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27)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27화(2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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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용 히어로 슈트가 필요하시다구요?”
“네. 활동 중에 찢어지는 바람에.”
도화는 본부에서 지원하는 예비용 히어로 슈트를 지급 받기 위해,
히어로 연합 본부의 지원과 사무실에 들렸다.
“새 히어로 슈트는 기존 사용하시던 것과 동일한 디자인으로 제작해 드리면 될까요?”
“네. 그렇게 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히어로 연합의 지원과의 담당 업무는 이름 그대로 히어로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일.
활동 중 사용하는 장비부터 히어로 개개인의 건강 관리,
주기적인 히어로 소양 교육 등 다양한 업무를 소화한다.
특히 슈트나 장비가 파손되는 일은 생각보다 잦기 때문에,
지원과에서는 항상 다양한 사이즈의 예비용 슈트를 구비한다.
또한 히어로 개개인마다의 히어로 슈트를 제작해주는 일 또한 담당하며,
복지 차원에서 히어로에게 일절의 비용도 청구하지 않는다.
“슈트 제작은 이틀이면 끝나는데… 넉넉하게 두 세트 챙겨드리면 될까요?”
“한 세트만 챙겨 주셔도 될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저기 옆에서 가져가시면 돼요.”
지원과 사무실 벽면에 있는 커다란 출입구에서 나온 큰 철제 가방 하나.
도화는 예비용 슈트가 든 상자를 들고 지원과 사무실을 나섰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슈트 가방을 들고 찾아간 곳은 지원과 내부의 또 다른 사무실.
“오! 히어로 이그니션 님이 아니신가?”
“오랜만이에요!”
사무실 안 책상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성은 도화를 환하게 반겼다.
“과장님 하나도 안 늙으셨는데요?”
“떼잉! 내가 이렇게 보여도 자네랑 스무 살도 차이 안 난다고.”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듯 절뚝거리며 그녀를 책상 앞 테이블로 안내하는 남자.
그는 현재 연합 지원과 과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과거 ‘스파이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A급 히어로 출신이기도 했다.
그가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것은 활동 중 입은 큰 사고로 인한 후유증.
사고 이후 재활에 실패하여 은퇴 후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중이다.
“요즘 그 룸메이트 친구는 잘 지내는가? 아파서 활동도 며칠째 쉬고 있다고 들었네만.”
같이 연합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룸메이트인 지우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 과장.
도화는 약간 시무룩한 얼굴로 답변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한 편이라고 했었거든요.
최근에 실적 문제로 무리를 할 일이 있었는데… 그거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흐으음… 그렇구만. 빨리 쾌유했으면 좋겠네.”
과장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리며 도화에게 차 한 잔을 건넸다.
“그래서. 오랜만에 절 이렇게 직접 불러 주신 용건이 뭐에요?”
“아차차! 그렇지. 그걸 까먹고 있었네. 하하.”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던 과장은 태블릿 하나를 꺼내어,
도화에게 태블릿 화면을 보여 주었다.
그 화면에는 무너진 다크 나이츠의 아지트 건물 사진 몇 장과,
저번 작전 중 촬영된 조직원들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자네도 이 작전에 투입된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지?”
도화는 수십 장의 사진 속 하나의 사진을 보며 순간 움찔 했다.
사진을 넘기는 과장의 손 너머로 보이는 굉장히 익숙한 뒷모습.
마스크를 쓰고 있는 탓에 얼굴은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큰 키와 다부진 체격을 가진 그 모습은 시윤의 전투원 시절 모습이 틀림없었다.
“네. 작전 첫날에 출격했었죠.”
도화는 표정의 동요 하나 없이 사진을 들여다보며,
과장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작전에서 대부분의 빌런 조직원들과 몇몇 간부들이 사망하거나 체포되었네만,
중요한 핵심 인물들은 이미 도망치고 난 뒤였다네.”
시윤이 지원 요청을 위해 아지트 사령실로 달려갔을 때에는,
이미 모두 도망치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던 상황.
빌런 조직에서는 보통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경우,
중견급 간부가 직접 나서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다크 나이츠의 경우는 꽤 특수했다.
작전에 투입된 히어로들이 마주한 조직원들은 거의 대부분이 잡졸 전투원에,
그들을 지휘하는 하급 간부 격의 조직원 뿐이었다.
조직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총수는 물론,
총수 직속의 간부들의 얼굴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던 것이다.
“첩보원들과 몇몇 히어로들을 추가로 투입하여 여러 정보를 얻어내기는 했지만,
빨리 조치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제압하는 건 점점 어려워질 거라네.”
“그렇겠네요.”
“그래서 말이야. 자네가 이 건에 대하여 맡아주었으면 하네.”
과장은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진 작은 상자를 열어,
그 안에 들어 있던 자그마한 칩 하나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입수한 정보가 담겨 있는 칩이야. 사용해 본 적 있지?”
USB와 같은 보편적인 저장 장치의 경우 정보 유출 위험이 있어,
아무나 정보를 열람하지 못하도록 특수한 저장 장치를 사용한다.
히어로에게 지급되는 특수 단말의 옆에 SD 카드나 USIM 카드처럼 삽입하면,
단말 내에서 칩 안에 든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칩이 작아서 떨어뜨리거나 하면 금방 망가지니 잘 보관하게나.”
– 똑똑똑ㅡ
도화가 칩을 건네받아 단말기 케이스 옆에 꽂아 놓고 있던 때,
사무실의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 마침 타이밍 맞춰 잘 왔구만. 들어오게나!”
– 끼이익ㅡ
“안녕하십니까, 지원과 유성환 과장 님.”
“반갑네. 자네도 여기 앉게나.”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또각또각 걸어 들어온 차가운 인상의 여성.
깔끔한 세미 정장을 입은 채 사뿐하게 소파에 앉아 과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소개하지. 이쪽은 A급 히어로 이그니션. 활기찬 열혈 히어로라네.”
“안녕하세요!”
도화는 그녀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이쪽은 A급 히어로 아이스 퀸. 아주 프로페셔널한 친구지.”
“반가워요.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A급 히어로 ‘아이스 퀸’ 설루미는 잠시 소파에서 일어서더니,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고개 숙여 도화에게 인사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혼자 마무리하기엔 좀 버거운 일이다 싶어서 말이지.
자네를 도울 실력 있는 히어로와 함께 맡기기로 했다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루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과장이 건넨 칩을 건네받아 단말기 옆에 꽂아 넣었다.
‘저 사람… 말투나 행동에서 감정이 하나도 안 느껴지는데.’
표정의 변화는커녕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루미의 말과 행동에,
도화는 그녀를 보며 소름 끼친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전달하실 사항은 모두 전달하셨습니까?”
“오늘은 서로 얼굴만 보기로 한 거니까. 여기까지만 하세.”
“그럼 전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루미는 과장을 향한 기계적인 경례를 남기고,
흐트러짐 하나 없는 자세로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하하. 나도 저 친구를 볼 때마다 무서워서 움찔움찔한다네.”
루미가 밖으로 나가자 과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그녀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를 몇 줄 풀어냈다.
“아이스 퀸… 저 친구도 원래 저렇게 딱딱하고 기계적인 사람은 아니었다네.
자네처럼 활기차게 활동하던 시절도 있었지.”
“무슨 사연이라도 있었던 건가요?”
“그건 자세하게 말해 줄 수 없네. 남들이 언급하는 걸 매우 싫어해서 말이야.
사실 나도 어느 정도 들은 이야기로 짐작만 하는 거라네.”
루미의 기계적인 태도에는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였지만,
과장도 제대로 알지는 못 하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떠벌려지는 걸 원하지 않았기에,
관계자들도 짐작 가는 내용이 있거나 정말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마 긴급 출격이 아니라면 오늘부터 임무 완료 날짜까지는 출격 요청이 없을 거라네.
그때까지 자네도 푹 쉬고 있게나.”
“네!”
***
“나 왔어!”
아직 해가 중천에 뜨지도 않은 늦은 오전 시각.
지원과 과장에게서 임무를 하달 받은 도화는 이른 시각에 퇴근하여 돌아왔다.
“언니! 무슨 일이야? 이렇게 일찍 다 오고.”
지우는 평소보다도 반나절은 더 일찍 돌아온 도화를 반갑게 맞았다.
“다 이유가 있지. 엄청난 정보를 들고 왔다구?”
“엄청난 정보? 주인님께 바칠 암컷이라도 데려 온 거야?”
도화는 예비용 히어로 슈트가 담긴 철제 가방을 소파 옆에 내려다 놓고,
단말기 주머니에서 과장에게서 받았던 작은 칩을 꺼냈다.
“어? 웬일이야. 벌써 퇴근한 거야?”
화장실 문을 닫고 거실로 나온 시윤 또한 도화에게 벌써 퇴근했냐며 인사를 건넸다.
“주인님! 마침 보여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어디 좋은 정보라도 가지고 온 거야?”
도화가 단말기 옆구리에 칩을 꽂아 넣자,
단말기 화면은 ‘파일이 다운로드 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띄웠다.
“주인님께서 이전에 활동하시던 그 조직에 관한 정보에요.”
“내가 전에 활동하던 조직이라면… 다크 나이츠를 말하는 거야?”
도화가 단말기 옆 동그란 모양의 버튼을 누르자,
단말기 상단에서 안테나처럼 생긴 긴 막대 하나가 튀어 나왔다.
그리고 그 버튼을 다시 한 번 클릭한 후 아지트 벽면에 걸린 TV를 켜자,
칩으로부터 다운로드된 정보들이 빠르게 나열된 화면이 띄워졌다.
“단말기 옆 이 버튼을 누르시면 천천히 넘기면서 보실 수 있어요.”
도화는 시윤의 손에 단말기를 건넸다.
“내가 있던 전투대 지휘관… 고위급 간부들 정보까지 다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