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193)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193화(19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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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인류와 세계에 들이닥쳤던 전쟁의 흐름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을 즈음,
세계 곳곳에서는 알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자고 일어나 보니 알 수 없는 이형의 모습으로 변해버리거나,
혹은 인간 스스로의 의지로 자연 현상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거나 하는 기묘한 일.
이 현상을 겪은 이들은 그저 같은 인류라는 것 말고는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고,
마치 마법과도 같은 기이한 능력에 사람들은 ‘이능력’이라 이름을 붙였다.
이능력자들은 능력을 적재적소에 이용하여 풍요한 삶을 살기도 했지만,
몇몇 이들은 힘에 취해 사람들을 공격하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기 시작했다.
‘빌런’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이들은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손꼽혔고,
각국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이 빌런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빌런 문제를 겪는 건 전쟁 이후 황폐해지었던 대한민국도 다르지 않았고,
당시 정부는 대규모의 군사 조직을 만들어 해결하려 했으나 쉽게 빌런을 제압하지 못했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서서히 회복해가던 경제와 사회는 빌런에 의해 다시 무너질 위기였고,
시민들은 누군가의 영웅적인 등장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분! 안심하세요! 저희가 시민 여러분을 지켜드리겠습니다!”
평범한 이들의 소원을 신이 들어주기라도 한 것처럼,
빌런 범죄율이 극에 달해갈 시기에 혜성처럼 나타난 여러 명의 영웅.
마치 서양권 만화에 등장하는 히어로를 쏙 빼닮은 멘트와 복장,
그들처럼 강력한 힘과 정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시민을 지키는 이들이 나타났다.
자신들을 ‘히어로 연합’ 소속의 히어로라고 칭한 이들의 등장 이후,
빌런 범죄율은 아주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는 이들의 등장에 놀라 ‘히어로 연합’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고,
곧 연합을 창시한 중심인물이자 그들을 이끄는 총수와 만날 수 있었다.
“총수께서 국가와 긴밀하게 협력을 맺어 국민을 수호한다면,
그 어떤 지원이라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평범한 이들은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엄청난 체격에,
아주 남성적이고 믿음직스러운 외양을 가진 30대 남성이었던 총수.
“시민을 지킬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감수하겠습니다.”
정부 부처와 협력 관계를 맺은 그는 수도인 S시에 본부를 세우는 것부터 시작하여,
대한민국 곳곳에 연합 지부와 히어로 육성 시설을 만들어 나갔다.
서서히 시간이 지나며 그의 정의로운 의지를 이어받은 이들이 자라나,
수천 명의 히어로와 수십 만명의 조직 요원들이 양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들의 활약으로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던 빌런들이 서서히 줄어들었고,
시민들은 안심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을 맞이했다.
***
연합을 이끌며 그 누구보다도 분주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총수.
총수이자 히어로이기도 한 그가 지켜야 하는 건 대한민국의 시민이었지만,
그들만큼이나 더욱 소중하게 지켜야만 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히어로 연합을 세운 이후 같은 창립 멤버였던 여성 히어로와 사랑에 빠졌던 총수.
그는 아름다운 분홍빛 머리칼과 고운 심성을 가진 그녀와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쌍둥이 아이가 태어났다.
“아빠! 꺄아아아!”
“하하! 이 귀여운 녀석들.”
엄마를 닮아 분홍빛 머리카락과 진홍빛 눈을 가지고 태어난 두 딸아이.
각각 ‘수아’와 ‘지아’라는 이름을 가진 두 딸의 외모는 총수와 그의 아내도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외모가 아닌 다른 것들로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가능했다.
수아는 아버지를 닮아 강직하고 활발하면서도 올바른 심성을 지녔고,
그가 가끔 집으로 돌아올 때면 가장 먼저 달려가 안기는 아이였다.
지아는 수아와는 달리 차분하고 침착한 성격을 가진 아이였고,
수아처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어른스럽고 상냥한 아이였다.
총수와 그의 아내는 두 딸아이를 차별 없이 모두에게 사랑을 주려 노력했고,
그 덕분인지 아이들은 사랑을 가득 머금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다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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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겠습니다.”
두 딸은 자라나면서부터 그 성격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활달한 편이었던 수아는 항상 정신 없이 뛰어다니길 좋아했고,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리더십을 가진 편.
그와 반대로 지아는 조용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즐기고,
활동적이지 않은 대신 명석한 두뇌와 상당한 수준의 학업 성적을 보였다.
총수는 두 딸의 성장을 바라보며 늘 흐뭇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지만,
그가 그런 흐뭇한 미소를 잃어버리게 되는 일이 얼마 뒤 일어나고 말았다.
그가 설립한 히어로 연합이 정부 부처와 협력 관계를 맺고 지원을 받으면서,
연합은 빌런 범죄는 물론 온갖 다양한 목적에 끌려다녀야 했다.
히어로로서의 일은 기본이고 때로는 경찰과 군이 해야 할 일을 도맡아 했고,
그만큼 총수인 그의 업무는 가족에게 고개도 돌리지 못할 정도로 바빠졌다.
하지만 그 잠시의 무관심은 너무나도 손쉽게 그의 소중했던 보물을 망가트리고 말았다.
“아빠는 오늘도 바쁘게 일하고 계시니까… 우리끼리 먼저 먹을까?”
여느 날처럼 총수가 돌아오지 않고 있던 날의 이른 저녁.
아내는 두 딸과 함께 그를 기다리며 먼저 저녁 식사를 들고 있었다.
– 쿠당탕탕ㅡ!!
어째서인지 현관 쪽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렸고,
아내는 두 딸을 안심시키며 무슨 일인지 살펴보러 현관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소리가 났을 때 현관으로 향하는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히어로 연합에 크나큰 원한을 가진 빌런이 어떻게 총수의 집을 알아냈는지,
이른 저녁 현관문을 부수고 그녀의 아내를 살해한 것이다.
“안 돼… 이게 무슨 일이야! 이… 이럴 순 없어…!!”
아내가 죽음을 맞이한 그날부터 총수는 급격하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당장 찾아… 당장 찾아오란 말이야!!!!!”
총수의 막강한 힘을 이용해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는 찾아낸 범인을 자신의 앞에 데려오라 명령했고,
그 범인을 집무실 바닥에 내던진 채 아주 폭력적인 복수를 행했다.
– 쾅ㅡ 쾅ㅡ 콰드드득ㅡ 콰지직ㅡ
“이 쓰레기 같은 새끼… 뒤져… 뒤져… 뒤져…!!!!!!”
밧줄과 테이프에 전신이 포박된 범인을 테이블과 책상으로 과격하게 내리치고,
뼈가 으스러지고 바짓단이 붉게 물들 때까지 짓밟길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그런 과격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아내가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고,
남아 있는 딸들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총수는 절망했다.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히어로의 대표인 그가,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족을 너무나도 쉽게 잃어버렸으니까.
수백 수천만 명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소중한 가족에게 잠시도 고개를 돌리지 못했던 자신을 원망했다.
총수는 강직했던 이전의 모습을 서서히 잃어가기 시작했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채 죽어버린 아내의 이름을 되뇌이기만 했다.
어머니의 죽음과 무너져 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자라나던 두 딸에게도 영향이 미치기 시작했다.
활달하고 건강한 아이였던 수아는 어머니의 죽음을 보며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치료에 들어갔다.
“언니… 괜찮은 거야? 많이 아프지는 않은 거야?”
“아빠! 어제부터 한 끼도 못 드셨잖아요. 이거라도 드시고 나가요.”
늘 조용하고 소심했던 지아는 허약해진 언니와 무너져버린 아버지를 지탱하기 위해,
용기를 내고 두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며 노력했다.
그러나 언니의 몸 상태는 나날이 허약해져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할 정도였고,
술에 찌든 아버지의 몸도 조금씩 말라만 갔다.
‘내가… 내가 소심한 아이여서… 가족을 지킬 수 없었던 걸까…?’
그들을 지탱하고자 했던 어린 지아의 마음도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고작 초등학생이었던 그녀가 엄마의 죽음을 겪고,
가족들의 침몰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스러운 입장이었으니까.
설상가상으로 총수인 아버지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자,
대한민국의 빌런 범죄율은 다시 급증하기 시작했다.
총수는 건강 문제를 핑계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길 거부했고,
히어로 연합은 설립 이래 가장 큰 위기를 겪어야만 했다.
끔찍한 상황은 지아와 수아가 10대 중반에 이르러서도 잦아들지 않았고,
무너지던 지아의 마음은 아주 부정적인 방향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시민을 지키는 히어로라고 하면서 가족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를 원망했고,
늘 히어로에게 구원받기를 기다리는 무능력한 인간들을 혐오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자유의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야 하고,
그들을 강력한 권력과 통제력으로 지배할 존재와 어울리는 힘이 필요하다고.
그 존재가 되고자 분홍빛 머리카락을 가진 한 아이는 이름을 버렸고,
‘카이저’
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지배자가 되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