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21)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21화(21/117)
***
얕은 어둠이 깔리고 사람들의 생산 활동이 잠시 멈춤과 동시에,
노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 맛있는 식사를 즐기고 오락을 찾아 다니는 저녁의 번화가.
하하 호호 웃음꽃을 피우는 시끌벅적한 곳이었어야 할 이 거리에,
오늘도 어김 없이 시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그아아아아아아아!!!”
보통 사람의 몇 배는 될 법한 거대한 체구를 가진 괴한의 남자.
별다른 무기 하나 들고 있지 않은 남자는 흰 셔츠와 가죽 바지만 입은 채,
번화가에 돌연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괴물이야!!”
“이게 무슨 일이야!! 으아악!!”
인간보다도 괴수에 가까운 형상과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괴력.
그리고 그 괴력을 과시라도 하는 듯한 귀를 때리는 괴성까지.
“그그… 그르르르르… 그아아아아아아아!!!!”
– 쿠과과과과광!!!!
– 끼이이이이익… 쿠우우우웅…!
술집과 고깃집 같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곳부터,
수많은 종류의 명품이 전시되어 판매되고 있는 매장들까지 구분 없이 파괴하는 거구의 빌런.
비대하고 기괴한 근육은 그 괴력으로만 4층 건물의 외벽을 무너뜨릴 정도다.
“거기까지다! 파괴 활동을 멈춰라!”
그가 거리에 나타나 건물을 파괴하기 시작한 지 단 3분.
4층 건물 한 채를 온전히 파괴하고 다음 타겟을 찾고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카랑카랑함과 대단한 자신감이 팍 느껴지는 목소리.
주황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A급 히어로 이그니션은 당당하게 빌런 앞에서 소리쳤다.
“크르르르… 그으으으… 그아아아아아!!!”
“으앗?! 이 녀석… 사람 말을 안 듣잖아!”
인간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빌런은 그저 그르르거리는 괴성을 내뱉을 뿐,
그녀의 외침에 대답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짐승에게는 짐승에 맞는 방법을 써야겠지?”
“그르르르…”
– 슈우우웅ㅡ
다리에 불꽃을 휘감아 폭발시킴과 동시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추진력을 이용하여 높이 뛰어오른다.
“흐아아아아아아앗!!”
그리고 빌런을 향해 양쪽 다리를 쭉 뻗고는,
손바닥 끝에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켜 그대로 내리꽂는다.
– 쿠과과과광!!!
“그으으으… 그아아아아아아!!!!”
오른쪽 어깨에 작렬한 이그니션의 발차기에 고통스러워 하는 빌런.
그러나 지축을 울리는 폭발음이 발생할 정도의 강력한 공격에도,
약간의 상처를 입었을 뿐이었다.
‘직접 타격하는 수준으로는 어려운 건가…?’
그 작은 상처 틈새에서 상당한 양의 피가 뿜어져 나오긴 했지만,
빌런을 다운시킬 정도의 치명적인 일격은 아니었던 모양.
이그니션은 성난 황소처럼 고통에 울부짖고 있는 빌런을 보며,
그를 무찌를 만한 다른 대책을 생각했다.
‘저 녀석의 몸… 어딘가 이상해. 저건 혹시…?’
그녀는 빌런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며 몇 가지의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괴인의 피부 표면에 보이는 수많은 수술 자국과 주사 바늘 자국.
그리고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혈액의 색이 적색보다도 보라색에 가깝다는 것.
약 십여 년 전부터 발생하고 있는 하나의 큰 사회 문제를 떠올리게 했다.
“그르르르르… 그아아아아아아…”
불법적으로 만들어진 특수한 약물이나 기계 장치를 이용하여,
근육과 골격을 비정상적으로 비대화시켜 괴물처럼 변해 버린 사람들.
몇몇 거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가진 악의 조직들은 수많은 실험을 통해,
단 하나의 개체로도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괴인’을 만들어 냈다.
괴인의 파괴력은 히어로들이 대처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저 괴인들은 그들 조직의 하수인일 수도 있지만,
아무 죄 없는 시민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즉 이그니션의 눈앞에 선 저 괴인은 무고한 시민일 수도 있다.
“그으으으…! 으으으으아아아아아…!”
괴인의 어깨에서 콸콸 흘러나오는 보라색 혈류로 인해 상처는 점점 벌어지고,
보라색 웅덩이가 생겨난 길거리에선 코를 찌르는 악취가 퍼져나갔다.
다행히 거리 내의 시민들은 거의 대피하여 먼 곳에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그니션은 어딘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광분 상태였던 괴인의 행동이 점점 잠잠해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피를 잔뜩 흘리고 있음에도 그의 몸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서… 설마!’
그리고 이그니션이 그걸 눈치채고 대처하려던 그 순간.
– 퍼어어어어어엉ㅡ
불안한 상태로 보였던 괴인은 갑작스레 굉음을 터트리며 신체가 폭발해 버렸다.
“으으으으으으윽!!!”
폭발의 풍압이 거리를 벌리고 서 있던 이그니션에게까지 전해지고,
폭발이 끝나고 난 자리엔 보라색 웅덩이와 파괴된 건물의 잔해만 남아 있었다.
‘확실해. 이건 최근에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자폭형 괴인이야.’
자폭형 괴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변의 건물과 구조물을 모조리 날려 버리고,
살 한 점 남기지 않은 채 자욱한 연기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던 덕분에 이그니션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한 가지 불편한 것이 마음 한 켠에 남았다.
저 괴인이 평범한 시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암컷 윤도화는 이미 빌런 도미네이터의 충직한 하수인이 되어 버렸고,
지금의 히어로 활동 또한 그의 지시로 유지하고 있는 것.
그러나 아직 그녀의 마음에는 히어로의 정의로운 마음이 남아 있었다.
인식 개변으로 인해 성처리 노예이자 스파이 빌런으로서의 정체성이 자리를 잡았지만,
완전히 소거되지 못한 정의감은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 이건… 그저 일이야. 도미네이터 님께서 명령하신 일의 일부일 뿐이야.’
이건 그저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라고.
과거라면 물리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괴로워했을 자신을 외면했다.
[ 히어로 이그니션. S시 시내 번화가에 등장한 빌런 제압 완료. ] [ 폭발형 괴인으로 추정되는 빌런의 자폭으로 상황 종료. ] [ 신속한 후속 지원 바람. ]***
“흐으으으…! 피곤하다.”
“도화 언니! 끝나고 온 거야?”
피곤한 듯 기지개를 켜며 아지트 안으로 돌아온 도화.
지우는 콧노래를 부르며 아지트 안의 먼지를 쓸어내는 중이었다.
“왔구나?”
“주인님!”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시윤도 그녀를 맞이했다.
“피곤해 보이네. 오늘 바빴어?”
“네… 최근에 괴인 출현 빈도가 잦아져서 좀…”
“괴… 인이라고?”
괴인이라는 존재에 대해선 금시초문인 듯한 시윤.
“몇몇 빌런 조직에서 불법 약물이나 장치를 이용해 만드는 일종의 실험체에요.
문제는… 그 실험 대상이 무고한 시민일 수도 있다는 거에요.”
“흐음. 제조 기술이나 설비만 있다면 상당히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좀 먼 이야기려나?”
무고한 시민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내용은 제쳐두고,
괴인 운용의 효율성만을 따지고 있는 시윤.
철저한 빌런의 입장인 그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사고방식이지만,
도화는 그러한 그의 태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끔찍한 일이에요. 제가 무찌른 그 괴인이… 시민이었을지도 모르잖아요.”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그런 실험을 한다라…. 위험 부담이 너무 크잖아.”
몇 시간 전 자신이 느꼈던 당혹감.
분명 자신은 빌런 조직의 스파이로써 히어로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어째서인지 시민을 지켜야 한다는 정의로운 사명감이 그 생각을 뒤흔들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도화는 무심코 주인에게 실망하고 의심했다.
도화의 마음속에 깊게 뿌리내린 히어로의 정의로운 마음과,
인식 개변으로 인해 덮어씌워진 음란한 스파이로써의 마음이 충돌하고 있었다.
‘나… 나는 누구지…? 나… 나는…’
“무슨 일 있었어 언니? 표정이 안 좋은데…”
“그러게. 어디 다쳐서 온 거 아니야?”
혼란스러워하는 도화의 표정을 보며 걱정하는 지우와 시윤.
“아니야! 좀… 피곤해서 그래. 들어가서 먼저 쉬고 있어도 괜찮을까요?”
“뭐… 그래.”
도화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두 사람에게 웃어 보이고는,
커다란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잠시 몸을 뉘었다.
“도화 언니에게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요, 주인님?”
“흠…”
시윤은 어렴풋이 도화의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저 표정은 피로함이나 통증에서 기인한 부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심리적인 불안함과 혼란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령이 다른 이유로 해제된다거나, 각인이 지워질 수도 있는 건가…?’
분명 각인이 새겨진 대상에게 내려지는 그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게다가 그가 인식 개변을 걸어 놓은 대상은 평범한 일반인이 아닌,
히어로 연합의 상위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명의 A급 히어로이다.
[ 상태 : 각인 2단계 (잠식도 100%) ]시윤이 보고 있는 디스플레이에 따르면,
도화에게 새겨진 각인은 지워지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심지어 그녀의 각인 잠식도는 100%.
지금이라도 다음 단계로의 진화가 이루어졌어야 하는 상황이다.
‘혹시… 각인이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위한 조건이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