 받겠다는 건 아닐지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지 말고… 엄마 아빠랑 앉아서 같이 이야기라도 하면 안 될까?”
“그래! 우리 채리가 뭘 하고 싶은지… 엄마 아빠가 뭘 도와주면 될지 궁금해서 그래.”
채리의 부모가 갑자기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를 낳고 나서 쉬지도 못하고 20년 가까이 일에만 몰두하고 나니,
이제서야 일이 아닌 가족을 돌아볼 틈이 생겼으니까.
이제 와서라도 묵묵히 버텨준 딸에게 대화를 청하고 싶었으니까.
“도와줄 필요도 없고 관심 가져줄 필요도 없어요.”
하지만 돌아오는 건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지 오래인 딸의 마음.
그녀의 부모는 평소 채리가 묵묵하고 말수가 적을 뿐이라고 생각했을 뿐,
집을 떠나기 전까지 몇 개월 동안이나 말 한 번 못 붙여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돌아올 일 따위… 없을 거야.’
그렇게 채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해 성인이 되었고,
자신은 그저 세상에 홀로 떨어진 존재일 뿐이라 되새기며 집을 떠났다.
학창 시절 딱히 공부에 소질이 있어 좋은 대학에 간 것도 아니었지만,
채리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숨기고 있었던 재능이 있었다.
무엇이든 날붙이의 형상을 하고 있다면 자유롭게 검처럼 다룰 수 있는 이능력.
자그마한 면도칼이나 커터칼부터 서슬 퍼런 날을 자랑하는 진검까지,
채리는 검술 한 번 배워본 적 없음에도 그 어느 검객보다 훌륭하게 검을 다룰 수 있었다.
그걸 알게 된 건 학창 시절 억지로 들어가게 된 동아리 때문이었지만,
어찌 보면 채리에게는 행운이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그 대단한 이능력을 알게 된 덕분에 너무나도 쉽게 어떤 일에 닿을 수 있었으니까.
채리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집을 떠나 히어로 연합의 공채 히어로 시험에 도전했고,
당시 지원했던 수백 명의 도전자를 제치고 히어로가 되었다.
워낙 강력한 이능력을 가진 덕분인지 채리는 활동을 시작한 이후 빠르게 실적을 쌓아 올렸고,
불과 2년 만에 그녀는 A급 히어로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채리에게는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오늘도… 다리랑 어깨가 말썽이네… 으으….”
보통 사람보다도 더 쉽게 다칠 정도로 유리몸이라는 것.
그녀가 3년 차가 되었을 때는 한 번 출격하면 일주일을 쉬어야 했을 정도였다.
아무리 철저한 관리를 거쳐 몸을 만들어도 점점 심해질 뿐이었고,
연합에서도 나름대로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애초에 몸을 쓰는 일을 해서는 안 될 정도로 신체 자체가 연약했고,
그런 몸으로 몇 년이나 히어로 일을 하니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선배… 정말 괜찮은 거에요?”
과거부터 친한 후배이자 당시 아직 A급 히어로였던 인영도 그녀를 걱정했지만,
채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하게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날이 가면 갈수록 채리의 몸 위에 덧대어지는 파스는 늘어만 갔고,
밤마다 그녀가 머무는 기숙사에서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정말… 그만둬야 하는 건가…?’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몸을 보며 문득 드는 생각.
‘아니야… 아직 더 할 수 있어.’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괜한 고집으로 덧씌워졌고,
그럴 여유 따위는 없다며 고개를 이리저리 내젓기만 했다.
만약 이 일을 이 자리에서 그만두게 된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하겠지만,
왠지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부모와 같은 처지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런 부모를 혐오해 제멋대로 연을 끊고 기껏 집 밖으로 뛰쳐나왔으면서,
결국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때문이었다.
그런 공포심과 불안함 때문이었을까.
“앞으로… 히어로 활동을 지속하시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애초에 지금은 걷는 게 가능할지부터 걱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고 결국 양쪽 다리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말았고,
연합의 의사로부터 더 이상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견을 받아야 했다.
“전처럼… 금세 나아서 다시 활동할 수는 없는 건가요…?
돈은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으니까… 제발 고쳐 주시면 안 될까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채리는 주치의를 붙잡고 간절하게 애원했다.
“관절은 애초에 손상이 심해져 있었고… 이제는 신경까지 위험합니다.
잘못하다가는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실 거에요.”
그러나 채리의 몸은 간절한 마음에 따르기에는 이미 심하게 망가져 버렸고,
결국 그녀는 히어로 활동에서 손을 떼고 큰 수술에 들어가야만 했다.
히어로 활동은 고사하고 걸어 다닐 수는 있어야 했으니까.
“다행히 수술은 아주 잘 끝났습니다.
손상된 부분은 인공 관절로 대체했고… 관절과 신경 부분에 미세한 장치를 삽입했습니다.
아마 재활 치료만 좀 하시면 금세 예전처럼 걸어다닐 수는 있을 거에요.”
장장 열 시간이 넘는 긴 수술 끝에 다행히 걸을 수는 있을 거라는 의사의 말.
하지만 히어로 일을 재개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왔다.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모든 걸 다 버리고 뛰쳐나왔는데….’
더 이상 A급 히어로 ‘블레이드’가 아니게 된 채리는 절망했다.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고 해서 히어로 일에 복귀하는 건 불가능하고,
결국에는 자신이 혐오했던 삶의 모습을 향해야 했으니까.
앞으로 일주일 정도 밖에 머물 수 없게 된 기숙사에 틀어박힌 채,
해가 뜨고 질 때까지 침대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쏟아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