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20)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20화(20/117)
***
S시 시내 어딘가에서 영업 중인 한 카페.
근처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동네에 있지만,
조용한 분위기와 고소하고 향긋한 커피 향기에 이끌리는 손님들이 왕왕 흘러드는 곳.
귀에 아련하게 들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원두를 갈아내고 있는 한 여자가 있다.
– 띠링-
“어서 오세요.”
허리 너머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과 토끼 같은 붉은 눈의 카페 주인과,
그에 반해 길고 긴 하얀 머리카락과 파란 눈을 가진 손님이 마주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얼음 적게 넣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육감적인 몸매를 뒷받침하는 민소매 셔츠와 검은색 치마를 입은 여주인.
손님의 주문을 받고 다시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커피를 추출하기 시작한다.
“여기. 분위기가 꽤 조용하네요?”
다소 이국적인 외모를 지닌 푸른 눈의 손님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즈넉한 가게 분위기를 칭찬했다.
“네.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찾아 주신답니다.”
맥주잔보다 약간 작은 사이즈의 두꺼운 유리잔에 작은 얼음을 몇 알 넣고,
그 위에 직접 추출한 커피와 찬물을 섞어 넣는다.
“그런 분들이라면… 이런 커피 향기보단 먼지 냄새를 더 좋아하실 것 같은데.”
겉에 수증기가 맺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든 잔을 받아 든 여자는 한 모금 부드럽게 넘기고는,
여주인의 말에 어딘가 이상한 사족을 덧붙였다.
“먼지 냄새…? 그게 무슨 말씀이실까요?”
백발의 여자는 조용히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다.
“도시 외곽의 오래된 책방 같은 곳을 가면…
먼지 냄새 풍기는 책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고즈넉한 느낌이에요.”
여주인은 어딘가 아리송한 눈치였지만,
가게의 분위기에 대한 칭찬이라 여기며 손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 정도로 저희 가게의 분위기에서 정겨움을 느끼고 계신 걸까요?”
“그렇죠.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네요.”
어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돌려 가게를 둘러보는 여자.
그런 그녀의 눈에 벽에 걸린 그림 하나가 눈에 띄었다.
검은 철갑을 두른 하얀 말이 새까만 갑주의 기사를 태우고 달려가는 모습이 그려진,
꽤 오래된 느낌이 드는 유화 한 장.
여자는 그 그림이 마음에 든 건지 한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별 의미가 담긴 그림은 아니에요. 유럽 여행을 갔을 때 구매했던 그림이랍니다.”
“아… 꽤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그림이네요.”
인상적인 그림 한 장을 감상하며 어느새 여자의 잔에는 얼음 몇 알만이 굴러 다녔다.
“잘 마셨어요. 계산은 이 카드로 해 주세요.”
여자가 계산을 위해 여주인에게 건넨 카드에 그려진 특이한 모양의 그림.
빨간색으로 그려진 알파벳 H 위에 힘차게 주먹을 내지르는 듯한 이 그림은,
히어로 연합을 상징하는 심볼이다.
히어로 연합의 심볼이 새겨진 카드는 연합 관계자에게 제공되지만,
일반 소비자에게도 판매되는 일종의 굿즈로도 생각할 수 있는 제품이다.
여주인은 카드를 건네받은 뒤 잠시 카드를 보더니,
몇 초 뒤 아무렇지 않게 결제를 마치고 다시 카드를 손님에게 건넸다.
“3500원 결제 도와드렸습니다. 다음에 또 찾아와 주세요.”
“그렇게 됐으면… 좋겠네요.”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안녕히.”
“안녕히 가세요.”
– 띠링-
푸른 눈의 여자는 문을 열고 조용히 가게 밖을 나섰다.
“여기도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네.”
손님이 나가자 주방 한 켠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여성이 가게 안 주방으로 들어섰다.
여주인이나 방금 전의 손님보다는 약간 작은 키와 체격을 가진 여자.
성숙한 외모의 여주인에게 말을 놓는 것으로 보아 성인임은 확실했지만,
그와는 반대로 왜소하고 어려 보이는 인상의 여성이었다.
“가게 영업 중에는 안 나오시는 게 좋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여주인은 여자를 향해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 안에만 있으면 얼마나 갑갑한 지 알아? 원래 지내던 곳보다도 한참 모자르다고.”
주방 너머에 있는 작은 방 하나.
분명 사람 한두 명까지는 지내는 데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여자는 오히려 여주인에게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냥 채령 네 여동생이라고 하고 옆에서 있으면 되잖아.”
“그렇게 쉬우면 저희가 이렇게 숨어 지내겠어요?”
“그건 틀린 말이 아니지. 하지만 어쩌겠어? 아지트가 통째로 타버렸는데.”
여자에게서 채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여주인은 여자에게 방문을 가리켰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 계세요. 다른 은신처로 가려면 피해야 할 눈이 많아요.”
그러나 여자는 갑갑한 듯 투덜거리면서도,
채령의 말을 듣고는 입을 쭉 내밀고 문을 열었다.
“오늘 영업 빨리 끝내. 좀 더 편한 곳으로 빨리 가고 싶다구.”
“하하… 알겠습니다.
카이저 총수님
.”
***
히어로 연합 본부의 한 사무실.
몇십 분 전 카페를 방문했던 새하얀 머리의 여성과,
깔끔한 수염이 멋들어진 머리 희끗한 중년 남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녀석들의 아지트로 추정되는 곳이 있는가?”
“예. S시 중심부에 두 곳, 그리고 외곽에 총 세 곳 정도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스포츠 레깅스와 트레이닝복을 입었던 아까의 복장과는 달리,
몸매를 부각하는 새까만 제복과 망토를 두른 군인과도 같은 복장.
군인 중에서도 간부나 상급자들이 입을 법한 복장이었다.
“제가 전달해 드린 파일에 불법 아지트로 추정되는 곳의 정보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네가 보내는 보고서에는 늘 많은 양의 정보가 담겨 있어서 말이지.”
여자는 가슴팍에 달린 주머니 안에서 작은 칩 하나를 꺼내어 건넸다.
“그리고 이건 얼마 전 기습 작전으로 괴멸된 조직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는 메모리입니다.”
“오. 다크 나이츠의 은신처를 전수조사 팀보다도 훨씬 빠르게 찾아낸 건가?”
여자의 상관인 듯한 중년의 남성은 놀라운 듯 메모리를 받아들고는,
휴대전화만한 크기의 전자기기의 옆 틈새에 삽입해 넣었다.
“다크 나이츠의 기존 아지트가 소재하던 위치와는 꽤 떨어진 곳입니다.”
남자의 전자기기 화면에 찍혀 있는 지도의 위치는 방금 전 그녀가 방문했던 곳.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던 카페의 위치다.
“이곳은 카페가 아닌가. 영업을 하면서 임시 피난처로 삼고 있는 건가?”
“네. 처음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인물이 다크 나이츠의 간부로 추정되는 인물이었습니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과 붉은 눈이 매력적이었던 그 여자.
그녀는 감정 한 톨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카페의 여주인 채령에 대해 이야기했다.
“카페의 여주인은 ‘트릭스터’라는 이름으로 다크 나이츠에서 활동하던 간부입니다.
저번 작전 때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분신을 만드는 이능력’을 다룬다고 추정됩니다.”
“분신… 우리 입장에서는 처리하기 까다로운 이능력을 가졌군.
타 간부나 총수에 관한 정보는 아직 없는 거 같고.”
“예. 분발하겠습니다.”
여자는 제복 모자를 벗고는 상관에게 머리를 숙였다.
상관이 크게 기뻐하거나 만족할 수준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관의 표정은 그녀의 생각보다는 꽤나 밝아 보였다.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네. 전수조사 팀이 괜히 있겠는가?
자네의 그 마음은 이해하네만… 다급하게 행동하다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수가 있어.”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상관의 넓은 뜻을 이해한 듯 여자도 고개를 들었다.
“자네만큼 여러 방면에서 유능한 히어로를 찾기가 쉽지 않아.
이능력을 가진 녀석들은 대체로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경우가 아주 많아서 말이지.”
남자의 말처럼, 이능력을 가진 ‘이능력자’들은 자유분방한 경향이 있다.
세계 인구 중 이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들은 전체 인구의 약 5%.
그 5% 안에서도 이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미미한 이능력자들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이능력자의 비율은 그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이능력자들은 어릴 때부터 평범한 삶을 보내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꽤 많고,
그 과정에서 특이하거나 뒤틀린 성향과 성격을 지니게 된다는 연구 결과 또한 다수 존재한다.
히어로 연합으로 흘러 들어와 활동하는 이들 또한 대부분 그렇고,
그녀라고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연합 내의 히어로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지금 보고드릴 수 있는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렇군. 수고했네. 루미 양.”
“근무 중에는 본명으로 부르시면 안 됩니다.
아무리 제 이름이 설루미라는 걸 알고 계셔도 말입니다.”
히어로의 신상 정보는 원칙적으로 근무 중에서 언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
“하하! 그런 점이 정말 마음에 든다니까.
그래, 이만 나가 보게나. A급 히어로 아이스 퀸.”
히어로 연합의 A급 히어로 아이스 퀸.
설루미는 상관을 향해 고개 숙여 경례 후 그의 사무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