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Brainwashing Villain in a Hero World RAW novel - Chapter (56)
히어로 세계 속 세뇌 빌런으로 살아남기 56화(5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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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와 시윤이 엑스큐셔너를 무찌르고 난 뒤 이틀.
시윤은 세 암컷과 함께 렌트한 차를 타고 이틀 넘게 수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자신들의 본거지이자 연합 본부가 존재하는 S시의 외곽부터,
첫 목적지이자 해양 도시인 Y시, 그리고 공항이 존재하는 B시까지.
채령이 기억하고 있는 모든 아지트 건물의 소재지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대부분 관리가 되지 않아 폐허처럼 변하거나 다른 이들이 사용한 흔적이 있었고,
몇 군데만이 다녀간 흔적이 있을 뿐 총수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바쁘게 돌아다녔지만 딱히 소득이 없었던 탓에,
시윤과 세 암컷은 크게 지친 채로 본거지에 돌아왔다.
“이렇게나 돌았는데도… 아무 데도 없었네 결국엔.”
“그러게요. 총수도 알긴 아는 모양이에요.”
지친 심신을 위로하기 위해 소파 위에 다 같이 앉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떡과 과일이 올려진 차가운 빙수를 먹으며 앞으로의 일을 고민했다.
“그럼 채령이가 알고 있는 곳은 다 찾아다닌 거지?”
“냐아앗! 그 다섯 군데가 아니라면… 아예 다른 곳에 계실 거에요.”
빙수를 한 입 먹고는 머리가 띵한지 눈을 크게 뜨며 냐아앗 거리더니,
머리를 도리도리 돌리며 시윤의 말에 대답했다.
“아마 채령이가 히어로들에게 잡혔거나 그만큼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본인도 인지했겠지.
그렇다고 한다면… 총수를 찾는 건 조금 나중의 일이 되려나.”
“혹시 총수나 다른 간부와의 다른 연락 수단은 없었어?”
“냐아… 국외 기반 SNS 같은 걸 사용하기는 했었어요.
근데 제가 항상 총수님께 붙어 있어서 딱히 쓸 필요가 없었어요.”
히어로 연합은 정부 산하 기관이 아닌 엄연한 독립적인 조직이지만,
정부 그리고 경찰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연락 수단을 이용한다면 금방 추적당할 염려가 있었기에,
빌런 조직들은 여러 방법을 사용하고는 했다.
대개 드론을 이용하거나 직접 부하를 통해 소식을 보내는 물리적인 방법부터,
다크 나이츠의 경우처럼 해외 기반의 메신저를 사용했다.
거대 자본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라면 독자적인 통신망을 구축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다크 나이츠는 그 정도의 자본과 기반을 가진 거대 조직은 아니었다.
“이제 독자적으로 찾기는 좀 어렵겠네요….
순순히 우리에게 뒤를 밟혀줄 거라는 생각은 안 하기는 했지만.”
도화의 말처럼 채령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방법을 모두 동원해도 찾지 못한 상황.
“그럴 줄 알고 내가 해 놓은 일이 있잖아.”
“아이스 퀸! 그 하늘색 머리 얼음 히어로 말씀이시죠?”
“그렇지. 그때 한방에 안 조져놨으면 좀 쉽지 않긴 했을 건데… 다행이지.”
시윤은 휴게소에서 엑스큐셔너를 제압하며 루미에게 접촉하는 데 성공했고,
운 좋게 시민들이나 요원들에게도 자신의 정보를 노출하지 않았다.
루미는 다크 나이츠의 남은 간부들을 처리하는 대규모 작전을 수행하는 중이고,
그렇다면 오히려 더 정확한 최신 정보를 얻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아이스 퀸이라는 히어로. 주인님께 완전 반한 거 같았어요!”
“의도한 거는 아닌데….”
지우도 보았던 루미의 그 표정.
백마 탄 왕자님에게 사랑에 빠진 듯한 소녀의 표정이었다.
“기계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사람이었는데….
그만큼 주인님께서 대단하신 분이라는 걸 안 걸까요?”
도화가 함께 작전을 수행하며 남아있는 루미에 대한 기억 또한,
극히 이성적이고 감정이 메마른 모습과 말투뿐이었다.
물론, 채령을 제압하는 데 실패했을 때의 그 표정만큼은 굉장히 슬퍼보였다.
“분명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연합으로 찾아오라고 했었지.”
***
한편, 히어로 연합 본부 건물에 위치한 한 카페.
“시윤 씨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 사람일까.”
엑스큐셔너 제압 이후 며칠 동안 꿀 같은 휴가를 즐기는 동안,
그녀는 시윤 생각을 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연합 관계자들에게 묻고 물어 그를 찾아보려고도 했지만,
정확하지 않은 외모 묘사와 이름만으로 그를 찾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렇게 자꾸 다른 생각을 하면… 휴가가 끝나고 하는 일에 지장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거진 사흘 동안을 그 생각만 하며 혼자 고민하기도 하고,
엑스큐셔너를 제압하고 돌아온 날처럼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비부를 문지르고 가벼운 절정을 겪어도, 점점 애달파질 뿐이었다.
‘그래. 잊어버려야 해… 잊어버리는 거야.
이런 행동은 나답지 않아.
설루미. 넌 언니를 찾기 위해 히어로가 된 거잖아.
사사로운 기억과 마음에 휘둘려서는 안 돼.’
혀가 얼얼해질 정도로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쭈욱 들이키고는,
한껏 붉어진 뺨을 손바닥으로 착 때리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래도 잊어버릴 수가 없어…!’
“미치겠다 진짜….”
평소라면 자신을 다잡으려는 생각 한 번이면 됐을 테지만,
사랑에 빠져버린 소녀의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감추기 힘든 법.
오히려 잊어버리려 하면 할수록 더더욱 루미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할 뿐이었다.
– 띠리리링ㅡ
“으아앗?!”
갑자기 울리는 히어로 단말기의 알림에 화들짝 놀라는 루미.
누군가로부터 통화가 걸려 온 모양이었다.
“…네. 아이스 퀸입니다.”
“아이스 퀸님이시군요! 아이스 퀸님을 찾아오신 분이 계셔서요.
시윤 님… 이라는 이름을 불러드리면 알 거라고 하셨는데. 혹시 지인이신가요?”
“누… 누구요? 방금 시윤 님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예! 상담관리과에 찾아오셔서 히어로님을 찾으신다고….”
“지… 지금 가겠습니다!”
시윤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상담관리과의 안내 전화.
루미는 그 전화를 듣고는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상담관리과에 찾아갔다.
“헉… 헉!”
루미가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찾아간다는 건,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있는 일이었다.
연합에서는 그녀의 히어로 네임인 ‘아이스 퀸’을 따,
그녀를 얼음 여왕이라고 부를 정도로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였다.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그녀가 얼굴을 붉힌 채 헉헉거리며 달려가는 모습은,
연합 관계자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될 정도였다.
– 끼이익ㅡ
“저… 왔습니다…!”
그렇게 쉬지 않고 달려 찾아온 상담관리과 사무실.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가자 환하게 웃고 있는 상담관리과 직원이 그녀를 맞이했다.
“아! 오셨네요. 엄청 반가운 분이신가 봐요!”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접객실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시윤의 모습이 보였다.
“시… 시윤 씨…?!”
“아. 오셨네요. 반가워요.”
루미는 시윤에게 달려가 커피를 마시고 있던 두 손을 꽉 잡았다.
“드디어… 드디어 찾아오셨군요…!”
“아하하… 환영 인사가 굉장히 과격하시네요.”
“아…! 죄, 죄송합니다. 너무 반가워서 그만….”
꽤나 격한 환영 인사에 시윤이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루미는 그제서야 깜짝 놀라 연신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렇게 사과하실 것까지는 없어요. 오히려 환영받는 거 같아서 좋은데요.”
“그… 그렇다고 하시면 다행입니다만….”
루미는 시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백 원짜리 종이컵에 담긴 갈색 믹스커피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혹시 어디 아프세요? 얼굴이 아주 빨간데….”
“아… 아닙니다! 좀 더, 더워서 그렇습니다.”
접객실과 상담관리과 사무실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빵빵하게 나오고 있지만,
시윤은 구태여 그런 걸 지적하지는 않았다.
“다른 건 아니고… 혹시 식사 한번 같이할 수 있을까 해서요.”
마침 시윤이 루미를 찾아온 시간대는 약간 이른 점심.
상담관리과 직원들도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사무실 밖으로 나가고 있다.
“식사… 제가 사겠습니다!”
“얻어먹으려고 온 건 아니었는데. 사 주신다면 감사히 받을게요.”
루미가 용기 내어 시윤의 얼굴을 바라보며식사를 대접하겠다 말하자,
시윤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은 아니라서 잘 모르는데,
혹시 연합 본부 근처에 맛있는 집 아세요?”
사무실 밖을 걸어 나오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했지만,
루미는 콩닥거리는 심장 박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저도 잘 모르지만… 맞은편 건물에 있는 일식집이 괜찮다고 들었습니다.”
“오! 저 일식 엄청 좋아하는데. 돈까스나 초밥 같은 거.
아이스 퀸님께서도 좋아하시나요?”
계속된 시윤의 질문 공세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고,
붉어진 얼굴에서는 송골송골 맺힌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내가 저 사람한테 그 정도인가…?’
시윤은 자신이 그 정도인가 순간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딱히 이유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았다.
“저기 말씀이신가요, 아이스 퀸님? 저기 나무 간판으로 되어 있는 곳.”
“루… 루미에요.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자신을 히어로 네임으로 부르는 시윤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준 루미.
물론 시윤은 각인이 새겨진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히어로의 인적 사항은 엄연히 기밀인 만큼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행동하고 있었다.
“예쁜 이름이네요. 루미 씨.”
“흐으으…!”
루미는 시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더욱 정신을 못 차리고,
시윤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귀엽게 여기며 일식집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