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2)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2화(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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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딱 가만히 멈춰 서 계시지? 안 그러면 그냥 구워 버린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무시하고 뛰어들어야 하나?’
어떻게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쳐서 보석 판 돈으로 쉴 생각이었는데.
역시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었다.
A급 히어로 이그니션은 그 자리에서 거만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저, 저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전 그냥 살려고… 먹고 살려고! 취업하기 어렵잖아요 요즘… 그죠? 하하….”
“변명하지 말고 얌전히 거기서 나와. 안 그러면 진짜 다친다?”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애써 사람 좋은 미소라도 지어 보았지만,
그다지 효용성 있는 행동은 아닌 것 같았다.
이미 그녀의 주먹에는 다시 한번 불꽃 스파크가 튀고 있었으니까.
“으아아아아!!!”
난 다시 몸을 돌려 그 구멍 안으로 뛰어 들었다.
그대로 서 있다가는 진짜 오줌이라도 지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철판으로 되어 있는 탈출구를 미끄러지듯 한참인가 내려간다.
마찰력 때문에 엉덩이에 불이 날 지경이었지만 그 또한 길지 않았다.
– 쿠당탕탕!!
“으아아아아악!!”
히어로들의 습격으로 인해 아지트 건물이 많이 파괴된 건지,
탈출구가 누군가 싹둑 잘라 놓은 것처럼 갑자기 뚝 끊겨 버린 것이다.
“푸흡.”
이미 히어로 이그니션은 그 탈출구 구멍 앞에 서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아! 아으….”
탈출구에서 떨어지면서 주머니에 넣어 둔 보석이 깨져버린 건지,
조각난 파편으로 추정되는 물건이 내 다리를 날카롭게 찔러댄다.
“다친다고 분명 말했는데?”
그녀는 한심한 얼굴로 나를 비웃었다.
저 잘나신 히어로한테는 내가 얼마나 못 나 보일까?
자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안 되는 날파리 같은 놈이 살겠다고 이러고 있으니.
“얌전히 따라오기나 하시지? 엄살 부리지 말고.”
절망적인 현실이다.
정말 이대로 끌려가서 감옥에라도 갇히는 걸까?
아니면 그보다 더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되는 걸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빌런이 되겠다는 나쁜 마음을 먹고 여기 온 건 맞지만, 나도 나름 고생 많이 했는데!
난 억울하다고!
– 키이이이이이이이이잉-
깨진 보석 조각들이 든 바지 주머니에서 갑작스레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으악! 이게 무슨 소리야?”
“으으으으으…!”
고막을 터트릴 것만 같은 날카로운 굉음이 잠시 울리더니,
그 굉음이 잦아들자 이번엔 눈이 부시다 못해 멀어버릴 정도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어두컴컴한 창고 하나를 대낮의 길거리처럼 환하게 만드는 빛.
그 빛은 나와 그녀에게도 작렬하더니 아까의 굉음처럼 다시 금방 사그라졌다.
“으으으으….”
“아으… 눈 아파….”
허벅지를 찌르던 보석 조각들은 빛을 방출하고 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고개를 들었을 땐 이그니션이 내 위에 넘어져 있었다.
“뭐야!”
“으아악!”
그것도 그녀의 가슴을 내가 받치고 있는 자세로.
“이… 이… 변태 새끼야!!!”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일단! 일단 진정하시고!”
이그니션은 극도의 수치심을 느낀 듯 빨개진 얼굴로발을 동동 굴렀다.
이젠 진짜 죽었다고 생각하며 체념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잔뜩 성이 난 그녀 옆에 무언가 불투명한 화면 같은 게 둥둥 떠 있는 게 보인다.
[ 대상 정보 : A급 히어로 ‘이그니션’ 윤도화 ] [ 능력 : 발화 ] [ 상태 : 각인 1단계 (잠식도 0%) ] [ 사용 가능한 명령 : 신체 조종 / 이능력 무효화 / 발정 ]분명히 이런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RPG 게임이나 이세계 전생을 주제로 하는 만화 같은 곳에 흔히 등장하는 상태창.
정확히는 내가 아닌 상대의 정보를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설마 보석에서 나온 빛 때문에 이런 능력이 생긴 건가?’
히어로 등급와 히어로 네임, 그리고 능력까지.
내 기억 속의 정보와 대조해 보면 확실히 저 히어로 녀석을 나타내는 게 맞는데…
상태에 있는 ‘각인’과 사용 가능한 명령이 어떤 건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 ‘각인’은 상대의 신체에 직접 접촉했을 시 새기어 넣을 수 있습니다. ] [ ‘명령’은 ‘각인’이 새겨진 대상에게만 사용 가능합니다.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더니 친절하게 안내 메시지를 출력하는 상태창.
궁금한 걸 바로 이렇게 알려주다니 꽤 친절하다.
근데 내가 이그니션한테 직접 접촉한 적이 있었나?
…아. 아까 그 가슴.
아무튼 중요한 건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거다.
분명 ‘각인’이 새겨진 대상에게는 ‘명령’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예를 들면 저 ‘이능력 무효화’ 라던가.
[ 대상 : ‘이그니션’ 윤도화에게 이능력 무효화를 적용합니다. ]사용 가능한 명령을 생각하자 곧바로 화면 아래에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근데 이거. 정말 적용되는 거긴 하는 거냐…?’
“순순히 날 따라오지 않겠다면… 그냥 불태워서 익은 채로 가져가는 수밖에.”
“뭐, 뭣?”
저런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정말 무시무시하다.
저 정도 깡은 되어야 A급 히어로가 되는 건가?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그냥 여기서 불타 죽으면 되는 거고,
만약 저 상태창 같은 게 진짜 갑자기 생긴 능력 같은 거라면 사는 거겠지.
ㅡ라고 생각하며, 윤도화가 나를 향해 손을 뻗어 불꽃을 발사하려는 순간 눈을 감았다.
“어?”
“뭐… 뭐야? 왜 불이 안 나가지…?”
나를 향해 뻗은 윤도화의 오른쪽 손바닥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메시지의 내용처럼 이능력 무효화가 작동한 것이다!
“에잇! 으이잇! 불이 안 나오잖아!”
윤도화는 손을 계속 흔들었지만 불꽃은커녕 작은 스파크도 튀지 않는다.
“푸흡….”
그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초짜도 아니고 A급이나 되는 히어로가 ‘왜 안 돼?’라고 말하며 당황하는 저 모습.
웃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에잇!”
– 퍽-!
비웃는 소리를 들은 그녀의 발차기가 내 머리에 적중했다.
“컥!”
“씨… 감히 날 비웃어?”
전투원 훈련에서 맞고 버티는 걸 몇 년째 하고 수많은 전투에 나가며,
주먹질이나 발차기 정도는 당연히 버틸 수 있는 공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대로 붕 떠서 밀려날 정도의 저 발차기는 도저히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어우 씨….진짜 목이라도 부러진 거 아니야?’
다행히도 이 튼튼한 몸이 발차기를 버틴 모양.
역시 A급 히어로는 능력 만으로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 부웅-
몸을 일으킬 틈도 없이 붕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날아오는 윤도화.
그녀가 날아오는 걸 순간 보기는 했지만 대처할 틈이 없다.
“머, 멈춰!”
[ 대상 : ‘이그니션’ 윤도화에게 신체 조종을 적용합니다. ]“으아아앗?!”
멈추라는 말에 ‘신체 조종’이 그대로 작동하자,
나를 향해 날아오던 윤도화는 그 자리에서 뚝 떨어져 주저앉았다.
“갑자기 몸까지 마음대로 안 움직여…!”
“겨우 살았네. 후우.”
넘어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그녀의 옆에 다가가자 하나의 메시지가 떠오른다.
[ 상태 : 각인 1단계 (잠식도 13%) ]잠식도가 0%에서 13%로 상승했다.
그렇다면 저 명령을 사용하면 사용할 수록 잠식도가 상승한다는 이야기겠군.
“…이런다고 뭐라도 될 거 같아?”
“뭐라도 되지 않겠어요? 일단 죽지는 않겠죠 뭐.”
잠시만.
지금 이 상황….
비록 밑바닥 전투원이긴 해도 빌런은 빌런이고,
이그니션 저 녀석은 지금 내 앞에서 무력화된 채로 저런 대사를 뱉고 있다.
뭔가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이 감정.
한 번이라도 히어로를 내 앞에 무릎 꿇게 만들고 싶다는 이 꿈!
이제서야 정말 빌런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온몸에 전율을 유발한다.
“크으으…!”
윤도화의 턱을 손가락으로 탁 세워 얼굴을 마주 본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빌런이 이렇게 하는 장면을 많이 봤다고.
흐흐흐.
“마… 만지지 마! 이거 놓으란 말이야!”
이 정도면 연예인이나 아이돌 가수를 해도 될 상당한 외모잖아?
뭔가 고양이 상과 강아지 상이 적절하게 섞인 듯한 스타일인데.
– 터벅터벅-
잠시 그녀의 외모를 감상하고 있었던 그때.
아래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단 여기서 자리를 피하는 게 좋겠는데….’
아무리 능력이 사기라고 한들 일단 살고 봐야 한다.
윤도화는 각인이 새겨져 있으니 명령으로 어떻게든 제압이 가능하겠지만,
다른 히어로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인을 새기는 조건은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다.
방금이야 우연히 윤도화의 가슴을 만져서 가능했던 거지,
다른 히어로라면 접촉은커녕 가까이 가보지도 못하고 곤죽이 될 수도 있다고.
힘을 얻은 김에 A급 히어로 님을 좀 더 가지고 놀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잠깐만. 혹시 이런 건 안 되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윤도화의 귀에 가까이 대고 속삭인다.
“오늘 오후 6시. 선남대학교 후문 앞에서.”
시간과 장소를 정확하게 정하여 내리는 명령.
이렇게 구체적이면서도 제한적인 것도 실행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하지만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무엇보다 A급 히어로에게 능력을 시험해 볼 기회를 버리기엔 아깝다.
“여기로 떨어지면 죽지는 않을 거 같은데. 사람도 없는 거 같고.”
그녀에게 일종의 암시를 내리고 창문 밖으로 그대로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